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생활의 시작
저는 평범한 가정의 3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아주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유년 시절엔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했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며 곧잘 한다는 소리도 들으며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음악 실기 시험을 치던 달이면 각 반마다 불려 다니며 본보기로 노래를 불렀고, 전교생이 등교하는 시간에는 다른 친구 두 명과 함께 방송실에서 동요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서 무언가 모를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이나 명절 전날의 흥분과 기대감도 없어졌습니다. 가정 시간에 수예를 배우고, 가사 실습을 하고, 예쁜 편지지나 편지봉투를 모으고, 마음에 있는 친구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격이 조금 차분해졌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외로움과 허전함에 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스스로 찾아가 영세를 받으신 어머니로 인해 저와 남동생 둘이 연이어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 종교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도 이런저런 의문이 많았는데, 그런 의문을 수녀님께 질문하면 어머니 등에 업힌 어린아이가 엄마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는 것처럼 무조건 믿으면 된다고 답하기에 후에는 의문이 있어도 그냥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영세를 받았고, 일요일 미사에 빠지면 그 다음 주에 해야 할 고해성사가 너무 싫어 주일 아침이면 성당부터 다녀왔습니다. 그 후에야 다른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땐 성당부터 다녀오면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의문이 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친구가 성당에서는 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절을 하는지, 왜 똑같은 사람인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는지를 물었을 때는 대답을 확실하게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일 주일 강론 중에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6:19) 하는 말씀 구절을 들며, 옛날의 사도 직분이 지금의 신부가 하는 역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성당은 하나로 통일된 미사 예식을 하는 큰집인데, 자기네들 욕심 때문에 타락한 신부(당시 성당에선 마틴 루터를 이렇게 가르쳤습니다.)가 세운 여러 파로 갈라진 작은 집인 교회가 무얼 안다고?’ 하는 우월성이 제게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였습니다. 철없는 저는 당연히 성악을 하리라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로 알아보니 교수 사사도 받아야 하고, 예술 대학은 특히 돈이 많이 들어 혼자 버시는 아버지 월급으로는 감당하기가 힘들기에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아련한 미련은 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고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해주지 못하는 어머니는 늘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시며, 직장에서 받는 월급으로는 남동생 셋 공부도 못 시키겠다며 다시 대구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
세월이 지나 결혼 적령기가 되어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결혼식 날을 잡는데, 저희는 성당에 다니다 보니 편한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고, 시어머니 되실 분은 두 사람의 생년월일을 넣어 날을 잡아야 한다고 하시며 아가씨가 음력 9월생이면 안 된다고(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날을 잡는 집에서 신부가 음력 9월생이면 신랑이 일찍 죽는다고 했답니다) 하셨답니다. 그런데 제 생일은 음력 9월 18이면서 양력으로는 10월 19일입니다. 신랑은 젊은 사람이라 생일을 따지지 않았고 그 사실은 저와 제 어머니, 신랑 이렇게 세 사람만 알고 시어머니께는 음력 10월 19일이라고 말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한 지 8개월 만에 이사를 했는데 얼마 안 있어 아래층 집으로 충청도에서 다섯 식구가 이사를 왔습니다. 후일 저를 인도한 자매님의 가족이었지요. 그 자매님과 저는 나이 차이도 있었고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언니라 부르기도 하고 중학생인 아들의 과외를 부탁하셔서 몇 달 동안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해 성탄절에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언니를 집 앞에서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언니가 다른 교회나 성당과는 다르게 성탄절과 상관없이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속으로 무척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언니는 제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의치가 않았고 각자의 생활을 하다가 언니 가족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버렸습니다.
저는 세월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그것은 큰 걱정 없이 사는 시댁의 제일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결혼 후 3년 정도 되었을 때 아랫배가 결리는 통증으로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자궁 외 임신 같다고 했고 저는 좌측 나팔관을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세포 검사 결과 자연 임신이 어려운 병으로 나왔고,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 몰래 저를 부르셔서 미신 믿는 곳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면서 무시해 버렸습니다. 나중에 제가 시어머니 말씀대로 하지 않고 아이도 생기지 않으니 남편도 상심이 컸나 봅니다. 급기야 제 생일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을 생각해서 서둘러 저희 둘을 헤어지게 하는 데 일조하셨습니다. 저는 시어머니보다 남편이 더 미웠습니다. 본인도 아이가 있었으면 했나 봅니다. 그렇게 결혼한 지 6년 만에 그동안의 노력도 허사인 채로 불임이 가장 큰 원인이 되어 남편과 헤어지면서 홈패션 가게를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막연한 불안감
작은 규모로 가게를 시작한 지 2년 정도 지났을 즈음 아랫층에 살았던 그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같은 동네에서 친하게 지냈던 다른 친구에게 제 연락처를 물었다 했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가게로 찾아오신 언니는 혼자가 된 제 상황을 이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이제는 아기를 낳아야 되지 않겠냐고 건강식품을 권하기도 하셨습니다. 그 후로도 자주 찾아와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저는 자연스레 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언니는 어느 날 카세트테이프 한 세트를 주며 내용을 잘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일을 하며 들어야 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기는 했지만 무성의하게 들었습니다. 성당에서와는 다르게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한다는 느낌만 받았을 뿐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후로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얼마 후 언니가 찾아와 말씀 테이프를 들은 소감을 물었고 제 어머니와 저를 교회에 데리고 가서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말씀 테이프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저는 둘 다 그 내용에 대해 제대로 감도 잡지 못한 상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해(1993년) 8월에 언니는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할 것을 권하셨고, 저도 여름이면 일이 많이 없던 터라 동행했습니다. 정말 무더운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불평 없이 부채질을 해가며 서로를 반가워하는 여유로운 모습에, 저 역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처럼 무언지 모를 편안함에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후일에 생각한 것이지만 제 성격에 그런 장소에서 그렇게 무더운데도 중간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끝까지 견딘 것이 이상하고 신기했습니다.
저녁 설교를 시작하기 전 성가대 옷을 입은 사람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조금 다른 모양의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역시나 찬양하는 중간에 솔로로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구원받으면 저들과 함께 찬양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첫째, 둘째 날에 들은 말씀에 대해서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는데 셋째 날에 성경과 과학을 접목하여 말씀하시는 박사님을 보며, 공부도 많이 하고 남부러울 게 없을 텐데도 구원받고 하나님을 믿는구나 싶었습니다. 저같이 보잘것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완악한 인간은 어찌해서 이리도 믿어지지 않나 하는 마음에 답답함을 느꼈지요.
다음 날 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 지은 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에 엄마 주머니를 뒤져서 돈 가져갔던 일, 성당 다닐 때 마리아상과 예수의 고상(苦像) 앞에서 절했던 일,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2) 하는 말씀에서처럼 욕했던 일 등 몇 가지가 떠올랐으나 그때 당시는 그런 죄들이 심각한 죄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끝나고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쉽게 오지 않고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똑바로 누워 눈을 뜨면 천정이 아래로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옆에 누운 언니에게 잠이 안 오니 이야기 좀 하자며 말을 걸었습니다. 언니는 내게, 친정 동생에게 인도되어 구원받기까지의 간증을 했고 내일 설교를 잘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저는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전날의 두려움은 좀 가신 것 같았고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설교를 끝까지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교를 다 들은 후에도 무덤덤하기만 한데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구원받았다며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언니의 시누이 되시는 자매님이 제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는데 저는 그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저는 구원받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고 저렇게 기뻐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는 분명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제의 두려움이 되살아났습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상담을 받으라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상담하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가는 중에 성경과 과학에 대하여 말씀하시던 그 박사님이 맞은편에서 걸어오시며 웃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저 외에는 모두 행복해 보이고 혼자만 낙오자인 것 같았습니다.
상담하는 곳에 가서 제 차례가 되어 상담을 받았습니다. 연세 드신 상담자와의 상담으로도 제 마음은 돌이켜지지 못했습니다. 숙소로 그냥 돌아오기가 두려워 다른 상담자와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그분은 조용하게 “어떤 어머니가 아주 불량한 아들 하나를 데리고 행상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그 아들은 어머니가 그날 벌어오는 돈으로 술만 먹으며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이래요. 그날도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언덕을 돌아오는데 자기 집 동네로 보이는 곳에서 불이 난 것을 보았답니다. 동네 가까이 가니 자기 집에 불이 났고 동네 아주머니가 뛰어나오면서 당신 아들이 술에 취해 불을 낸 것 같다고, 아직도 집안에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 불 속을 뛰어 들어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고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무의식중에 “엄마”라고 대답했습니다. 진정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재차 물으셨는데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맞다고 하시며, “이 세상에서는 자식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엄마이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을 보내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죄인인 아담의 피를 이어 받아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정말 아무 죄도 없으신, 깨끗한 피를 가진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죄 있는 피를 속하게 하셨고, 하나님은 그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인간을 보시기 때문에 죄 있는 나의 피는 예수님의 피로 덮여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이야기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상담자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정말 처절한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오니 밤이 깊어 있었습니다. 남들은 모두들 곤히 자고 있는데 두렵고 형언할 수 없는 막막한 심정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날이 밝으니 사람들이 곳곳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나는 철저하게 혼자이고 낙오자이며 외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 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침례식과 성찬식에 참석했는데 혼자 떡을 떼지 못하는 그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요.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끝이라는 마음이 들면서, 무리를 지어 이야기하는 곳을 기웃거리다 이번 기회에 구원받은 듯한 사람이 하는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전날 상담해 주시던 이의 이야기가 그제야 또렷이 생각나면서 알아졌습니다. ‘아, 그랬었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고, 언니에게 점심을 먹으며 구원받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간증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속에 이루어진 것을 이야기하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심되었던 부분(저는 하나님을 왜 꼭 하나님이라고 해야 하는지가 늘 못마땅했던 것 같습니다)을 말씀드리니 차근차근 대답해 주셨습니다. 유일하신 참 신이기에 하나님이고,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달력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과 닭이 알보다 먼저인 것 등등, 들은 이야기들은 모두 제가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들이었습니다.
저는 구원받아야 한다고 하니 눈에 보이는 실체가 제게 확실하게 쥐어져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또 무언가 그런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구원의 복음을 알고 받아들였지만 그 순간 크게 기쁘지 않았던 것은 제 명백한 죄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단지 마음속에 ‘아! 그런 것이구나.’ 하는 마음만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여니 바로 맞은편 벽에 예수님 고상이 보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우상이다 싶어 바로 신문지에 싸서 미련없이 버렸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첫날 저는 흥분된 마음으로 한 가지 할 일을 생각했습니다. 전에 언니가 갖다 주신 테이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들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그렇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말씀들이 다 들리고 믿어졌습니다. 죄 문제를 말씀하셨을 때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 1:28-31) 는 성경 구절로 죄에 대하여 조목조목 말씀하시는데 그 어느 죄도 저를 피해갈 수 없는 항목임을 알게 되면서 “제가 이런 죄인이었네요.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이 생겨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언니는 제게 복음에 대한 말씀이 든 카세트테이프는 가져다 주지 않았지만, 성경탐구모임회장에서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고 예수님을 알고 믿음으로 제 인생의 가치관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제가 육신적으로 가지지 못한 것과 또 그것을 가진 사람도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고통 끝에 구원받고 보니, 그간의 불확실했던 믿음의 주체는 확실함을 기반으로 예수님이 되어 있었고, 언제나 눈 뜨고 감는 순간까지 허전하고 텅 비었던 가슴은 어느 새 채워져 있었습니다. 처음 언니를 만나 말씀이라는 것을 접할 때부터 제 안에서는 무언가를 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알고 거듭나게 된 순간, 제 마음속에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제 인생의 첫 번째 것은(종교, 학업, 결혼 등)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제는 구원받았으니 이 교제 가운데 있게 해 달라는 것과 앞으로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신 믿는 집안에서 살면서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지만 이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구원받은 형제와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또 그 미신만 믿던 예전의 시어머니와 남편이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지 이 복음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구원받기까지의 제 인생에서 한 치의 오차라도 있었더라면,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성악을 했었더라면,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어 헤어지지 않고 살았더라면 내가 과연 이 복음을 알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 인간적으로 불행한 이 죄인을 구원해 주시려고 그 언니의 마음에서 저를 7년 동안이나(제가 사는 집 아래층으로 이사 오고 저를 다시 찾아오시기까지) 놓지 않게 하셨다고 생각하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마음속에서 찬송이 우러나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가 495장)
종교생활의 시작
저는 평범한 가정의 3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아주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유년 시절엔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했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며 곧잘 한다는 소리도 들으며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음악 실기 시험을 치던 달이면 각 반마다 불려 다니며 본보기로 노래를 불렀고, 전교생이 등교하는 시간에는 다른 친구 두 명과 함께 방송실에서 동요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서 무언가 모를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이나 명절 전날의 흥분과 기대감도 없어졌습니다. 가정 시간에 수예를 배우고, 가사 실습을 하고, 예쁜 편지지나 편지봉투를 모으고, 마음에 있는 친구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격이 조금 차분해졌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외로움과 허전함에 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스스로 찾아가 영세를 받으신 어머니로 인해 저와 남동생 둘이 연이어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 종교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도 이런저런 의문이 많았는데, 그런 의문을 수녀님께 질문하면 어머니 등에 업힌 어린아이가 엄마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는 것처럼 무조건 믿으면 된다고 답하기에 후에는 의문이 있어도 그냥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영세를 받았고, 일요일 미사에 빠지면 그 다음 주에 해야 할 고해성사가 너무 싫어 주일 아침이면 성당부터 다녀왔습니다. 그 후에야 다른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땐 성당부터 다녀오면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의문이 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친구가 성당에서는 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절을 하는지, 왜 똑같은 사람인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는지를 물었을 때는 대답을 확실하게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일 주일 강론 중에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6:19) 하는 말씀 구절을 들며, 옛날의 사도 직분이 지금의 신부가 하는 역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성당은 하나로 통일된 미사 예식을 하는 큰집인데, 자기네들 욕심 때문에 타락한 신부(당시 성당에선 마틴 루터를 이렇게 가르쳤습니다.)가 세운 여러 파로 갈라진 작은 집인 교회가 무얼 안다고?’ 하는 우월성이 제게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였습니다. 철없는 저는 당연히 성악을 하리라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로 알아보니 교수 사사도 받아야 하고, 예술 대학은 특히 돈이 많이 들어 혼자 버시는 아버지 월급으로는 감당하기가 힘들기에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아련한 미련은 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고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해주지 못하는 어머니는 늘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시며, 직장에서 받는 월급으로는 남동생 셋 공부도 못 시키겠다며 다시 대구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
세월이 지나 결혼 적령기가 되어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결혼식 날을 잡는데, 저희는 성당에 다니다 보니 편한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고, 시어머니 되실 분은 두 사람의 생년월일을 넣어 날을 잡아야 한다고 하시며 아가씨가 음력 9월생이면 안 된다고(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날을 잡는 집에서 신부가 음력 9월생이면 신랑이 일찍 죽는다고 했답니다) 하셨답니다. 그런데 제 생일은 음력 9월 18이면서 양력으로는 10월 19일입니다. 신랑은 젊은 사람이라 생일을 따지지 않았고 그 사실은 저와 제 어머니, 신랑 이렇게 세 사람만 알고 시어머니께는 음력 10월 19일이라고 말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한 지 8개월 만에 이사를 했는데 얼마 안 있어 아래층 집으로 충청도에서 다섯 식구가 이사를 왔습니다. 후일 저를 인도한 자매님의 가족이었지요. 그 자매님과 저는 나이 차이도 있었고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언니라 부르기도 하고 중학생인 아들의 과외를 부탁하셔서 몇 달 동안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해 성탄절에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언니를 집 앞에서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언니가 다른 교회나 성당과는 다르게 성탄절과 상관없이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속으로 무척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언니는 제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의치가 않았고 각자의 생활을 하다가 언니 가족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버렸습니다.
저는 세월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그것은 큰 걱정 없이 사는 시댁의 제일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결혼 후 3년 정도 되었을 때 아랫배가 결리는 통증으로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자궁 외 임신 같다고 했고 저는 좌측 나팔관을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세포 검사 결과 자연 임신이 어려운 병으로 나왔고,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 몰래 저를 부르셔서 미신 믿는 곳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면서 무시해 버렸습니다. 나중에 제가 시어머니 말씀대로 하지 않고 아이도 생기지 않으니 남편도 상심이 컸나 봅니다. 급기야 제 생일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을 생각해서 서둘러 저희 둘을 헤어지게 하는 데 일조하셨습니다. 저는 시어머니보다 남편이 더 미웠습니다. 본인도 아이가 있었으면 했나 봅니다. 그렇게 결혼한 지 6년 만에 그동안의 노력도 허사인 채로 불임이 가장 큰 원인이 되어 남편과 헤어지면서 홈패션 가게를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막연한 불안감
작은 규모로 가게를 시작한 지 2년 정도 지났을 즈음 아랫층에 살았던 그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같은 동네에서 친하게 지냈던 다른 친구에게 제 연락처를 물었다 했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가게로 찾아오신 언니는 혼자가 된 제 상황을 이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이제는 아기를 낳아야 되지 않겠냐고 건강식품을 권하기도 하셨습니다. 그 후로도 자주 찾아와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저는 자연스레 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언니는 어느 날 카세트테이프 한 세트를 주며 내용을 잘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일을 하며 들어야 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기는 했지만 무성의하게 들었습니다. 성당에서와는 다르게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한다는 느낌만 받았을 뿐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후로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얼마 후 언니가 찾아와 말씀 테이프를 들은 소감을 물었고 제 어머니와 저를 교회에 데리고 가서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말씀 테이프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저는 둘 다 그 내용에 대해 제대로 감도 잡지 못한 상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해(1993년) 8월에 언니는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할 것을 권하셨고, 저도 여름이면 일이 많이 없던 터라 동행했습니다. 정말 무더운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불평 없이 부채질을 해가며 서로를 반가워하는 여유로운 모습에, 저 역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처럼 무언지 모를 편안함에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후일에 생각한 것이지만 제 성격에 그런 장소에서 그렇게 무더운데도 중간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끝까지 견딘 것이 이상하고 신기했습니다.
저녁 설교를 시작하기 전 성가대 옷을 입은 사람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조금 다른 모양의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역시나 찬양하는 중간에 솔로로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구원받으면 저들과 함께 찬양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첫째, 둘째 날에 들은 말씀에 대해서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는데 셋째 날에 성경과 과학을 접목하여 말씀하시는 박사님을 보며, 공부도 많이 하고 남부러울 게 없을 텐데도 구원받고 하나님을 믿는구나 싶었습니다. 저같이 보잘것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완악한 인간은 어찌해서 이리도 믿어지지 않나 하는 마음에 답답함을 느꼈지요.
다음 날 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 지은 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에 엄마 주머니를 뒤져서 돈 가져갔던 일, 성당 다닐 때 마리아상과 예수의 고상(苦像) 앞에서 절했던 일,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2) 하는 말씀에서처럼 욕했던 일 등 몇 가지가 떠올랐으나 그때 당시는 그런 죄들이 심각한 죄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끝나고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쉽게 오지 않고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똑바로 누워 눈을 뜨면 천정이 아래로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옆에 누운 언니에게 잠이 안 오니 이야기 좀 하자며 말을 걸었습니다. 언니는 내게, 친정 동생에게 인도되어 구원받기까지의 간증을 했고 내일 설교를 잘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저는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전날의 두려움은 좀 가신 것 같았고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설교를 끝까지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교를 다 들은 후에도 무덤덤하기만 한데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구원받았다며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언니의 시누이 되시는 자매님이 제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는데 저는 그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저는 구원받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고 저렇게 기뻐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는 분명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제의 두려움이 되살아났습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상담을 받으라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상담하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가는 중에 성경과 과학에 대하여 말씀하시던 그 박사님이 맞은편에서 걸어오시며 웃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저 외에는 모두 행복해 보이고 혼자만 낙오자인 것 같았습니다.
상담하는 곳에 가서 제 차례가 되어 상담을 받았습니다. 연세 드신 상담자와의 상담으로도 제 마음은 돌이켜지지 못했습니다. 숙소로 그냥 돌아오기가 두려워 다른 상담자와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그분은 조용하게 “어떤 어머니가 아주 불량한 아들 하나를 데리고 행상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그 아들은 어머니가 그날 벌어오는 돈으로 술만 먹으며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이래요. 그날도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언덕을 돌아오는데 자기 집 동네로 보이는 곳에서 불이 난 것을 보았답니다. 동네 가까이 가니 자기 집에 불이 났고 동네 아주머니가 뛰어나오면서 당신 아들이 술에 취해 불을 낸 것 같다고, 아직도 집안에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 불 속을 뛰어 들어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고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무의식중에 “엄마”라고 대답했습니다. 진정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재차 물으셨는데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맞다고 하시며, “이 세상에서는 자식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엄마이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을 보내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죄인인 아담의 피를 이어 받아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정말 아무 죄도 없으신, 깨끗한 피를 가진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죄 있는 피를 속하게 하셨고, 하나님은 그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인간을 보시기 때문에 죄 있는 나의 피는 예수님의 피로 덮여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이야기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상담자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정말 처절한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오니 밤이 깊어 있었습니다. 남들은 모두들 곤히 자고 있는데 두렵고 형언할 수 없는 막막한 심정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날이 밝으니 사람들이 곳곳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나는 철저하게 혼자이고 낙오자이며 외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 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침례식과 성찬식에 참석했는데 혼자 떡을 떼지 못하는 그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요.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끝이라는 마음이 들면서, 무리를 지어 이야기하는 곳을 기웃거리다 이번 기회에 구원받은 듯한 사람이 하는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전날 상담해 주시던 이의 이야기가 그제야 또렷이 생각나면서 알아졌습니다. ‘아, 그랬었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고, 언니에게 점심을 먹으며 구원받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간증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속에 이루어진 것을 이야기하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심되었던 부분(저는 하나님을 왜 꼭 하나님이라고 해야 하는지가 늘 못마땅했던 것 같습니다)을 말씀드리니 차근차근 대답해 주셨습니다. 유일하신 참 신이기에 하나님이고,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달력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과 닭이 알보다 먼저인 것 등등, 들은 이야기들은 모두 제가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들이었습니다.
저는 구원받아야 한다고 하니 눈에 보이는 실체가 제게 확실하게 쥐어져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또 무언가 그런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구원의 복음을 알고 받아들였지만 그 순간 크게 기쁘지 않았던 것은 제 명백한 죄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단지 마음속에 ‘아! 그런 것이구나.’ 하는 마음만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여니 바로 맞은편 벽에 예수님 고상이 보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우상이다 싶어 바로 신문지에 싸서 미련없이 버렸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첫날 저는 흥분된 마음으로 한 가지 할 일을 생각했습니다. 전에 언니가 갖다 주신 테이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들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그렇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말씀들이 다 들리고 믿어졌습니다. 죄 문제를 말씀하셨을 때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 1:28-31) 는 성경 구절로 죄에 대하여 조목조목 말씀하시는데 그 어느 죄도 저를 피해갈 수 없는 항목임을 알게 되면서 “제가 이런 죄인이었네요.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이 생겨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언니는 제게 복음에 대한 말씀이 든 카세트테이프는 가져다 주지 않았지만, 성경탐구모임회장에서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고 예수님을 알고 믿음으로 제 인생의 가치관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제가 육신적으로 가지지 못한 것과 또 그것을 가진 사람도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고통 끝에 구원받고 보니, 그간의 불확실했던 믿음의 주체는 확실함을 기반으로 예수님이 되어 있었고, 언제나 눈 뜨고 감는 순간까지 허전하고 텅 비었던 가슴은 어느 새 채워져 있었습니다. 처음 언니를 만나 말씀이라는 것을 접할 때부터 제 안에서는 무언가를 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알고 거듭나게 된 순간, 제 마음속에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제 인생의 첫 번째 것은(종교, 학업, 결혼 등)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제는 구원받았으니 이 교제 가운데 있게 해 달라는 것과 앞으로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신 믿는 집안에서 살면서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지만 이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구원받은 형제와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또 그 미신만 믿던 예전의 시어머니와 남편이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지 이 복음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구원받기까지의 제 인생에서 한 치의 오차라도 있었더라면,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성악을 했었더라면,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어 헤어지지 않고 살았더라면 내가 과연 이 복음을 알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 인간적으로 불행한 이 죄인을 구원해 주시려고 그 언니의 마음에서 저를 7년 동안이나(제가 사는 집 아래층으로 이사 오고 저를 다시 찾아오시기까지) 놓지 않게 하셨다고 생각하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마음속에서 찬송이 우러나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가 49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