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5월 1일 밤 10시 55분. 인천 교회의 어느 기둥에 기대고 앉아 있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 테이프에서 “이제 이번 전도집회의 마지막 복음 구절을 읽겠습니다.” 라고 권 목사님이 말씀하셨을 때, 나는 구원받아야 된다는 마음조차 포기한 채 ‘이제 마지막이라는데 어쩌나....’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내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2)
나는 ‘그럼 내 죄가 없잖아!’ 하며 중얼거렸다. 말로 표현 못할 기쁨이 밀려왔다. 입이 귀에 걸릴 만큼 정말 기뻤고, 발이 땅에서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나를 억누르고 있던 수많은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구절을 듣는 순간 내게 닥친 변화였다.
그때는 구원에 대해 잘 몰라 혹시 이런 것이 구원일까 싶었는데, 그 후 상담을 통해 내가 구원받았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날 함께 말씀을 듣다가 구원받은 자매 두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말씀을 접한 지 8년 만에, 다른 한 분은 15년 만에 구원받았다며 기뻐하셨다. 그분들이 구원받기까지 걸린 시간에 비하면 나는 쉽게 구원받은 편이다. 불과 넉 달 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접하고 구원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눈물어린 구원이었다.
마음이 가난한 상태에서 얻은 구원
나에게는 나보다 5분 먼저 태어난 쌍둥이 형이 있다. 요즘도 형이 사는 곳에 가면 형의 장모님께서 나를 형으로 착각하시곤 한다. 나에게 이 귀한 복음을 전해준 것은 바로 그 쌍둥이 형이었다.
재수하던 시절, 나는‘지구는 무엇이며 우주는 무엇일까! 인생은 무엇이며 인간답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고 연구했었다. 자선사업가가 되고픈 꿈을 꾸다가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병장을 달자마자 어머니가 위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 최대한 휴가를 많이 나오려 했는데, 휴가 나올 때마다 보아야 했던 것은 눈에 띄게 야위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어머니 대신 나를 죽게 해달라는 기도도 해보았다. 그러나 결국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일은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구원받으시고 돌아가셨는데,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영혼은 무엇이고, 천국과 지옥은 무엇인가’하는 생각들로 번민하였다. 다시 휴가를 나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얼마 뒤 제대를 했다.
1월에 제대를 한 후 한창 사회생활에 몰두할 무렵, 쌍둥이 형이 “2월에 서울 교회에서 전도집회가 있으니 같이 가자. 군대 가기 전에 간다고 약속했잖아.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라는 말을 했다. 나는 무엇인지 모를 힘에 이끌려 서울 교회로 갔다. 교회에 도착한 순간 마음이 평안해져 왔다. 가운을 입지 않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설교 시작 전 열심히 찬송가를 부르는 찬양대원들이 초면인데도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낯선 곳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져 의심은커녕 평안한 마음으로 집회 말씀을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안도감이 구원받는 데에 장벽이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전도집회 말씀은 정말 중요한 내용이었다. 나는 말씀을 제대로 듣기 위해 직장에서 퇴사했지만, 그래도 집중이 되지 않아 집을 나와 교회에서 숙식을 하며 말씀을 들었다. 결국 큰형님이 나를 찾아와 억지로 데려가려는 통에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나는 열흘간이나 교회에 머물면서 끝까지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해 설명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는 오히려 듣기가 싫어졌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성경은 사실이라는 것이나, 죄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힘들게 말씀을 들었는데도 막상 구원받지 못하고 나니 ‘회사도 그만두고 집을 떠나서까지 들었는데....’ 하며 억울한 심경이 되었다.
그 뒤 한 형제님께 부탁하여 구원받은 형제자매들이 일하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부탁해서 들어간 회사였지만 그곳에서 나는 혼자 구원받지 못한 미운 오리 새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돈도 없고, 마음도 가난해진 상태였다. 그때서야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참석한 인천 교회의 전도집회에서 구원받았던 것이다.
주님의 원하시는 것을 바라보며
구원받은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지나온 시간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열심히 산 것인지 극성맞았던 것인지, 지내오면서 여러 일들을 맡았었다. 청년 시절에는 직장 일보다 청년 활동에 더 치중해서 문제가 될 때도 있었다. 성경탐구모임 때도 늘 끝까지 남아 일을 했고, 함께 일하던 자매와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 후 구역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하며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그 모든 일들이 좋아서 맡은 일만은 결코 아니었다. 순종하는 마음에서 받아들였던 것이었지만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서로의 마음이 다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잘 견디고 남아 여전히 눈에 띄는 성도들을 볼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의 잘못된 언행으로 마음이 다치거나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를 형제자매들이 있다면 사과드리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헌금에 대해서도 그러한 마음이다. 구원받은 후 십일조는 즐거이 내게 된 반면 헌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못하고 내 형편만 생각하며 힘들어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요즘은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최근 더 많은 형제자매들이 <꿈 같은 사랑>을 통해 모두가 하나님의 꿈 같은 사랑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교제하고 있다. 나의 추진력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겠지만 나 또한 일이 주어질 때 육신적으로는 정말 하기 싫을 때가 많다. 그러나 순종하고 받아들이면 모든 지체들이 함께 동참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주님은 내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용기와 힘, 방법, 추진력이 되어 주셨다.
나는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데, 아이들끼리 잘 지내는 것을 보는 것이 제일 기쁘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서로를 한 몸, 한 지체라고 느끼고 서로 사랑하는 것 말이다. 요즘은 주변에 힘들어하는 형제자매들에게 마음이 간다. 전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조금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모든 활동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갔을 때는 추억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
1990년 5월 1일 밤 10시 55분. 인천 교회의 어느 기둥에 기대고 앉아 있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 테이프에서 “이제 이번 전도집회의 마지막 복음 구절을 읽겠습니다.” 라고 권 목사님이 말씀하셨을 때, 나는 구원받아야 된다는 마음조차 포기한 채 ‘이제 마지막이라는데 어쩌나....’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내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2)
나는 ‘그럼 내 죄가 없잖아!’ 하며 중얼거렸다. 말로 표현 못할 기쁨이 밀려왔다. 입이 귀에 걸릴 만큼 정말 기뻤고, 발이 땅에서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나를 억누르고 있던 수많은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구절을 듣는 순간 내게 닥친 변화였다.
그때는 구원에 대해 잘 몰라 혹시 이런 것이 구원일까 싶었는데, 그 후 상담을 통해 내가 구원받았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날 함께 말씀을 듣다가 구원받은 자매 두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말씀을 접한 지 8년 만에, 다른 한 분은 15년 만에 구원받았다며 기뻐하셨다. 그분들이 구원받기까지 걸린 시간에 비하면 나는 쉽게 구원받은 편이다. 불과 넉 달 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접하고 구원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눈물어린 구원이었다.
마음이 가난한 상태에서 얻은 구원
나에게는 나보다 5분 먼저 태어난 쌍둥이 형이 있다. 요즘도 형이 사는 곳에 가면 형의 장모님께서 나를 형으로 착각하시곤 한다. 나에게 이 귀한 복음을 전해준 것은 바로 그 쌍둥이 형이었다.
재수하던 시절, 나는‘지구는 무엇이며 우주는 무엇일까! 인생은 무엇이며 인간답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고 연구했었다. 자선사업가가 되고픈 꿈을 꾸다가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병장을 달자마자 어머니가 위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 최대한 휴가를 많이 나오려 했는데, 휴가 나올 때마다 보아야 했던 것은 눈에 띄게 야위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어머니 대신 나를 죽게 해달라는 기도도 해보았다. 그러나 결국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일은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구원받으시고 돌아가셨는데,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영혼은 무엇이고, 천국과 지옥은 무엇인가’하는 생각들로 번민하였다. 다시 휴가를 나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얼마 뒤 제대를 했다.
1월에 제대를 한 후 한창 사회생활에 몰두할 무렵, 쌍둥이 형이 “2월에 서울 교회에서 전도집회가 있으니 같이 가자. 군대 가기 전에 간다고 약속했잖아.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라는 말을 했다. 나는 무엇인지 모를 힘에 이끌려 서울 교회로 갔다. 교회에 도착한 순간 마음이 평안해져 왔다. 가운을 입지 않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설교 시작 전 열심히 찬송가를 부르는 찬양대원들이 초면인데도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낯선 곳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져 의심은커녕 평안한 마음으로 집회 말씀을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안도감이 구원받는 데에 장벽이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전도집회 말씀은 정말 중요한 내용이었다. 나는 말씀을 제대로 듣기 위해 직장에서 퇴사했지만, 그래도 집중이 되지 않아 집을 나와 교회에서 숙식을 하며 말씀을 들었다. 결국 큰형님이 나를 찾아와 억지로 데려가려는 통에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나는 열흘간이나 교회에 머물면서 끝까지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해 설명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는 오히려 듣기가 싫어졌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성경은 사실이라는 것이나, 죄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힘들게 말씀을 들었는데도 막상 구원받지 못하고 나니 ‘회사도 그만두고 집을 떠나서까지 들었는데....’ 하며 억울한 심경이 되었다.
그 뒤 한 형제님께 부탁하여 구원받은 형제자매들이 일하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부탁해서 들어간 회사였지만 그곳에서 나는 혼자 구원받지 못한 미운 오리 새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돈도 없고, 마음도 가난해진 상태였다. 그때서야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참석한 인천 교회의 전도집회에서 구원받았던 것이다.
주님의 원하시는 것을 바라보며
구원받은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지나온 시간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열심히 산 것인지 극성맞았던 것인지, 지내오면서 여러 일들을 맡았었다. 청년 시절에는 직장 일보다 청년 활동에 더 치중해서 문제가 될 때도 있었다. 성경탐구모임 때도 늘 끝까지 남아 일을 했고, 함께 일하던 자매와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 후 구역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하며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그 모든 일들이 좋아서 맡은 일만은 결코 아니었다. 순종하는 마음에서 받아들였던 것이었지만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서로의 마음이 다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잘 견디고 남아 여전히 눈에 띄는 성도들을 볼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의 잘못된 언행으로 마음이 다치거나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를 형제자매들이 있다면 사과드리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헌금에 대해서도 그러한 마음이다. 구원받은 후 십일조는 즐거이 내게 된 반면 헌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못하고 내 형편만 생각하며 힘들어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요즘은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최근 더 많은 형제자매들이 <꿈 같은 사랑>을 통해 모두가 하나님의 꿈 같은 사랑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교제하고 있다. 나의 추진력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겠지만 나 또한 일이 주어질 때 육신적으로는 정말 하기 싫을 때가 많다. 그러나 순종하고 받아들이면 모든 지체들이 함께 동참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주님은 내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용기와 힘, 방법, 추진력이 되어 주셨다.
나는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데, 아이들끼리 잘 지내는 것을 보는 것이 제일 기쁘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서로를 한 몸, 한 지체라고 느끼고 서로 사랑하는 것 말이다. 요즘은 주변에 힘들어하는 형제자매들에게 마음이 간다. 전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조금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모든 활동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갔을 때는 추억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