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처럼 많은 죄로 인한 괴로움
저는 올해로 81세이고, 48세에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감리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감리교의 권사셨고 아버지는 장로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새벽 기도를 위해 새벽잠도 못 자게 이불을 걷으시며 저를 깨우셨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자랄수록 오히려 마음에서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방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해에 저는 19살이었는데 이화 여자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25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상대는 한번 상처하신 분으로 아이 셋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결혼 전에 저는 죽은 둘째 언니의 아이를 어머니와 함께 키웠는데, 그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 제가 그런 자리에 시집을 간다고 해도 잘 살 것 같다며 소개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로 인해 그 가정이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면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보다 세상을 많이 사신 어머니께서, 똑똑하고 현명하기로 구내에서 소문이 자자하신 그분이, 교회의 목사님 섬기는 데 일등이신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기에, 그 어려운 자리에 시집가는 이야기가 제게는 하나도 어렵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었고, 저도 그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여 이 길에 들어섰으니 못하겠다 할 수도 없고 그만,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자기 목숨을 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들어 왔기 때문에, 지옥에 갈 수는 없기에 목숨을 끊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하나님을 믿고 이 가족을 하나님께 인도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렇게 했으니 도와주세요 하며 부르짖고 매달렸습니다.
결혼 2년에 접어든 때에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를 낳고 보니 그동안의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낳고 죽으면 이 아이도 저 아이들처럼 될 텐데, 내가 저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잘 기르겠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했는데, 어렵다고 죽어야겠다는 생각했다니. 하나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면서 태산처럼 많은 죄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힘든 것을 참아 내면서도 미운 마음이 생겼고, 그것도 죄였습니다. 십계명도 모두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 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 보아도 내 몸이 우선이지 이웃의 어느 누구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는 고사하고 아이들조차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안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불순종할 때면 저도 미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 가지 죄만 있어도 죄인이라고 하는데 저는 모든 것에 다 걸리는 죄인이었기 때문에 매일 죄 때문에 씨름하며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인간 사회의 기준으로 보자면 저는 죄를 지은 적이 없지만, 하나님께 대한 양심의 죄, 이웃 사랑하기를 정말 내 몸같이 할 수 없다는 죄 때문에 그렇게 씨름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 이 죄를 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 인도해 주세요’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열심히 부르짖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응답이 없었습니다. 답답한 이 마음을 들으신다면 나를 인도해 주실 텐데 응답이 없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편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빠져 있었던 그 무엇
그러던 어느 날 같은 교회에 있는 사람이 저에게 이사회에 나오라는 제의를 하며 제게 권면을 해 왔습니다. 이사회는 기독교인 부인들이 활동하는 봉사단체입니다. 그래서 이사회에 나갔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열 명 정도의 이사들이 앉아 간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간증을 자세히 들어 보니 저처럼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바라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죄 용서함을 받아서 매우 감사하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중에 날마다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비는, 이것도 용서해 주시고 저것도 용서해 주시고 하며 비는 사람에 해당하였습니다. 저는 죄 용서를 받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사회를 마치고 나와서 곰곰 생각을 해 보니 제게는 분명 무언가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1974년 3월 25일, 83세셨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게는 남편도 있고 아들도, 딸도 있었지만,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가슴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공허함이 너무 컸습니다. 그렇게 내 죄에 대한 생각과 마음의 외로움으로 인해 하나님을 더 찾게 되었습니다.
한편 저는 감리교에서 속장, 권사 생활을 하면서 구역을 맡아 금요일마다 모여서 속회 공과 공부라는 책으로 공부를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공부를 가르칠 자신이 없었습니다. 목사님께 의논을 해도, 모두 마찬가지라며 그 책을 그대로 읽어 주기도 하고 성경 구절을 암송하기도 하면서 해 보라고 했습니다. 제 자신을 생각할 때 저는 실력도 없었고 속이 텅 빈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사람이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가 싶었습니다.
그때 마침 아는 사람이 4월에 대전에서 전도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금요일마다 공부를 가르칠 때 소신 있고 정확하게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전도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신학박사님도 그 집회에 나오시고 지방의 어떤 목사님은 몇 번이나 그 집회에 참석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집회는 참석할 만한 곳이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몰랐지만 전도집회를 한다고 해서 아무 곳이나 성경을 들고 찾아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신학박사님도 그 집회에 나오신다고 하니 마음을 놓고 노트 필기할 준비를 하여 첫날부터 찾아가 맨 앞에 앉았습니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저는 다니던 교회도 열심히 다녔고 봉사도 잘했기 때문에,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하라는 말씀은 비록 지키지 못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내 죄를 조금 감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나가기도 했고 충성심도 있었고 아낌없이 바칠 마음도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죄를 조금 감해 주시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집회에 참석한 지 사흘째 되던 날에 레위기 13장 설교를 들었는데, 그때 이런 제 생각은 무참히 깨졌습니다. 문둥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문둥병 초기의 환자는 부정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만신창이가 된 문둥병자는 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이것은 틀리잖아. 성경이 이렇게 모순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전도집회를 인도하던 분께 매달렸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모태 교인인데 이런 성경 말씀은 본 적이 없다. 무슨 병이든지 초기에 고치는 것이 쉽지, 어떻게 만신창이가 되어야 고칠 수 있고 정하다 할 수 있느냐. 이런 성경이 어디 있느냐?’, 이런 말을 하며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이사야 64장 6절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라는 것입니다. 순간, 내가 나름대로 교회에서 열심히 해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죄를 감해 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내 죄는 하나님 앞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감해 주실 것이라는 것은 저만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말씀을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그러던 중 히브리서 10장 10절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 10-12)
이 말씀을 보면서 몸을 단번에 드리신 예수님을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뒤에는 영원한 속죄에 대한 말씀이 나와 있었습니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7-18)
하나님께서는 다시 제사 드릴 필요가 없이 영원히,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죄 때문에 너무 많은 씨름을 했는데 그때 제 가슴에 있던 커다란 죄 짐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삼림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 (이사야 44:22-23)
하늘, 땅, 산들 이 모든 피조물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되어 있는데 나라는 인간은 그동안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이제라도 이 진리를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하는 찬송가 가사가 내 마음의 소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애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와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삶에 임하고 있습니다.
태산처럼 많은 죄로 인한 괴로움
저는 올해로 81세이고, 48세에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감리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감리교의 권사셨고 아버지는 장로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새벽 기도를 위해 새벽잠도 못 자게 이불을 걷으시며 저를 깨우셨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자랄수록 오히려 마음에서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방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해에 저는 19살이었는데 이화 여자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25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상대는 한번 상처하신 분으로 아이 셋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결혼 전에 저는 죽은 둘째 언니의 아이를 어머니와 함께 키웠는데, 그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 제가 그런 자리에 시집을 간다고 해도 잘 살 것 같다며 소개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로 인해 그 가정이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면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보다 세상을 많이 사신 어머니께서, 똑똑하고 현명하기로 구내에서 소문이 자자하신 그분이, 교회의 목사님 섬기는 데 일등이신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기에, 그 어려운 자리에 시집가는 이야기가 제게는 하나도 어렵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었고, 저도 그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여 이 길에 들어섰으니 못하겠다 할 수도 없고 그만,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자기 목숨을 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들어 왔기 때문에, 지옥에 갈 수는 없기에 목숨을 끊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하나님을 믿고 이 가족을 하나님께 인도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렇게 했으니 도와주세요 하며 부르짖고 매달렸습니다.
결혼 2년에 접어든 때에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를 낳고 보니 그동안의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낳고 죽으면 이 아이도 저 아이들처럼 될 텐데, 내가 저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잘 기르겠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했는데, 어렵다고 죽어야겠다는 생각했다니. 하나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면서 태산처럼 많은 죄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힘든 것을 참아 내면서도 미운 마음이 생겼고, 그것도 죄였습니다. 십계명도 모두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 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 보아도 내 몸이 우선이지 이웃의 어느 누구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는 고사하고 아이들조차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안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불순종할 때면 저도 미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 가지 죄만 있어도 죄인이라고 하는데 저는 모든 것에 다 걸리는 죄인이었기 때문에 매일 죄 때문에 씨름하며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인간 사회의 기준으로 보자면 저는 죄를 지은 적이 없지만, 하나님께 대한 양심의 죄, 이웃 사랑하기를 정말 내 몸같이 할 수 없다는 죄 때문에 그렇게 씨름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 이 죄를 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 인도해 주세요’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열심히 부르짖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응답이 없었습니다. 답답한 이 마음을 들으신다면 나를 인도해 주실 텐데 응답이 없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편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빠져 있었던 그 무엇
그러던 어느 날 같은 교회에 있는 사람이 저에게 이사회에 나오라는 제의를 하며 제게 권면을 해 왔습니다. 이사회는 기독교인 부인들이 활동하는 봉사단체입니다. 그래서 이사회에 나갔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열 명 정도의 이사들이 앉아 간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간증을 자세히 들어 보니 저처럼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바라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죄 용서함을 받아서 매우 감사하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중에 날마다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비는, 이것도 용서해 주시고 저것도 용서해 주시고 하며 비는 사람에 해당하였습니다. 저는 죄 용서를 받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사회를 마치고 나와서 곰곰 생각을 해 보니 제게는 분명 무언가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1974년 3월 25일, 83세셨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게는 남편도 있고 아들도, 딸도 있었지만,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가슴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공허함이 너무 컸습니다. 그렇게 내 죄에 대한 생각과 마음의 외로움으로 인해 하나님을 더 찾게 되었습니다.
한편 저는 감리교에서 속장, 권사 생활을 하면서 구역을 맡아 금요일마다 모여서 속회 공과 공부라는 책으로 공부를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공부를 가르칠 자신이 없었습니다. 목사님께 의논을 해도, 모두 마찬가지라며 그 책을 그대로 읽어 주기도 하고 성경 구절을 암송하기도 하면서 해 보라고 했습니다. 제 자신을 생각할 때 저는 실력도 없었고 속이 텅 빈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사람이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가 싶었습니다.
그때 마침 아는 사람이 4월에 대전에서 전도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금요일마다 공부를 가르칠 때 소신 있고 정확하게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전도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신학박사님도 그 집회에 나오시고 지방의 어떤 목사님은 몇 번이나 그 집회에 참석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집회는 참석할 만한 곳이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몰랐지만 전도집회를 한다고 해서 아무 곳이나 성경을 들고 찾아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신학박사님도 그 집회에 나오신다고 하니 마음을 놓고 노트 필기할 준비를 하여 첫날부터 찾아가 맨 앞에 앉았습니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저는 다니던 교회도 열심히 다녔고 봉사도 잘했기 때문에,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하라는 말씀은 비록 지키지 못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내 죄를 조금 감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나가기도 했고 충성심도 있었고 아낌없이 바칠 마음도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죄를 조금 감해 주시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집회에 참석한 지 사흘째 되던 날에 레위기 13장 설교를 들었는데, 그때 이런 제 생각은 무참히 깨졌습니다. 문둥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문둥병 초기의 환자는 부정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만신창이가 된 문둥병자는 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이것은 틀리잖아. 성경이 이렇게 모순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전도집회를 인도하던 분께 매달렸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모태 교인인데 이런 성경 말씀은 본 적이 없다. 무슨 병이든지 초기에 고치는 것이 쉽지, 어떻게 만신창이가 되어야 고칠 수 있고 정하다 할 수 있느냐. 이런 성경이 어디 있느냐?’, 이런 말을 하며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이사야 64장 6절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라는 것입니다. 순간, 내가 나름대로 교회에서 열심히 해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죄를 감해 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내 죄는 하나님 앞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감해 주실 것이라는 것은 저만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말씀을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그러던 중 히브리서 10장 10절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 10-12)
이 말씀을 보면서 몸을 단번에 드리신 예수님을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뒤에는 영원한 속죄에 대한 말씀이 나와 있었습니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7-18)
하나님께서는 다시 제사 드릴 필요가 없이 영원히,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죄 때문에 너무 많은 씨름을 했는데 그때 제 가슴에 있던 커다란 죄 짐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삼림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 (이사야 44:22-23)
하늘, 땅, 산들 이 모든 피조물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되어 있는데 나라는 인간은 그동안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이제라도 이 진리를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하는 찬송가 가사가 내 마음의 소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애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와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삶에 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