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심취했던 고교생
고등학교 1학년, 당시 나는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큰삼촌과 함께 절에 다니면서 참선을 하고 반야심경을 외웠다. 부처상 앞에서 날이 새도록 삼천배를 하였고, 방학 때면 참선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몇 시간 동안이나 암자에 앉아서 정신통일을 하였다.
불교는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인간 세상은 불공평하고 허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세상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렵게 살고, 요령 있게 적당히 속이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잘 사는 것 같았다.
당시의 생각을 시나 소설, 수필 등 글로 표현한 것만 두꺼운 공책으로 몇 상자나 된다. 친척 형과 누나는 내가 너무 염세적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나를 불교에 더욱 관심 갖게 했다. 내 방에는 부처상이 있었고, 아침에 학교가기 전에 예불, 저녁에 잠자기 전에도 참선을 수행하고 예불을 했다. 내 방은 인생의 참됨을 깨닫기 위한 신성한 곳이었기에 동생들도 내 방에는 들어올 수 없었다
그렇지만 교회는 너무 싫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사귀고 연애하는 곳으로만 생각되었고, 성경책은 그들이 겉으로 멋을 내려고 들고 다니는 책으로 여겨졌다. 육체적 고행과 정신적 수행을 통해 삶과 삼라만상을 깨달아 가는 불교가, 그래서 더욱 좋았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교회에 나가자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암으로 수술을 받을 즈음 작은이모를 통해 구원받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는데, 교회는 수련에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무던히도 싸웠다. 성경을 발로 차버리고 없애기도 했다. 찢어 버리기도 했다. 당시 어머니는 장남인 나 때문에 눈물로 보내셨다 한다. 나는 성경의 내용은 전혀 모르면서 단지 세상에 있는 교회의 좋지 않은 실태를 보아 알고 있었기에 교회 자체가 너무 싫었다.
1975년 겨울,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해였다. 어머니는 성경 공부하는 데가 있으니 꼭 한 번만 들어보라고 하셨다. 마지막 부탁이니 한번만 들어주면 다음부터는 교회에 나가자는 말을 않겠다고 하셨다. 그간 어머니의 교회 나가자는 말에 고통을 받던 터라, 효도 차원에서 한번쯤 들어줄까 생각도 들었다. 교회의 비리를 정확히 알고 나면 공격하기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도무지 교회 근처에라도 간다는 것 자체가 지옥에 가는 것처럼 괴로웠다. 그래서 어머니께는 성경 공부에 참석하겠다고 확정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내게 1차 경고를 하였다. 성경 공부에 참석하지 않으면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학교도 그만 두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면 절에 들어가 버리겠다면서 완강히 버텼다. 어머니의 1차 경고는 실패한 셈이었다.
2차 경고는 그야말로 극약 처방이었다. 내 방에 있던 불상이 갑자기 없어져 버린 것이다.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책상을 뒤엎어 버렸고 입에서는 거품이 일었다. 정신이 없었다. 발악을 하는 나에게 부모님도 동생도 불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 어머니께서는 교회에 가면 돌려주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 또 한번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지만, 이번에는 어머니의 처방에 제대로 걸려들고 말았다. 그 계약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몇 주 후 성경 공부가 시작되었다.
인생의 해답이 들어 있는 성경
장소는 광주천 옆에 위치한 한 건물이었다. 첫날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당연히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기도하는 그 자체가 가소롭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날은 어머니께 참석한다고 하고선 영화를 보러 나갔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우셨다. 그때 어머니가 불쌍해 보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도대체 어머니는 성경에서 무엇을 발견했기에 저러실까 싶었다. 교회는 그냥 왔다 갔다 하며 사람들이나 사귀는 사교장인 줄 알았는데,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도 좀 신선하게 다가왔다. 일단 참석하기로 약속했으므로 다시 착실하게 나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셋째 날은 내게 충격이었다.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강의를 들은 날이었다. 학교에서 이스라엘 역사에 관해 대충 배운 터라 조금은 알고 있었는데,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과 똑같았다. 성경이 달리 보였다. 성경이 보통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인생의 해답이 여기에 있을까 싶어 다음 날이 기대될 정도였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2천여 년 간 흩어져 있다가 세계대전에서 600만의 유태인이 죽고, 그랬던 그들이 다시 나라를 세우기까지. 이 모든 것이 나의 생각을 뒤흔들어 놓았다. 성경은, 사람이 멋이나 내려 들고 다니는 책인 줄 알았는데 보통 책이 아니었다. 성경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무언가 찾고 있던 상태였기에, 그런 나를 성경은 더욱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 집회에서 구원받지는 못했다. 단지 성경이 단순한 종교서적이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 마음에 죄가 있더라도 죄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마음에 있는 죄도 모두 죄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착하고 선한 줄 알았다. 이런 내 생각은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간 내가 가졌던 모든 개념이 흔들렸다.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생각이 압박해왔고 학교에 갈 때도 죽을까봐 차를 피해 다녔다.
나는 점점 죄의 괴로움에 빠져들었고 학교도 가기 싫을 정도로 살기 싫어졌다. 머리를 쥐고 방을 뒹굴며 괴로워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와 상의 후에 개인 상담을 받기로 하였다.
1976년 1월 겨울이었다. 광주 송정리에 있는 어떤 분을 찾아 가서 어린 학생들과 함께 앉아 성경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 곳에서 여러 성경 말씀들을 읽었는데 히브리서 10장 10절 말씀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내 마음의 죄까지 해결해 놓으셔서 내가 거룩함을 얻었다는 말씀에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께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찬송가 209장, ‘주의 말씀 첨 받은 날’을 불렀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거듭난 후 어머니께서는 광주천에 불상을 버렸다고 하셨다. 하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흔쾌히 잘하셨다고 하였다. 인생의 해답이, 역사의 해답이 성경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 당시엔 거의 매일,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교제의 자리에 참석해 날이 새도록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경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공부를 하지 않아 대학에 떨어져 군대에 다녀온 후 재수하여 대학을 갔다. 군대 가기 전까지도 인류와 이스라엘에 관한 여러 자료를 찾고 모아서 스크랩북을 만들어 성경을 전하는 일도 도왔다.
그런데 몇 개월 후 나는 다시 고통에 빠져들었다. 거듭나면 죄가 완전히 해결되어 없어진 줄 알았는데, 분명 구원받았는데도 내 안에 죄가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죄와의 싸움은 12년간이나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것은 구원까지 의심하게 했지만 성경을 보면 내가 받은 구원은 확실했다. 어느 날 로마서 6장, 7장, 8장을 보며 내게 두 인격이 있음을 발견했다. 내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신으로는 죄를 따르고 있었다.
또 <믿음에서 믿음으로>라는 책은 성경을 새롭게 보게 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구원받은 후에도 왜 마음속에서 죄가 일어나는지 10년이 넘어서야 말씀을 통해 정리가 되었다. 그동안 죄와의 싸움에 고통스러웠고 죄의 힘에 무너지는 내 자신을 저주했는데, 성경은 그 육신의 법을 인정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 난 성경을 붙들고 한없이 울었다. 주님의 사랑이 고마워, 운전 중에도 눈물이 범벅이 될 정도로 울곤 했다. 그때서야 요한일서의 말씀들이 눈에 보였다. 형제자매들과의 교제 속에, 주 안에 거하라는 말씀들. 그동안 죄와 싸운다고 말씀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야 눈에 보이다니.... 이렇게 많은 영광을 보여주시며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육에 거하기에 내게 아직 죄성이 있지만 그 죄성을 통해 주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신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
죄와의 싸움에서 해방되어 주님께 감사해 어쩔 줄 몰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3년 전 일이 되었다니, 참으로 세월이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지금도 가끔 내가 성경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진다. 하나님이 없는 나의 인생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몸 된 교회 안에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불러본다.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찬송가 324장)
불교에 심취했던 고교생
고등학교 1학년, 당시 나는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큰삼촌과 함께 절에 다니면서 참선을 하고 반야심경을 외웠다. 부처상 앞에서 날이 새도록 삼천배를 하였고, 방학 때면 참선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몇 시간 동안이나 암자에 앉아서 정신통일을 하였다.
불교는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인간 세상은 불공평하고 허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세상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렵게 살고, 요령 있게 적당히 속이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잘 사는 것 같았다.
당시의 생각을 시나 소설, 수필 등 글로 표현한 것만 두꺼운 공책으로 몇 상자나 된다. 친척 형과 누나는 내가 너무 염세적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나를 불교에 더욱 관심 갖게 했다. 내 방에는 부처상이 있었고, 아침에 학교가기 전에 예불, 저녁에 잠자기 전에도 참선을 수행하고 예불을 했다. 내 방은 인생의 참됨을 깨닫기 위한 신성한 곳이었기에 동생들도 내 방에는 들어올 수 없었다
그렇지만 교회는 너무 싫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사귀고 연애하는 곳으로만 생각되었고, 성경책은 그들이 겉으로 멋을 내려고 들고 다니는 책으로 여겨졌다. 육체적 고행과 정신적 수행을 통해 삶과 삼라만상을 깨달아 가는 불교가, 그래서 더욱 좋았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교회에 나가자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암으로 수술을 받을 즈음 작은이모를 통해 구원받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는데, 교회는 수련에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무던히도 싸웠다. 성경을 발로 차버리고 없애기도 했다. 찢어 버리기도 했다. 당시 어머니는 장남인 나 때문에 눈물로 보내셨다 한다. 나는 성경의 내용은 전혀 모르면서 단지 세상에 있는 교회의 좋지 않은 실태를 보아 알고 있었기에 교회 자체가 너무 싫었다.
1975년 겨울,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해였다. 어머니는 성경 공부하는 데가 있으니 꼭 한 번만 들어보라고 하셨다. 마지막 부탁이니 한번만 들어주면 다음부터는 교회에 나가자는 말을 않겠다고 하셨다. 그간 어머니의 교회 나가자는 말에 고통을 받던 터라, 효도 차원에서 한번쯤 들어줄까 생각도 들었다. 교회의 비리를 정확히 알고 나면 공격하기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도무지 교회 근처에라도 간다는 것 자체가 지옥에 가는 것처럼 괴로웠다. 그래서 어머니께는 성경 공부에 참석하겠다고 확정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내게 1차 경고를 하였다. 성경 공부에 참석하지 않으면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학교도 그만 두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면 절에 들어가 버리겠다면서 완강히 버텼다. 어머니의 1차 경고는 실패한 셈이었다.
2차 경고는 그야말로 극약 처방이었다. 내 방에 있던 불상이 갑자기 없어져 버린 것이다.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책상을 뒤엎어 버렸고 입에서는 거품이 일었다. 정신이 없었다. 발악을 하는 나에게 부모님도 동생도 불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 어머니께서는 교회에 가면 돌려주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 또 한번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지만, 이번에는 어머니의 처방에 제대로 걸려들고 말았다. 그 계약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몇 주 후 성경 공부가 시작되었다.
인생의 해답이 들어 있는 성경
장소는 광주천 옆에 위치한 한 건물이었다. 첫날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당연히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기도하는 그 자체가 가소롭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날은 어머니께 참석한다고 하고선 영화를 보러 나갔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우셨다. 그때 어머니가 불쌍해 보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도대체 어머니는 성경에서 무엇을 발견했기에 저러실까 싶었다. 교회는 그냥 왔다 갔다 하며 사람들이나 사귀는 사교장인 줄 알았는데,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도 좀 신선하게 다가왔다. 일단 참석하기로 약속했으므로 다시 착실하게 나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셋째 날은 내게 충격이었다.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강의를 들은 날이었다. 학교에서 이스라엘 역사에 관해 대충 배운 터라 조금은 알고 있었는데,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과 똑같았다. 성경이 달리 보였다. 성경이 보통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인생의 해답이 여기에 있을까 싶어 다음 날이 기대될 정도였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2천여 년 간 흩어져 있다가 세계대전에서 600만의 유태인이 죽고, 그랬던 그들이 다시 나라를 세우기까지. 이 모든 것이 나의 생각을 뒤흔들어 놓았다. 성경은, 사람이 멋이나 내려 들고 다니는 책인 줄 알았는데 보통 책이 아니었다. 성경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무언가 찾고 있던 상태였기에, 그런 나를 성경은 더욱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 집회에서 구원받지는 못했다. 단지 성경이 단순한 종교서적이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 마음에 죄가 있더라도 죄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마음에 있는 죄도 모두 죄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착하고 선한 줄 알았다. 이런 내 생각은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간 내가 가졌던 모든 개념이 흔들렸다.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생각이 압박해왔고 학교에 갈 때도 죽을까봐 차를 피해 다녔다.
나는 점점 죄의 괴로움에 빠져들었고 학교도 가기 싫을 정도로 살기 싫어졌다. 머리를 쥐고 방을 뒹굴며 괴로워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와 상의 후에 개인 상담을 받기로 하였다.
1976년 1월 겨울이었다. 광주 송정리에 있는 어떤 분을 찾아 가서 어린 학생들과 함께 앉아 성경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 곳에서 여러 성경 말씀들을 읽었는데 히브리서 10장 10절 말씀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내 마음의 죄까지 해결해 놓으셔서 내가 거룩함을 얻었다는 말씀에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께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찬송가 209장, ‘주의 말씀 첨 받은 날’을 불렀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거듭난 후 어머니께서는 광주천에 불상을 버렸다고 하셨다. 하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흔쾌히 잘하셨다고 하였다. 인생의 해답이, 역사의 해답이 성경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 당시엔 거의 매일,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교제의 자리에 참석해 날이 새도록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경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공부를 하지 않아 대학에 떨어져 군대에 다녀온 후 재수하여 대학을 갔다. 군대 가기 전까지도 인류와 이스라엘에 관한 여러 자료를 찾고 모아서 스크랩북을 만들어 성경을 전하는 일도 도왔다.
그런데 몇 개월 후 나는 다시 고통에 빠져들었다. 거듭나면 죄가 완전히 해결되어 없어진 줄 알았는데, 분명 구원받았는데도 내 안에 죄가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죄와의 싸움은 12년간이나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것은 구원까지 의심하게 했지만 성경을 보면 내가 받은 구원은 확실했다. 어느 날 로마서 6장, 7장, 8장을 보며 내게 두 인격이 있음을 발견했다. 내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신으로는 죄를 따르고 있었다.
또 <믿음에서 믿음으로>라는 책은 성경을 새롭게 보게 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구원받은 후에도 왜 마음속에서 죄가 일어나는지 10년이 넘어서야 말씀을 통해 정리가 되었다. 그동안 죄와의 싸움에 고통스러웠고 죄의 힘에 무너지는 내 자신을 저주했는데, 성경은 그 육신의 법을 인정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 난 성경을 붙들고 한없이 울었다. 주님의 사랑이 고마워, 운전 중에도 눈물이 범벅이 될 정도로 울곤 했다. 그때서야 요한일서의 말씀들이 눈에 보였다. 형제자매들과의 교제 속에, 주 안에 거하라는 말씀들. 그동안 죄와 싸운다고 말씀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야 눈에 보이다니.... 이렇게 많은 영광을 보여주시며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육에 거하기에 내게 아직 죄성이 있지만 그 죄성을 통해 주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신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
죄와의 싸움에서 해방되어 주님께 감사해 어쩔 줄 몰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3년 전 일이 되었다니, 참으로 세월이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지금도 가끔 내가 성경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진다. 하나님이 없는 나의 인생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몸 된 교회 안에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불러본다.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찬송가 32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