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소식

주님의 빛난 면류관을 받기까지 주의 험한 십자가를 붙들겠습니다

세상에 대해 무언의 반항을 시작할 무렵인 열네 살 때, 난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중1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국어 선생님께서 내게 복음을 전하신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가치관과 혼란한 자아, 그 안에서 주님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더구나 장로 교회에 다니는 할머니와 독실한 불교 신자인 엄마, 그리고 철저한 무신론을 주장하는 큰 오빠 사이에서 종교에 염증을 느낀 터라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그해 겨울, 선생님께선 내가 전도집회에 참석하길 바라셨지만 난 그 기대를 져버렸다. 중1짜리 소녀에겐 딱딱한 종교집회보다는 놀이공원이 더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했는지!


그리고 다음 해 여름, 주님께선 다시 한 번 내게 기회를 주셨다. 지금은 소중한 자매가 된 내 친구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선생님께 교회 얘긴 많이 들었지만 직접 온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처음 가본 교회였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포근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난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채 중2 여름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고1 여름방학까지 네 번이나 더 전도집회를 가졌지만 주님의 자녀가 되진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의 주님, 그분께서 내게 거듭남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해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집에서 계속되어 오는 압박, 구원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한 압박은 날 힘겹게 하기에 충분했다. 힘들지도 실망하지도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고 사실 실망은 했다. 하지만 결코 절망은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게 ‘교회에 함께 있으면 언젠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모임에 남을 수 있게 붙들어준 친구들과 선생님께서 있었기에….


그리고 지난 겨울, 귓볼을 차갑게 수치는 한파 속에 전도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시간은 밤 7시 30분에서 10시 정도로 잡혔다. 일주일간 계속되는 전도 집회, 많이 두려웠고 별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너무 크게 실망했던 까닭이리라. 


복음 풀기 전날, 우린 순천으로 향했다. 전도인이 오셔서 전도집회를 하는데 사실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집에 가면 외박했다고 야단맞을 게 뻔했고 구원은 내게 왠지 먼 존재처럼 여겨졌으니까. 거의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순천에 갔고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들었지만, 말씀이 끝났어도 닫힌 마음에 성령은 오지 않았고 자포자기한 상태로 상담에 임했다. 

길게 이어지는 상담, 처음 스무명 쯤 되던 이들이 하나, 둘 떠나고 결국엔 나와 이미 구원을 받고 날 기다리던 친구, 같은 보성 모임에서 온 초등학생 한 명 뿐이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세 시를 넘겼고 상담해 주시던 분도 지치신 것처럼 보였다. 


그분께선 갑자기 물으셨다. 뭐가 안 믿겨지느냐고. 내 경우는 그랬다. 다 믿어지는데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뭔가 꽉 막힌 듯이. 그분께선 다시 성경을 믿느냐는 아주 원론적인 질문을 하셨다. 난 물론 그렇다고 답했다. 그분께서 웃으시며 이 구절을 찾아주셨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민 23:19)


그 순간 ‘아, 그렇구나’라는 가슴속의 외침과 함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오랜 상담 끝에 난 그제야 주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이다. 그렇게 인정만 하면 되는 것을 난 3년 동안이나 느낌을 바라며 어리석게도 그릇된 구원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난 작은 반항을 꿈꾼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을 거스른 적이 거의 없는 내가 투쟁을 할 때가 왔다. 내 신앙 얘기를 부모님께 진지하게 하는 건 처음이기 때문에 많이 두렵고 내가 굽힐까 봐 겁도 난다. 

하지만 주님께선 늘 내 뒤에 서서 날 지탱해 주시니까. 주님께선 내가 의지하는 걸 기쁘게 여기시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은 험하고 싸워야 할 일이 많이 펼쳐져 있음을 안다. 그 많은 싸움을 모두 헤쳐나가 이길 능력이 아직은 내게 부족한 도 안다. 또 내 행동이 바로 그리스도인 전체의 이미지로 굳어질 수도 있어 행동에도 많은 조심함이 따름을 안다. 하지만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을 얻었기에 오늘도 감사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께 오늘도 기도드린다.


‘주님, 이 죄 많은 영혼이 당신의 자녀가 될 수 있게 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늘 소망하는 게 하나 있어요. 주님도 아실 거예요. 아직 구원받지 않은데 사랑하는 가족이 언젠가 주님 안에서 거듭나 주님의 무릎 아래서 기뻐하며 노래 부를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 제 앞에 남아 있는 세상의 모든 힘겨움을 다 이길게요. 어떠한 고난도 핍박도 면류관 받을 그날을 그리며 이기겠습니다. 주님의 빛난 면류관을 받기까지 주의 험한 십자가를 붙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