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처음에 옷 장사를 했고 차차 노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술과 방탕한 세월이 이어졌다. 술을 먹고 집에 와서 삽을 던져 맞아 죽을 뻔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굿을 하기 시작했다. 네 번째 굿을 하면서 ‘이번에 굿을 해도 효험이 없으면 끝이다.’ 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굿을 해도 효과가 없어서 그때부터 미신을 끊었다.
가장이 그러니 자연히 가산도 다 기울어서 내가 보따리장수를 했다.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다하면 책을 한 권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어릴 때는 고생을 모르고 자랐으나 결혼한 후부터 고생문이 열렸다. 남편은 외모는 멀쩡했으나 술주정이 심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가 부모 없이 성급하게 결혼을 한 것이 그만 고생문이 되었다. 남자 한 사람 보고 결혼을 했는데 인생의 쓰디쓴 맛을 보게 된 것이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나는 결혼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아이들을 집에 두고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옷 장사를 했다. 내가 고생을 한다고 동네에서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컸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 전철을 밟지 않게 하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정답게 다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집을 나오면 아이들은 나를 따라나올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 없이 키워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보따리를 펴놓고 장사하다가도 남편의 술빚으로 그것마저 다 빼앗기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렇지만 또다시 물건을 떼어다가 길에 펴놓곤 했다. 이를 악물고 살았다. 나는 자식을 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한번은 죽으려고 약을 먹었으나 죽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 같다.
한번은 참굴비 장수를 했었다. 시장에 나가서 참굴비를 사서 와서 소금으로 절이어서 그것을 엮어서 파는 일이었다. 한 궤짝에 굴비가 15줄씩 들어가는데 그 궤짝을 이고 다니며 팔았다. 굴비를 말려서 이고 가면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참굴비 아줌마 왔다고 사람들이 뛰어나와 산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장사하는 사람은 그 굴비를 하루 만에 다 팔지만 나는 혼자서 팔기 때문에 다 팔지 못했다.
남편이 어느 순간 술을 먹기 시작하면서 나 혼자 장사를 해야 했다. 그런데 굴비는 하루만 두어도 물이 말라서 작아지는 것이었다. 몇 년을 그렇게 버티다가 행여 남편을 사람 만들어 볼까 하여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지 않겠느냐고 권했으나 가지 않았다.
한 번 밥을 좀 실컷 먹어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배고픈 설움을 겪었으나 자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키웠다. 나는 지금도 심장이 나쁘다. 우리가 아파트에 살 때 남편의 발걸음 소리 만들어도 술을 먹고 올라오는 걸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러한 고통의 나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술을 먹고 올라오는 소리가 나면 아이들은 작은 방으로 숨어 달아난다. 아이들은 지금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안 좋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에게 누누이 타일렀다. “그래도 너희 아빠 때문에 너희가 태어난 것이 아니나”
그 당시는 살아가기 힘들어서 교회에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집이나 친정에서는 불교를 열심히 하였는데 우리 아들은 교회를 열심히 하였다.
1991년도에 아들이 구원을 받았다.
“어머니, 젊어서 그렇게나 고생을 하시고 돌아가신 후에도 또 고생하시렵니까?’
그런 말을 할 그 당시에는 아들이 불효막심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를 삐었다. 병원에 가보니 관절염이었다. 그러나 그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부업으로 일감을 가져다 일을 했다. 그러나 몸은 날이 갈수록 더 아팠다.
딸이 6월경에 와서 놀러 가지고 했다.
“엄마, 우리 교회에서 놀러 가는데 같이 가요."
“젊은 사람들이 가는데 늙은이가 왜 가느냐?’
“그게 아니고 친구들 엄마들 다 가는데 엄마는 안 가실래요?’
“그럼 나도 바람이나 쐴 겸 가볼까?’ 딸이 뛸 듯이 좋아했다.
따라가 보니 친구 어머니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마치 피난민 같은 인파만이 있었다. 날씨는 덥고 몸은 아팠다. 딸이 평소와 달리 지극 정성을 다해 돌보아주었다. 나는 그런 피난민 생활도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경험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무슨 일이든 내게 닥쳐온 고생은 마다치 않았다. 딸은 내 생각을 알지 못하니 혹 집으로 돌아간다고나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 당시 성질을 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말씀을 며칠 듣는데 내 마음에 합당하였다. 집에 가기 싫고 계속 말씀의 교훈을 배우고 싶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좋은 말씀이 어디 있니?” 하니 딸은 정색하고 말했다.
“엄마, 좋은 게 문제가 아니에요. 구원을 받는 것이 문제예요. 엄마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예요.”
“엄마, 밥맛이 어떠세요?”
“밥맛 괜찮은데”
“밥맛이 괜찮아하시니 다행이네요.’’
이 말을 거듭하며 내 속마음을 헤아려 보는듯한 얼굴을 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내 마음속에 괴로운 문제로 삼아주었다. 구원받은 후에야 비로소 딸이 하려던 말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는 영혼 문제에 걸리지도 않고 밥맛만 괜찮다고요?”
다른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받지 못했다. 금요일 아침에 딸의 의미심장한 말을 듣고는 저녁에는 선잠을 잤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제일 앞에 자리를 먼저 잡아놓고 세수하러 나갔다. 제일 앞자리에서 들었다. 목사님이 “뭐 하고 있다가 이제 왔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기도였다.
“아버지!! 그래요. 나는 이제 올 수밖에 없어요. 내 머리가 다 썩고, 내 육신은 다 썩어지고 진작에 주님 앞으로 오려고 했지만 이제 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목사님은 또다시 소리치셨다. 나는 더 울었다. 옆 사람에게 창피한지도 모르고 울었다. 그러다 울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 딸이 그토록 원하는데 내가 열심을 내어서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가대가 찬송을 부르는 순간 하늘이 조금 보였다. 나는 그 순간 기도를 했다.
“아버지, 나 구원 좀 받게 해 주세요. 내 머리로는 도저히 모르겠으니 아버지 나 구원 좀 받게 해 주세요.”
‘나는 구원받는다, 아니 나는 구원받지 못한다. 내 정신이 이렇게 산만한데 어떻게 받아?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났다.
나는 유대인들을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죄 사해 주신 사실을 믿지 아니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매달아서 못을 박아 죽였구나. 세상에 그런 놈들이 어디 있나? 죄 사해 놓으셨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였구나’
주님께서 바로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심히 울었다.
지금도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 이것이 구원이구나.’
말씀에 확신이 온 사람은 일어나라고 했다. 나는 일어섰다. 그런데 ‘내가 정신없는 사람인데 구원받았을까?’
상담실에 가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는 말씀을 해 주셨다. 이것은 내가 아는 줄거리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교회로 오자 목사님이 마음에 의심 있는 것을 해결해 주셨다. “구원 갓 받은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 하는 갈등이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 마음에 구원이 긴가민가했는데 그 문제까지 다 해결해 주셨다.
구원받고 조금씩 머리가 맑아졌다. 귀에서 늘 ‘윙윙’ 하고 울리던 소리가 없어진 것이다. 세상에! 나의 육신의 병조차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이다.
주님의 것인 내 영과 혼과 몸이 온통 주께 맡겨진 이제는 내 마음속의 근심과 걱정도 모두 주께 맡겼다. 주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아들과도 교제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구원받지 못한 사위와 딸, 온 가족이 모이면 아들이 밤늦도록 성경 말씀을 들려주곤 한다.
병으로 쓰러진 몸이 나았고 다시 내 영혼도 소생하여 감사하기 그지없다.
내 마음속의 기도가 있다면 큰딸과 사위가 함께 그 나라에 이르는 것이다.
내가 적어본 시가 있다.
나는 가오리다, 주님 곁으로.
주님 부르시는 날 홀연히 가오리다. 날개 달린 독수리처럼 .
높이 주님 곁으로 가오리다.
내 마음 정케 하옵시고 하늘 땅과 나를 창조하신 거룩하신 이시여.
이 육신도 당신의 것이옵니다.
편안한 휴식을 주신 이시여 거룩하신 주님
늘 불러보고 싶은 주님
남편은 처음에 옷 장사를 했고 차차 노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술과 방탕한 세월이 이어졌다. 술을 먹고 집에 와서 삽을 던져 맞아 죽을 뻔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굿을 하기 시작했다. 네 번째 굿을 하면서 ‘이번에 굿을 해도 효험이 없으면 끝이다.’ 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굿을 해도 효과가 없어서 그때부터 미신을 끊었다.
가장이 그러니 자연히 가산도 다 기울어서 내가 보따리장수를 했다.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다하면 책을 한 권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어릴 때는 고생을 모르고 자랐으나 결혼한 후부터 고생문이 열렸다. 남편은 외모는 멀쩡했으나 술주정이 심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가 부모 없이 성급하게 결혼을 한 것이 그만 고생문이 되었다. 남자 한 사람 보고 결혼을 했는데 인생의 쓰디쓴 맛을 보게 된 것이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나는 결혼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아이들을 집에 두고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옷 장사를 했다. 내가 고생을 한다고 동네에서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컸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 전철을 밟지 않게 하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정답게 다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집을 나오면 아이들은 나를 따라나올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 없이 키워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보따리를 펴놓고 장사하다가도 남편의 술빚으로 그것마저 다 빼앗기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렇지만 또다시 물건을 떼어다가 길에 펴놓곤 했다. 이를 악물고 살았다. 나는 자식을 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한번은 죽으려고 약을 먹었으나 죽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 같다.
한번은 참굴비 장수를 했었다. 시장에 나가서 참굴비를 사서 와서 소금으로 절이어서 그것을 엮어서 파는 일이었다. 한 궤짝에 굴비가 15줄씩 들어가는데 그 궤짝을 이고 다니며 팔았다. 굴비를 말려서 이고 가면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참굴비 아줌마 왔다고 사람들이 뛰어나와 산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장사하는 사람은 그 굴비를 하루 만에 다 팔지만 나는 혼자서 팔기 때문에 다 팔지 못했다.
남편이 어느 순간 술을 먹기 시작하면서 나 혼자 장사를 해야 했다. 그런데 굴비는 하루만 두어도 물이 말라서 작아지는 것이었다. 몇 년을 그렇게 버티다가 행여 남편을 사람 만들어 볼까 하여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지 않겠느냐고 권했으나 가지 않았다.
한 번 밥을 좀 실컷 먹어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배고픈 설움을 겪었으나 자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키웠다. 나는 지금도 심장이 나쁘다. 우리가 아파트에 살 때 남편의 발걸음 소리 만들어도 술을 먹고 올라오는 걸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러한 고통의 나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술을 먹고 올라오는 소리가 나면 아이들은 작은 방으로 숨어 달아난다. 아이들은 지금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안 좋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에게 누누이 타일렀다. “그래도 너희 아빠 때문에 너희가 태어난 것이 아니나”
그 당시는 살아가기 힘들어서 교회에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집이나 친정에서는 불교를 열심히 하였는데 우리 아들은 교회를 열심히 하였다.
1991년도에 아들이 구원을 받았다.
“어머니, 젊어서 그렇게나 고생을 하시고 돌아가신 후에도 또 고생하시렵니까?’
그런 말을 할 그 당시에는 아들이 불효막심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를 삐었다. 병원에 가보니 관절염이었다. 그러나 그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부업으로 일감을 가져다 일을 했다. 그러나 몸은 날이 갈수록 더 아팠다.
딸이 6월경에 와서 놀러 가지고 했다.
“엄마, 우리 교회에서 놀러 가는데 같이 가요."
“젊은 사람들이 가는데 늙은이가 왜 가느냐?’
“그게 아니고 친구들 엄마들 다 가는데 엄마는 안 가실래요?’
“그럼 나도 바람이나 쐴 겸 가볼까?’ 딸이 뛸 듯이 좋아했다.
따라가 보니 친구 어머니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마치 피난민 같은 인파만이 있었다. 날씨는 덥고 몸은 아팠다. 딸이 평소와 달리 지극 정성을 다해 돌보아주었다. 나는 그런 피난민 생활도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경험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무슨 일이든 내게 닥쳐온 고생은 마다치 않았다. 딸은 내 생각을 알지 못하니 혹 집으로 돌아간다고나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 당시 성질을 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말씀을 며칠 듣는데 내 마음에 합당하였다. 집에 가기 싫고 계속 말씀의 교훈을 배우고 싶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좋은 말씀이 어디 있니?” 하니 딸은 정색하고 말했다.
“엄마, 좋은 게 문제가 아니에요. 구원을 받는 것이 문제예요. 엄마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예요.”
“엄마, 밥맛이 어떠세요?”
“밥맛 괜찮은데”
“밥맛이 괜찮아하시니 다행이네요.’’
이 말을 거듭하며 내 속마음을 헤아려 보는듯한 얼굴을 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내 마음속에 괴로운 문제로 삼아주었다. 구원받은 후에야 비로소 딸이 하려던 말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는 영혼 문제에 걸리지도 않고 밥맛만 괜찮다고요?”
다른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받지 못했다. 금요일 아침에 딸의 의미심장한 말을 듣고는 저녁에는 선잠을 잤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제일 앞에 자리를 먼저 잡아놓고 세수하러 나갔다. 제일 앞자리에서 들었다. 목사님이 “뭐 하고 있다가 이제 왔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기도였다.
“아버지!! 그래요. 나는 이제 올 수밖에 없어요. 내 머리가 다 썩고, 내 육신은 다 썩어지고 진작에 주님 앞으로 오려고 했지만 이제 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목사님은 또다시 소리치셨다. 나는 더 울었다. 옆 사람에게 창피한지도 모르고 울었다. 그러다 울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 딸이 그토록 원하는데 내가 열심을 내어서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가대가 찬송을 부르는 순간 하늘이 조금 보였다. 나는 그 순간 기도를 했다.
“아버지, 나 구원 좀 받게 해 주세요. 내 머리로는 도저히 모르겠으니 아버지 나 구원 좀 받게 해 주세요.”
‘나는 구원받는다, 아니 나는 구원받지 못한다. 내 정신이 이렇게 산만한데 어떻게 받아?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났다.
나는 유대인들을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죄 사해 주신 사실을 믿지 아니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매달아서 못을 박아 죽였구나. 세상에 그런 놈들이 어디 있나? 죄 사해 놓으셨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였구나’
주님께서 바로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심히 울었다.
지금도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 이것이 구원이구나.’
말씀에 확신이 온 사람은 일어나라고 했다. 나는 일어섰다. 그런데 ‘내가 정신없는 사람인데 구원받았을까?’
상담실에 가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는 말씀을 해 주셨다. 이것은 내가 아는 줄거리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교회로 오자 목사님이 마음에 의심 있는 것을 해결해 주셨다. “구원 갓 받은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 하는 갈등이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 마음에 구원이 긴가민가했는데 그 문제까지 다 해결해 주셨다.
구원받고 조금씩 머리가 맑아졌다. 귀에서 늘 ‘윙윙’ 하고 울리던 소리가 없어진 것이다. 세상에! 나의 육신의 병조차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이다.
주님의 것인 내 영과 혼과 몸이 온통 주께 맡겨진 이제는 내 마음속의 근심과 걱정도 모두 주께 맡겼다. 주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아들과도 교제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구원받지 못한 사위와 딸, 온 가족이 모이면 아들이 밤늦도록 성경 말씀을 들려주곤 한다.
병으로 쓰러진 몸이 나았고 다시 내 영혼도 소생하여 감사하기 그지없다.
내 마음속의 기도가 있다면 큰딸과 사위가 함께 그 나라에 이르는 것이다.
내가 적어본 시가 있다.
나는 가오리다, 주님 곁으로.
주님 부르시는 날 홀연히 가오리다. 날개 달린 독수리처럼 .
높이 주님 곁으로 가오리다.
내 마음 정케 하옵시고 하늘 땅과 나를 창조하신 거룩하신 이시여.
이 육신도 당신의 것이옵니다.
편안한 휴식을 주신 이시여 거룩하신 주님
늘 불러보고 싶은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