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소식

찬송과 함께해 온 나의 30년


사는 낙을 느끼지 못하고


저는 경북 봉화군 내산면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6남매의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교회라고는 집에서 오리 정도 떨어진 장터에 있는 예배당 하나가 전부였는데 크리스마스 때나 한 번씩 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밤에 등불을 들고 찬송을 하며 지나갔습니다. 그때 하도 많이 들어서 제 머릿속에 찬송가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외도로 집에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어머니는 혼자 가정을 꾸리셔야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대구에서 한 중학교의 교장으로 계셨던 외삼촌의 권유로 저희 가족은 대구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제 위로는 어머니가 공부를 시켰지만 집안형편 때문에 저는 공부를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던 미용 기술을 배워야 했습니다. 18세가 되면 미용 기술 면허증이 있으니 남의 업소에서 일할 수 있었는데, 집에서는 직접 해보라고 하셔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술자를 데리고 직접 하다 보니 집세에, 월급에 고생만 하다가 몇 년 뒤에는 기술자를 내보내고 저 혼자 하게 되었고, 그나마도 몇 년 뒤에는 가게를 접었습니다. 그 후 한 의류 회사 안에 있는 미용실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 기숙사에는 2,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머리 손질 없이는 외출하지 않던 때라 기숙사생들이 외출을 많이 할 때는 밤을 새워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곳에는 멋진 정원도 갖추어져 있었지만 그것을 감상할 만한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고달프고 바쁜 생활이었습니다. 한 주에 하루는 쉴 수 있어서 외출을 나갈 때면 조금 즐거웠지만 저녁이 되어 다시 돌아올 때면 ‘산다는 것이 이것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때 제 단골 중에 한 아가씨가 항상 포켓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곤 했습니다. 그것을 왜 그렇게 보느냐는 제 물음에 성경을 보면 밤새 일을 해도 부러울 것 없이 생활에 만족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때는 ‘설마 정말 그럴까’ 싶은 마음에 그 말을 지나쳐 버렸습니다.

 


무리 지어 오가는 기숙사생들에게 어딜 갔다 오느냐 물으면 교회에 다녀온다는 답을 듣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성경을 한 권 사서, 그 기숙사생들이 다니는 먼 곳의 교회는 못 가겠고 뒷문 바로 앞에 있는 교회에 몇 번 가 보았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목사님이 맨발로 뛰어 나와 악수를 하곤 했지만 공허한 제 마음은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 회사를 나와 다시 미용실을 개업한 지 얼마 후인 27세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계속 일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40년간 신혼여행 기간이었던 3일을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착실하고 알뜰한 남편과 저는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부터 미용실 일까지, 하루가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이 났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거울을 보면 어느덧 제 눈가에는 잔주름이 늘어갔습니다. 허무한 마음이 들어 남편에게 사는 낙이 없다고 하면, 자신은 책 한 권만 읽어도 즐겁다며 여자는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것이 낙이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은 공허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사는 곳 근처에 한 대학의 총장님이 이사를 오셨습니다. 3층짜리 하얀 집에 살고 좋은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삶은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집 부인도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 교수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 부인이 제 가게의 단골이 되어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을 부러워했던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아들이 셋 있는데 둘은 유학 가고 막내는, 자신이 외로워 대구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게 했다면서 자신은 고혈압에 신경통까지 있어 당시로서는 불치병에 가깝다는 말을 했습니다.

 


한번은 그 집 기사의 부인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총장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는 너무 늦으면 누가 볼까 싶어 술집의 뒷문으로 나온다며, 그렇게 집에 오면 항상 부인과 싸운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여고의 이사장이면서 교장으로 계시는 분의 부인이 제 가게의 단골이 되셨는데, 그 부인은 항상 맥이 없어 보였고 아픈 사람 같았습니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고생하던 옛날엔 사는 것이 참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살기 싫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밑바닥에서 생활하고 있어 그렇다지만, 지식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이 세상에는 희망이나 행복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던 중 가게의 한 손님으로부터 구원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밥을 할 때도 담배를 피워야 할 정도로 삶이 괴로웠는데 구원받은 후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이 세상에 그런 것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한 달 후 가게에 찾아온 다른 분께,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이라는 것을 얻고 나면 그렇게 좋다는데 정말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도 정말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저도 찾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고 하니, 그럼 가끔 밤에 한 번씩 성경 말씀을 들으러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시며 그 뒤로 세 번 정도 찾아오셨습니다.

 

 

네 번째로 오셨을 때는 손님이 남아 있어서 저녁도 먹지 못하셨는데도 아이를 봐주시면서까지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못가겠다고 하지 못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미용실 바로 옆에 잘 지어진 예배당도 있었는데 내가 뭐 하러 그 먼 곳까지 가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 한 번만 가자고 생각하고는 아이를 업고 따라 나섰습니다.

 


한 가정집에서 모였는데 전도하는 사람이 흑판에 어린아이의 모습부터 꿈 많은 학창시절, 중년, 노년, 그리고 마지막엔 해골의 모습을 그려놓고는 이것이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10) 라는 말씀을 보여 주었는데, 정말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그 후 그 분이 우리 동네에 자주 오셨고 남편에게도 성경 상담을 해 주셨습니다. 하루는 저희 언니가 왔기에 언니에게 함께 성경 말씀을 들어보자고 했더니 별로 반대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전도하는 분과 함께 언니네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펴 놓고 언니에게 상담을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그 옆에 앉아서 함께 듣고 있었는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는 말씀을 하시며 이야기를 펼치셨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마다 그것이 제 양심이 쌓이는 것 같았는데 그 말씀을 듣고는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이 예수님으로 인해 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무언지는 모르지만 밤에 잠도 오지 않고 좋아서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1972년의 일입니다.

 


구원받은 후 한 자매가 구원받았다고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계속 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튿날부터 새벽 4시쯤 일어나 신약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서를, 신약 성경을 몇 번이나 보며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의 귀한 피로 내 죄가 완전히 사해졌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찬송가를 펴보니 바로 내가 그 찬송가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얼마나 좋았는지 밤낮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틈틈이 길을 가다가도 사람이 없으면 찬송가를 불렀고 걸음은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가게에 손님이 없으면 나가서 사람들을 모아 저녁에는 성경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가게에 오는 손님들을 붙들고 성경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참된 구원에 대해 알려주었더니 밤새 잠도 못자고 고민하다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에게 찾아가 이야기해서, 옆 교회에서는 저희 가게에 가지 말라는 쪽지까지 돌렸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신약 성경을 읽으며 주님이 어떻게 살라고 하셨는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여러 말씀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니느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19-21)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했고, 지금의 내 생활은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사는 것이 아닌 것 같아 헌금하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자꾸 성경 이야기를 해서인지 손님은 점점 줄었고 어느 날은 이대로 가다가는 생활비도 벌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찬송가를 폈고 ‘공중 나는 새를 보라’는 찬송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에 읽었던,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0-31) 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먹고 입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천지는 변해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명심하고 살았습니다.

 

 



교제 안에서의 생활


대구 교회에 가려면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있는 엄마들은 아이와 함께 1층 방에서 라디오로 설교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 방에서 라디오로 듣는 말씀은 아이들의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았고 그간 복음에 관한 설교만 듣던 제게는 설교 내용이 어렵기만 했습니다.

 


몇 번을 오가다 더 이상 가기 싫어져 집에서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빨래를 하다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떤 일이라도 도울 수 있게 교회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교회 근처의 파출소로 전근하게 되었고 이사를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이사를 왔고 복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헌금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하고 있는 업이 소중하게 생각되었고 부지런하게 기쁜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때로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었지만 성경 말씀과 찬송가에서 답을 찾고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 후 교제 속에 불어 닥친 어려움을 형제자매들이 다 함께 극복해 가는 중에 제게도 숱한 힘겨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힘들 때마다 살려주시는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어느덧 아이들은 다 자라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제가 구원받았을 때 바랐던 것은 제 아이들이 구원받고 교제 가운데서 자라나 구원받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 둘 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배우자를 데려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반대를 해도 남편이 허락을 하니 저는 아무 힘이 없었지요.

 


아이들이 구원받은 배우자를 맞이하면 좋겠다는 제 소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해 성경탐구모임에도 함께 갈 가족이 아무도 없어 저 혼자인 것이 너무 비참하고 형편없어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무얼 하며 살아왔는지,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자신을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는 찬송가가 떠오르면서, ‘주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주님이 하십시오’ 하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전에는 이웃 자매의 자녀가 믿지 않는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 결혼식장에도 가지 않았는데, 그간 제가 너무 교만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모든 성도들이 저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남편의 구원도 확실해졌고, 교제 속에서도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저희 친정 식구들도 육남매 중 네 명이 구원받았습니다. 제 아이들 역시 주님의 약속 안에 있기에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주님께 맡겼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해외의 현장에도 언젠가 남편과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힘들 때마다 저를 일으켜 주었던 찬송은 지금도 열심히 부르고 있습니다. 잠들기 전에도 마음에 떠올리며 소리 없이 불러 보는데 무척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까지 많은 날들을 허비하지 않고 살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두서없는 글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