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초의 일이다. 조금은 여유로운 생활 속에서 청년, 대학생들과 함께 성경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매일 교회에 갔다. 전보다 설교를 더 많이 듣고, 성경책을 접하는 시간도 더 길어지고, 교제의 시간도 조금씩 늘어갔다.
그런데 하루하루 풍족한 생활을 해나갔지만, 마음속의 짐은 조금씩 커가고 있음을 느꼈다. 내게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할 큰 사랑이 정말 내 속에 있는 것인지, 머릿속에만 맴돌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생긴 것이다. 교제 안에서 함께 생활할수록 양심의 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그렇지만 구원받은 형제자매가 모여서 교제를 나누고 일을 함께 해나가는데, 나의 구원을 부정한다면 나는 이 안에서 나가떨어지게 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마음속에서 커지는 의심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내 구원이 확실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한 형제로부터 태국에서 집회가 있는데 가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태국에서 전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을 전부터 듣고 한 번쯤 가보고 싶었지만, 그 현장에서 내가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내 짐을 덜기 위해, 좀 더 배우기 위해 태국에 가기로 했다.
3월 14일, 두 명의 대학생 자매와 함께 태국으로 갔다. 첫 번째 집회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아주 많은 감정이 지나갔다. 처음에는 외국인들에게 말씀이 전해지는 현장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에 함께 계셨던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고, 틈틈이 성경책을 읽는 가운데 내 양심의 소리와 마음의 짐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나는 전도집회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태국까지 온 것인데 오히려 방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고 집회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앞에 나와서 간증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태국에 계신 김 형제님을 통해 태국 사람들의 간증을 한국말로 전해 들었다. 간증을 들으면서 내 구원에 대한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구원 간증하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고 어떻게 하는지 배운 일도 없었는데 정말 마음속에 있는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생생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죄가 사해졌다고, 하나님께서 다 해놓으셨다고, 이제는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제껏 진실한 마음의 간증이 없던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구원받았다고 했지만, 간증을 할 수 없었다. 간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특별한 감사함도 없었다. 구원받았다고 말로만 전했을 뿐 생활의 변화도, 감사함의 찬송도 없었다. 그저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 해놓으셨구나.’ 하면 구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바로 두 번째 집회가 시작되었다. 2박 3일에 걸쳐서 빡빡하게 짜인 일정으로 설교를 들었다. 태국말로 설교가 나오기 때문에 나는 설교를 들을 수 없었고, 그저 답답한 마음에 계속 성경만 읽었다. 마음의 의심을 더는 부정할 수 없었기에 성경을 읽으면 무언가 길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어 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설교를 듣고 싶어도 한국말로 된 설교는 준비되어 있지 않아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두려움까지 생겼고, 설교를 듣고 있는 태국 사람들이 부럽기만 했다. 성경을 아무리 읽고 기도를 해보아도 마음속 답답함은 커져만 갔다.
그때 처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하지만 혼자서는 너무나 막막했기 때문에 그곳에 함께 있던 형제자매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 막연히 창피하다는 생각만 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놓았는데, 이제껏 내 마음속에 쌓아두고 혼자만 힘들어했던 시간이 후회될 만큼 다들 나를 위해서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세 번째 집회 때 우리는 뒤늦게 태국으로 온 형제님들의 도움으로 ‘성경은 사실이다’ 설교를 한국말로 들을 수 있었다. 그 시간이 꼭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 같았고, 그때 처음으로 말씀의 소중함과, 지금 이렇게 풍족한 말씀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수 있었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간절했던 말씀이었기 때문에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설교를 들었다.
왠지 모르게 이제껏 수없이 많이 들어왔던 이스라엘 역사도 처음 듣는 것 같았고,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이 실제 역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믿어졌다. 어려서부터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그냥 머릿속으로만 성경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이 마음으로 믿어진 후, 이스라엘 역사가 사실이라면, 후에 있을 환난의 세월과 지옥 등 모든 것들이 나에게 벌어질 것도 사실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생겼다. 그 두려움 때문에 나는 쉬는 시간에도 마음을 놓고 있을 수 없었고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그 후 죄에 관한 설교를 들으면서 나에게 이제껏 회개가 없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내가 받은 구원은 단순히 하나님을 머리로만 믿은 영접 구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손가락으로는 헤아려 볼 수도 없었다. 이제껏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는 않고, 구원받았다고 형제자매들을 속이며 긴 시간을 보내왔던 것이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로마서 2:4)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죄를 짓는 순간마다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회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신다는 말씀을 들었다. 내가 이제껏 세상에만 빠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지냈다는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틀 동안의 설교가 끝났다. 모두 숙소로 돌아가서 잠이 들었지만, 나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죄가 정말 크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다른 사람의 죄는 모두 용서해주셔도 나는 안될 것 같은 불안감, 두려움이 너무 컸다. 나 같은 죄인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 그저 성경만 읽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읽고 또 읽어도 답을 찾을 수 없었고, 그저 마지막까지 설교를 들을 수 있게만 도와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늦게서야 잠을 청했다.
집회 마지막 날이 되었고, 설교를 들으면서 스스로 구원을 찾으려고 또 노력하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큰 죄인이었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해놓으신 구원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요한복음 8장 1절부터 11절에 나오는, 간음하는 여자에 관한 구절을 읽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바로 내 이야기였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세상에만 빠져서 사는 사람을 간음하는 여자라 하셨는데, 내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찾지 않고 세상의 사랑만 추구하면서 살아온 간음하는 여자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법치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8:10-11)
간음한 여자가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죄는 다 사라졌고, 예수님도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처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오랜 시간 너무나 더러운 죄 탓에 새까매져 있던 내 영혼이 예수님 때문에 새하얘졌음을 느꼈다.
구원은 분명 내 노력으로 이루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성경 구절구절마다 가득 적어놓으신 모든 말씀이 다 내 구원을 위해 준비해주신 것이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내 마음에 받아들인 이렇게 큰 참사랑을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마음이 벅차올랐다. 누구든지 붙잡고 전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간증을 할 수 있었다.
참사랑을 받은 후의 교제는 그전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형제자매의 교제에 같이 공감할 수 있고, 찬송가의 모든 구절이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진실한 감사함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다. 간절한 끝에 찾은 이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이제야 알았다. 참사랑을 깨닫고 난 후 지금 교제 안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얼마나 큰 감사함과 기쁨인지 모른다. 주님의 참 사랑 안에서의 생활이 조금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참 행복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알았다.
모든 이들이 참사랑과 참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2005년 초의 일이다. 조금은 여유로운 생활 속에서 청년, 대학생들과 함께 성경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매일 교회에 갔다. 전보다 설교를 더 많이 듣고, 성경책을 접하는 시간도 더 길어지고, 교제의 시간도 조금씩 늘어갔다.
그런데 하루하루 풍족한 생활을 해나갔지만, 마음속의 짐은 조금씩 커가고 있음을 느꼈다. 내게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할 큰 사랑이 정말 내 속에 있는 것인지, 머릿속에만 맴돌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생긴 것이다. 교제 안에서 함께 생활할수록 양심의 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그렇지만 구원받은 형제자매가 모여서 교제를 나누고 일을 함께 해나가는데, 나의 구원을 부정한다면 나는 이 안에서 나가떨어지게 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마음속에서 커지는 의심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내 구원이 확실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한 형제로부터 태국에서 집회가 있는데 가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태국에서 전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을 전부터 듣고 한 번쯤 가보고 싶었지만, 그 현장에서 내가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내 짐을 덜기 위해, 좀 더 배우기 위해 태국에 가기로 했다.
3월 14일, 두 명의 대학생 자매와 함께 태국으로 갔다. 첫 번째 집회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아주 많은 감정이 지나갔다. 처음에는 외국인들에게 말씀이 전해지는 현장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에 함께 계셨던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고, 틈틈이 성경책을 읽는 가운데 내 양심의 소리와 마음의 짐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나는 전도집회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태국까지 온 것인데 오히려 방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고 집회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앞에 나와서 간증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태국에 계신 김 형제님을 통해 태국 사람들의 간증을 한국말로 전해 들었다. 간증을 들으면서 내 구원에 대한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구원 간증하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고 어떻게 하는지 배운 일도 없었는데 정말 마음속에 있는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생생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죄가 사해졌다고, 하나님께서 다 해놓으셨다고, 이제는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제껏 진실한 마음의 간증이 없던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구원받았다고 했지만, 간증을 할 수 없었다. 간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특별한 감사함도 없었다. 구원받았다고 말로만 전했을 뿐 생활의 변화도, 감사함의 찬송도 없었다. 그저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 해놓으셨구나.’ 하면 구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바로 두 번째 집회가 시작되었다. 2박 3일에 걸쳐서 빡빡하게 짜인 일정으로 설교를 들었다. 태국말로 설교가 나오기 때문에 나는 설교를 들을 수 없었고, 그저 답답한 마음에 계속 성경만 읽었다. 마음의 의심을 더는 부정할 수 없었기에 성경을 읽으면 무언가 길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어 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설교를 듣고 싶어도 한국말로 된 설교는 준비되어 있지 않아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두려움까지 생겼고, 설교를 듣고 있는 태국 사람들이 부럽기만 했다. 성경을 아무리 읽고 기도를 해보아도 마음속 답답함은 커져만 갔다.
그때 처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하지만 혼자서는 너무나 막막했기 때문에 그곳에 함께 있던 형제자매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 막연히 창피하다는 생각만 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놓았는데, 이제껏 내 마음속에 쌓아두고 혼자만 힘들어했던 시간이 후회될 만큼 다들 나를 위해서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세 번째 집회 때 우리는 뒤늦게 태국으로 온 형제님들의 도움으로 ‘성경은 사실이다’ 설교를 한국말로 들을 수 있었다. 그 시간이 꼭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 같았고, 그때 처음으로 말씀의 소중함과, 지금 이렇게 풍족한 말씀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수 있었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간절했던 말씀이었기 때문에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설교를 들었다.
왠지 모르게 이제껏 수없이 많이 들어왔던 이스라엘 역사도 처음 듣는 것 같았고,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이 실제 역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믿어졌다. 어려서부터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그냥 머릿속으로만 성경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이 마음으로 믿어진 후, 이스라엘 역사가 사실이라면, 후에 있을 환난의 세월과 지옥 등 모든 것들이 나에게 벌어질 것도 사실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생겼다. 그 두려움 때문에 나는 쉬는 시간에도 마음을 놓고 있을 수 없었고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그 후 죄에 관한 설교를 들으면서 나에게 이제껏 회개가 없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내가 받은 구원은 단순히 하나님을 머리로만 믿은 영접 구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손가락으로는 헤아려 볼 수도 없었다. 이제껏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는 않고, 구원받았다고 형제자매들을 속이며 긴 시간을 보내왔던 것이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로마서 2:4)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죄를 짓는 순간마다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회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신다는 말씀을 들었다. 내가 이제껏 세상에만 빠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지냈다는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틀 동안의 설교가 끝났다. 모두 숙소로 돌아가서 잠이 들었지만, 나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죄가 정말 크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다른 사람의 죄는 모두 용서해주셔도 나는 안될 것 같은 불안감, 두려움이 너무 컸다. 나 같은 죄인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 그저 성경만 읽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읽고 또 읽어도 답을 찾을 수 없었고, 그저 마지막까지 설교를 들을 수 있게만 도와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늦게서야 잠을 청했다.
집회 마지막 날이 되었고, 설교를 들으면서 스스로 구원을 찾으려고 또 노력하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큰 죄인이었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해놓으신 구원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요한복음 8장 1절부터 11절에 나오는, 간음하는 여자에 관한 구절을 읽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바로 내 이야기였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세상에만 빠져서 사는 사람을 간음하는 여자라 하셨는데, 내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찾지 않고 세상의 사랑만 추구하면서 살아온 간음하는 여자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법치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8:10-11)
간음한 여자가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죄는 다 사라졌고, 예수님도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처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오랜 시간 너무나 더러운 죄 탓에 새까매져 있던 내 영혼이 예수님 때문에 새하얘졌음을 느꼈다.
구원은 분명 내 노력으로 이루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성경 구절구절마다 가득 적어놓으신 모든 말씀이 다 내 구원을 위해 준비해주신 것이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내 마음에 받아들인 이렇게 큰 참사랑을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마음이 벅차올랐다. 누구든지 붙잡고 전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간증을 할 수 있었다.
참사랑을 받은 후의 교제는 그전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형제자매의 교제에 같이 공감할 수 있고, 찬송가의 모든 구절이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진실한 감사함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다. 간절한 끝에 찾은 이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이제야 알았다. 참사랑을 깨닫고 난 후 지금 교제 안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얼마나 큰 감사함과 기쁨인지 모른다. 주님의 참 사랑 안에서의 생활이 조금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참 행복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알았다.
모든 이들이 참사랑과 참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