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은 그저 선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어 왔고, 만약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선하게 살면 천국에 가고 악하게 살면 지옥에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기독교만이 옳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늘 강한 반발심을 느꼈고 그러한 주장은 기독교를 오히려 더럽히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인일수록 타종교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종교가 있든 없든 어차피 결론은 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해 자부심도 있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지만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이 죄들이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 죄들을 알고 계실 텐데, 어떤 방법으로 처리하실까? 또 벌을 하신다면 어떻게 하실까 하는 고민이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내게 또 다른 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긴 인류의 역사 중 아주 작은 시점에서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 사는 내 인생이 초라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를 무척 괴롭혔다. 개개인이 추구하는 행복, 자기 삶에의 만족, 그런 것 또한 무슨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행복 따위를 설령 내가 얻었다 한들 -아주 유명한 사람도 남들이 알아줄까 말까 하는데- 아무도 알아줄 리 없으니 그것도 결국 부질없고 어리석게만 생각되었다.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살다 죽는다면 그런 인생을 살아 보았자 무엇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것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다 못해 억울하기까지 했다.
결국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나마 덜 억울하게 살려면 유명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유명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 수 있을까 열심히 고민했다. 그런 야망과 욕심이 점점 커지면서 내 죄에 대한 고민도 부질없는 것 중의 하나로 서서히 묻혀 들어갔다.
내가 십대 초중반을 그렇게 채워지지 않는 온갖 욕구불만으로 보내는 동안 친척 중 하나가 성경을 통해 복음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친척들과 어머니에게도 복음이 전해졌고 그들은 나에게도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말씀 테이프를 보라고 권해 왔다. 말씀 테이프를 보는 동안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많은 정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감당이 안 될 정도였지만, 그동안 자부해 왔던 내 종교관과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 왔던 인생관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몇 차례 집회에 참석했지만 확실함을 얻지는 못했다. 내 죄가 단번에 사해졌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인할 수도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사실을 자꾸 밀어내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 마음이 욕심으로 물들기 전, 한동안 죄에 대해 고민했던 당시의 그 상태에서 말씀을 접했더라면 아마 조금 더 쉽게 그 사실들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조금이나마 순수했던 마음에서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내 마음은 완악하기 짝이 없었고 낮아지는 것에는 아직 근처에도 가지 못했으며 세상에 대한 야망 또한 그렇게 한 순간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상태로 내가 감히 죄사함을 받아들인다면, 구원이 그렇게 뻔뻔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언가 모순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내 상태에 절망감을 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확실한 답을 얻고자 하는 가느다란 희망 또한 버리지 않은 채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 테이프를 다시 한번 보았다. 권 목사님이 이사야 44장 22절 말씀의 내용을 칠판에 그리면서 설명하셨다. 그리고 불과 한 1, 2분 지났을 때 그 말씀이 마음속에서 다시 떠오르면서 하나님이 다 해 놓으셨으니 나에게 돌아오라고 하셨고, 이미 다 해 놓으시고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다 해 놓았다는데 거기에 난 아직 아니라는 이유를 붙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구원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자격을 하나님께서 이미 다 완전히 갖추어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돌아오라고 하신 것이었고, 나는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날이 1992년 8월 5일이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2)
그 후 몇 년이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내가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체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일 뿐이었다. 구원받은 그 순간이 바로 말씀에 내가 전적으로 맡겨진 순간이었고 그것은 다름 아닌 겸손이었다.
구원받고 사는 동안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느낌이다. 구원받기 전에 지고 있던 짐과는 다른,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본분에 대한 책임에서 오는 짐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구원받을 수 있었듯이 이후의 생활도 그 원리와 같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끊임없는 싸움을 해야만 하는 어리석은 내 자신을 항상 보게 된다.
어느 날 야고보서 강해를 듣는 중에 이런 말씀을 들었다. 우리가 살아 있고 숨 쉬고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이냐는 것이다. 살아 있기에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이라고 했다. 사는 것이 수고스럽고 고통스럽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진대 살아 있는 자체를 행복이라고 표현하다니. 다른 영혼들에 대한 책임을 나처럼 무거운 짐으로 여길 수 있는가 하면 특권으로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이 실로 큰 충격이었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러고 보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말이다. 그 말씀을 들은 이후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것 또한 아직까지 멀고 먼 길로 느껴진다. 멀지만 끊임없이 가야할 것이다.
나는 사람은 그저 선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어 왔고, 만약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선하게 살면 천국에 가고 악하게 살면 지옥에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기독교만이 옳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늘 강한 반발심을 느꼈고 그러한 주장은 기독교를 오히려 더럽히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인일수록 타종교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종교가 있든 없든 어차피 결론은 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해 자부심도 있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지만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이 죄들이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 죄들을 알고 계실 텐데, 어떤 방법으로 처리하실까? 또 벌을 하신다면 어떻게 하실까 하는 고민이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내게 또 다른 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긴 인류의 역사 중 아주 작은 시점에서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 사는 내 인생이 초라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를 무척 괴롭혔다. 개개인이 추구하는 행복, 자기 삶에의 만족, 그런 것 또한 무슨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행복 따위를 설령 내가 얻었다 한들 -아주 유명한 사람도 남들이 알아줄까 말까 하는데- 아무도 알아줄 리 없으니 그것도 결국 부질없고 어리석게만 생각되었다.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살다 죽는다면 그런 인생을 살아 보았자 무엇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것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다 못해 억울하기까지 했다.
결국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나마 덜 억울하게 살려면 유명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유명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 수 있을까 열심히 고민했다. 그런 야망과 욕심이 점점 커지면서 내 죄에 대한 고민도 부질없는 것 중의 하나로 서서히 묻혀 들어갔다.
내가 십대 초중반을 그렇게 채워지지 않는 온갖 욕구불만으로 보내는 동안 친척 중 하나가 성경을 통해 복음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친척들과 어머니에게도 복음이 전해졌고 그들은 나에게도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말씀 테이프를 보라고 권해 왔다. 말씀 테이프를 보는 동안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많은 정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감당이 안 될 정도였지만, 그동안 자부해 왔던 내 종교관과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 왔던 인생관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몇 차례 집회에 참석했지만 확실함을 얻지는 못했다. 내 죄가 단번에 사해졌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인할 수도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사실을 자꾸 밀어내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 마음이 욕심으로 물들기 전, 한동안 죄에 대해 고민했던 당시의 그 상태에서 말씀을 접했더라면 아마 조금 더 쉽게 그 사실들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조금이나마 순수했던 마음에서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내 마음은 완악하기 짝이 없었고 낮아지는 것에는 아직 근처에도 가지 못했으며 세상에 대한 야망 또한 그렇게 한 순간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상태로 내가 감히 죄사함을 받아들인다면, 구원이 그렇게 뻔뻔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언가 모순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내 상태에 절망감을 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확실한 답을 얻고자 하는 가느다란 희망 또한 버리지 않은 채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 테이프를 다시 한번 보았다. 권 목사님이 이사야 44장 22절 말씀의 내용을 칠판에 그리면서 설명하셨다. 그리고 불과 한 1, 2분 지났을 때 그 말씀이 마음속에서 다시 떠오르면서 하나님이 다 해 놓으셨으니 나에게 돌아오라고 하셨고, 이미 다 해 놓으시고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다 해 놓았다는데 거기에 난 아직 아니라는 이유를 붙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구원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자격을 하나님께서 이미 다 완전히 갖추어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돌아오라고 하신 것이었고, 나는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날이 1992년 8월 5일이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2)
그 후 몇 년이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내가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체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일 뿐이었다. 구원받은 그 순간이 바로 말씀에 내가 전적으로 맡겨진 순간이었고 그것은 다름 아닌 겸손이었다.
구원받고 사는 동안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느낌이다. 구원받기 전에 지고 있던 짐과는 다른,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본분에 대한 책임에서 오는 짐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구원받을 수 있었듯이 이후의 생활도 그 원리와 같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끊임없는 싸움을 해야만 하는 어리석은 내 자신을 항상 보게 된다.
어느 날 야고보서 강해를 듣는 중에 이런 말씀을 들었다. 우리가 살아 있고 숨 쉬고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이냐는 것이다. 살아 있기에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이라고 했다. 사는 것이 수고스럽고 고통스럽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진대 살아 있는 자체를 행복이라고 표현하다니. 다른 영혼들에 대한 책임을 나처럼 무거운 짐으로 여길 수 있는가 하면 특권으로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이 실로 큰 충격이었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러고 보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말이다. 그 말씀을 들은 이후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것 또한 아직까지 멀고 먼 길로 느껴진다. 멀지만 끊임없이 가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