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항상 편견 없이 합리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했고, 스스로도 철저하게 검증된 이론에 바탕을 두고 판단하며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이런 나의 작은 철학이자 신념은 나의 종교관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나는 어떠한 종교도 편견을 가지고 보려 하지는 않았다. 종교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단지 그 종교에 구속된 사람들이 이루는 세계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어떠한 종교를 불문하고 거기에 예속된 종교인들이 그 종교의 틀 안에서 안정을 찾고 무신론자들보다 엄숙하고 정결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있어 참된 종교인은 절제된 금욕 생활을 하며 어려운 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었다. 사후에 있을 영원한 안식이나 불멸의 생명, 혹은 끝없는 고통 같은 것들은 무신론자들로 하여금 종교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이자 도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 내게 종교가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종교에 크게 관심을 갖고 살아오진 않았다. 그렇다고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신은 어떠한 형태로든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구원받은 지금의 아내를 만나 사귀면서도 아내의 종교 생활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아내의 종교 생활이 나를 크게 구속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내 종교적 관점으로는 아내의 종교가 반사회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인들 사이에서는 아내의 종교를 두고 논쟁한다고 들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관심사일 뿐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아내의 하나님도 다 같은 하나님일 뿐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나의 종교관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새벽에 벽을 치며 기도한다든지 울면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이 나로 하여금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저런 것일까 하는 의문과 조금의 반감을 갖게 했다.
그러던 중 2000년 12월로 기억된다. 아내와 함께 전도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 결혼을 앞두었던 터라 아내와 장모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러나 집회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도집회에서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했고, 어디에서 잠을 잤고 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지루했다는 기억밖에 없다.
그 후 아내와 결혼을 했고, 소중한 새 생명도 얻었으며,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모두 미국에서 학위를 준비 중이었기에, 미국에 온 후로는 아내도 바쁘고 힘들었는지 한동안 내게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기대한 것과 다르기는 했지만 학교에 다니는 정형화된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커져만 갔고 점점 불안감이 늘어 심리상태도 불안정해졌다. 급기야 불안감은 나의 일상생활이나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작은 일에도 언성이 높아지고 아내와의 사소한 다툼도 잦아만 갔다.
그러던 중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나에게도 다시 성경을 권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나를 위해 잠들기 전 침실에 말씀을 틀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인 듯하다. 하지만 당시 불안정했던 나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고 침실에서 들리는 말씀도 단지 성경의 한 구절일 뿐 내게 의미를 부여해 주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아내가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께 다시 의지하는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 아내가 매일 밤 틀어주는 말씀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물론 그때 아내가 침실에서 매일 밤 틀어 주었던 말씀도 기억나지 않는다.
2008년 12월이 되자 아내는 나와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LA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할 계획을 세웠고 일방적으로 나에게 통고해 왔다. 12월 초는 학교에서 매우 바쁜 시기였기 때문에 사실상 연말은 그때까지 못했던 학교일을 할 수 있는, 상투적인 표현을 빌자면, 나에게 있어서 황금 같은 시기였다. 하지만 갑자기 결정된 장모님의 방문과 맞물려 아내의 계획에 따라 나는 또 다시 기나긴 전도집회에 참석해야만 했다.
일주일이나 된다는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참고 견디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왜 나까지 꼭 참석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내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더욱이 나는 성경을 읽은 적도 별로 없고, 있다 해도 너무 오래되어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런 내게 일주일간의 모임 참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으며, 그것이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리라는 기대감도 없었다.
아무튼 나는 가족과 함께 전도집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나의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장모님과 아내 몰래, ‘아 지루하다. 어떻게 일주일을 견디나’ 하고 한숨만 쉬어야 했다. 장모님과 아내는 친절하게도, 말씀을 들을 때면 날 위해서 언제나 맨 앞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물론 강연을 듣는 중 졸고 싶어도 졸 수 없는 그런 자리였다.
젊은 강사님은 상당히 톡식(어디서 나온 표현인지 모르지만 내가 공부하는 곳에서 유학생들 사이에서 쓰는 표현으로, 굉장히 논리력 있고 개성이 있으며 자기 주장이 강하며 거침없는 표현으로 비평에 능한 사람을 표현할 때 씀)한 사람 같아 내가 졸기라도 한다면 분명 마이크에 대고 한 마디 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장모님이 언제나 정성스레 준비해 주시는 커피의 힘, 이 두 가지의 상승효과로 나는 언제나 뚜렷한 의식으로 강연을 들었다. 그러나 두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귀로만 들을 뿐 정작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와 장모님은 물론 그 누구도 내게 말씀을 열심히 들으라는 강요를 하지 않았기에 마음 편하게 앉아, 조금은 흥미 있게 들리는 강의를 들었다.
이렇게 이틀이 지났을 쯤 장모님은 내게 LA에 사시는 형제 분을 소개해 주셨다. 그분으로부터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듣겠거니 기대했던 나는, 예상 밖의 말씀을 들었다.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한 마디 말씀이 나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했다. ‘내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너무나 교만했던 것은 아닌가?’
그 이후로 더욱 집중해서 말씀을 듣게 되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성경책을 읽었다. 또 외국 오지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무엇 때문에 이분들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일까? 이분들은 무엇을 추구하고 계신 것일까? 이런 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구원이라는 것이 이분들에게는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가며 갈구하는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은 나에게 있어서 요원한 것이었다.
밝은 빛이 나를 비추고 “내가 널 구원하였노라” 하는 하나님의 근엄한 말씀을 듣는다든지, 아니면 꿈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약속 받든지, 아무튼 어떠한 식으로든 구원의 메시지를 기다렸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도 지난 2000년처럼 그냥 집으로 다시 돌아가겠거니 하고 체념하게 되었다.
그러던 날 위해 어머님과 아내는 상담을 신청해 주셨다.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계신 분이었다. 몇 시간에 걸친 그분과의 만남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양심적이지는 못했지만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깨끗하게 생활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분과 대화하며 성경을 읽는 동안, 나는 지난 시절의 죄를 생각하며 불안해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내가 이미 구원되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불안은 사라졌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단지 내가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선물을 거부하고 있었을 뿐이구나. 나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크지만 나는 이미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받았고 그저 하나님의 선물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구나. 간단하지만 명료한 진리였다. 단지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을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바쁘셨던 장모님을 집회 기간에 맞추어 미국에 보내 주셨고, 여유 없이 바빴던 나와 아내에게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으며, 강사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셨고, 나를 도와줄 여러 형제 분들을 만날 수 있게 준비해 주셨다.
아내와 장모님,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 그리고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쁜 마음으로 성경 구절과 함께 글을 마무리한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9:12-15)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항상 편견 없이 합리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했고, 스스로도 철저하게 검증된 이론에 바탕을 두고 판단하며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이런 나의 작은 철학이자 신념은 나의 종교관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나는 어떠한 종교도 편견을 가지고 보려 하지는 않았다. 종교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단지 그 종교에 구속된 사람들이 이루는 세계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어떠한 종교를 불문하고 거기에 예속된 종교인들이 그 종교의 틀 안에서 안정을 찾고 무신론자들보다 엄숙하고 정결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있어 참된 종교인은 절제된 금욕 생활을 하며 어려운 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었다. 사후에 있을 영원한 안식이나 불멸의 생명, 혹은 끝없는 고통 같은 것들은 무신론자들로 하여금 종교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이자 도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 내게 종교가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종교에 크게 관심을 갖고 살아오진 않았다. 그렇다고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신은 어떠한 형태로든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구원받은 지금의 아내를 만나 사귀면서도 아내의 종교 생활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아내의 종교 생활이 나를 크게 구속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내 종교적 관점으로는 아내의 종교가 반사회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인들 사이에서는 아내의 종교를 두고 논쟁한다고 들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관심사일 뿐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아내의 하나님도 다 같은 하나님일 뿐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나의 종교관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새벽에 벽을 치며 기도한다든지 울면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이 나로 하여금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저런 것일까 하는 의문과 조금의 반감을 갖게 했다.
그러던 중 2000년 12월로 기억된다. 아내와 함께 전도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 결혼을 앞두었던 터라 아내와 장모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러나 집회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도집회에서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했고, 어디에서 잠을 잤고 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지루했다는 기억밖에 없다.
그 후 아내와 결혼을 했고, 소중한 새 생명도 얻었으며,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모두 미국에서 학위를 준비 중이었기에, 미국에 온 후로는 아내도 바쁘고 힘들었는지 한동안 내게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기대한 것과 다르기는 했지만 학교에 다니는 정형화된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커져만 갔고 점점 불안감이 늘어 심리상태도 불안정해졌다. 급기야 불안감은 나의 일상생활이나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작은 일에도 언성이 높아지고 아내와의 사소한 다툼도 잦아만 갔다.
그러던 중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나에게도 다시 성경을 권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나를 위해 잠들기 전 침실에 말씀을 틀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인 듯하다. 하지만 당시 불안정했던 나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고 침실에서 들리는 말씀도 단지 성경의 한 구절일 뿐 내게 의미를 부여해 주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아내가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께 다시 의지하는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 아내가 매일 밤 틀어주는 말씀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물론 그때 아내가 침실에서 매일 밤 틀어 주었던 말씀도 기억나지 않는다.
2008년 12월이 되자 아내는 나와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LA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할 계획을 세웠고 일방적으로 나에게 통고해 왔다. 12월 초는 학교에서 매우 바쁜 시기였기 때문에 사실상 연말은 그때까지 못했던 학교일을 할 수 있는, 상투적인 표현을 빌자면, 나에게 있어서 황금 같은 시기였다. 하지만 갑자기 결정된 장모님의 방문과 맞물려 아내의 계획에 따라 나는 또 다시 기나긴 전도집회에 참석해야만 했다.
일주일이나 된다는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참고 견디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왜 나까지 꼭 참석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내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더욱이 나는 성경을 읽은 적도 별로 없고, 있다 해도 너무 오래되어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런 내게 일주일간의 모임 참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으며, 그것이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리라는 기대감도 없었다.
아무튼 나는 가족과 함께 전도집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나의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장모님과 아내 몰래, ‘아 지루하다. 어떻게 일주일을 견디나’ 하고 한숨만 쉬어야 했다. 장모님과 아내는 친절하게도, 말씀을 들을 때면 날 위해서 언제나 맨 앞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물론 강연을 듣는 중 졸고 싶어도 졸 수 없는 그런 자리였다.
젊은 강사님은 상당히 톡식(어디서 나온 표현인지 모르지만 내가 공부하는 곳에서 유학생들 사이에서 쓰는 표현으로, 굉장히 논리력 있고 개성이 있으며 자기 주장이 강하며 거침없는 표현으로 비평에 능한 사람을 표현할 때 씀)한 사람 같아 내가 졸기라도 한다면 분명 마이크에 대고 한 마디 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장모님이 언제나 정성스레 준비해 주시는 커피의 힘, 이 두 가지의 상승효과로 나는 언제나 뚜렷한 의식으로 강연을 들었다. 그러나 두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귀로만 들을 뿐 정작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와 장모님은 물론 그 누구도 내게 말씀을 열심히 들으라는 강요를 하지 않았기에 마음 편하게 앉아, 조금은 흥미 있게 들리는 강의를 들었다.
이렇게 이틀이 지났을 쯤 장모님은 내게 LA에 사시는 형제 분을 소개해 주셨다. 그분으로부터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듣겠거니 기대했던 나는, 예상 밖의 말씀을 들었다.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한 마디 말씀이 나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했다. ‘내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너무나 교만했던 것은 아닌가?’
그 이후로 더욱 집중해서 말씀을 듣게 되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성경책을 읽었다. 또 외국 오지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무엇 때문에 이분들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일까? 이분들은 무엇을 추구하고 계신 것일까? 이런 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구원이라는 것이 이분들에게는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가며 갈구하는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은 나에게 있어서 요원한 것이었다.
밝은 빛이 나를 비추고 “내가 널 구원하였노라” 하는 하나님의 근엄한 말씀을 듣는다든지, 아니면 꿈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약속 받든지, 아무튼 어떠한 식으로든 구원의 메시지를 기다렸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도 지난 2000년처럼 그냥 집으로 다시 돌아가겠거니 하고 체념하게 되었다.
그러던 날 위해 어머님과 아내는 상담을 신청해 주셨다.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계신 분이었다. 몇 시간에 걸친 그분과의 만남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양심적이지는 못했지만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깨끗하게 생활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분과 대화하며 성경을 읽는 동안, 나는 지난 시절의 죄를 생각하며 불안해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내가 이미 구원되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불안은 사라졌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단지 내가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선물을 거부하고 있었을 뿐이구나. 나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크지만 나는 이미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받았고 그저 하나님의 선물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구나. 간단하지만 명료한 진리였다. 단지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을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바쁘셨던 장모님을 집회 기간에 맞추어 미국에 보내 주셨고, 여유 없이 바빴던 나와 아내에게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으며, 강사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셨고, 나를 도와줄 여러 형제 분들을 만날 수 있게 준비해 주셨다.
아내와 장모님,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 그리고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쁜 마음으로 성경 구절과 함께 글을 마무리한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9: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