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서 교회에 다니신 덕에 자연스럽게 교회를 접해 왔던 나는 1995년 1월 어느 날 그냥 쉽게, 구원받았다고 생각했다. 가끔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아니야, 나는 구원받았어.’ 라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그렇게 지금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올해 1월 대구 교회에서 전도 집회가 열렸다. 대학생인 나는, 그동안 죽 대구에서 지내와서 어른들을 많이 알고 있는 까닭에 이 집회 때 여러 가지 일을 맡게 되었다. 스크랩 설명, 교회 뒷정리, 설교 촬영 등등. 집회 전부터 내내 스크랩 설명을 위해 준비를 했고, 집회 기간에는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잡았다.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둔 때였고, 진로에 대해 인간적인 소망이 어느 정도 포기된 터라 마음이 많이 비워져 있었다. 설교 시간에 촬영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가 죽음을 맞거나 데려감이 일어나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구원 문제에 대해 자신이 없어졌다. 이렇게 마음속에 생긴 아주 작은 불안은 곧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주위의 형제자매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설교하시는 강사님에게도 질문했지만 마음에 해답을 얻지 못했다. 첫 질문부터 나 자신이 이미 구원받은 것을 전제로 하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해답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다 한번은 어머니께 여쭈어보았다. 어머니는 “그리스도인이 형제자매들과의 교제를 떠난 상태에서 자기 구원을 의심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교제 안에서 살아왔는데도 구원에 의심이 생긴다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령의 인치심에 대해 확실한 경험이 있는지를 물으셨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 경험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동안 나는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올해 2월 구정 기간에 필리핀에서 열리는 전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 표 대금까지 지급해 놓은 상태였다. 어머니는 내가 전도 집회에 참석해서 일하는 것보다는 말씀을 다시 잘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불안한 상태로 나는 필리핀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2월 6일 일요일,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 절차를 밟고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국외에 처음 가보는 나로서는 구원에 대한 염려보다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홍콩을 거쳐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환승을 위해 홍콩에 도착한 후 짐을 챙겨 공항으로 나갔다. 표를 검사하고 한 번 더 짐 검사를 받는데, 앞사람들은 이미 빠져나가고 내가 마지막으로 검사를 받으면서 가방에 있던 손톱깎이와 주머니칼 때문에 저지당했다. 인천 공항에서 검사할 때는 커터 칼을 빼앗겼지만, 이상하게 손톱깎이와 주머니칼은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괜한 오기가 생겨서 그 두 물건을 폐기하지 않았고, 다음에 찾겠다는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때 여권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순간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다른 일행은 이미 환승장으로 빠져나가고 나 혼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내가 환승장으로 올라가지 않자 일행 중 몇몇이 나를 찾아왔고, 일단 환승장으로 같이 나왔다. 일행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여권을 찾기 위해 항공사 직원을 찾아갔다. 넓은 홍콩 공항 안을 뛰어다니는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계속 의아하고 혼란스러웠다. 항공사 직원에게 여권을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지만 허사였다. 그 직원은 여권이 없으면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없다고 했다. ‘차라리 아무 내색하지 말고 조용하 타고 갈걸...’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일행 중 외국여행의 경험이 많은 형제자매들이 도와주셨지만, 잃어버린 여권을 다시 찾지는 못했고 결국 홀로 홍콩 공항에 남겨졌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모두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로 떠난 것이다.
언어 소통도 되지 않는 낯선 타국에 혼자 남겨졌다는 위기감과 함께 여러 생각이 오갔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 필리핀으로 가지 말라는 뜻인가? 다시 여권을 찾을 수 있을까? 이제 나는 어찌해야 하지?’
단순한 두려움보다는 혼란스러움과 피곤함이 나를 감쌌다. 홍콩 공항의 직원과는 대화가 되지 않아 한국인 직원과 전화 통화를 했다. 여권을 분실한 이상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항공사 직원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시간이 늦어 직원들도 퇴근하고 혼자 홍콩 공항에서 밤을 지새웠다. 복잡한 마음에 한숨도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새 홍콩 공항을 배회하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뜬눈으로 새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서 성경을 읽었다. 성경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억울하다는 생각뿐이었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복잡한 생각만 맴돌았다. 결국,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나는 체념하기로 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비행기 밖으로 나왔을 때 항공사 직원이 나를 찾았다. 여권을 분실한 나는 정상적인 입국 절차를 거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원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홍콩에서 분실한 여권을 찾았습니다. 다음 비행기로 여권이 온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차라리 홍콩에서 조금 더 기다릴걸...’ 그렇지만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부모님과 청년회 형제자매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와 있었다.
잠시 후 청년회의 정 형제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내가 원한다면 필리핀으로 다시 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때 나는 공항 출입국 심사를 거치지 않고 대기 장소에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무입국 상태였다. 정 형제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기회가 있을 때 가 보자.’ 나는 곧 필리핀으로 가고 싶다고 대답했고, 잃어버린 여권과 새 비행기 표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성경도 읽고 내 상태에 대해 생각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것들에 지쳐갔다. 이렇게 힘들게 가게 되니 처음에 가졌던 들뜬 마음은 없어지고 마음 상태가 많이 달라졌다. ‘내가 필리핀 집회에 가는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똑바로 행동하자.’
이리하여 나는 예정보다 하루 늦게 필리핀에 도착했고, 공항에 마중 나온 형제와 함께 차를 타고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로 향하는 길에 교회에서 몇몇 형제자매들이 함께 탔고, 나는 나의 상태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리고 기숙사에 도착한 후에도 형제자매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나 자신을 소개했다. 모든 분이 내가 여권을 분실한 것을 알고 있었고 염려하고 있던 터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모두 내가 필리핀에 어렵게 온 것을 알고 나의 구원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해 주셨지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염려와 어수선한 마음에 정리가 잘 안 되었다.
집회 둘째 날, 나에게는 필리핀에서의 첫날이었다. 외국 여행은 처음이라서 긴장되었던 나의 마음은 금세 풀렸다. 교회로 이동하는 길에도 바깥 경치 구경에 여념이 없었고, 말씀 시간까지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말씀을 들을 때, 사람들이 신경을 많이 써 준 덕분에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었지만,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말씀이 끝나고 뒷정리를 할 때 어머니들이 나를 보시더니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경위를 이야기해 달라고 하셨다. 한참 우여곡절을 겪은 이야기를 하다 말이 끊긴 사이로 한 분이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참으로 구원을 받았는지야. 말씀은 잘 듣고 있는지 신경이 쓰이네.”
그때 나는 ‘아차’ 싶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곳에 왜 왔느냐는 것이지 어떻게 왔느냐가 아니었다. 어머님들께 죄송하고 또 고마웠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모임에 참석하고, 낮에도 모임에 참석하면서 또 신경이 무뎌졌다. 오후에 교회로 가는 셔틀버스에 한 형제와 같이 앉게 되었다. 그 형제는 별생각 없이 앉아 있는 나에게 구원에 대해 물어오셨다. 그리고 나와 하나님, 나의 죄에 대하여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공격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질문을 해왔으나 나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어 무척 괴로웠다. 잠시 후 뒷좌석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형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구원이라는 것은 선물이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하며 해주시는 말씀들이 하나하나 나의 양심을 아프게 찔러왔다. 가슴이 답답했고 너무 마음이 괴로웠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기가 싫을 정도였다. 버스로 이동하는 40여 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버스가 교회에 도착했고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 형제에게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너의 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라.’ 였다.
집회 장소로 들어갔지만 내가 편하게 있을 곳이 없었다. 모두 부지런하 집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할 일이 없었다. 구원받지 않은 나는 봉사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져 불편한 마음에 몸까지 피곤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식탁에 엎드려 쉬는 일뿐이었다. 식사 시간에 교사 회 방에 올라가 식사를 했다. 마침 방에는 몇몇 형제자매들이 밥을 먹고 있었고, 상민 형제도 있었다. 필리핀에 도착한 첫 날 내 이야기를 한 후에 그 형과 함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형은 식사를 마치고 나를 불러 성경책을 놓고 말씀을 찾아보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자신과 나의 죄 그리고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하나하나 성경을 찾아가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침내 나는 나의 죄 사함 받음에 “네” 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네”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아주 작은 뭔가가 있었다. 말씀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이야기를 끝냈다. 나는 말씀을 들으려고 강연 홀로 향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말씀을 들으며 졸기도 하는 등 집중하지 못하다가 말씀이 끝날 무렵에, 성령의 인치심에 대하여 언급하는 말씀이 들려왔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연 성령의 인치심이라는 것이 뭘까?’
그때부터 더욱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말씀이 끝나자마자 뒤쪽에 앉아 있던 아는 형을 찾아갔다.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질문했다.
“성령의 인치 심의라는 것이 뭐죠? 난 그런 것을 느낀 적이 없어요.”
“왜 느끼려고만 하니. 구원이란 어떤 느낌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믿어지는 것이다.”
형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피와 나의 죄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유월절에 관한 이야기도.
우리는 문밖의 계단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형은 문을 가리키면서, 유월절 날 유대 민족이 이집트에서 양의 피를 문기둥과 문설주에 바른 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들은 피를 바를 때문 밖에 발랐어. 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피가 보이지 않았지. 문 안에서 무서워 떨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야.”
형이 문을 가리키며 그 말을 하자, 내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쳐 갔다. ‘아, 내가... 내 죄가... 그때 유대인들이 피를 바름으로 죽음에서 건져진 것같이,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의 피로 다 사해졌구나.’ 전과는 달리 무척 편안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확실함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이 두근거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제는 확실하다고, 더는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다고, 나의 구원을 받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전체 모임이 있을 때 간증을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고, 몇몇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간증을 했다.
다음날 오후 어른들과 지역 교회 대표자들의 모임이 있을 때 대구에서 온 대학생은 나 혼자여서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도 간증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전체 모임에 모두 모인 자리에서도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해 간증했다. 그 후 남은 집회 기간에 말씀도 듣고 봉사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멀리 이국땅까지 고생하면서 가서 얻어온 구원이다. 힘들게 얻은 이 구원에, (물론 거저 얻은 것이지만)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삶의 목적을 찾은 만큼, 이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목적을 위하여 살고 싶다. 그전에는 삶의 목적에 대한 답을 찾기가 난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답을 확실하게 안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는 삶이 언제나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히 3:14) 하신 말씀대로 확실하 붙잡는 것이 있기에 한 길을 걸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신경 써주신 분들께, 그리고 이렇게 미련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부모님께서 교회에 다니신 덕에 자연스럽게 교회를 접해 왔던 나는 1995년 1월 어느 날 그냥 쉽게, 구원받았다고 생각했다. 가끔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아니야, 나는 구원받았어.’ 라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그렇게 지금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올해 1월 대구 교회에서 전도 집회가 열렸다. 대학생인 나는, 그동안 죽 대구에서 지내와서 어른들을 많이 알고 있는 까닭에 이 집회 때 여러 가지 일을 맡게 되었다. 스크랩 설명, 교회 뒷정리, 설교 촬영 등등. 집회 전부터 내내 스크랩 설명을 위해 준비를 했고, 집회 기간에는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잡았다.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둔 때였고, 진로에 대해 인간적인 소망이 어느 정도 포기된 터라 마음이 많이 비워져 있었다. 설교 시간에 촬영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가 죽음을 맞거나 데려감이 일어나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구원 문제에 대해 자신이 없어졌다. 이렇게 마음속에 생긴 아주 작은 불안은 곧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주위의 형제자매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설교하시는 강사님에게도 질문했지만 마음에 해답을 얻지 못했다. 첫 질문부터 나 자신이 이미 구원받은 것을 전제로 하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해답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다 한번은 어머니께 여쭈어보았다. 어머니는 “그리스도인이 형제자매들과의 교제를 떠난 상태에서 자기 구원을 의심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교제 안에서 살아왔는데도 구원에 의심이 생긴다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령의 인치심에 대해 확실한 경험이 있는지를 물으셨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 경험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동안 나는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올해 2월 구정 기간에 필리핀에서 열리는 전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 표 대금까지 지급해 놓은 상태였다. 어머니는 내가 전도 집회에 참석해서 일하는 것보다는 말씀을 다시 잘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불안한 상태로 나는 필리핀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2월 6일 일요일,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 절차를 밟고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국외에 처음 가보는 나로서는 구원에 대한 염려보다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홍콩을 거쳐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환승을 위해 홍콩에 도착한 후 짐을 챙겨 공항으로 나갔다. 표를 검사하고 한 번 더 짐 검사를 받는데, 앞사람들은 이미 빠져나가고 내가 마지막으로 검사를 받으면서 가방에 있던 손톱깎이와 주머니칼 때문에 저지당했다. 인천 공항에서 검사할 때는 커터 칼을 빼앗겼지만, 이상하게 손톱깎이와 주머니칼은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괜한 오기가 생겨서 그 두 물건을 폐기하지 않았고, 다음에 찾겠다는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때 여권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순간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다른 일행은 이미 환승장으로 빠져나가고 나 혼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내가 환승장으로 올라가지 않자 일행 중 몇몇이 나를 찾아왔고, 일단 환승장으로 같이 나왔다. 일행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여권을 찾기 위해 항공사 직원을 찾아갔다. 넓은 홍콩 공항 안을 뛰어다니는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계속 의아하고 혼란스러웠다. 항공사 직원에게 여권을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지만 허사였다. 그 직원은 여권이 없으면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없다고 했다. ‘차라리 아무 내색하지 말고 조용하 타고 갈걸...’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일행 중 외국여행의 경험이 많은 형제자매들이 도와주셨지만, 잃어버린 여권을 다시 찾지는 못했고 결국 홀로 홍콩 공항에 남겨졌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모두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로 떠난 것이다.
언어 소통도 되지 않는 낯선 타국에 혼자 남겨졌다는 위기감과 함께 여러 생각이 오갔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 필리핀으로 가지 말라는 뜻인가? 다시 여권을 찾을 수 있을까? 이제 나는 어찌해야 하지?’
단순한 두려움보다는 혼란스러움과 피곤함이 나를 감쌌다. 홍콩 공항의 직원과는 대화가 되지 않아 한국인 직원과 전화 통화를 했다. 여권을 분실한 이상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항공사 직원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시간이 늦어 직원들도 퇴근하고 혼자 홍콩 공항에서 밤을 지새웠다. 복잡한 마음에 한숨도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새 홍콩 공항을 배회하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뜬눈으로 새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서 성경을 읽었다. 성경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억울하다는 생각뿐이었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복잡한 생각만 맴돌았다. 결국,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나는 체념하기로 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비행기 밖으로 나왔을 때 항공사 직원이 나를 찾았다. 여권을 분실한 나는 정상적인 입국 절차를 거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원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홍콩에서 분실한 여권을 찾았습니다. 다음 비행기로 여권이 온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차라리 홍콩에서 조금 더 기다릴걸...’ 그렇지만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부모님과 청년회 형제자매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와 있었다.
잠시 후 청년회의 정 형제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내가 원한다면 필리핀으로 다시 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때 나는 공항 출입국 심사를 거치지 않고 대기 장소에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무입국 상태였다. 정 형제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기회가 있을 때 가 보자.’ 나는 곧 필리핀으로 가고 싶다고 대답했고, 잃어버린 여권과 새 비행기 표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성경도 읽고 내 상태에 대해 생각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것들에 지쳐갔다. 이렇게 힘들게 가게 되니 처음에 가졌던 들뜬 마음은 없어지고 마음 상태가 많이 달라졌다. ‘내가 필리핀 집회에 가는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똑바로 행동하자.’
이리하여 나는 예정보다 하루 늦게 필리핀에 도착했고, 공항에 마중 나온 형제와 함께 차를 타고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로 향하는 길에 교회에서 몇몇 형제자매들이 함께 탔고, 나는 나의 상태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리고 기숙사에 도착한 후에도 형제자매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나 자신을 소개했다. 모든 분이 내가 여권을 분실한 것을 알고 있었고 염려하고 있던 터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모두 내가 필리핀에 어렵게 온 것을 알고 나의 구원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해 주셨지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염려와 어수선한 마음에 정리가 잘 안 되었다.
집회 둘째 날, 나에게는 필리핀에서의 첫날이었다. 외국 여행은 처음이라서 긴장되었던 나의 마음은 금세 풀렸다. 교회로 이동하는 길에도 바깥 경치 구경에 여념이 없었고, 말씀 시간까지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말씀을 들을 때, 사람들이 신경을 많이 써 준 덕분에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었지만,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말씀이 끝나고 뒷정리를 할 때 어머니들이 나를 보시더니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경위를 이야기해 달라고 하셨다. 한참 우여곡절을 겪은 이야기를 하다 말이 끊긴 사이로 한 분이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참으로 구원을 받았는지야. 말씀은 잘 듣고 있는지 신경이 쓰이네.”
그때 나는 ‘아차’ 싶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곳에 왜 왔느냐는 것이지 어떻게 왔느냐가 아니었다. 어머님들께 죄송하고 또 고마웠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모임에 참석하고, 낮에도 모임에 참석하면서 또 신경이 무뎌졌다. 오후에 교회로 가는 셔틀버스에 한 형제와 같이 앉게 되었다. 그 형제는 별생각 없이 앉아 있는 나에게 구원에 대해 물어오셨다. 그리고 나와 하나님, 나의 죄에 대하여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공격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질문을 해왔으나 나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어 무척 괴로웠다. 잠시 후 뒷좌석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형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구원이라는 것은 선물이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하며 해주시는 말씀들이 하나하나 나의 양심을 아프게 찔러왔다. 가슴이 답답했고 너무 마음이 괴로웠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기가 싫을 정도였다. 버스로 이동하는 40여 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버스가 교회에 도착했고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 형제에게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너의 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라.’ 였다.
집회 장소로 들어갔지만 내가 편하게 있을 곳이 없었다. 모두 부지런하 집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할 일이 없었다. 구원받지 않은 나는 봉사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져 불편한 마음에 몸까지 피곤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식탁에 엎드려 쉬는 일뿐이었다. 식사 시간에 교사 회 방에 올라가 식사를 했다. 마침 방에는 몇몇 형제자매들이 밥을 먹고 있었고, 상민 형제도 있었다. 필리핀에 도착한 첫 날 내 이야기를 한 후에 그 형과 함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형은 식사를 마치고 나를 불러 성경책을 놓고 말씀을 찾아보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자신과 나의 죄 그리고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하나하나 성경을 찾아가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침내 나는 나의 죄 사함 받음에 “네” 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네”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아주 작은 뭔가가 있었다. 말씀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이야기를 끝냈다. 나는 말씀을 들으려고 강연 홀로 향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말씀을 들으며 졸기도 하는 등 집중하지 못하다가 말씀이 끝날 무렵에, 성령의 인치심에 대하여 언급하는 말씀이 들려왔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연 성령의 인치심이라는 것이 뭘까?’
그때부터 더욱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말씀이 끝나자마자 뒤쪽에 앉아 있던 아는 형을 찾아갔다.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질문했다.
“성령의 인치 심의라는 것이 뭐죠? 난 그런 것을 느낀 적이 없어요.”
“왜 느끼려고만 하니. 구원이란 어떤 느낌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믿어지는 것이다.”
형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피와 나의 죄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유월절에 관한 이야기도.
우리는 문밖의 계단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형은 문을 가리키면서, 유월절 날 유대 민족이 이집트에서 양의 피를 문기둥과 문설주에 바른 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들은 피를 바를 때문 밖에 발랐어. 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피가 보이지 않았지. 문 안에서 무서워 떨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야.”
형이 문을 가리키며 그 말을 하자, 내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쳐 갔다. ‘아, 내가... 내 죄가... 그때 유대인들이 피를 바름으로 죽음에서 건져진 것같이,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의 피로 다 사해졌구나.’ 전과는 달리 무척 편안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확실함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이 두근거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제는 확실하다고, 더는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다고, 나의 구원을 받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전체 모임이 있을 때 간증을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고, 몇몇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간증을 했다.
다음날 오후 어른들과 지역 교회 대표자들의 모임이 있을 때 대구에서 온 대학생은 나 혼자여서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도 간증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전체 모임에 모두 모인 자리에서도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해 간증했다. 그 후 남은 집회 기간에 말씀도 듣고 봉사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멀리 이국땅까지 고생하면서 가서 얻어온 구원이다. 힘들게 얻은 이 구원에, (물론 거저 얻은 것이지만)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삶의 목적을 찾은 만큼, 이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목적을 위하여 살고 싶다. 그전에는 삶의 목적에 대한 답을 찾기가 난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답을 확실하게 안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는 삶이 언제나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히 3:14) 하신 말씀대로 확실하 붙잡는 것이 있기에 한 길을 걸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신경 써주신 분들께, 그리고 이렇게 미련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