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금주를 위해 교회를 찾고
저는 지금 재혼한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전남편과는 사이좋은 부부였으나 외환위기를 겪으며 경제난에 시달리다 보니 그 좋던 사람도 점점 변해갔습니다. 경제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했고 술에 빠져 살던 남편은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지만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먼저 집을 떠났습니다. 큰아들은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군에 입대했고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이던 작은 아들은 기숙사를 제공해 주는 기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혼자 남은 저는 전세금도 모두 없어져 버린 집에서 도망치듯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게는 차가 한 대 있었습니다. 그 차를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은 공사현장에 식당 밥을 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광고를 보고 찾아가 일을 시작했는데 한 달 월급이 60만원이었습니다. 기름 값 30만원을 제하고 나면 남는 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지만 일단 시작한 일이라 의무감으로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하기로 했습니다.
그 공사 현장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당시 남편은 아내 없이 아들과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게 관심을 표했지만 저는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때라 세상 자체가 싫었고 누구의 관심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도 싫다고 했지만 매일 제가 사는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혼자 힘들게 살던 터라 제게 잘해 주니 조금씩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마음이 갔습니다. 엄마 없이 커온 그 사람의 아들도 불쌍했고 그의 어머니도 굉장히 좋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남편과 재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처음 두 달 동안은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잘 대해주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변해 심한 욕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언어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술만 마시면 아내에게 욕을 하고 때리면서도 술이 깨면 잘못했다고 비는 남편들을 보며 저런 남자가 제일 싫다고 생각했는데, 때리지는 않았지만 제 남편이 딱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헤어지자고 했지만 술이 깬 남편은 너무 미안해하며 절 붙잡았습니다.
술만 마시지 않으면 되는데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마실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찾아가 이야기했더니 어머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잘 안다. 네가 떠나도 원망은 않겠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 주면 안 되겠느냐’고 애원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남편이 술을 마시고 와서 온 집안 물건을 모두 부순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 무조건 달려갔습니다. 집에 와서 상황을 보신 어머니는 본인도 기가 막히신지 ‘나도 이제 너에게 더 참고 살란 말은 못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러고선 어머니와 나가려고 하는데 정신을 차린 남편이 보고 달려와 차에 올라탔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기죽어 있는 남편을 보니 불쌍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절에 가자 하셨습니다. 저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교회든 절이든 다 싫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형상에 쓸데없이 왜 절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종교는 모두 사람들의 돈을 받아서 건물이나 짓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남편은 자기 힘으로는 안 되니 교회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술을 끊어볼 테니 한 번만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절박하면 절에 갔다가 다시 교회에 가자는 말까지 할까 싶어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고 같이 교회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아는 언니가 다니는 교회에 함께 다니기로 했고, 처음에 남편은 교회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교회란 곳은 친절한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친절하니 오히려 부담스러웠습니다. 또 남편 금주시킬 욕심에 가기는 했지만 가면 졸립기만 했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이 그저 ‘아멘, 할렐루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4개월 정도를 다녔는데 언니는 교회에 문제가 생겨 다른 교회로 가 버렸습니다. 저에게도 함께 가자 했지만 ‘교회가 어디인 것이 중요하냐, 천막이라도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하는 생각에 그냥 그 교회에 있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좋았던 마음도 사그라지고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술이 줄어 좀 낫다 싶은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남편은 다시 술을 찾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구원을 찾아
당시 저는 어머니가 얻어 주신 꽃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가게의 손님 중 한 분이 자신의 교회를 소개하여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제가 있던 지역에서 제일 컸는데, 신도도 천 명이 넘었습니다. 저는 전에 다니던 교회나 이 교회나 똑같게 여겼는데 남편은 새로 다니는 교회와 굉장히 친해졌습니다. 저는 ‘기도부터 찬양까지 한 시간이면 다 끝나니 그 시간만 참아보자. 그 한 시간만 버티면 내 사는 것이 좀 편할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교회에는 어떤 모임이 있었습니다. 산에 있는 콘도를 빌려 밤에 모임을 가지곤 했습니다. 가니까 앞에서 방언을 하는데 제 이마를 잡고는 저를 뒤로 넘겨 눕혔습니다. 보니 제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오래전 외삼촌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제가 좋아했던 외삼촌은 항상 검소하고 웃고 계셨습니다. 교회에 다니시던 외삼촌은 제게 항상 구원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이런 경험이 외삼촌이 말했던 구원받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양옆의 다른 사람들은 울고불고하며, 그 어두운 곳에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던 저는 ‘내가 죄를 너무 많이 지어서 이번엔 구원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도 아무렇지 않다 하기에 우리는 둘 다 죄가 너무 많아 구원해 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 그런 행사를 또 한다 하기에 저희는 또 참석했습니다. 당시 저혈압이었던 저는 계속 서 있으니 온몸이 떨렸습니다. 구원을 간절히 원했기에, 저는 그 떨림이 구원받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눕혀졌는데, 저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누웠습니다. 남편도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물으니 자기도 눈물이 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눈물 난 것도 몸이 떨린 것도 구원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았으면 달라지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전보다는 나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술 마시는 것이 조금 줄었지만 상황은 전과 비슷했고 생활은 무료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구원이 아닌가? 외삼촌은 즐거워 보이던데 왜 나는 즐겁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도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지내다가, 제가 그동안 남편에게 외삼촌 자랑을 많이 해서인지 남편은 외삼촌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재혼 사실을 말해야 하는 것이 힘들고 부끄러웠지만 남편의 계속된 권유에, 네 살 차이밖에 나지 않은 외삼촌에게 십 년 만에 전화를 했습니다. 외삼촌은 저의 이혼과 재혼 소식에 놀라기는 했지만 제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니 걱정하며 어떤 교회에 다니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걱정하지 말라고, 여기서 제일 큰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도 외삼촌과 몇 번 통화를 하던 중 외삼촌은 제게 성경 말씀 테이프를 한번 보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상한 내용일까 봐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성경탐구모임에 몇 번 참석한 남동생이 봐도 괜찮은 말씀 테이프라 하기에 보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들어도 잠이 왔습니다.
외삼촌의 체면도 있고 해서 보기는 했지만 자꾸 잠이 왔습니다. 나중에는 미안하기까지 했습니다. 남편은 두 번째 테이프부터 함께 보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테이프 후반부에 노아의 방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제 눈이 그제야 떠졌습니다. 외삼촌에게 조금 들은 기억이 있어서 그때부터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신나서 보았습니다. 나중에는 아침부터 계속 보았습니다.
말씀 테이프를 다 보고는 ‘내가 죄가 많으니 나를 구원해 주시려나’ 하는 생각으로 이사야 44장 22절을 보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그것이 구원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조금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남편 식사를 챙기면서 갑자기 성경책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말씀 테이프를 다시 보는데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고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저절로 탁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구원을 확신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도 예뻐 보였습니다. 함께 본 남편도 구원받았을 것이라 생각하고서 들뜨고 기쁜 마음을 남편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기 위해 오셔서 내 죄를 가지고 가셨다고 했습니다. 제 마음은 완전히 변했고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꽃가게로 걸어가는 걸음도 붕붕 떠가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저와 같지 않은 자신의 상태에 걱정이 되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꽃가게에는 20년 된 친구들이 거의 매일 놀러와 재미로 고스톱을 치며 놀았습니다. 꽃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놀았기 때문에 꽃 파는 데에도 지장이 없었고, 딴 돈은 모아서 맛있는 것을 사먹는 정도의 모임이었습니다. 친구들과의 이런 만남은 제 생활의 낙이었습니다. 놀러오는 이들 중에는 돈 많은 친구들도 있어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구원받고 보니 누구도 부럽지 않았고 오히려 불쌍했습니다.
나의 이런 마음을 그 친구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지만 잘못 전할까봐 걱정도 되었습니다. 구원받고 난 후의 평온한 마음에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왜 그러느냐고 친구들이 물어왔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고 하자 내게 미쳤다고들 했습니다. 무슨 테이프인가 본다 하더니 그것 보고 미쳤는가 보다고들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쳐도 좋다, 꽃이 안 팔려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사람들을 살살 꼬여 말씀 테이프를 보게 했습니다.
돈을 줄 테니 보라고도 했고, 상조하는 친구에게는 상조 두 개 넣어줄 테니 일주일 동안 말씀 테이프를 봐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선교사에게 상담 받게도 하였지만 복음 전도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중 두 명은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고 나니 전처럼 사람들과 노는 것이 즐겁지 않고 싫어졌습니다. 고스톱을 치러 찾아오는 친구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때 함께 어울리던 이들 중 한 사람이 술가게를 내었고 자연스레 친구들이 모이는 장소가 그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제 저는 가게에서 혼자 있으면서 성경책과 말씀 테이프를 봅니다.
가끔씩 동네에 사는 자매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 것입니다. 전에 그곳은 마귀의 소굴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거기서 빠져나왔나 싶습니다. 이렇게 구원받고 올해 처음 성경탐구모임에도 참석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저는 구원받은 후 바로 친정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생전 아픈 적이 없으시던 어머니였는데 마침 허리를 다쳐 누워 있게 되었고 그때 말씀 테이프를 보게 되셨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미치려면 너만 미치라면서 말씀 듣기를 강력하게 거부하셨지만, 구원받지는 않았지만 말씀은 접해 보았던 남동생까지 가세하여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말씀 테이프를 보신 어머니도 구원받으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장손 집안의 큰며느리이십니다. 똑똑하고 대장부이신 어머니는 70세이신데 서예 작가이십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사람이 서예 작가가 되셨으니 얼마나 당찬 분이신지 모릅니다. 그런 분이 구원받으신 것을 보며 외삼촌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능력이 아니면 할 수가 없는 것이겠지요.
어머니가 구원받자마자 그 말씀 테이프를 들고 남동생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올케와 남동생이 말씀 테이프를 보았고 그들도 구원받았습니다. 한가족이 한꺼번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앞으로 제 목표는 제 아들들에게 말씀 테이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두들 착하고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와서 오히려 그것이 구원받은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의 아이들입니다. 다른 가족들은 아직까지는 보지 않겠다고 하고 있지만 언젠가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이번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해 이사야 38장 17절 말씀에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둘 다 돈에 대한 개념은 없지만 죽어도 어차피 하나님 앞일 것이고 살면 또 살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워낙 많은 일들을 겪었던지라 저는 육신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잘 압니다. 혹시 제가 실수를 하더라도 하나님이 채찍으로 나를 돌아오게 해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죽을 때까지 이 복음을 전하고 싶은 이 마음, 이 열정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단 1초라도 하나님을 놓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남편의 금주를 위해 교회를 찾고
저는 지금 재혼한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전남편과는 사이좋은 부부였으나 외환위기를 겪으며 경제난에 시달리다 보니 그 좋던 사람도 점점 변해갔습니다. 경제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했고 술에 빠져 살던 남편은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지만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먼저 집을 떠났습니다. 큰아들은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군에 입대했고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이던 작은 아들은 기숙사를 제공해 주는 기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혼자 남은 저는 전세금도 모두 없어져 버린 집에서 도망치듯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게는 차가 한 대 있었습니다. 그 차를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은 공사현장에 식당 밥을 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광고를 보고 찾아가 일을 시작했는데 한 달 월급이 60만원이었습니다. 기름 값 30만원을 제하고 나면 남는 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지만 일단 시작한 일이라 의무감으로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하기로 했습니다.
그 공사 현장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당시 남편은 아내 없이 아들과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게 관심을 표했지만 저는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때라 세상 자체가 싫었고 누구의 관심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도 싫다고 했지만 매일 제가 사는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혼자 힘들게 살던 터라 제게 잘해 주니 조금씩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마음이 갔습니다. 엄마 없이 커온 그 사람의 아들도 불쌍했고 그의 어머니도 굉장히 좋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남편과 재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처음 두 달 동안은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잘 대해주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변해 심한 욕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언어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술만 마시면 아내에게 욕을 하고 때리면서도 술이 깨면 잘못했다고 비는 남편들을 보며 저런 남자가 제일 싫다고 생각했는데, 때리지는 않았지만 제 남편이 딱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헤어지자고 했지만 술이 깬 남편은 너무 미안해하며 절 붙잡았습니다.
술만 마시지 않으면 되는데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마실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찾아가 이야기했더니 어머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잘 안다. 네가 떠나도 원망은 않겠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 주면 안 되겠느냐’고 애원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남편이 술을 마시고 와서 온 집안 물건을 모두 부순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 무조건 달려갔습니다. 집에 와서 상황을 보신 어머니는 본인도 기가 막히신지 ‘나도 이제 너에게 더 참고 살란 말은 못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러고선 어머니와 나가려고 하는데 정신을 차린 남편이 보고 달려와 차에 올라탔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기죽어 있는 남편을 보니 불쌍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절에 가자 하셨습니다. 저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교회든 절이든 다 싫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형상에 쓸데없이 왜 절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종교는 모두 사람들의 돈을 받아서 건물이나 짓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남편은 자기 힘으로는 안 되니 교회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술을 끊어볼 테니 한 번만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절박하면 절에 갔다가 다시 교회에 가자는 말까지 할까 싶어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고 같이 교회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아는 언니가 다니는 교회에 함께 다니기로 했고, 처음에 남편은 교회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교회란 곳은 친절한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친절하니 오히려 부담스러웠습니다. 또 남편 금주시킬 욕심에 가기는 했지만 가면 졸립기만 했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이 그저 ‘아멘, 할렐루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4개월 정도를 다녔는데 언니는 교회에 문제가 생겨 다른 교회로 가 버렸습니다. 저에게도 함께 가자 했지만 ‘교회가 어디인 것이 중요하냐, 천막이라도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하는 생각에 그냥 그 교회에 있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좋았던 마음도 사그라지고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술이 줄어 좀 낫다 싶은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남편은 다시 술을 찾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구원을 찾아
당시 저는 어머니가 얻어 주신 꽃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가게의 손님 중 한 분이 자신의 교회를 소개하여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제가 있던 지역에서 제일 컸는데, 신도도 천 명이 넘었습니다. 저는 전에 다니던 교회나 이 교회나 똑같게 여겼는데 남편은 새로 다니는 교회와 굉장히 친해졌습니다. 저는 ‘기도부터 찬양까지 한 시간이면 다 끝나니 그 시간만 참아보자. 그 한 시간만 버티면 내 사는 것이 좀 편할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교회에는 어떤 모임이 있었습니다. 산에 있는 콘도를 빌려 밤에 모임을 가지곤 했습니다. 가니까 앞에서 방언을 하는데 제 이마를 잡고는 저를 뒤로 넘겨 눕혔습니다. 보니 제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오래전 외삼촌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제가 좋아했던 외삼촌은 항상 검소하고 웃고 계셨습니다. 교회에 다니시던 외삼촌은 제게 항상 구원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이런 경험이 외삼촌이 말했던 구원받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양옆의 다른 사람들은 울고불고하며, 그 어두운 곳에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던 저는 ‘내가 죄를 너무 많이 지어서 이번엔 구원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도 아무렇지 않다 하기에 우리는 둘 다 죄가 너무 많아 구원해 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 그런 행사를 또 한다 하기에 저희는 또 참석했습니다. 당시 저혈압이었던 저는 계속 서 있으니 온몸이 떨렸습니다. 구원을 간절히 원했기에, 저는 그 떨림이 구원받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눕혀졌는데, 저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누웠습니다. 남편도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물으니 자기도 눈물이 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눈물 난 것도 몸이 떨린 것도 구원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았으면 달라지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전보다는 나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술 마시는 것이 조금 줄었지만 상황은 전과 비슷했고 생활은 무료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구원이 아닌가? 외삼촌은 즐거워 보이던데 왜 나는 즐겁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도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지내다가, 제가 그동안 남편에게 외삼촌 자랑을 많이 해서인지 남편은 외삼촌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재혼 사실을 말해야 하는 것이 힘들고 부끄러웠지만 남편의 계속된 권유에, 네 살 차이밖에 나지 않은 외삼촌에게 십 년 만에 전화를 했습니다. 외삼촌은 저의 이혼과 재혼 소식에 놀라기는 했지만 제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니 걱정하며 어떤 교회에 다니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걱정하지 말라고, 여기서 제일 큰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도 외삼촌과 몇 번 통화를 하던 중 외삼촌은 제게 성경 말씀 테이프를 한번 보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상한 내용일까 봐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성경탐구모임에 몇 번 참석한 남동생이 봐도 괜찮은 말씀 테이프라 하기에 보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들어도 잠이 왔습니다.
외삼촌의 체면도 있고 해서 보기는 했지만 자꾸 잠이 왔습니다. 나중에는 미안하기까지 했습니다. 남편은 두 번째 테이프부터 함께 보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테이프 후반부에 노아의 방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제 눈이 그제야 떠졌습니다. 외삼촌에게 조금 들은 기억이 있어서 그때부터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신나서 보았습니다. 나중에는 아침부터 계속 보았습니다.
말씀 테이프를 다 보고는 ‘내가 죄가 많으니 나를 구원해 주시려나’ 하는 생각으로 이사야 44장 22절을 보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그것이 구원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조금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남편 식사를 챙기면서 갑자기 성경책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말씀 테이프를 다시 보는데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고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저절로 탁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구원을 확신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도 예뻐 보였습니다. 함께 본 남편도 구원받았을 것이라 생각하고서 들뜨고 기쁜 마음을 남편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기 위해 오셔서 내 죄를 가지고 가셨다고 했습니다. 제 마음은 완전히 변했고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꽃가게로 걸어가는 걸음도 붕붕 떠가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저와 같지 않은 자신의 상태에 걱정이 되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꽃가게에는 20년 된 친구들이 거의 매일 놀러와 재미로 고스톱을 치며 놀았습니다. 꽃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놀았기 때문에 꽃 파는 데에도 지장이 없었고, 딴 돈은 모아서 맛있는 것을 사먹는 정도의 모임이었습니다. 친구들과의 이런 만남은 제 생활의 낙이었습니다. 놀러오는 이들 중에는 돈 많은 친구들도 있어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구원받고 보니 누구도 부럽지 않았고 오히려 불쌍했습니다.
나의 이런 마음을 그 친구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지만 잘못 전할까봐 걱정도 되었습니다. 구원받고 난 후의 평온한 마음에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왜 그러느냐고 친구들이 물어왔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고 하자 내게 미쳤다고들 했습니다. 무슨 테이프인가 본다 하더니 그것 보고 미쳤는가 보다고들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쳐도 좋다, 꽃이 안 팔려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사람들을 살살 꼬여 말씀 테이프를 보게 했습니다.
돈을 줄 테니 보라고도 했고, 상조하는 친구에게는 상조 두 개 넣어줄 테니 일주일 동안 말씀 테이프를 봐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선교사에게 상담 받게도 하였지만 복음 전도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중 두 명은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고 나니 전처럼 사람들과 노는 것이 즐겁지 않고 싫어졌습니다. 고스톱을 치러 찾아오는 친구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때 함께 어울리던 이들 중 한 사람이 술가게를 내었고 자연스레 친구들이 모이는 장소가 그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제 저는 가게에서 혼자 있으면서 성경책과 말씀 테이프를 봅니다.
가끔씩 동네에 사는 자매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 것입니다. 전에 그곳은 마귀의 소굴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거기서 빠져나왔나 싶습니다. 이렇게 구원받고 올해 처음 성경탐구모임에도 참석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저는 구원받은 후 바로 친정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생전 아픈 적이 없으시던 어머니였는데 마침 허리를 다쳐 누워 있게 되었고 그때 말씀 테이프를 보게 되셨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미치려면 너만 미치라면서 말씀 듣기를 강력하게 거부하셨지만, 구원받지는 않았지만 말씀은 접해 보았던 남동생까지 가세하여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말씀 테이프를 보신 어머니도 구원받으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장손 집안의 큰며느리이십니다. 똑똑하고 대장부이신 어머니는 70세이신데 서예 작가이십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사람이 서예 작가가 되셨으니 얼마나 당찬 분이신지 모릅니다. 그런 분이 구원받으신 것을 보며 외삼촌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능력이 아니면 할 수가 없는 것이겠지요.
어머니가 구원받자마자 그 말씀 테이프를 들고 남동생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올케와 남동생이 말씀 테이프를 보았고 그들도 구원받았습니다. 한가족이 한꺼번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앞으로 제 목표는 제 아들들에게 말씀 테이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두들 착하고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와서 오히려 그것이 구원받은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의 아이들입니다. 다른 가족들은 아직까지는 보지 않겠다고 하고 있지만 언젠가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이번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해 이사야 38장 17절 말씀에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둘 다 돈에 대한 개념은 없지만 죽어도 어차피 하나님 앞일 것이고 살면 또 살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워낙 많은 일들을 겪었던지라 저는 육신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잘 압니다. 혹시 제가 실수를 하더라도 하나님이 채찍으로 나를 돌아오게 해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죽을 때까지 이 복음을 전하고 싶은 이 마음, 이 열정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단 1초라도 하나님을 놓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