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내 나이 벌써 56, 적게 산 나이는 아닌 것 같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갔나 싶은데 나의 진짜 생일이 지난 지도 35년이나 되었다. 큰 변화 없이 살아온 것 같지만 1975년을 기점으로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순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
어릴 적 우리 집은 대가족으로, 이층집과 단층집 세 채가 모여 있는 큰 집에서 삼대가 모여 살았는데 그중 내가 가장 어렸다. 매일 북적대는 집에서 심부름도 하고 어른들이 시키면 춤도 추곤 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섯 살이던 해 어느 날, 엄마가 짐을 싣고 집을 떠나셨다. 엄마가 떠나던 당시에는 그렇게 슬프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일고여덟 살이 되면서 엄마가 무척 보고 싶어졌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나를 엄마가 살고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와 단 둘이 살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대가족으로부터 분리되었지만,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아주 즐겁고 재미있었다.
내가 있던 부산 온천장은 도시이긴 하지만 산과 들과 개천이 있어 자연과 도시가 조화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학교 생활을 하면서 추억을 만들며 나는 야무진 아이로 커갔다. 그러나 다른 가족을 보고 싶어 하는 나를 보면서 엄마는 혈육의 정은 끊지 못 하는 것이라며 방학 때면 아버지에게로 보내셨고 가끔은 언니들이 나를 보러 오기도 했다.
엄마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나를 키우려고 하셨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는 엄마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친할머니에게로 가서 살다가 6학년이 되면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당시 아버지는 다른 분과 결혼하여 살고 계셨다. 나는 왜 이렇게 두 집을 왔다갔다 하며 생활해야 하는지 궁금했는데, 자라면서 여러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장남인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결혼하여 딸 둘과 아들을 낳고 다복하게 사셨단다. 어느 날 차 사고로 아내를 잃고, 자식을 셋 둔 남자가 혼자 살 수는 없어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다. 재혼하신 상대가 내 어머니셨다. 어머니는 9남매 중 셋째 딸로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재처로 시집을 가야 명이 길다 하여 아버지와 결혼을 하신 것이었다. 결혼 후 어머니는 나를 낳으셨지만, 사별을 겪고 아이가 셋이나 되는 남편의 아내로 그 복잡한 집에서 사는 것을 힘들어 하시다가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결국 이혼하셨다. 1950년대 말에는 이혼이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잠시 절에 들어가 지내시다가 미용 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하셨다.
어린 자식을 셋이나 남기고 돌아가신 분의 한은 얼마나 크겠으며, 남겨진 사람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뒤에 엮어진 내 어머니와 나 또한 그러한 운명의 바퀴에 치어 그리 편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되었다.
철이 들면서 나는 내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이혼녀의 딸, 여러 번 결혼하신 아버지. 그 사실에 열등감을 가지지는 않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은 마음의 짐이 되었다. 또 서른 살의 엄마가 혼자 외롭게 사는 것이 나 때문인 것 같았고 여자로서의 엄마의 삶을 내가 보상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두 사람 몫의 삶을, 그것도 성공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가 보기에도 딸 하나는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게 해야 했으므로 착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하지 않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함께 살면서도 칭찬을 받았고 나 같은 아이는 열 명도 키우겠다는 소리도 들었다. 성공하려면 장관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능력이 특출하지 못하니 농대에 들어간 후 농림부 장관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서울대 농대를 겨냥하여 공부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의사셨던 작은 아버지와 작은 형부가 내게 의사가 될 것을 권하셨는데 장관보다 의사 되는 것이 쉬워 보여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게 되었다.
성경은 사실이다
대학에 입학하여 서울에서 하숙을 하던 중 언제나 엄마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이모가 나를 돌봐주시게 되었다. 이모는 불교를 믿다가 기독교를 믿게 되었는데,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곳을 찾다가 권신찬 목사님을 만나셨다. 설교를 들은 후 이곳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참다운 교회라고 생각하시고는 그날부터 열심히 교회에 다니셨단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정열적인 이모는 그때부터 권 목사님을 초청하여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성경 공부를 하셨다.
이모집에서 지내던 나는 체면상 그 성경 공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엄마를 따라 절에는 가 보았지만 주변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교회는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였다. 이모와 살면서, 예전에 이모가 다니던 교회에 한번 같이 가본 것이 전부이다. 그때 성경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니 한번 보는 것도 손해는 아니겠다 싶어 뒤적였는데 신약 성경 첫 페이지부터 ‘낳고 낳고’ 하는 내용이 어찌나 복잡한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어서 덮어 버렸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귀로 듣기만 했다. 그런데 권 목사님은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대 명제를 두고 차근차근 말씀을 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마음이 이끌려 갔고 관심이 생기며 다음 모임이 기다려졌다. 성경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점점 의문도 생겼다. 그냥 들으면 안 되겠구나 싶어 성경을 찾아 가면서 들었다.
권 목사님은, 하나님은 역사를 움직이는 실존하시는 분이라 하셨고 그 증거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해 주셨다. 유대 민족은 약 2천 년이나 나라 없이 전 세계로 흩어졌고, 히틀러의 핍박 등 갖은 고난을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나라를 세웠다는 것, 그리고 그 민족은 세계 곳곳에서 중요한 자리에 앉아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셨다. 이 모든 것들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사실이며,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셨다.
설교를 들으면서 점점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이 믿어졌고, 이 세상은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진화된 것이 아니라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중학교 생물 시간에 들었던 의문이 풀렸다. 학생 때 다윈의 진화론을 배우며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되었고 원숭이는 더 하등동물에서, 그렇게 최초의 원충류에서 점점 진화하여 사람까지 온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아무리 실험하고 연구해 보아도 무생물에서 생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것도 함께 배웠다. 그때 느낀 의문은, 진화되어 사람이 된 것이라면 왜 지금의 사람은 더 이상 진화하지 않는지, 그리고 나머지 개체들도 계속 진화되어야 할 것인데 지금의 각 개체는 개체대로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였다.
가장 의문스러웠던 것은 과연 최초의 생명체는 무엇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문에 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설명을 들으니 하나님을 아직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창조하신 것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 없으니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마음으로 믿어지지는 않았다.
어느 날 성경 공부를 할 때이다. 권 목사님이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 9:26-27) 는 말씀을 읽으며 설명하시는데, 실제 인류의 역사는 3천 여 년 전에 쓰인 성경 말씀대로, 복음은 셈 족속인 유대인을 통하여 왔지만 정작 구원은 로마를 통하여 야벳 족속에게서 번창하였고 가나안 족속인 흑인은 종의 삶을 살았다는 명백한 역사 앞에, 내가 이것을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진행해 오셨고 앞으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해가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볼 수는 없지만 역사를 통하여 존재하고 계신다는 것이 확실하게 믿어졌다.
성경 공부를 하는 중에 혼자 성경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성경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우연히 전도서를 읽게 되었는데, 깜짝 놀랐다. 인생의 온갖 모습, 그 비참함에 대하여 정확하고도 자세히 적혀 있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도서 1:2-3)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전도서 5:15)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 12:1)
이때가 1974년, 대학교 2학년이던 시절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생각할 겨를이 없다가 대학생이 되어 무언가 있는가 싶어 여기저기 다니며 미팅도 하고 연극, 음악회 등에 열심을 내며 다녀도 보았고 인생이 무엇인가 하여 철학책도 뒤적여 보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답을 얻지 못한 마음은 허무하고 허전한 상태였다. 또 대학생이 되어 보니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있어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던 참이었다. 그런 중에 전도서를 보니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었다. ‘성경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고 사실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은 나에게 죄인이라고 말하는데, 나 자신은 내가 왜 죄인인지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특별히 죄를 지은 적도 없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고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데, 어떻게 내가 죄인일 수 있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아담이 범죄한 후 그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니 나 또한 죄인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죄인이 아닌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데, 정말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중학교 때의 일이 떠올랐다.
어느 날 목욕탕을 갔는데 한 젊은 엄마가 나에게 이유 없이 못되게 굴었다. 나는 화가 나서 그 젊은 엄마의 아이가 내 등 뒤를 지나갈 때 등으로 지긋이 밀었다가 얼른 등을 떼었다. 이제 겨우 아장아장 걷던 힘없는 아이는 그대로 넘어져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놀란 아이 엄마가 얼른 아이를 데리고 나와 아이는 무사하였다. 속으로 통쾌하게 생각했던 그 일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었는데, 죄가 없다고 생각하던 내게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났다. ‘아, 내가 겉으로는 착한 척하였지만 속에는 살인자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구나. 비록 살인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으로는 이미 살인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율법보다 무서운 예수님의 말씀에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집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1-22) 하셨으니, 나는 예수님 앞에 죄인임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도 믿어지고 죄인인 것도 알게 되니 이제 조금만 더 말씀을 들으면 구원받겠다 싶어 즐겁고 신이 나, 바로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신청했다.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다 알 것 같았다. ‘네, 네’ 하고 대답을 하였고,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2장 8절부터 9절 내용을 읽어주셨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내 죄를 다 사해주셨고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내가 무언가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믿어졌다. 그래서 ‘되었습니다’ 하였더니 기도를 하자고 하시며, ‘이제부터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으셨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그때 나는 갑자기 큰 충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아니, 이것은 또 무슨 이야기야?’ 금시초문이었다. 여태까지 하나님께서 내 죄를 사해주신 것만 생각하고 ‘네’ 했는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이했느냐는 질문은 굉장히 생소했다. 엉겁결에 ‘네’ 하고 대답했지만, 그때부터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왜 예수님이 내게 주님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내 죄를 다 사하여 주신 것은 알겠는데, 거기에 왜 예수님이 내 주님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스운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고민을 했었다. 혼자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기에 포기하고 지금 구원 못 받은 것이면 언젠가는 구원해 주시겠지 하고 그냥 지냈다.
나를 사신 주님
몇 개월이 지난 1975년 4월 어느 날, 시위로 인해 휴교령이 내려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한 교수님이 내게 책 한 권을 주시며 구원에 확신이 없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반신반의하며 책을 읽어갔다. 세상 마지막 날에는 세상에 태어났던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모여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일들을 금방 잊어버리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낱낱이 다 보여 주시며 각 사람을 심판하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구원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구원의 확신이 있고 그 확신대로 사는 사람, 구원은 받았는데 확신이 없는 사람, 구원이 무엇인지 관심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를 생각하며 계속 읽어 보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건져내실 때, 애굽의 장자는 다 치겠지만 이스라엘은 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시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하셨다. 그것을 이행한 두 집이 있는데, 한 집은 문설주에 피가 발린 것을 알고 믿고 안심하며 즐거워하였고, 한 집은 피는 발렸지만 혹시나 장자를 치면 어쩌나 불안해하였다. 여러분은 어느 집이 구원받은 집이라고 생각하느냐고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두 집 다 받았을까? 의심하는 집은 구원받지 못한 집일까?’를 생각하며 읽어나가니 결론은 두 집이 다 구원받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그 사람이 기뻐하느냐 기뻐하지 않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였고, 그 예수님의 흘리신 피를 통하여 나를 보시므로 나를 깨끗하게 보신다는 것이었다.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분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아! 그렇구나. 내가 잘나서, 내가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돌아가시면서 하나님 앞에 내 죄를 완전히 깨끗하게 도말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깨끗한 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사람이 안전한 집에 거하게 되면 비가 오거나 천둥 번개가 치거나 태풍이 와도 안전하구나. 내가 예수님의 품에 거하게 되면 하나님의 죄의 심판에서 안전한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면서, 그제야 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신지 알게 되었다. ‘그 분이 흘리신 피로 나를 사신 것이다.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나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으니 이제부터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 그 분을 모시고 살아야겠구나.’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하여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열심히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었다. 주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 뒤로 많은 일들이 지나갔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마음 깊은 곳의 평안, 감사함은 흔들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분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게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오늘도 내일도,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날 때까지 그 분의 손길에 이끌려 갈 수 있기를 부탁 드려본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주님의 자녀로서 시작된 나의 제2의 삶에 대하여 한번 정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내 나이 벌써 56, 적게 산 나이는 아닌 것 같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갔나 싶은데 나의 진짜 생일이 지난 지도 35년이나 되었다. 큰 변화 없이 살아온 것 같지만 1975년을 기점으로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순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
어릴 적 우리 집은 대가족으로, 이층집과 단층집 세 채가 모여 있는 큰 집에서 삼대가 모여 살았는데 그중 내가 가장 어렸다. 매일 북적대는 집에서 심부름도 하고 어른들이 시키면 춤도 추곤 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섯 살이던 해 어느 날, 엄마가 짐을 싣고 집을 떠나셨다. 엄마가 떠나던 당시에는 그렇게 슬프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일고여덟 살이 되면서 엄마가 무척 보고 싶어졌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나를 엄마가 살고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와 단 둘이 살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대가족으로부터 분리되었지만,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아주 즐겁고 재미있었다.
내가 있던 부산 온천장은 도시이긴 하지만 산과 들과 개천이 있어 자연과 도시가 조화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학교 생활을 하면서 추억을 만들며 나는 야무진 아이로 커갔다. 그러나 다른 가족을 보고 싶어 하는 나를 보면서 엄마는 혈육의 정은 끊지 못 하는 것이라며 방학 때면 아버지에게로 보내셨고 가끔은 언니들이 나를 보러 오기도 했다.
엄마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나를 키우려고 하셨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는 엄마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친할머니에게로 가서 살다가 6학년이 되면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당시 아버지는 다른 분과 결혼하여 살고 계셨다. 나는 왜 이렇게 두 집을 왔다갔다 하며 생활해야 하는지 궁금했는데, 자라면서 여러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장남인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결혼하여 딸 둘과 아들을 낳고 다복하게 사셨단다. 어느 날 차 사고로 아내를 잃고, 자식을 셋 둔 남자가 혼자 살 수는 없어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다. 재혼하신 상대가 내 어머니셨다. 어머니는 9남매 중 셋째 딸로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재처로 시집을 가야 명이 길다 하여 아버지와 결혼을 하신 것이었다. 결혼 후 어머니는 나를 낳으셨지만, 사별을 겪고 아이가 셋이나 되는 남편의 아내로 그 복잡한 집에서 사는 것을 힘들어 하시다가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결국 이혼하셨다. 1950년대 말에는 이혼이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잠시 절에 들어가 지내시다가 미용 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하셨다.
어린 자식을 셋이나 남기고 돌아가신 분의 한은 얼마나 크겠으며, 남겨진 사람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뒤에 엮어진 내 어머니와 나 또한 그러한 운명의 바퀴에 치어 그리 편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되었다.
철이 들면서 나는 내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이혼녀의 딸, 여러 번 결혼하신 아버지. 그 사실에 열등감을 가지지는 않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은 마음의 짐이 되었다. 또 서른 살의 엄마가 혼자 외롭게 사는 것이 나 때문인 것 같았고 여자로서의 엄마의 삶을 내가 보상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두 사람 몫의 삶을, 그것도 성공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가 보기에도 딸 하나는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게 해야 했으므로 착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하지 않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함께 살면서도 칭찬을 받았고 나 같은 아이는 열 명도 키우겠다는 소리도 들었다. 성공하려면 장관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능력이 특출하지 못하니 농대에 들어간 후 농림부 장관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서울대 농대를 겨냥하여 공부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의사셨던 작은 아버지와 작은 형부가 내게 의사가 될 것을 권하셨는데 장관보다 의사 되는 것이 쉬워 보여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게 되었다.
성경은 사실이다
대학에 입학하여 서울에서 하숙을 하던 중 언제나 엄마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이모가 나를 돌봐주시게 되었다. 이모는 불교를 믿다가 기독교를 믿게 되었는데,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곳을 찾다가 권신찬 목사님을 만나셨다. 설교를 들은 후 이곳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참다운 교회라고 생각하시고는 그날부터 열심히 교회에 다니셨단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정열적인 이모는 그때부터 권 목사님을 초청하여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성경 공부를 하셨다.
이모집에서 지내던 나는 체면상 그 성경 공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엄마를 따라 절에는 가 보았지만 주변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교회는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였다. 이모와 살면서, 예전에 이모가 다니던 교회에 한번 같이 가본 것이 전부이다. 그때 성경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니 한번 보는 것도 손해는 아니겠다 싶어 뒤적였는데 신약 성경 첫 페이지부터 ‘낳고 낳고’ 하는 내용이 어찌나 복잡한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어서 덮어 버렸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귀로 듣기만 했다. 그런데 권 목사님은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대 명제를 두고 차근차근 말씀을 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마음이 이끌려 갔고 관심이 생기며 다음 모임이 기다려졌다. 성경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점점 의문도 생겼다. 그냥 들으면 안 되겠구나 싶어 성경을 찾아 가면서 들었다.
권 목사님은, 하나님은 역사를 움직이는 실존하시는 분이라 하셨고 그 증거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해 주셨다. 유대 민족은 약 2천 년이나 나라 없이 전 세계로 흩어졌고, 히틀러의 핍박 등 갖은 고난을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나라를 세웠다는 것, 그리고 그 민족은 세계 곳곳에서 중요한 자리에 앉아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셨다. 이 모든 것들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사실이며,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셨다.
설교를 들으면서 점점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이 믿어졌고, 이 세상은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진화된 것이 아니라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중학교 생물 시간에 들었던 의문이 풀렸다. 학생 때 다윈의 진화론을 배우며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되었고 원숭이는 더 하등동물에서, 그렇게 최초의 원충류에서 점점 진화하여 사람까지 온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아무리 실험하고 연구해 보아도 무생물에서 생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것도 함께 배웠다. 그때 느낀 의문은, 진화되어 사람이 된 것이라면 왜 지금의 사람은 더 이상 진화하지 않는지, 그리고 나머지 개체들도 계속 진화되어야 할 것인데 지금의 각 개체는 개체대로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였다.
가장 의문스러웠던 것은 과연 최초의 생명체는 무엇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문에 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설명을 들으니 하나님을 아직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창조하신 것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 없으니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마음으로 믿어지지는 않았다.
어느 날 성경 공부를 할 때이다. 권 목사님이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 9:26-27) 는 말씀을 읽으며 설명하시는데, 실제 인류의 역사는 3천 여 년 전에 쓰인 성경 말씀대로, 복음은 셈 족속인 유대인을 통하여 왔지만 정작 구원은 로마를 통하여 야벳 족속에게서 번창하였고 가나안 족속인 흑인은 종의 삶을 살았다는 명백한 역사 앞에, 내가 이것을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진행해 오셨고 앞으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해가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볼 수는 없지만 역사를 통하여 존재하고 계신다는 것이 확실하게 믿어졌다.
성경 공부를 하는 중에 혼자 성경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성경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우연히 전도서를 읽게 되었는데, 깜짝 놀랐다. 인생의 온갖 모습, 그 비참함에 대하여 정확하고도 자세히 적혀 있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도서 1:2-3)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전도서 5:15)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 12:1)
이때가 1974년, 대학교 2학년이던 시절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생각할 겨를이 없다가 대학생이 되어 무언가 있는가 싶어 여기저기 다니며 미팅도 하고 연극, 음악회 등에 열심을 내며 다녀도 보았고 인생이 무엇인가 하여 철학책도 뒤적여 보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답을 얻지 못한 마음은 허무하고 허전한 상태였다. 또 대학생이 되어 보니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있어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던 참이었다. 그런 중에 전도서를 보니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었다. ‘성경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고 사실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은 나에게 죄인이라고 말하는데, 나 자신은 내가 왜 죄인인지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특별히 죄를 지은 적도 없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고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데, 어떻게 내가 죄인일 수 있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아담이 범죄한 후 그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니 나 또한 죄인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죄인이 아닌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데, 정말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중학교 때의 일이 떠올랐다.
어느 날 목욕탕을 갔는데 한 젊은 엄마가 나에게 이유 없이 못되게 굴었다. 나는 화가 나서 그 젊은 엄마의 아이가 내 등 뒤를 지나갈 때 등으로 지긋이 밀었다가 얼른 등을 떼었다. 이제 겨우 아장아장 걷던 힘없는 아이는 그대로 넘어져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놀란 아이 엄마가 얼른 아이를 데리고 나와 아이는 무사하였다. 속으로 통쾌하게 생각했던 그 일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었는데, 죄가 없다고 생각하던 내게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났다. ‘아, 내가 겉으로는 착한 척하였지만 속에는 살인자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구나. 비록 살인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으로는 이미 살인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율법보다 무서운 예수님의 말씀에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집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1-22) 하셨으니, 나는 예수님 앞에 죄인임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도 믿어지고 죄인인 것도 알게 되니 이제 조금만 더 말씀을 들으면 구원받겠다 싶어 즐겁고 신이 나, 바로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신청했다.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다 알 것 같았다. ‘네, 네’ 하고 대답을 하였고,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2장 8절부터 9절 내용을 읽어주셨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내 죄를 다 사해주셨고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내가 무언가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믿어졌다. 그래서 ‘되었습니다’ 하였더니 기도를 하자고 하시며, ‘이제부터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으셨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그때 나는 갑자기 큰 충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아니, 이것은 또 무슨 이야기야?’ 금시초문이었다. 여태까지 하나님께서 내 죄를 사해주신 것만 생각하고 ‘네’ 했는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이했느냐는 질문은 굉장히 생소했다. 엉겁결에 ‘네’ 하고 대답했지만, 그때부터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왜 예수님이 내게 주님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내 죄를 다 사하여 주신 것은 알겠는데, 거기에 왜 예수님이 내 주님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스운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고민을 했었다. 혼자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기에 포기하고 지금 구원 못 받은 것이면 언젠가는 구원해 주시겠지 하고 그냥 지냈다.
나를 사신 주님
몇 개월이 지난 1975년 4월 어느 날, 시위로 인해 휴교령이 내려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한 교수님이 내게 책 한 권을 주시며 구원에 확신이 없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반신반의하며 책을 읽어갔다. 세상 마지막 날에는 세상에 태어났던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모여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일들을 금방 잊어버리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낱낱이 다 보여 주시며 각 사람을 심판하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구원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구원의 확신이 있고 그 확신대로 사는 사람, 구원은 받았는데 확신이 없는 사람, 구원이 무엇인지 관심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를 생각하며 계속 읽어 보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건져내실 때, 애굽의 장자는 다 치겠지만 이스라엘은 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시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하셨다. 그것을 이행한 두 집이 있는데, 한 집은 문설주에 피가 발린 것을 알고 믿고 안심하며 즐거워하였고, 한 집은 피는 발렸지만 혹시나 장자를 치면 어쩌나 불안해하였다. 여러분은 어느 집이 구원받은 집이라고 생각하느냐고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두 집 다 받았을까? 의심하는 집은 구원받지 못한 집일까?’를 생각하며 읽어나가니 결론은 두 집이 다 구원받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그 사람이 기뻐하느냐 기뻐하지 않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였고, 그 예수님의 흘리신 피를 통하여 나를 보시므로 나를 깨끗하게 보신다는 것이었다.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분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아! 그렇구나. 내가 잘나서, 내가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돌아가시면서 하나님 앞에 내 죄를 완전히 깨끗하게 도말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깨끗한 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사람이 안전한 집에 거하게 되면 비가 오거나 천둥 번개가 치거나 태풍이 와도 안전하구나. 내가 예수님의 품에 거하게 되면 하나님의 죄의 심판에서 안전한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면서, 그제야 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신지 알게 되었다. ‘그 분이 흘리신 피로 나를 사신 것이다.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나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으니 이제부터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 그 분을 모시고 살아야겠구나.’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하여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열심히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었다. 주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 뒤로 많은 일들이 지나갔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마음 깊은 곳의 평안, 감사함은 흔들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분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게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오늘도 내일도,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날 때까지 그 분의 손길에 이끌려 갈 수 있기를 부탁 드려본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주님의 자녀로서 시작된 나의 제2의 삶에 대하여 한번 정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