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소식

점점 크게 느껴지는 주님의 사랑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2)



2004년 2월 7일, 이 말씀으로 구원받은 지 올해로 만 7년이 되었습니다.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고 내 죄를 사해주신 복음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사랑이 중심 된 교제와 교회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제 또래의 교회 친구들이 대부분 구원받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 복음을 깨달은 것과 달리 저는 가족들보다 먼저 구원받고 교제에 참여했습니다. 처음에는 교제라는 단어가 너무나 생소했는데, 이제는 한 떡을 먹은 사람으로서 다른 형제자매들과 같이 교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저는 그리 잘난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7년 동안 헛살지 않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교제 속에 함께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집이 충북 옥천인 저는 학교 때문에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충남 예산에서 자취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는데, 마지막 학기에 논문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논문 쓰기를 중단하고 교수님께 다음 학기에 새로운 주제로 논문을 쓰겠다고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결정을 내린 후 저의 생활은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같이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갔던 동기들은 모두 다 정상적으로 졸업을 할테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고 뒤떨어지게 되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02년 겨울 동안 자취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연구실에도 밤에만 가는 생활을 하면서 대학 친구들을 비롯해 대학원 동기들과 교수님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몇 달 동안이나 하면서 유일하게 한 일은 그동안 자취방에 그동안 모아두었던 책을 읽는 것이었고, 책들 중에는 성경책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성경책을 읽는 저의 마음은 하나님을 믿는 자의 마음이 아니라 그냥 지식을 알아가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읽는 중에도 저를 흔드는 구절이 있었는데, 마태복음 7장의 말씀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18절부터 20절의 말씀이 꼭 제게 하는 말 같았습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에서 나쁜 열매를 맺어서, 그 열매로 그 나무를 판단하여 처리한다’는 내용은 꼭 그 당시의 저를 빗대어 하는 말 같았습니다. 지금 이대로 주저앉아 버리면 나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지금까지 공부한 것 모두 쓸모없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학교 연구실에도 정상적으로 나갔습니다. 돈도 필요했기에 아르바이트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잘 구해지지 않다가, 유일하게 된 곳이 자취집 근처의 편의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 사장님과 점장님이 저를 하나님께로 인도해주신 분들입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처음 며칠 동안은 사장님이 일을 가르쳐 주셨는데, 조금의 여유가 날 때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종교 이야기가 나왔고 제게 종교가 있느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그런 것 안 키워요.’라고 장난스럽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죄송한 마음이 들어 저의 의견을 말씀드렸습니다. 우주 만물을 만든 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것이 하나님인지 부처님일지 또는 알라일지는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장님과 저 사이에 오간 신에 대한 이야기의 처음이고, 제게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복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그런 대화를 한 것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한 달 정도 뒤에 사장님의 부인 분이 물건을 사러 오셔서 제게 사람의 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는 답도 주지 않은 채 그냥 가버리셨습니다. “상임 씨는 신은 있다고 믿고 착하게만 살면, 신은 그것을 판단해서 좋은 곳에 가게 해준다고 생각하지? 그러면 사람이 어디까지 선행을 해야 착하게 산다고 할 수 있는 거야? 그 확실한 기준이 있어?”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저 자신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나름대로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마냥 착한 일만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더 이상의 언급은 없으셨기에 얼마 동안은 조용히 지냈습니다. 몇 달을 그곳에서 계속 일하다가 논문에 더 치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달 정도의 말미를 두고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혹시라도 사장님 가족 분들이 귀찮게 ‘교회에 나가자.’고 할 것 같아 궁금한 점이 있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어느 날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점장님께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그랬더니 점장님은 기다렸다는 듯 많은 이야기기를 들려주시며 여러 가지 자료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때의 제 심정은 한마디로 ‘아, 괜히 물어봤다.’였습니다.



그렇지만 들려주신 이야기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한자의 기원이 성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료를 보면서 무척 신기해서 성경을 읽을 때도 예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읽게 되었고, 세계사 책과 역사 부도를 옆에 놓고 역사 시간에 배운 것과 비교하며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던 날 점장님께서 <꿈 같은 사랑>과 <영혼의 닻>이라는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영혼의 닻>에는 아흔아홉 가지의 선을 행하다 한 가지의 악을 행하면 아흔아홉 가지의 선이 무가 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제게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사물을 판단하는 데 있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기준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꼭 ‘왜?’라는 물음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생각하고 궁금해 하다 결국은 너무도 혼란스러워 학교를 가다 말고 편의점의 사장님을 찾아가 제 상태를 말씀드렸습니다. 사장님은 반가워하시며, 제가 혼자 고민하고 궁금해 하던 것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저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장님의 가족이 부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아르바이트는 그만두었어도 주말이나 일손이 필요할 경우 가끔씩 편의점에 나가 일을 도왔는데, 그때마다 기회가 되면 점장님에게 제가 알고 있는 성경의 지식 중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이것저것 물었고, 점장님이 해주신 답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점장님은 본인의 지식이 아닌 성경 구절을 찾아가면서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말씀의 힘으로 저를 이끌어 주려는 노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게 많은 도움을 준 자료가 있는데, 그것은 편의점 카운터 서랍에 항상 비치된 자료들 중의 하나로 1994년도에 대학생들이 만든 스크랩 자료였습니다. 그 자료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의심하고 믿지 않았던 사실들을 성경 구절로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구약 시대의 사람이 몇 백 살을 살 수 있었던 이유와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분이라는 것, 그리고 진화론의 비논리성 등입니다. 소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지식의 함정에서 이끌어 내어줄 수 있는 자료였습니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사장님과 점장님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2004년 2월 2일부터 8일까지 열렸던 천안 전도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집회에 참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저는 이미 사장님과 점장님을 통해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데 그렇게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회 마지막 날 말씀을 듣던 중 이사야 44장 22절의 말씀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다음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들었던 생각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구원받았는데 참으로 덤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절히 구원받기를 바랐던 마음만큼 날아갈 것 같거나 제가 확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얼마나 감사한지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은 형제자매들과의 교제 속에서 성경 공부도 하고 교제의 역사를 알아가고, 또 저 또한 교제 속에서의 여러 일에 동참하면서부터였습니다.



요즘은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강해를 다시 읽고 듣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정말 감사해서입니다. 그리고 1년 전부터 가장 간절히 바라며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의 가정에도 저에게 있었던 일이 분명히 일어날 것을 상상만 해도 저는 행복합니다. 이 꿈 같은 일이 정말 현실이 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겠지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