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소식

이 큰 행복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작년 11월 28일에 구원을 받았다. 듣기로는 내가 ‘성경은 사실이다’는 비디오 설교 테이프를 한 번밖에 보지 않았고 권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성경 말씀을 전혀 거부감없이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나의 경험은 쉬운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의 거듭남은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구원받기 전까지 17년 동안 줄곧 교회를 다니면서 철저한 종교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종교의 틀을 벗어나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었다. 마침내 내가 몰랐던 많은 사실들(진심으로 찬송하는 것이 어떠한 것이며, 왜 복음이 좋은 소식인지 등)을 이해하게 된 것이 기쁘기만 하다. 

그러나 내 기쁨 한구석엔 주위에 있는 이들(특히 여동생)이 아직 구원받지 못한 데 대한 슬픔이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단번에 사하여졌음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아직 모른다.


‘모든 죄를 단번에’라는 말씀이 내게는 크게 와 닿았다. 이 말씀이 이전에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구원의 확신을 내게 안겨준 것이다. 수년간을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들어왔지만, 이 때문에 나의 모든 죄가 완전히 사해졌음은 결코 알지 못했다.

내 죄가 2,000년 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용서되었음을 몰랐던 것이다. 이제 왜 복음이 좋은 소식이라고 했는지 알겠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죄를 사해주셨고 나는 영생을 얻었다.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있을까!

“구원받았네, 구원받았네.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았네, 할렐루야! ”하고 손뼉을 치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가, “아, 하나님, 내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울부짖는 기성교회의 예를 권 목사님에게서 들으면서 나는 조금씩 ‘좋은 소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웃지 않을 수 없었지만 나 또한 그들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가족과 친구들이 아직도 그런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나님께서 내 눈을 열어 내가 이처럼 행복하고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해주셨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매우 사랑하사 이렇게 멋진 구원의 선물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음을 듣기는 들었다. 그렇지만 그 의미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과거에 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과 부활하신 것에 대해 기쁨이나, 슬픔, 안도감 등 다른 어떤 느낌도 없었다. 단지 추상적으로만 여겨졌을 뿐 실제로 내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나와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아홉 번째 테이프를 보고서야 예수님께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희생당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다. 지금은 퍽 단순하게 느껴지지만,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기까지는 정말 힘든 기간이 있었다. 이전의 나 자신을 돌이켜볼 때 나는 교만한 인간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자부할 만큼 교만했다. 

얼마나 종교심이 강했던가! 주일 예배, 금요일 밤 성경 공부, 식사 전, 취침 전의 기도, 그러면서도 구원받지 못했다.

나는 작년 가을까지도 나 자신을 훌륭한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했었다. 작년에 무신론과 철학 수업을 받았는데 그러한 이론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면서도 믿음이 다소간 혼미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신앙을 갖게 된 계기를 보면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한국을 방문했던 친구(지금은 자매이지만)가 내가 구원받기 10일 전에 한국에서 돌아왔다. 그 친구는 작년 10월에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 사실에 대해서 내게 일언반구의 말도 없었다.

친구가 돌아오면 함께 음악회에 가고 비디오테이프도 빌려다 보고,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과 다른 먹을 것들을 꺼내 먹는 등 함께 즐기려고만 했지, 친구가 내게 하나님이나 구원에 대해 얘기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재작년에 하나님과 믿음에 대해 서로 몇 번이나 얘기를 나눴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그 친구는 무신론자였고 나는 자신을 신실한 크리스천이라 믿던 교만한 신자였다. 우리는 말다툼을 했으나 우리 둘 다 옳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더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 자세로 그녀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심리학이나 무신론에 대한 회의 대신 구원과 신앙에 관해 얘기했다. 나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 일은 급속도로 진전이 되었다.


이틀 후 우리는 미시간에 있는 교회 분들을 만나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비디오테이프를 받아왔다. 그다음 주에는 어느 교회 분 집에서 총 10개인 테이프를 매일 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베풀어 준 관용과 친절에 감명받았다. 구원받지 않은 가정에서는 별로 받아보지 못했던 그 따뜻한 대접에 놀랄 뿐이었다.


여덟 번째 테이프를 보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내 기분은 그야말로 참담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지은 죄만큼의 고통을 내가 당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 참혹한 기분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 비참하게만 느낄 필요는 없다고 권 목사님께서 말씀하실 때야 비로소 가라앉았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보다는 하나님을 보아야 함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 테이프를 마저 본 후 나는 기쁨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친구도 나의 변화를 금세 알아챘다. 나는 성경을 슬프게 중얼거리는 대신 이제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이제 하나님께 순종하고 찬송하며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알았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습관적으로 했던 기도 대신 “저를 용서하시고 제게 영생을 주시고, 이 큰 행복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라고 기쁨의 기도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