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복음을 접한 것은, 2년 전 대전 집회에서 구원받으신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이었는데, 어머니는 그 먼 곳까지 전화를 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뻐 울먹이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는 제게 이상하게만 보였습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와 친척언니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언니들은 제게 복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어떤 성경 구절에서 구원받았다는 등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듣고 싶지 않았고 지루한 이야기라고만 느껴졌습니다. 더구나 식구들은 제게 “너만 지옥 가는데 이제 어떻게 하니.”라는 말들을 던졌는데 그 말이 너무 기분 나빠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08년,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저는 식구들의 손에 떠밀려 집회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루하고 재미없고 졸리기만 했습니다. 강사님이 하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달콤한 수면제 같던지, 정말 괴로웠습니다. 집회에 가지 않자니 식구들의 눈총이 무서웠고 앉아 있자니 너무 괴로웠을 때 마침 핑계거리가 생겼습니다. 잘되었다며 그 후로 집회에 가지 않았고, 그렇게 그 해 집회는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엄마도, 식구들도, 사촌 언니들도 모두 구원받았다는 이야기에 나만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정리라도 해 보자 싶었습니다. 성경이 무엇인지 듣기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이번 2009년 대전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참석하니, 예전에는 졸리기만 했던 이야기들이 신기하게도 귓속으로 잘 들어왔습니다. 하루는 강연을 들으려고 앉아 있는데, 친척 언니가 강연을 듣기 전 기도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나도 그래야만 될 것 같아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기도가 무언지도 모르고 해본 적도 없지만, 하나님 말씀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합니다. ‘구원’이라는 것을 받지 못하더라도 말씀 듣는 내내 집중해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담을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으며 성경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늘 제 곁에 있던 성경에는 역사로 남겨진 어제도 있었고, 제가 살고 있는 오늘도 있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 일어날 내일도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들을 알고 나니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조차 무섭게만 느껴졌습니다. 왜 무서운지도 모른 채 지금 죽으면 지옥에 간다, 이대로 죽어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운전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죽을까봐 무서워 지하철을 탔습니다. 밤에는 어둠이 너무 무서워서 TV를 틀어 놓은 채 차마 감기지 않는 무거운 눈꺼풀만 꿈뻑거리다 아침이 된 것을 보고서야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날은 율법에 대해 들었는데, 십계명조차 지키지 못해 하루에도 수 십 번이나 죄를 짓는 제게, 600여 가지나 된다는 율법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율법이란 결코 제가 지킬 수 없는 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한 개씩만 죄를 지어도 일 년이면 365개인데 제가 산 23년이란 시간까지 생각해보니, 정말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또한 저는 솔직하지 못한 제 성격 때문에 누구보다도 죄가 많은 것 같아 더욱 괴로웠습니다. 이제 집회는 끝나 가는데 구원받을 자신도 없었고, 지옥만이 내가 갈 곳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회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왠지 오늘이 지나면 다 끝나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지금 이 마음이 사라져 다시 아무렇지 않게 죄를 지으며 살다 결국 지옥에 가게 될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찬송가를 펼쳤는데 362장이 나오기에 읽어보았습니다. 그 찬송은 제게 주님이 꼭 구원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맘을 나에게 바치어라
너 어디 있든지 날 섬기며 기쁘게 날 항상 의지하라
구주께서 말씀하기를 네 맘을 나에게 다 바치고
사악한 죄에서 벗어나라 나 어찌 널 구원 않겠느냐
<후렴>
바치어라 네 마음을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네
캄캄한 죄에서 불러내신 주께서 늘 인도하시리라
강연을 계속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 앞에 끌고 오는 내용의 누가복음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인을 징계할 수 있는 이는 죄가 없는 오직 단 한 분, 예수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요한복음 8:11)
순간 예수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실 때 하나뿐인 아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저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큰 사랑에,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벅찬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원래 남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는 성격이 아닌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 창피하기까지 했습니다.
잠시 후 강사님이 구원받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손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함에 마음이 벅차기는 했지만 이런 마음이 구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구원은 무언가가 떠오르든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사님은 다음 구절을 함께 읽자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43)
구원은 제가 생각했던 어떤 음성이 들리는 것도,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믿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늘 주변에 있었던 성경책처럼, 구원 또한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하나님께 받은 응답이었습니다. 더 이상 헷갈리지도 답답하지도 않고,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 누군가가 제게 해준 말처럼, 담이 높은 내 마음의 문 밖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시는 하나님께 문만 열어 드리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해놓으셨기에 제가 할 일은 문만 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가서도 감사한 마음에 무언가를 더 찾아보고자 성경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4:47-49)
마치 하나님이 제게 임무를 주신 것만 같았습니다. 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 하신 말씀처럼, 이 귀중한 선물은 이제 구원받았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늘나라에 가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 저도 죽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저도 같이 태어났습니다. 세상은 사탄의 것이라 많은 유혹 앞에 이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제함으로써 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쉽고도 명확한 해결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제 여러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면서 진정한 교제가 무엇이며 왜 하나님께서 교제를 하라 하셨는지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기를, 하나님께 쓰이기를 기도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복음을 접한 것은, 2년 전 대전 집회에서 구원받으신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이었는데, 어머니는 그 먼 곳까지 전화를 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뻐 울먹이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는 제게 이상하게만 보였습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와 친척언니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언니들은 제게 복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어떤 성경 구절에서 구원받았다는 등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듣고 싶지 않았고 지루한 이야기라고만 느껴졌습니다. 더구나 식구들은 제게 “너만 지옥 가는데 이제 어떻게 하니.”라는 말들을 던졌는데 그 말이 너무 기분 나빠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08년,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저는 식구들의 손에 떠밀려 집회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루하고 재미없고 졸리기만 했습니다. 강사님이 하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달콤한 수면제 같던지, 정말 괴로웠습니다. 집회에 가지 않자니 식구들의 눈총이 무서웠고 앉아 있자니 너무 괴로웠을 때 마침 핑계거리가 생겼습니다. 잘되었다며 그 후로 집회에 가지 않았고, 그렇게 그 해 집회는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엄마도, 식구들도, 사촌 언니들도 모두 구원받았다는 이야기에 나만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정리라도 해 보자 싶었습니다. 성경이 무엇인지 듣기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이번 2009년 대전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참석하니, 예전에는 졸리기만 했던 이야기들이 신기하게도 귓속으로 잘 들어왔습니다. 하루는 강연을 들으려고 앉아 있는데, 친척 언니가 강연을 듣기 전 기도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나도 그래야만 될 것 같아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기도가 무언지도 모르고 해본 적도 없지만, 하나님 말씀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합니다. ‘구원’이라는 것을 받지 못하더라도 말씀 듣는 내내 집중해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담을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으며 성경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늘 제 곁에 있던 성경에는 역사로 남겨진 어제도 있었고, 제가 살고 있는 오늘도 있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 일어날 내일도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들을 알고 나니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조차 무섭게만 느껴졌습니다. 왜 무서운지도 모른 채 지금 죽으면 지옥에 간다, 이대로 죽어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운전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죽을까봐 무서워 지하철을 탔습니다. 밤에는 어둠이 너무 무서워서 TV를 틀어 놓은 채 차마 감기지 않는 무거운 눈꺼풀만 꿈뻑거리다 아침이 된 것을 보고서야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날은 율법에 대해 들었는데, 십계명조차 지키지 못해 하루에도 수 십 번이나 죄를 짓는 제게, 600여 가지나 된다는 율법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율법이란 결코 제가 지킬 수 없는 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한 개씩만 죄를 지어도 일 년이면 365개인데 제가 산 23년이란 시간까지 생각해보니, 정말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또한 저는 솔직하지 못한 제 성격 때문에 누구보다도 죄가 많은 것 같아 더욱 괴로웠습니다. 이제 집회는 끝나 가는데 구원받을 자신도 없었고, 지옥만이 내가 갈 곳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회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왠지 오늘이 지나면 다 끝나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지금 이 마음이 사라져 다시 아무렇지 않게 죄를 지으며 살다 결국 지옥에 가게 될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찬송가를 펼쳤는데 362장이 나오기에 읽어보았습니다. 그 찬송은 제게 주님이 꼭 구원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맘을 나에게 바치어라
너 어디 있든지 날 섬기며 기쁘게 날 항상 의지하라
구주께서 말씀하기를 네 맘을 나에게 다 바치고
사악한 죄에서 벗어나라 나 어찌 널 구원 않겠느냐
<후렴>
바치어라 네 마음을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네
캄캄한 죄에서 불러내신 주께서 늘 인도하시리라
강연을 계속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 앞에 끌고 오는 내용의 누가복음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인을 징계할 수 있는 이는 죄가 없는 오직 단 한 분, 예수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요한복음 8:11)
순간 예수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실 때 하나뿐인 아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저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큰 사랑에,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벅찬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원래 남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는 성격이 아닌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 창피하기까지 했습니다.
잠시 후 강사님이 구원받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손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함에 마음이 벅차기는 했지만 이런 마음이 구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구원은 무언가가 떠오르든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사님은 다음 구절을 함께 읽자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43)
구원은 제가 생각했던 어떤 음성이 들리는 것도,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믿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늘 주변에 있었던 성경책처럼, 구원 또한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하나님께 받은 응답이었습니다. 더 이상 헷갈리지도 답답하지도 않고,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 누군가가 제게 해준 말처럼, 담이 높은 내 마음의 문 밖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시는 하나님께 문만 열어 드리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해놓으셨기에 제가 할 일은 문만 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가서도 감사한 마음에 무언가를 더 찾아보고자 성경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4:47-49)
마치 하나님이 제게 임무를 주신 것만 같았습니다. 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 하신 말씀처럼, 이 귀중한 선물은 이제 구원받았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늘나라에 가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 저도 죽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저도 같이 태어났습니다. 세상은 사탄의 것이라 많은 유혹 앞에 이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제함으로써 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쉽고도 명확한 해결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제 여러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면서 진정한 교제가 무엇이며 왜 하나님께서 교제를 하라 하셨는지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기를, 하나님께 쓰이기를 기도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