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3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젊음을 무종교로 보내고, 65세가 되어서야 겨우 하나님을 알고 2007년 5월 4일에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교제 속에서는 갓난아이와 같은 이 늙은이가 이제 겨우 구원받아 한없이 부끄럽지만, 주위 여러 형제자매들은 제가 복을 받았다며 축하해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다는 마음에 제 이야기를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제사를 거부하는 아내
37년 전, 제 인생의 동반자가 된 집사람과의 약혼 시절의 일입니다. 어느 날 데이트 중에 아내는 제게 종교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종교에 대해서는 무지했던지라 부모님이 유교를 가까이하셨음에도 믿음은 자유니 각자 알아서 해도 좋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종교 문제는 제게 큰 벽으로 다가왔고 새삼 그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해결 방법은 없었습니다. 매년 어김없이 돌아오는 기일, 설, 추석 등에는 차례상 앞에서 으레 냉전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5남매, 그리고 저까지 7대 1로 집사람을 공격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 후 모친이 별세하셨습니다. 장남이라는 위치 때문에 남매들과 친척들의 체면을 보느라 저는 계속해서 아내에게 제사를 강요했습니다. 어떨 때는 음식만이라도 차려달라고 달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한해 한해를 지내왔으나 해가 거듭될수록 아내는 더욱 강하게 제사를 거부했고 3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2006년 가을부터 아내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병원, 개인 병원, 한방 병원, 아내가 진료받기 원했던 의원까지 갈만한 곳은 다 가보았으나 이상이 없다고만 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아내는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겨우 해를 넘기고 2007년 구정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아내가 심하게 아픈데도 차례상을 부탁했습니다. 아내는 매우 완강하게, 이제 죽더라도 못 하겠다며 거절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차례상 전문 업소에 의뢰하여 직접 떡국을 끓여 가며 차례상을 차렸습니다. 물론 아내와는 여전히 냉전 상태였습니다.
제게는 아들 둘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제사를 지낼 때마다 아빠 엄마 눈치를 보며 절과 기도를 번갈아 하더니, 자라면서는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갔고, 각각 중학교와 초등학교 상급반이 된 어느 날 둘 다 구원받았다며 이제는 차례상 앞에서 기도를 하더군요. 그래도 자식들에게는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날도 차례상 앞에 절하는 제 뒤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두 아들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보름 정도 지나 아내는 다시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집안 분위기는 갈수록 우울해졌고, 식구들 모두가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냈습니다. 4월 초의 어느 날, 저는 이 제사 문제로 아내와의 사이가 냉랭해지고 아내의 마음을 이토록 아프게 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가끔씩 떠오르는 어떤 분과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2001년, 직장 퇴직 후 4개월 정도 지났을 때 아내와 함께 유람선에서 어떤 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계신 분이었는데 제게 맛있는 양고기를 사 주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미국 LA에 환경 좋은 리조트가 있으니 구경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미국까지 못 간다면 제주도에 있는 목장을 구경하고 성경 말씀도 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는데, 저는 아직 믿음이라는 것을 대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씀 드리고 헤어졌습니다. 그 후 종종, 차를 타려고 돌아서 가시는 그분의 뒷모습과 제게 인자하게 말씀해 주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만남과 대화들을 떠올리며, 아내가 이러다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아내를 따라 교회라는 곳에 가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아내에게 제 생각을 말했더니 아내는 말할 수 없이 기뻐하며 제 눈, 코, 입 할 것이 수없이 입맞춤을 해 주었습니다. 이제껏 그토록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음식을 준비하여 부모님의 묘소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다음날 부모님 묘소에 찾아가 준비한 음식을 놓고 이제 아내가 믿고 있는 교회에 다니겠다고, 용서를 빌고 돌아왔습니다.
구원받고 새것을 얻었네
우선 인근에 있는 수지 교회부터 나갔습니다. 그리고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열리는 제주도 전도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아들들은 잘 다녀오라며 힘을 실어주었고, 처형과 처제들도 아주 좋아했으며 처형 부부는 직접 제주도까지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무언가가 자꾸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비행기는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제주도에 착륙하였습니다. 또 도착한 그날 밤은 갑자기 말을 못 할 정도로 목이 아팠습니다. 3일째 되는 날에는 설교를 빠짐없이 듣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 12시가 넘어서부터 열이 나고 구토를 하더니, 새벽 2시경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두통이 심해졌습니다.
아내와 처형,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밤잠도 자지 않고 저를 간호해 주셨습니다. 119에 연락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지만 저는 여기서 지면 아내와 같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오기가 발동해 오직 제 의지로 참고 견뎠습니다. 그러다 깜박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아침 5시였습니다. 거짓말같이 아픔이 사라져 있었고, 몸을 씻고 나니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4일째 되는 날의 설교는 인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2천 년 전에 이미 우리의 죄가 다 사하여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그렇다면 과거의 죄는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미래에 지을 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처형에게 물어보아도 답을 주지 않았고 그저 다음 설교를 잘 들어보라고만 하였습니다.
그날 밤, 머릿속이 복잡하여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죄라 하면 물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죄들을 많이 지어왔지만 사실 저는 어머니에게 지은, 정말 가슴 아픈 죄가 있었습니다.
제가 36살 되던 해, 저는 어머니가 계신 고향 쪽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유흥을 즐기다 보니 그만 출장비와 비상금을 다 소진하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혼자 사시던 어머니가 장롱 속에 한 푼 두 푼 어렵사리 모아오신 돈을 빌렸는데, 얼마 후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돈을 돌려드리지 못한 죄 때문에 항상 괴로웠으며, 아마 그 아픈 마음이 지워지지 않아 제사에 더욱 열중했던 것 같습니다.
집회 5일째 되는 마지막 날 저녁,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44:22) 는 말씀을 듣고 난 뒤 강사께 그간 궁금했던 미래의 죄에 대하여 여쭈었습니다. 강사는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전 3:15) 라는 말씀을 해 주셨고, “울어도 못하네” (찬송가 343장) 라는 찬송가를 부르는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환희의 눈물이 참을 수 없이 흘렀습니다.
그날 밤, 자신 있게 침례를 받고 다음 날 집에 도착해 제일 먼저, 제게 유람선에서 이야기를 해 주셨던 분을 찾아 인사드리고 구원받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래전부터 아내에게 왜 그렇게 교회를 먼 곳으로 다니느냐며 구박했던 지난 일도 추억하며 모두 말씀드리고 나니 모든 것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이후에도 종종 그 분을 뵐 때마다 제게 주변 사람들을 잘 만나야 한다며 걱정해 주시곤 하셨는데 추석이 지난 어느 날, 제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한 회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직장은 제가 그곳에 필요해서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저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제 옛 직장 동료들이나 학교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저를 목사님, 집사님이라며 놀려대고 가방 속에 무엇이 들었나 확인하기도 했고, 술 마시자는 친구들의 숱한 유혹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 직장이 제게 얼마나 든든한 방어벽이 되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와 지혜를 주시리라는 마음으로
구원받은 지 1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간 국내외 성경탐구모임에도 참석하고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현장인 필리핀과 이번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하러 미국에도 다녀왔습니다. 이번 성경탐구모임은 제게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의 자세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전 직원이 출근 시간을 20분 앞당겨 특별한 일이 없는 한 40분간 성경책을 읽습니다. 덕분에 성경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유 강사님의 설교는 빠짐없이 듣고 있는데, 들을 때마다 참 이해가 잘 되도록 성경을 전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번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에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 17:11) 와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 8:7) 는 두 주제 성구를 놓고 고심했다며 설교를 시작하셨는데, 맹인이 옷을 벗으면 부끄러울지 안 부끄러울지를 질문하셨습니다. 물론 맹인도 옷을 벗으면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그것은 보는 것과는 상관없이 피가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으면 죽으리라 한 선악과를 아담이 먹고 그 죄가 피를 타고 흘러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되었으나, 하나님은 여자의 몸에서 잉태한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여 그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큰 사랑을 우리는 값을 치르지 않고 단번에 받았으니 우리의 피를 더욱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받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있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가 복음을 전하는 데 힘써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앞으로 말씀과 성경에 더욱 열중하다 보면 내게, 어느 누구에게라도, 나를 놀리고 유혹하던 친구들에게도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와 지혜가 생기리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교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합니다.
덧붙이자면, 저희 집에서와 같이 제사로 고통받고 있는 가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 모시는 것은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인간의 도리이자 효도이지만 돌아가시고 난 뒤 육체는 썩어지고 없는데도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영혼을 구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면 ‘차례상 앞에 절하며 허송세월을 보냈구나’ 하고 깨닫게 될 뿐 아니라 가정의 화평을 다시 찾고 하나님 나라를 약속 받게 되니 이보다 더한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제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시라고 거듭 말씀드립니다.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3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젊음을 무종교로 보내고, 65세가 되어서야 겨우 하나님을 알고 2007년 5월 4일에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교제 속에서는 갓난아이와 같은 이 늙은이가 이제 겨우 구원받아 한없이 부끄럽지만, 주위 여러 형제자매들은 제가 복을 받았다며 축하해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다는 마음에 제 이야기를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제사를 거부하는 아내
37년 전, 제 인생의 동반자가 된 집사람과의 약혼 시절의 일입니다. 어느 날 데이트 중에 아내는 제게 종교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종교에 대해서는 무지했던지라 부모님이 유교를 가까이하셨음에도 믿음은 자유니 각자 알아서 해도 좋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종교 문제는 제게 큰 벽으로 다가왔고 새삼 그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해결 방법은 없었습니다. 매년 어김없이 돌아오는 기일, 설, 추석 등에는 차례상 앞에서 으레 냉전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5남매, 그리고 저까지 7대 1로 집사람을 공격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 후 모친이 별세하셨습니다. 장남이라는 위치 때문에 남매들과 친척들의 체면을 보느라 저는 계속해서 아내에게 제사를 강요했습니다. 어떨 때는 음식만이라도 차려달라고 달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한해 한해를 지내왔으나 해가 거듭될수록 아내는 더욱 강하게 제사를 거부했고 3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2006년 가을부터 아내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병원, 개인 병원, 한방 병원, 아내가 진료받기 원했던 의원까지 갈만한 곳은 다 가보았으나 이상이 없다고만 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아내는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겨우 해를 넘기고 2007년 구정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아내가 심하게 아픈데도 차례상을 부탁했습니다. 아내는 매우 완강하게, 이제 죽더라도 못 하겠다며 거절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차례상 전문 업소에 의뢰하여 직접 떡국을 끓여 가며 차례상을 차렸습니다. 물론 아내와는 여전히 냉전 상태였습니다.
제게는 아들 둘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제사를 지낼 때마다 아빠 엄마 눈치를 보며 절과 기도를 번갈아 하더니, 자라면서는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갔고, 각각 중학교와 초등학교 상급반이 된 어느 날 둘 다 구원받았다며 이제는 차례상 앞에서 기도를 하더군요. 그래도 자식들에게는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날도 차례상 앞에 절하는 제 뒤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두 아들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보름 정도 지나 아내는 다시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집안 분위기는 갈수록 우울해졌고, 식구들 모두가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냈습니다. 4월 초의 어느 날, 저는 이 제사 문제로 아내와의 사이가 냉랭해지고 아내의 마음을 이토록 아프게 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가끔씩 떠오르는 어떤 분과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2001년, 직장 퇴직 후 4개월 정도 지났을 때 아내와 함께 유람선에서 어떤 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계신 분이었는데 제게 맛있는 양고기를 사 주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미국 LA에 환경 좋은 리조트가 있으니 구경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미국까지 못 간다면 제주도에 있는 목장을 구경하고 성경 말씀도 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는데, 저는 아직 믿음이라는 것을 대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씀 드리고 헤어졌습니다. 그 후 종종, 차를 타려고 돌아서 가시는 그분의 뒷모습과 제게 인자하게 말씀해 주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만남과 대화들을 떠올리며, 아내가 이러다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아내를 따라 교회라는 곳에 가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아내에게 제 생각을 말했더니 아내는 말할 수 없이 기뻐하며 제 눈, 코, 입 할 것이 수없이 입맞춤을 해 주었습니다. 이제껏 그토록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음식을 준비하여 부모님의 묘소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다음날 부모님 묘소에 찾아가 준비한 음식을 놓고 이제 아내가 믿고 있는 교회에 다니겠다고, 용서를 빌고 돌아왔습니다.
구원받고 새것을 얻었네
우선 인근에 있는 수지 교회부터 나갔습니다. 그리고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열리는 제주도 전도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아들들은 잘 다녀오라며 힘을 실어주었고, 처형과 처제들도 아주 좋아했으며 처형 부부는 직접 제주도까지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무언가가 자꾸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비행기는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제주도에 착륙하였습니다. 또 도착한 그날 밤은 갑자기 말을 못 할 정도로 목이 아팠습니다. 3일째 되는 날에는 설교를 빠짐없이 듣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 12시가 넘어서부터 열이 나고 구토를 하더니, 새벽 2시경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두통이 심해졌습니다.
아내와 처형,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밤잠도 자지 않고 저를 간호해 주셨습니다. 119에 연락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지만 저는 여기서 지면 아내와 같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오기가 발동해 오직 제 의지로 참고 견뎠습니다. 그러다 깜박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아침 5시였습니다. 거짓말같이 아픔이 사라져 있었고, 몸을 씻고 나니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4일째 되는 날의 설교는 인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2천 년 전에 이미 우리의 죄가 다 사하여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그렇다면 과거의 죄는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미래에 지을 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처형에게 물어보아도 답을 주지 않았고 그저 다음 설교를 잘 들어보라고만 하였습니다.
그날 밤, 머릿속이 복잡하여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죄라 하면 물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죄들을 많이 지어왔지만 사실 저는 어머니에게 지은, 정말 가슴 아픈 죄가 있었습니다.
제가 36살 되던 해, 저는 어머니가 계신 고향 쪽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유흥을 즐기다 보니 그만 출장비와 비상금을 다 소진하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혼자 사시던 어머니가 장롱 속에 한 푼 두 푼 어렵사리 모아오신 돈을 빌렸는데, 얼마 후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돈을 돌려드리지 못한 죄 때문에 항상 괴로웠으며, 아마 그 아픈 마음이 지워지지 않아 제사에 더욱 열중했던 것 같습니다.
집회 5일째 되는 마지막 날 저녁,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44:22) 는 말씀을 듣고 난 뒤 강사께 그간 궁금했던 미래의 죄에 대하여 여쭈었습니다. 강사는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전 3:15) 라는 말씀을 해 주셨고, “울어도 못하네” (찬송가 343장) 라는 찬송가를 부르는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환희의 눈물이 참을 수 없이 흘렀습니다.
그날 밤, 자신 있게 침례를 받고 다음 날 집에 도착해 제일 먼저, 제게 유람선에서 이야기를 해 주셨던 분을 찾아 인사드리고 구원받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래전부터 아내에게 왜 그렇게 교회를 먼 곳으로 다니느냐며 구박했던 지난 일도 추억하며 모두 말씀드리고 나니 모든 것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이후에도 종종 그 분을 뵐 때마다 제게 주변 사람들을 잘 만나야 한다며 걱정해 주시곤 하셨는데 추석이 지난 어느 날, 제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한 회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직장은 제가 그곳에 필요해서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저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제 옛 직장 동료들이나 학교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저를 목사님, 집사님이라며 놀려대고 가방 속에 무엇이 들었나 확인하기도 했고, 술 마시자는 친구들의 숱한 유혹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 직장이 제게 얼마나 든든한 방어벽이 되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와 지혜를 주시리라는 마음으로
구원받은 지 1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간 국내외 성경탐구모임에도 참석하고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현장인 필리핀과 이번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하러 미국에도 다녀왔습니다. 이번 성경탐구모임은 제게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의 자세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전 직원이 출근 시간을 20분 앞당겨 특별한 일이 없는 한 40분간 성경책을 읽습니다. 덕분에 성경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유 강사님의 설교는 빠짐없이 듣고 있는데, 들을 때마다 참 이해가 잘 되도록 성경을 전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번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에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 17:11) 와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 8:7) 는 두 주제 성구를 놓고 고심했다며 설교를 시작하셨는데, 맹인이 옷을 벗으면 부끄러울지 안 부끄러울지를 질문하셨습니다. 물론 맹인도 옷을 벗으면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그것은 보는 것과는 상관없이 피가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으면 죽으리라 한 선악과를 아담이 먹고 그 죄가 피를 타고 흘러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되었으나, 하나님은 여자의 몸에서 잉태한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여 그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큰 사랑을 우리는 값을 치르지 않고 단번에 받았으니 우리의 피를 더욱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받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있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가 복음을 전하는 데 힘써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앞으로 말씀과 성경에 더욱 열중하다 보면 내게, 어느 누구에게라도, 나를 놀리고 유혹하던 친구들에게도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와 지혜가 생기리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교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합니다.
덧붙이자면, 저희 집에서와 같이 제사로 고통받고 있는 가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 모시는 것은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인간의 도리이자 효도이지만 돌아가시고 난 뒤 육체는 썩어지고 없는데도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영혼을 구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면 ‘차례상 앞에 절하며 허송세월을 보냈구나’ 하고 깨닫게 될 뿐 아니라 가정의 화평을 다시 찾고 하나님 나라를 약속 받게 되니 이보다 더한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제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시라고 거듭 말씀드립니다.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