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철학 사상 가운데 기독 철학을 택하고
1970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따라 무작정 열심히만 했던 고등학교 3학년인 그해,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서 저는 책장에 끼어 있는 읽기 쉬운 신약성경(표준번역)을 우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성경 속의 많은 교훈적인 말씀들이 재기를 노리는 제게 많은 희망과 힘을 주어 나름대로 알찬 공부를 해나갔고 다음 해에는 원하는 학과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저는 이제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정립할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공자가 ‘아침에 도를 깨닫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했던 그 ‘변하지 않은 진리(道)’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 강좌에 유난히 귀를 기울였고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철학 사상을 하나 선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철학의 모든 사상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한 사상이 진리로 발표되어 그 시대를 이끌고 나면 후대의 철학자가 나와 자신의 사상으로 기존의 사상을 뒤엎어 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저는 인간의 철학 사상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철학을 공부하면서 좋았던 것은 여러 철학 사상 중에 기독교 철학도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독 철학에서의 진리는 사람이 연구하여 발견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계시된 진리’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즉 진리는 이미 정해져 있고 단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듣고 읽던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맡길 곳은 일단 기독교로 선택해 놓고 그다음 단계를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 여러 기독 종파 중에서 어떤 교파를 택할 것인가?’ 자문하며 나름대로 경험해 온 것을 토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태도를 볼 때는 안식일 교파가 가장 마음에 들어 그 교파를 택하여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7년 가까이 다녔습니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
1972년 말 즈음 입대를 해야 했고, 안식일교회 식구들은 나에게 어려운 가운데 신앙생활을 잘해 줄 것을 간구하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얻은 신앙의 초기 생활을 군대에서 해야 했고 군 생활 중 기도는 나의 유일한 자산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군대에서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을 퍽이나 좋게 생각했습니다.
논산 훈련소를 거쳐 후반기 교육을 받고 춘천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1주일 후에는 본부 행정병으로 차출되어 근무하면서 토요일(안식일 날) 교회 정기집회에 매주 참석할 수 있었고 제 신앙생활은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습니다.
군대 생활을 거의 다 마칠 무렵, 안식일 교회의 토요일 정기집회에 참석한 어느 날 목사님은 신자들에게 심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집사님이 병으로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자신에게 “목사님, 제가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며 우리에게 “여러분, 눈을 잠깐 감으세요. 만일 자기가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천국에 갈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끝내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는 제대한 후에도 교회에 성실하게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기도는 ‘하나님, 제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시기 전에는 죽지 않도록 해 주세요.’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도는 밤이나 낮이나, 걸어가든지 차를 타고 가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생각나면 언제나 하곤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성경 전체를 안식일 교파의 교리에 구애받지 않고 내 양심에 따르며 한번 읽어보자고 마음먹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성경을 읽겠사오니 꼭 답을 알려 주세요.’ 그래서 성경을 한 번 읽게 되었고 영어 성경(킹제임스버전)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한 번 다 읽었는데도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 5:26) 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제 마음을 계속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책 한 권을 읽으면 마음에 상당한 양식을 얻어 기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저는 꿈속에서도 죽지 않으려고(죽으면 바로 지옥에 가기 때문에) 기도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느새 제대한 지 2년이 흘러 1977년이 되었고, 저는 대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1977년 새해를 맞이하며 저는 막연하게 럭키 세븐(7)이 둘이나 들어 있으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소박한 꿈이었지요. 그 해 후반기 마지막 시험 기간 중이었는데 그때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길거리에서 현수막 하나를 발견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성경 대강연회’라는 주제에 소제목으로 인구 문제, 식량 문제, 핵 전쟁 등이 쓰여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문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사실 앞에 나열된 문제들은 보통 여러 교회에서 집회할 때 많이 인용하던 것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쓰여 있는 ‘이스라엘 문제’에 이르자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성경을 자주 읽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험이 끝나면 낮에 다음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 두고는 저녁에 시작하는 그 강연을 차분히 듣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11월 30일이었고 강연회 장소는 전주에 있는 시민문화회관이었는데 늦가을이라 내부는 썰렁했습니다. 저는 강사가 잘 보이고 강연 내용을 제일 듣기 좋은 곳에 일찍이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연 시간이 다 되어 강사가 들어오시는데 성경책 하나만 가지고 들어오시기에 무척 기뻤습니다. 사실 다른 교회의 집회도 많이 가 보았는데 강사들이 보통 여러 자료들을 함께 가져왔고 저는 그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순수하게 성경으로만 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강사에 대한 제 마음의 평가는 100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 강연회의 일정표를 보니 제가 찾아간 날은 이미 강연회의 둘째 날이었습니다. 드디어 강사가 이야기를 시작하시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이야기는 거의 전부 제가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듣는 데에 온 정신을 집중하였는데 시간이 굉장히 짧게 느껴졌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밤 11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발걸음이 둥실둥실하여 걷는 둥 마는 둥 했지요. 그리고 여기서 들은 것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치 밭에 묻힌 보화를 나만 보고 살그머니 그 밭을 사는 것처럼 혼자만 간직하고 ‘내일도 꼭 참석해야지’ 하고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은 등화관제 훈련(적기가 야간 공습할 때 각자 집에서 나오는 불빛이 새 나가지 않도록 하는 훈련)을 하는 날이라 하여 강연회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강연회를 주최하는 분이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오늘은 강연을 안 하나요?”하고 물으니 “훈련이 끝나면 시작할 것입니다.” 하기에 안심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30분 정도 지나서 강연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강사가 어제 강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숙제를 하나 내주었는데, 그 답을 오늘 가르쳐줄지 어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애가 많이 탔습니다. 그것은 제가 고민하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현재 치르고 있는 학교 시험을 그르치는 한이 있더라도, 서울까지 쫓아가서라도 그 답을 알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제 마음 상태가 그러했습니다.
강사는 여러 이야기와 예수님의 십자가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었고 또 십계명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는데 저는 그때 처음으로 그 십계명을 통하여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재판장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내가 지금 죽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내 자신이 직접 지옥을 생생하게 현실처럼 실감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정말 희망이 전혀 없는 절망 그 자체였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한 가닥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고심하고 있던 중 강사는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저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이어서 강사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는 성경 구절을 읽었고, 그때 저는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그 말씀을 나도 모르게 온 마음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가 그렇게 고민했던 죄 짐이 일순간에 사라지면서 조용하면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내 마음에 차고 넘쳤습니다. 그때가 1977년 12월 1일 밤 10시 20분경이었습니다.
나 가나안 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내 무거운 짐 벗어 버렸네
죄 중에 다시 방황할 일 전혀 없으니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찬송가 221장)
이 찬송가는 그 날 이후로 제 찬송가가 되었답니다.
여러 철학 사상 가운데 기독 철학을 택하고
1970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따라 무작정 열심히만 했던 고등학교 3학년인 그해,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서 저는 책장에 끼어 있는 읽기 쉬운 신약성경(표준번역)을 우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성경 속의 많은 교훈적인 말씀들이 재기를 노리는 제게 많은 희망과 힘을 주어 나름대로 알찬 공부를 해나갔고 다음 해에는 원하는 학과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저는 이제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정립할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공자가 ‘아침에 도를 깨닫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했던 그 ‘변하지 않은 진리(道)’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 강좌에 유난히 귀를 기울였고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철학 사상을 하나 선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철학의 모든 사상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한 사상이 진리로 발표되어 그 시대를 이끌고 나면 후대의 철학자가 나와 자신의 사상으로 기존의 사상을 뒤엎어 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저는 인간의 철학 사상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철학을 공부하면서 좋았던 것은 여러 철학 사상 중에 기독교 철학도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독 철학에서의 진리는 사람이 연구하여 발견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계시된 진리’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즉 진리는 이미 정해져 있고 단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듣고 읽던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맡길 곳은 일단 기독교로 선택해 놓고 그다음 단계를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 여러 기독 종파 중에서 어떤 교파를 택할 것인가?’ 자문하며 나름대로 경험해 온 것을 토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태도를 볼 때는 안식일 교파가 가장 마음에 들어 그 교파를 택하여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7년 가까이 다녔습니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
1972년 말 즈음 입대를 해야 했고, 안식일교회 식구들은 나에게 어려운 가운데 신앙생활을 잘해 줄 것을 간구하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얻은 신앙의 초기 생활을 군대에서 해야 했고 군 생활 중 기도는 나의 유일한 자산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군대에서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을 퍽이나 좋게 생각했습니다.
논산 훈련소를 거쳐 후반기 교육을 받고 춘천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1주일 후에는 본부 행정병으로 차출되어 근무하면서 토요일(안식일 날) 교회 정기집회에 매주 참석할 수 있었고 제 신앙생활은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습니다.
군대 생활을 거의 다 마칠 무렵, 안식일 교회의 토요일 정기집회에 참석한 어느 날 목사님은 신자들에게 심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집사님이 병으로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자신에게 “목사님, 제가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며 우리에게 “여러분, 눈을 잠깐 감으세요. 만일 자기가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천국에 갈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끝내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는 제대한 후에도 교회에 성실하게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기도는 ‘하나님, 제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시기 전에는 죽지 않도록 해 주세요.’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도는 밤이나 낮이나, 걸어가든지 차를 타고 가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생각나면 언제나 하곤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성경 전체를 안식일 교파의 교리에 구애받지 않고 내 양심에 따르며 한번 읽어보자고 마음먹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성경을 읽겠사오니 꼭 답을 알려 주세요.’ 그래서 성경을 한 번 읽게 되었고 영어 성경(킹제임스버전)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한 번 다 읽었는데도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 5:26) 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제 마음을 계속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책 한 권을 읽으면 마음에 상당한 양식을 얻어 기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저는 꿈속에서도 죽지 않으려고(죽으면 바로 지옥에 가기 때문에) 기도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느새 제대한 지 2년이 흘러 1977년이 되었고, 저는 대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1977년 새해를 맞이하며 저는 막연하게 럭키 세븐(7)이 둘이나 들어 있으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소박한 꿈이었지요. 그 해 후반기 마지막 시험 기간 중이었는데 그때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길거리에서 현수막 하나를 발견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성경 대강연회’라는 주제에 소제목으로 인구 문제, 식량 문제, 핵 전쟁 등이 쓰여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문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사실 앞에 나열된 문제들은 보통 여러 교회에서 집회할 때 많이 인용하던 것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쓰여 있는 ‘이스라엘 문제’에 이르자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성경을 자주 읽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험이 끝나면 낮에 다음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 두고는 저녁에 시작하는 그 강연을 차분히 듣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11월 30일이었고 강연회 장소는 전주에 있는 시민문화회관이었는데 늦가을이라 내부는 썰렁했습니다. 저는 강사가 잘 보이고 강연 내용을 제일 듣기 좋은 곳에 일찍이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연 시간이 다 되어 강사가 들어오시는데 성경책 하나만 가지고 들어오시기에 무척 기뻤습니다. 사실 다른 교회의 집회도 많이 가 보았는데 강사들이 보통 여러 자료들을 함께 가져왔고 저는 그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순수하게 성경으로만 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강사에 대한 제 마음의 평가는 100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 강연회의 일정표를 보니 제가 찾아간 날은 이미 강연회의 둘째 날이었습니다. 드디어 강사가 이야기를 시작하시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이야기는 거의 전부 제가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듣는 데에 온 정신을 집중하였는데 시간이 굉장히 짧게 느껴졌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밤 11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발걸음이 둥실둥실하여 걷는 둥 마는 둥 했지요. 그리고 여기서 들은 것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치 밭에 묻힌 보화를 나만 보고 살그머니 그 밭을 사는 것처럼 혼자만 간직하고 ‘내일도 꼭 참석해야지’ 하고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은 등화관제 훈련(적기가 야간 공습할 때 각자 집에서 나오는 불빛이 새 나가지 않도록 하는 훈련)을 하는 날이라 하여 강연회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강연회를 주최하는 분이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오늘은 강연을 안 하나요?”하고 물으니 “훈련이 끝나면 시작할 것입니다.” 하기에 안심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30분 정도 지나서 강연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강사가 어제 강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숙제를 하나 내주었는데, 그 답을 오늘 가르쳐줄지 어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애가 많이 탔습니다. 그것은 제가 고민하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현재 치르고 있는 학교 시험을 그르치는 한이 있더라도, 서울까지 쫓아가서라도 그 답을 알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제 마음 상태가 그러했습니다.
강사는 여러 이야기와 예수님의 십자가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었고 또 십계명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는데 저는 그때 처음으로 그 십계명을 통하여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재판장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내가 지금 죽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내 자신이 직접 지옥을 생생하게 현실처럼 실감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정말 희망이 전혀 없는 절망 그 자체였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한 가닥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고심하고 있던 중 강사는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저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이어서 강사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는 성경 구절을 읽었고, 그때 저는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그 말씀을 나도 모르게 온 마음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가 그렇게 고민했던 죄 짐이 일순간에 사라지면서 조용하면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내 마음에 차고 넘쳤습니다. 그때가 1977년 12월 1일 밤 10시 20분경이었습니다.
나 가나안 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내 무거운 짐 벗어 버렸네
죄 중에 다시 방황할 일 전혀 없으니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찬송가 221장)
이 찬송가는 그 날 이후로 제 찬송가가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