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1997년 1월 22일에 제가 구원받은 사실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1986년도에 구원받았다고 했던 일을 기억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11년이라는 세월 동안 구원받았다고 생활해 온 것을 생각하면 제가 그동안 얼마나 큰 거짓 행사를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구원받았다 하면서도 항상 제 마음은 심판과 데려감에 대한 두려움에 싸여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너 구원받았느냐?" 물으실 때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 사실을 무시한 채 구원받았다고 우겨댄 적이 많았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괴로움에 싸일 때가 많았지요. 저 자신을 되돌아보느라고 이야기를 많이 못 했을지도 모릅니다.
간혹 부모님께 구원 간증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제가 ‘구원이 확실해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감정의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구원받은 양 살아가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야 저는 구원받았고, 그 믿음에 확신이 있습니다.
먼저 그간의 이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제가 1986년도 즉, 초등학교 4학년 때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지요. 그때 구원받았다고 생각한 말씀이 히브리서 9장 12절이었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2)
하지만 사실 저는 ‘자기의 피’가 제 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야 비로소 ‘자기의 피’가 예수님의 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성경은 사실’이라고 제 마음에 확신해보려고 했습니다. 성경은 사실이라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믿음이 아니라, 설교하시는 분이 ‘성경은 사실입니다.’라고 하시니까 ‘그래, 그럴 거야. 나는 그렇게 받아들여야 해’하면서 그 말을 믿으려고 억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 노력은 제게 위안을 주었어요. 그러한 생각들 때문에 잠시나마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기 때문이죠.
이렇게 생활하던 중에도 항상 구원에 의심이 있었고, 그때마다 누군가와 상담을 통해서 기분이 달래자면 그 문제를 덮으려고 했답니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려 했던 기억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우습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제게는 확실히 구원받았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제가 구원에 확신을 얻은 말씀은 이사야 53장 5, 6절입니다.
그간의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997년 1월에 ‘성경은 사실이다’ 테이프를 보던 중에 “구원받았다 하면서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면 거듭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물론 주위에 많은 형제자매가 같이 말씀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제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18)
이 말씀을 듣고 저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그래, 나는 거듭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걱정되었습니다. 내일이라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면 저는 지옥에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형제에게 제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저를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지요. ‘제발 내일은 주님이 오시지 말라'고요. 그때만 해도 저는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았어요. 제가 구원받기는 쉬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편안하게 다음 날을 맞이했습니다.
다음날, 복음 테이프를 보게 되었답니다. 테이프를 보면서 내가 여기 말씀 중에서 한 가지를 마음에 두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원받았다 하면서도 속에 있는 두려움이 어떻게 제거될까 하는 근본적인 저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더군요.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나는 구원받을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식적으로나마 주님은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구원받기는 언제든지 가능할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다음 날도 내내 ‘내 구원이 이런데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 마음은 아직 복잡하고 어두운데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좀 석연찮았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한 형제에게 상담을 요청했답니다.
그 형제와 저는 상담하기 위해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1986년도에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지금껏 느껴왔던 불안함과 두려움 등을 흉금 없이 죽 이야기했습니다. 그 형제는 제게 “넌 지금 주님께서 너를 구원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있다.”고 말해주시더군요. 저는 마음속으로 ‘아니야. 그래도 나는 믿고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며 그 말을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주님을 온전하게 믿고 있었다면, 저는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았겠지요.
저는 이제는 솔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이 약속한 사실에 대해서 믿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답니다. ‘그래. 나는 그 사실을 믿으려고 노력했을 뿐, 사실은 믿은 게 아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 형제는 믿음은 제가 스스로 믿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 내가 11년간 믿으려고 노력했지만, 지금껏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고 싶은 자에게 주는 것이라며,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주님께서 믿음 주기를 거절하시면 나는 받을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옛날에 한 설교자분이 하나님을 태양에 비유하고 사람을 지구에 비교해서 이야기하셨던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태양에 지구가 아무리 붙으려 해도, 태양이 발로 툭 차버리면 지구는 아주 멀리 날아가 버린다고요. 그리고 아주 큰 물체(하나님)가 우리를 붙잡아야만 우리는 살아 나갈 수 있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너는 지금 지옥을 향해가는 죄인’이라는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지은 죄가 크더군요. 그중에서 가장 걸렸던 부분이 바로 사기죄였습니다. 구원받았다 하면서 학생회 활동을 하고, 구원받은 형제랍시고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충고와 권면을 밥 먹듯이 했던 모습들과,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너희는 구원받아야 한다면서 들려주었던 성경 이야기들…. 제게 임하지 않은 말씀을 전하려고 했던 일들이 저를 괴롭게 만들었지요.
제가 지옥에 가는 것은 저의 죄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주님께서 제게 믿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저의 죄와 행위로서 간다는 것을 꼬집을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죄를 사해줄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 하나님이요 옳은 분이라는 것, 그리고 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제가 지옥에 가는 날까지 믿음을 안 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는데, 저는 이 말을 듣고 서럽고 두려워서 저도 모르게 울음이 나오더군요.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렇다고 엉엉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했더니,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나보고 지옥에 가라는 소리인가요?”라고 물었더니, 한참을 조용히 있던 형제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에게는 이제 할 일이 없으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양쪽 형틀에 매달렸던 두 행악자 중 오른쪽에 달린 행악자처럼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보라”고요.
저에게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에게 다른 방법이 달리 있지는 않더군요. 11년 동안 저는 해 볼 일은 다 해 본 상태였거든요. 한참 후 “그러면 네가 이렇게 주님께 맡겼으면, 이제는 그 답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그래야겠지요.” 하고 순순히 대답했습니다.
형제는 이사야 53장 1절부터 9절까지 읽었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이사야 53:1-9)
그러고는 5, 6절을 한 번 더 읽고, “주님께서는 너에게 이렇게 하셨다. 이것은 조건식의 글이 아니라 통보”라고 덧붙였어요. 저에게 말하는 것이라고요. 형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또 노력했답니다. 마음속에 ‘내가 전심으로 주께 내 모든 것을 맡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씀이 이해되지 않고 마치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한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 조용한 방에서 성경을 다시 묵상하고 내 것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물론 핵심은 ‘제가 할 일은 없는데, 마지막 수단인 예수님께 전심으로 나를 맡겼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릅니다. 제게는 무척이나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 형제가 돌아왔을 때 저는 혼자 남았을 때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형제는 만약 제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질문하더군요. 저는 고민하고 고민하다 “먼저 주님께 부탁을 할 거예요. 제 죄를 사해 달라고요. 그러다가 응답이 없으시면 제게는 할 일이 없어서 나중에는 그렇다면 주님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할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형제는 그 마음이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의 마음과 같다고 했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가실 때 가나안 여인이 예수의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집에 있는 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너는 개다. 나는 나의 자녀 이스라엘인들에게 떡을 주려고 왔다. 그런데 어찌 자녀에게 줄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질 수 있겠느냐?” 말씀하실 때, 그 가나안 여인은 화내지 않고 자신이 개임을 인정하고 난 후, 개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면서 간청하였다고요. (마태복음 15:21-28 참조)
이 여인은 자신이 예수님께 은혜받지 못한 백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딸의 병은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는 점, 그 상황이 저와 비슷하더군요.
저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주님께서 저의 죄를 사하실 아무런 의무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내 죄 때문에 지옥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과, 주님은 항상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사실. 저는 그러한 사실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 십자가 옆에 달렸던 행악자는 아무런 행위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지 않았으며, 다만 자신이 십자가에 죽을 만한 확연한, 세상이 다 아는 죄인이라는 사실! 하지만 옆에 계신 예수님은 죄가 없다는 사실과, 그분은 참 메시아시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점.
그때 그는 조용히 예수님께 부탁하였지요. 그곳에 계실 때 저를 기억해 달라고. 예수님께서는 그 가나안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셨고, 그 행악자를 구원하셨지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때야 이사야 53장 5, 6절 말씀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 값도 없이 죄 사함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님은 저의 어떤 행위도 바라시지 않고, 무조건 주셨다는 말씀에 기뻤답니다. 그리고는 “그래!” 하는 외마디가 입가에서 나오더군요.
그리고 좀 더 성경을 읽어 주셨는데, 그중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는 말씀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비로소 제 마음이 편해지고, 안심되었습니다. 또한, 기뻤고 이제 내게는 심판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형제에게 ‘이제 되었어요.’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지요.
부모님! 저는 이렇게 해서 복음을 깨달았고, 주님께서 해 놓으신 약 2천 년 전의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선물을 얻은 기분입니다. 지금껏 교제 가운데 붙어 있게 늘 곁에서 이끌어 주셔서, 결국에는 새 생명을 깨닫게 해 주신 주님과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말씀을 한시라도 멀리했다면 저는 아직도 지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하고 있겠지요. 다음에 더 쓰기로 하고 이만 줄이겠습니다.
차남 올림
부모님께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1997년 1월 22일에 제가 구원받은 사실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1986년도에 구원받았다고 했던 일을 기억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11년이라는 세월 동안 구원받았다고 생활해 온 것을 생각하면 제가 그동안 얼마나 큰 거짓 행사를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구원받았다 하면서도 항상 제 마음은 심판과 데려감에 대한 두려움에 싸여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너 구원받았느냐?" 물으실 때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 사실을 무시한 채 구원받았다고 우겨댄 적이 많았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괴로움에 싸일 때가 많았지요. 저 자신을 되돌아보느라고 이야기를 많이 못 했을지도 모릅니다.
간혹 부모님께 구원 간증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제가 ‘구원이 확실해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감정의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구원받은 양 살아가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야 저는 구원받았고, 그 믿음에 확신이 있습니다.
먼저 그간의 이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제가 1986년도 즉, 초등학교 4학년 때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지요. 그때 구원받았다고 생각한 말씀이 히브리서 9장 12절이었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자기의 피’가 제 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야 비로소 ‘자기의 피’가 예수님의 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성경은 사실’이라고 제 마음에 확신해보려고 했습니다. 성경은 사실이라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믿음이 아니라, 설교하시는 분이 ‘성경은 사실입니다.’라고 하시니까 ‘그래, 그럴 거야. 나는 그렇게 받아들여야 해’하면서 그 말을 믿으려고 억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 노력은 제게 위안을 주었어요. 그러한 생각들 때문에 잠시나마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기 때문이죠.
이렇게 생활하던 중에도 항상 구원에 의심이 있었고, 그때마다 누군가와 상담을 통해서 기분이 달래자면 그 문제를 덮으려고 했답니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려 했던 기억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우습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제게는 확실히 구원받았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제가 구원에 확신을 얻은 말씀은 이사야 53장 5, 6절입니다.
그간의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997년 1월에 ‘성경은 사실이다’ 테이프를 보던 중에 “구원받았다 하면서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면 거듭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물론 주위에 많은 형제자매가 같이 말씀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제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저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그래, 나는 거듭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걱정되었습니다. 내일이라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면 저는 지옥에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형제에게 제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저를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지요. ‘제발 내일은 주님이 오시지 말라'고요. 그때만 해도 저는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았어요. 제가 구원받기는 쉬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편안하게 다음 날을 맞이했습니다.
다음날, 복음 테이프를 보게 되었답니다. 테이프를 보면서 내가 여기 말씀 중에서 한 가지를 마음에 두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원받았다 하면서도 속에 있는 두려움이 어떻게 제거될까 하는 근본적인 저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더군요.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나는 구원받을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식적으로나마 주님은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구원받기는 언제든지 가능할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다음 날도 내내 ‘내 구원이 이런데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 마음은 아직 복잡하고 어두운데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좀 석연찮았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한 형제에게 상담을 요청했답니다.
그 형제와 저는 상담하기 위해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1986년도에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지금껏 느껴왔던 불안함과 두려움 등을 흉금 없이 죽 이야기했습니다. 그 형제는 제게 “넌 지금 주님께서 너를 구원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있다.”고 말해주시더군요. 저는 마음속으로 ‘아니야. 그래도 나는 믿고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며 그 말을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주님을 온전하게 믿고 있었다면, 저는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았겠지요.
저는 이제는 솔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이 약속한 사실에 대해서 믿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답니다. ‘그래. 나는 그 사실을 믿으려고 노력했을 뿐, 사실은 믿은 게 아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 형제는 믿음은 제가 스스로 믿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 내가 11년간 믿으려고 노력했지만, 지금껏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고 싶은 자에게 주는 것이라며,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주님께서 믿음 주기를 거절하시면 나는 받을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옛날에 한 설교자분이 하나님을 태양에 비유하고 사람을 지구에 비교해서 이야기하셨던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태양에 지구가 아무리 붙으려 해도, 태양이 발로 툭 차버리면 지구는 아주 멀리 날아가 버린다고요. 그리고 아주 큰 물체(하나님)가 우리를 붙잡아야만 우리는 살아 나갈 수 있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너는 지금 지옥을 향해가는 죄인’이라는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지은 죄가 크더군요. 그중에서 가장 걸렸던 부분이 바로 사기죄였습니다. 구원받았다 하면서 학생회 활동을 하고, 구원받은 형제랍시고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충고와 권면을 밥 먹듯이 했던 모습들과,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너희는 구원받아야 한다면서 들려주었던 성경 이야기들…. 제게 임하지 않은 말씀을 전하려고 했던 일들이 저를 괴롭게 만들었지요.
제가 지옥에 가는 것은 저의 죄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주님께서 제게 믿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저의 죄와 행위로서 간다는 것을 꼬집을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죄를 사해줄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 하나님이요 옳은 분이라는 것, 그리고 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제가 지옥에 가는 날까지 믿음을 안 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는데, 저는 이 말을 듣고 서럽고 두려워서 저도 모르게 울음이 나오더군요.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렇다고 엉엉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했더니,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나보고 지옥에 가라는 소리인가요?”라고 물었더니, 한참을 조용히 있던 형제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에게는 이제 할 일이 없으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양쪽 형틀에 매달렸던 두 행악자 중 오른쪽에 달린 행악자처럼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보라”고요.
저에게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에게 다른 방법이 달리 있지는 않더군요. 11년 동안 저는 해 볼 일은 다 해 본 상태였거든요. 한참 후 “그러면 네가 이렇게 주님께 맡겼으면, 이제는 그 답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그래야겠지요.” 하고 순순히 대답했습니다.
형제는 이사야 53장 1절부터 9절까지 읽었습니다.
그러고는 5, 6절을 한 번 더 읽고, “주님께서는 너에게 이렇게 하셨다. 이것은 조건식의 글이 아니라 통보”라고 덧붙였어요. 저에게 말하는 것이라고요. 형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또 노력했답니다. 마음속에 ‘내가 전심으로 주께 내 모든 것을 맡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씀이 이해되지 않고 마치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한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 조용한 방에서 성경을 다시 묵상하고 내 것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물론 핵심은 ‘제가 할 일은 없는데, 마지막 수단인 예수님께 전심으로 나를 맡겼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릅니다. 제게는 무척이나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 형제가 돌아왔을 때 저는 혼자 남았을 때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형제는 만약 제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질문하더군요. 저는 고민하고 고민하다 “먼저 주님께 부탁을 할 거예요. 제 죄를 사해 달라고요. 그러다가 응답이 없으시면 제게는 할 일이 없어서 나중에는 그렇다면 주님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할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형제는 그 마음이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의 마음과 같다고 했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가실 때 가나안 여인이 예수의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집에 있는 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너는 개다. 나는 나의 자녀 이스라엘인들에게 떡을 주려고 왔다. 그런데 어찌 자녀에게 줄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질 수 있겠느냐?” 말씀하실 때, 그 가나안 여인은 화내지 않고 자신이 개임을 인정하고 난 후, 개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면서 간청하였다고요. (마태복음 15:21-28 참조)
이 여인은 자신이 예수님께 은혜받지 못한 백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딸의 병은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는 점, 그 상황이 저와 비슷하더군요.
저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주님께서 저의 죄를 사하실 아무런 의무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내 죄 때문에 지옥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과, 주님은 항상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사실. 저는 그러한 사실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 십자가 옆에 달렸던 행악자는 아무런 행위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지 않았으며, 다만 자신이 십자가에 죽을 만한 확연한, 세상이 다 아는 죄인이라는 사실! 하지만 옆에 계신 예수님은 죄가 없다는 사실과, 그분은 참 메시아시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점.
그때 그는 조용히 예수님께 부탁하였지요. 그곳에 계실 때 저를 기억해 달라고. 예수님께서는 그 가나안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셨고, 그 행악자를 구원하셨지요.
그때야 이사야 53장 5, 6절 말씀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 값도 없이 죄 사함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님은 저의 어떤 행위도 바라시지 않고, 무조건 주셨다는 말씀에 기뻤답니다. 그리고는 “그래!” 하는 외마디가 입가에서 나오더군요.
그리고 좀 더 성경을 읽어 주셨는데, 그중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는 말씀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비로소 제 마음이 편해지고, 안심되었습니다. 또한, 기뻤고 이제 내게는 심판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형제에게 ‘이제 되었어요.’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지요.
부모님! 저는 이렇게 해서 복음을 깨달았고, 주님께서 해 놓으신 약 2천 년 전의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선물을 얻은 기분입니다. 지금껏 교제 가운데 붙어 있게 늘 곁에서 이끌어 주셔서, 결국에는 새 생명을 깨닫게 해 주신 주님과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말씀을 한시라도 멀리했다면 저는 아직도 지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하고 있겠지요. 다음에 더 쓰기로 하고 이만 줄이겠습니다.
차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