거듭난 소식

솔로몬 임금의 부귀영화보다 더 큰 행복

7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자 나에겐 고난과 시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지금까지 노력이 부족하여 못 한 일이 없을 정도로 노력하였지만,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 생활 중 기쁜 일이 있었다면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하여 영예의 자리를 차지했을 때뿐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수년간을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봉사했지만 기쁨을 티끌만큼도 얻는 것이 없었습니다. 직장생활 역시 고난과 시련이 많았습니다.


9년간을 같이 근무하던 직장을 떠난 후배에게서 “시련과 고난을 잘 참고 견디는 언니에게서 인내를 배웠습니다.”라는 편지가 왔었습니다. 나의 의지력과 인내로 현실을 극복하면서 살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왜 이다지도 세상은 불공평한가? 왜 나에겐 비 오고 바람 부는 날만 계속되는가?’ 하는 우울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술과 여자로 방탕 생활을 한 남편 때문에 삶의 기쁨을 잊고 난 후 돈을 버는 일밖에 모르던 친구를 집 앞에서 만났습니다. 친구 부부는 이전에 천주교 직책까지 받은 신자였는데, 몇 달 전에 가정에 큰 경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가 어느 교회에 가서 참 진리를 듣고 깨달아 그날부터는 당장 죽어도 한이 없고 죽을 먹어도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람둥이 남편도 깨달아 새사람이 되었고 가정에도 충실하다고 합니다. 


친구 이야길 듣고 처음엔 내 자존심 때문에 나 자신을 옳다고 했는데 여러 차례 권고하여 생각해 보니 여태껏 나의 신앙은 이뤄질 수 없는 짝사랑에 불과했고, 믿을 만한 증거도 없이 덮어놓고 추측으로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남에게 증거도 댈 수도 없는 신앙이었습니다.

친구의 인도로 한 달 이상을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상고하던 중 하나님의 존재를 그가 만든 만물을 보고 알 수 있었지만, 더욱 확실한 것은 몇천 년 전에 성경에 예언한 모든 말씀이 그가 택한 나라 이스라엘 역사에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나 현재 중동 문제를 매스컴으로 보고 신의 존재를 손으로 만져 본 것처럼 믿어졌습니다. 성경은 신화가 아니고 사실로 있었던 이야기요,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기록한 책이었습니다. 또한, 과학이나 세계 역사도 말씀대로 사실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에 마음 판에 찍어져 버렸습니다.


그다음에 나 자신을 비춰볼 때 티끌만큼도 못하고 너무 더러워 하나님 앞에 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죄 때문에 고민하다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참조)라는 말씀과 또 요한복음 5장 25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날부터 나의 인생관은 180도로 바뀌고 이전에 없었던 천국이 마음속에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겉모습이나 환경이 좋아진 것도 아닌데 왜 이다지도 기쁠까 하는 생각으로 바뀐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추한 내게 감당할 수도 없는 큰 복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 감격하여 눈물이 흐릅니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기쁜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내 생애에 기쁜 날이 시작된 후론 어떤 역경 뒤에도 그 기쁨을 상실치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삶의 목표가 뚜렷해졌기 때문에 헛된 생각을 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내가 맡은 일에도 명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의 부귀영화와도 바꿀 수 없는 큰 복을 얻은 기쁨 때문입니다. 솔로몬 임금은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귀영화를 누린 왕으로 이 세상에서 해 보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다 가져 보았지만, 태양 아래 있는 것은 모두 헛되다고 결론을 내렸지요.


그 후로 솔로몬 임금이 말하기를 헛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전 2:24)고 했습니다.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복을 누렸다고 해도 영원한 것에 비하면 순간적이기 때문에 인생은 초로와 같고 안개와 같다고 했으며, 어느 시인은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시 90:10 참조)이라고 했습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순간에 실패할 수도 있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 당하고, 진실한 사랑을 했던 사람이 변심하여 사랑했던 사람을 죽인다든지,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린다든지, 남편과 아내를 잘못 선택해서 착한 사람이 일생을 고생한다든지 등등 이 세상 복은 뜬구름 같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알렉산더 대왕도 공수래공수거라 했듯이, 싸워 많은 것을 얻었다 해도 죽을 땐 빈손으로 가는 것이니 인생은 허무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종하는 짐승과 같다고 했듯이 우리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또 살아있을 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금수나 다름이 없는 것이지요.


고기와 짐승은 사람을 위해 지어졌고. 사람은 신의 영광을 위해 지어졌다는 목적을 발견하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육신이 죽은 후에도 영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고난 중에도 마음의 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최악의 불행을 만난 후에도 없어지지 않는 복이 영원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공자가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고 했듯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만족함이 없고, 진리를 깨닫는 기쁨만이 이 세상 어떤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만족함이었습니다.

이 세상 것은 만족함이 없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믿을 수 없고 마음을 놓고 살 수 없는 시끄러운 세상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완전하고 영원한 복을 얻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 복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없이 누구나 다 영원하신 분께 구한다면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풍파가 요란하고 수시로 변하는 세상만 바라보다가 그것이 무너지면 자기도 무너지고 절망에서 헤매다가 자살까지 하는 인생입니다. 이 세상의 소망이 끊어졌을지라도 소생할 수 있는 참기쁨을 많은 사람이 같이 누렸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