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공부하며 싹튼 기독교에 대한 의문들
저는 소위 모태교인으로 1973년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존재나 성경이 사실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신과를 전공하면서부터 기독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점들이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기독교에 대한 회의가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신’이라고 하는 것은 불안, 공포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책으로 ‘절대자’의 존재 설정이 필요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심리학의 이론은 아무 거부감 없이 인정하면서도, 다른 모든 종교들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지만 기독교는 예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신과를 더 깊이 공부할수록, 또 교회들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순된 행태들을 볼수록 기독교도 그러한 종교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서서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시골 할머니가 새벽마다 찬물을 떠 놓고 뒷마당에서 자식을 위해 두 손 부비며 비는 것은 ‘미신’이라 하여 경멸의 대상이 되고, 도시 할머니가 새벽마다 교회에서 자식을 위해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것은 ‘참 종교’라 하여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빌고 있는 모습이나 그들의 교육 정도 등의 외형적인 차이만 있을 뿐 심리 상태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세상 모든 다른 면에서와 마찬가지로 힘이 강한 쪽은 진리로 군림하고 약한 쪽은 밀리는, 힘의 원리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 크게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체면이나 창피를 초월한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믿는다는 것을 강조하면 할수록 사실은 마음에서는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통에 잃어버린 다섯 살짜리 아들을 십 년 만에 그 어머니가 찾아내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자신을 만날 때마다 ‘어머니, 당신이 내 어머니인 것을 믿습니다, 확실히 믿습니다.’ 라며 믿는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면 심리학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무식한 시골 여인이라 할지라도 ‘아, 이 애가 나를 어머니로 믿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간단한 현상을 기독교계에서는 모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통성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연히 눈을 뜨고 교인들이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열심히 기도하며 인상 찌푸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할까 에서부터 시작하여 있다면 어디에 있으며 또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저 사람들이 다 각기 자기 상상으로 만든 모습을 머리에 떠올리며 그를 찾으려고 안간힘 쓰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초등 교육도 받지 못한 시골 할머니가 눈을 감으며 떠올리는 하나님과 물리학 박사가 상상하고 있는 하나님이 과연 같은 대상일까? 재벌 집 아들이 부르는 하나님과 평생을 고생하며 자란 고아원 출신이 부르는 하나님, 경건한 천주교인이 상상하는 하나님과 성령 받았다며 양팔 들고 발광하는 다른 교파에서 부르짖는 하나님이 과연 같은 대상일까? 아무리 분석해도 ‘하나님’ 이라는 단어만 같을 뿐 분명 다른 대상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그렇다면 내가 부르는 그 대상은 참 하나님일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깊이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아 다른 종교보다는 덜 미신적이고 더 현대적이라는 차이일 뿐 기독교도 그러한 종교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기독교’와 ‘성경’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기독교계의 불합리를 보는 대신 성경으로 돌아갔었더라면 갈등의 기간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전에도 성경에 맞지 않는 기독교계의 불합리한 것들을 늘 인식하고는 있었습니다.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되어 있는데 매주 주보에 헌금자의 명단과 액수를 발표하는 문제나, 금식이나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하고 길게 말을 늘어놓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를 권장하는 문제 등 성경과 다른 정도가 아닌 오히려 정반대 되는 것들이 정상인 것으로 인정받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항상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 때문에 불만을 감히 밖으로 표출하지는 못하고 억눌러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하나님의 존재 유무를 확인할 길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그때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사로는 여의도 S교회의 C목사였습니다. 성령 받는다느니 병 고친다느니 하는 강의 스타일은 제가 싫어했기 때문에 관심도 두지 않고 있었는데, 성가대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스치는 생각이 만약 그것이 진짜 성령에 의한 역사라면 나와 맞지 않는다 하여 거절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또 확실한 근거 제시도 못하면서 단순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거절하며 버티는 것은 신사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참석을 피할 수 없을 바에야 이번 기회에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확실히 찾아야겠다는 작정을 하고는 그날부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정말로 존재합니까? 만약 존재한다면 이번 기회에 저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하는 난생 처음 하는 간절한 절규였습니다.
제가 증거로 요청한 것은 방언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평소 소원하던 것이 이루어지면 심리적 현상으로 해석되겠지만 평소 경멸했던 것이 내게 이루어진다면 심리적 현상이 아닌 진짜 하나님의 능력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쪽에서 권하는 대로 며칠간 금식한 다음 몇 가정이 모여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통성기도를 시키는데 저는 처음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옆 사람들이 들을까 봐 입속에서만 어물어물 하였는데 돌아가면서 등을 두드리며 더 크게 하라고 다그쳤습니다. 옆 사람의 소리와 비교해 가면서 조심스럽게 소리를 점점 높여가는데, 교만과 자존심의 마귀에 붙잡혀 아직도 체면을 보느라고 소리를 더 높이지 않는다고 제게 야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체면의 마귀는 나가라고 소리 지르며 등을 두드려대며 더 큰 소리로 기도하라 다그치는 목사님 앞에 이왕 이렇게 된 것 체면의 탈을 벗기로 작정하고는 시키는 대로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더 크게, 더 빠르게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갈망하고 있던 소위 미국 일류 대학의 수학교수 박사 부부, 물리학교수 박사 부부, 정신과 의사 부부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고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면서 방언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장면의 사진은 여의도 S교회에서 1970년대에 발행한 책에 선전용으로 나와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기쁨과 그동안 하나님을 의심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뒤범벅되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이후 하루하루의 생활은 기쁨과 감사로 공중에 붕 뜬, 문자 그대로의 황홀경이었습니다. 이젠 창피함도 없이 성령 받은 것에 대해서 자신 있게 간증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몇 달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진짜 방언이었을까 하는 실낱 같은 의심이 가끔씩 떠올랐습니다. 이제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노라고 하나님께 맹세까지 하였는데 계속 침공해 들어오는 의심의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또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여섯 달 쯤 지난 어느 날 정신과 강의를 듣는 중 ‘glossolalia(방언)’, ‘psittacism(의미없는 말을 반복함)’ 이라는 항목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간절히 어느 것에 몰두하여 심취된 무아지경(ecstasy)이 되었을 때 자신이 억제할 수 없는 방언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6개월 전의 상태를 대입해 보니 그 당시 무엇인가 찾고자 간절했던 갈망과 며칠간의 금식, 또 집단 최면 상태 등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교과서에 기록된 대로 꼭 들어맞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후 몇 달이 지난 후에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도 받지 못했던 상태에서 방언도 하고 행복한 황홀경에 도취된 감사의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는 마귀의 마취 주사에 취해 있었음을 아슬아슬하게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9-1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하는 것들이 내게 해당되는 말씀들이었다는 것을 후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거듭나셨습니까?
1976년 의과대학 동창회를 후배인 정후배의 집에서 가졌는데 그의 부인이 밑도 끝도 없이 “김 선생님, 거듭 나셨습니까?” 하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도 괘씸한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보니 그 자매는 기독교인인 것 같기는 한데 주일도 별로 잘 지키지 않고 자기 남편도 교회에 인도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나같이 ‘신앙이 좋은’ 사람에게 감히 그런 건방진 질문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입시 발표장에서 ‘당신 아들 합격했습니까’ 하는 질문에 화를 버럭 낸다면 그의 아들은 합격하지 못한 것이라는 심리반응을 적용해 보면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 반응으로 판단할 때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은 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올 때 후배의 부인이 조그마한 책자 하나를 주었는데 집에 돌아와 읽어 보니 존 웨슬리가 거듭난 것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 있는 거듭나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을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런 단순한 것 말고 ‘더 잘 믿어야만’ 되는구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이해하고 넘어갔었습니다.
몇 달 후 1977년 여름쯤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후배 부인으로부터 성경을 많이 아는 젊은 청년이 있는데 설교를 한번 시켜 보지 않겠느냐는 부탁이 왔습니다. 그 당시 A교회는 목사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주일날만 되면 설교자를 구하는 것이 큰 골칫거리였던 터라 잘 되었다 싶어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어느 교파 출신의 목사를 강단에 세우느냐 하는 문제가 상당히 예민하던 터라 그분이 어느 신학교를 나왔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신학교는 나오지 않았다고 하기에 그렇다면 강단에 세우기는 곤란하다고 거절을 하면서 너무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어 대신 고등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설교를 시켜놓고는 어떠한 교리를 가르치는지 감시할 필요성을 느껴 슬그머니 교실로 들어가 들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데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선민에게만 특혜를 주시는 것에 대해 은근한 불만이 있어 왔는데 그가 말하는 유대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민의 의미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이방인으로 태어난 것이 오히려 감사할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사로 식사를 대접하면서 대화를 나누어 보니 나의 고등학교 후배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가까이 대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고완석 씨였습니다. 권신찬 목사님의 설교를 책자화한 ‘불안에서 평안으로’ 라는 책을 나에게 주고 돌아갔는데 다음날 단숨에 다 읽고는 참 좋았다는 만족감과 함께 ‘그러면 그렇지, 이런 것이 있었구나.’ 하는 작은 흥분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기독교’라는 종교가 잘못된 것이지 ‘성경’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과 성경은 심리학과 배치됨이 전연 없을 뿐 아니라 그동안 나의 마음속에 억눌러 왔던 비판적 마음은 성경적으로 볼 때 정당한 비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성경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더니 얼마 후 성경을 많이 아는 분이라고 하면서 정 박사를 저희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을 저 한 사람만을 놓고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옆에서 덤으로 듣고 있던 집사람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죄사함을 교리적으로만 믿고 있었던 것이지 실제로 죄사함을 받은 사실은 없다는 것과, 따라서 평생 기독교인이었지만 지금 죽는다면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만을 확인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착한 사람,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기 때문에 성경 공부를 하는 동안 죄 문제에 이르렀을 때에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자에게만 필요하듯이 예수님은 죄인에게만 필요하다는 논리를 적용했을 때, 만약 내가 죄인이 아니라면 예수는 내게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나의 과거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내가 죄인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할 만한 기억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죄가 해결된 경험을 가진 적은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평생 동안을 내게 필요도 없는 예수를 붙잡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느껴보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교만과 위선적인 요소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 때문에 지옥에 가게 되리라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것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죄가 있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나는 정반대로 죄가 없기 때문에 죄인임을 깨닫게 해달라고 마지막에는 너무 답답하여 엉엉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 4:12-13) 는 말씀을 듣고는 공중목욕탕 탈의실의 큰 거울 앞에 벌거벗고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였습니다. 순간 옷을 완전히 벗은 나체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완전한 위선자인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조목조목 나열된 그 어떤 죄들보다도 스스로 죄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과 위선이 진짜 가장 큰 죄임이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죄인인 것은 알았지만 그 해결법에 있어서도 이론과 사실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에 또다시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을 해주셨다고 했는데 나도 그 정도의 믿음은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고민은 머나먼 이스라엘 땅에 2000년 전에 지나가 버린 주님을 어떻게 만지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믿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질 않아 나중에는 너무 답답하여 이층 방에 혼자 들어가 큰 소리로 또다시 울어버렸습니다. 정 박사께서 내일 떠나 버리면 이제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조급함 때문이었습니다.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며 지금 주님이 저 앞을 지나간다면 당장 뛰어나가 만지겠는데 2000년의 시간과 공간의 간격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온통 차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으면 큰일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외출도 삼가고 집에만 있으면서 마지막 약속 시간인 내일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초조한 마음으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 보니 정 박사님은 이미 정후배와 상담 중이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순간 이제 다 틀렸구나, 크게 낙담하여 소파에 푹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이제 체면이나 자존심은 그 기능을 잃어 옆에 있던 후배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울면서 간청을 했습니다.
유치원 학생이 되어 성경을 읽으라는 말대로 요한복음 1장 1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를 읽어나가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면서, ‘아니, 이렇게 가까이 계셨는데.... 내 손에 들고 있었으면서.... 이렇게 쉽게?’ 안도와 허탈함이 섞인 긴 한숨이 나오면서 푹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이론으로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줄줄이 연결되며 모든 것들이 풀어졌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쁘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1977년 9월 17일 오전 11시 30분,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의 일인데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찬송가 가사를 쓰고 있으려니 그때의 눈물이 그 때와 똑같이 다시 눈앞을 흐리게 합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싹튼 기독교에 대한 의문들
저는 소위 모태교인으로 1973년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존재나 성경이 사실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신과를 전공하면서부터 기독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점들이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기독교에 대한 회의가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신’이라고 하는 것은 불안, 공포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책으로 ‘절대자’의 존재 설정이 필요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심리학의 이론은 아무 거부감 없이 인정하면서도, 다른 모든 종교들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지만 기독교는 예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신과를 더 깊이 공부할수록, 또 교회들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순된 행태들을 볼수록 기독교도 그러한 종교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서서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시골 할머니가 새벽마다 찬물을 떠 놓고 뒷마당에서 자식을 위해 두 손 부비며 비는 것은 ‘미신’이라 하여 경멸의 대상이 되고, 도시 할머니가 새벽마다 교회에서 자식을 위해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것은 ‘참 종교’라 하여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빌고 있는 모습이나 그들의 교육 정도 등의 외형적인 차이만 있을 뿐 심리 상태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세상 모든 다른 면에서와 마찬가지로 힘이 강한 쪽은 진리로 군림하고 약한 쪽은 밀리는, 힘의 원리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 크게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체면이나 창피를 초월한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믿는다는 것을 강조하면 할수록 사실은 마음에서는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통에 잃어버린 다섯 살짜리 아들을 십 년 만에 그 어머니가 찾아내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자신을 만날 때마다 ‘어머니, 당신이 내 어머니인 것을 믿습니다, 확실히 믿습니다.’ 라며 믿는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면 심리학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무식한 시골 여인이라 할지라도 ‘아, 이 애가 나를 어머니로 믿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간단한 현상을 기독교계에서는 모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통성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연히 눈을 뜨고 교인들이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열심히 기도하며 인상 찌푸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할까 에서부터 시작하여 있다면 어디에 있으며 또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저 사람들이 다 각기 자기 상상으로 만든 모습을 머리에 떠올리며 그를 찾으려고 안간힘 쓰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초등 교육도 받지 못한 시골 할머니가 눈을 감으며 떠올리는 하나님과 물리학 박사가 상상하고 있는 하나님이 과연 같은 대상일까? 재벌 집 아들이 부르는 하나님과 평생을 고생하며 자란 고아원 출신이 부르는 하나님, 경건한 천주교인이 상상하는 하나님과 성령 받았다며 양팔 들고 발광하는 다른 교파에서 부르짖는 하나님이 과연 같은 대상일까? 아무리 분석해도 ‘하나님’ 이라는 단어만 같을 뿐 분명 다른 대상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그렇다면 내가 부르는 그 대상은 참 하나님일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깊이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아 다른 종교보다는 덜 미신적이고 더 현대적이라는 차이일 뿐 기독교도 그러한 종교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기독교’와 ‘성경’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기독교계의 불합리를 보는 대신 성경으로 돌아갔었더라면 갈등의 기간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전에도 성경에 맞지 않는 기독교계의 불합리한 것들을 늘 인식하고는 있었습니다.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되어 있는데 매주 주보에 헌금자의 명단과 액수를 발표하는 문제나, 금식이나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하고 길게 말을 늘어놓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를 권장하는 문제 등 성경과 다른 정도가 아닌 오히려 정반대 되는 것들이 정상인 것으로 인정받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항상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 때문에 불만을 감히 밖으로 표출하지는 못하고 억눌러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하나님의 존재 유무를 확인할 길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그때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사로는 여의도 S교회의 C목사였습니다. 성령 받는다느니 병 고친다느니 하는 강의 스타일은 제가 싫어했기 때문에 관심도 두지 않고 있었는데, 성가대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스치는 생각이 만약 그것이 진짜 성령에 의한 역사라면 나와 맞지 않는다 하여 거절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또 확실한 근거 제시도 못하면서 단순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거절하며 버티는 것은 신사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참석을 피할 수 없을 바에야 이번 기회에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확실히 찾아야겠다는 작정을 하고는 그날부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정말로 존재합니까? 만약 존재한다면 이번 기회에 저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하는 난생 처음 하는 간절한 절규였습니다.
제가 증거로 요청한 것은 방언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평소 소원하던 것이 이루어지면 심리적 현상으로 해석되겠지만 평소 경멸했던 것이 내게 이루어진다면 심리적 현상이 아닌 진짜 하나님의 능력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쪽에서 권하는 대로 며칠간 금식한 다음 몇 가정이 모여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통성기도를 시키는데 저는 처음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옆 사람들이 들을까 봐 입속에서만 어물어물 하였는데 돌아가면서 등을 두드리며 더 크게 하라고 다그쳤습니다. 옆 사람의 소리와 비교해 가면서 조심스럽게 소리를 점점 높여가는데, 교만과 자존심의 마귀에 붙잡혀 아직도 체면을 보느라고 소리를 더 높이지 않는다고 제게 야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체면의 마귀는 나가라고 소리 지르며 등을 두드려대며 더 큰 소리로 기도하라 다그치는 목사님 앞에 이왕 이렇게 된 것 체면의 탈을 벗기로 작정하고는 시키는 대로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더 크게, 더 빠르게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갈망하고 있던 소위 미국 일류 대학의 수학교수 박사 부부, 물리학교수 박사 부부, 정신과 의사 부부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고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면서 방언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장면의 사진은 여의도 S교회에서 1970년대에 발행한 책에 선전용으로 나와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기쁨과 그동안 하나님을 의심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뒤범벅되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이후 하루하루의 생활은 기쁨과 감사로 공중에 붕 뜬, 문자 그대로의 황홀경이었습니다. 이젠 창피함도 없이 성령 받은 것에 대해서 자신 있게 간증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몇 달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진짜 방언이었을까 하는 실낱 같은 의심이 가끔씩 떠올랐습니다. 이제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노라고 하나님께 맹세까지 하였는데 계속 침공해 들어오는 의심의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또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여섯 달 쯤 지난 어느 날 정신과 강의를 듣는 중 ‘glossolalia(방언)’, ‘psittacism(의미없는 말을 반복함)’ 이라는 항목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간절히 어느 것에 몰두하여 심취된 무아지경(ecstasy)이 되었을 때 자신이 억제할 수 없는 방언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6개월 전의 상태를 대입해 보니 그 당시 무엇인가 찾고자 간절했던 갈망과 며칠간의 금식, 또 집단 최면 상태 등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교과서에 기록된 대로 꼭 들어맞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후 몇 달이 지난 후에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도 받지 못했던 상태에서 방언도 하고 행복한 황홀경에 도취된 감사의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는 마귀의 마취 주사에 취해 있었음을 아슬아슬하게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9-1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하는 것들이 내게 해당되는 말씀들이었다는 것을 후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거듭나셨습니까?
1976년 의과대학 동창회를 후배인 정후배의 집에서 가졌는데 그의 부인이 밑도 끝도 없이 “김 선생님, 거듭 나셨습니까?” 하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도 괘씸한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보니 그 자매는 기독교인인 것 같기는 한데 주일도 별로 잘 지키지 않고 자기 남편도 교회에 인도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나같이 ‘신앙이 좋은’ 사람에게 감히 그런 건방진 질문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입시 발표장에서 ‘당신 아들 합격했습니까’ 하는 질문에 화를 버럭 낸다면 그의 아들은 합격하지 못한 것이라는 심리반응을 적용해 보면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 반응으로 판단할 때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은 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올 때 후배의 부인이 조그마한 책자 하나를 주었는데 집에 돌아와 읽어 보니 존 웨슬리가 거듭난 것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 있는 거듭나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을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런 단순한 것 말고 ‘더 잘 믿어야만’ 되는구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이해하고 넘어갔었습니다.
몇 달 후 1977년 여름쯤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후배 부인으로부터 성경을 많이 아는 젊은 청년이 있는데 설교를 한번 시켜 보지 않겠느냐는 부탁이 왔습니다. 그 당시 A교회는 목사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주일날만 되면 설교자를 구하는 것이 큰 골칫거리였던 터라 잘 되었다 싶어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어느 교파 출신의 목사를 강단에 세우느냐 하는 문제가 상당히 예민하던 터라 그분이 어느 신학교를 나왔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신학교는 나오지 않았다고 하기에 그렇다면 강단에 세우기는 곤란하다고 거절을 하면서 너무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어 대신 고등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설교를 시켜놓고는 어떠한 교리를 가르치는지 감시할 필요성을 느껴 슬그머니 교실로 들어가 들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데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선민에게만 특혜를 주시는 것에 대해 은근한 불만이 있어 왔는데 그가 말하는 유대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민의 의미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이방인으로 태어난 것이 오히려 감사할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사로 식사를 대접하면서 대화를 나누어 보니 나의 고등학교 후배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가까이 대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고완석 씨였습니다. 권신찬 목사님의 설교를 책자화한 ‘불안에서 평안으로’ 라는 책을 나에게 주고 돌아갔는데 다음날 단숨에 다 읽고는 참 좋았다는 만족감과 함께 ‘그러면 그렇지, 이런 것이 있었구나.’ 하는 작은 흥분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기독교’라는 종교가 잘못된 것이지 ‘성경’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과 성경은 심리학과 배치됨이 전연 없을 뿐 아니라 그동안 나의 마음속에 억눌러 왔던 비판적 마음은 성경적으로 볼 때 정당한 비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성경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더니 얼마 후 성경을 많이 아는 분이라고 하면서 정 박사를 저희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을 저 한 사람만을 놓고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옆에서 덤으로 듣고 있던 집사람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죄사함을 교리적으로만 믿고 있었던 것이지 실제로 죄사함을 받은 사실은 없다는 것과, 따라서 평생 기독교인이었지만 지금 죽는다면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만을 확인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착한 사람,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기 때문에 성경 공부를 하는 동안 죄 문제에 이르렀을 때에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자에게만 필요하듯이 예수님은 죄인에게만 필요하다는 논리를 적용했을 때, 만약 내가 죄인이 아니라면 예수는 내게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나의 과거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내가 죄인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할 만한 기억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죄가 해결된 경험을 가진 적은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평생 동안을 내게 필요도 없는 예수를 붙잡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느껴보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교만과 위선적인 요소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 때문에 지옥에 가게 되리라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것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죄가 있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나는 정반대로 죄가 없기 때문에 죄인임을 깨닫게 해달라고 마지막에는 너무 답답하여 엉엉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 4:12-13) 는 말씀을 듣고는 공중목욕탕 탈의실의 큰 거울 앞에 벌거벗고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였습니다. 순간 옷을 완전히 벗은 나체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완전한 위선자인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조목조목 나열된 그 어떤 죄들보다도 스스로 죄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과 위선이 진짜 가장 큰 죄임이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죄인인 것은 알았지만 그 해결법에 있어서도 이론과 사실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에 또다시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을 해주셨다고 했는데 나도 그 정도의 믿음은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고민은 머나먼 이스라엘 땅에 2000년 전에 지나가 버린 주님을 어떻게 만지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믿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질 않아 나중에는 너무 답답하여 이층 방에 혼자 들어가 큰 소리로 또다시 울어버렸습니다. 정 박사께서 내일 떠나 버리면 이제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조급함 때문이었습니다.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며 지금 주님이 저 앞을 지나간다면 당장 뛰어나가 만지겠는데 2000년의 시간과 공간의 간격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온통 차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으면 큰일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외출도 삼가고 집에만 있으면서 마지막 약속 시간인 내일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초조한 마음으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 보니 정 박사님은 이미 정후배와 상담 중이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순간 이제 다 틀렸구나, 크게 낙담하여 소파에 푹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이제 체면이나 자존심은 그 기능을 잃어 옆에 있던 후배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울면서 간청을 했습니다.
유치원 학생이 되어 성경을 읽으라는 말대로 요한복음 1장 1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를 읽어나가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면서, ‘아니, 이렇게 가까이 계셨는데.... 내 손에 들고 있었으면서.... 이렇게 쉽게?’ 안도와 허탈함이 섞인 긴 한숨이 나오면서 푹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이론으로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줄줄이 연결되며 모든 것들이 풀어졌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쁘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1977년 9월 17일 오전 11시 30분,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의 일인데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찬송가 가사를 쓰고 있으려니 그때의 눈물이 그 때와 똑같이 다시 눈앞을 흐리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