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한 선생님의 영향으로 교회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공부에만 열중했던 나에게 성경 말씀이 들어올 리 없었다. 그래서인지 교회에 다닌다면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속으로 욕을 퍼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무렇게나 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교회에 다시 다니게 되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세례를 받아 명실상부한 교인이 되었으며 3학년이 되어서는 청년회장에 성가대까지 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중부지구 연합회장을 맡아 주말에는 지역교회 순방까지 하게 되어 학생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던 나는 대학 내 클래식 음악 모임과 합창부에 참여하면서 음악적 소양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클래식 음악 방송을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극동방송의 ‘새 아침의 뮤직 살롱’이라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이 방송에서는 매일 7시 30분부터 약 10여 분에 걸쳐, 방송목사님이셨던 권신찬 목사님과 방송부장님, 방송국 총무부장님 등 몇몇 분들이 순차적으로 짤막한 멘트를 하셨다. “여러분들은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구원을 받았습니까? 참으로 평안을 얻은 적이 있습니까? 거듭난 적이 있습니까? 정말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말씀이 매일 아침 내 마음에 화살이 되어 박혔다.
‘나는 아니다.’라는 양심의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지만 죄 사함을 받은 적도, 구원받은 적도 없었다. 겉으로는 철저한 종교인이었지만 내 마음은 온갖 갈등과 죄 의식에 사로잡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1971년 대학교 4학년 졸업여행을 앞둔 상태에서 여행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오신 권신찬 목사님의 특별 전도집회에 일주일 동안 참석하여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용기가 없어 개인 상담을 받지도 못한 채 집회는 끝나고 말았다.
4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이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방송국에 편지를 썼다. 며칠 후 방송국 총무부장님으로부터 참으로 솔직한 편지를 받았노라고, 한번 방송국으로 오라는 내용의 답장을 받았다. 찾아간 날은 1972년 1월 18일이었다. 가방에 성경책 한 권을 넣고 물어물어 방송국을 찾아갔다. 총무부장님께서 반가이 맞아 주시면서 자연스럽게 성경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리고 끝없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셨다.
4시간 정도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죄 사함, 거듭남, 구원, 천국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고 오직 지옥만이 내게 예비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 외에는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일 약수동에 있는 한 교회로 찾아오라는 말씀을 듣고는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가서 11시부터 시작되는 오전 집회에 참석하여 3시간 반 정도의 설교 말씀을 들었다. 하지만 무언가 다르다고만 생각될 뿐 나의 죄는 여전히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집회가 끝난 후,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 형제님을 만나 상담을 받게 되었다. 고 형제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2 는 성경 구절을 보여주시면서 당신의 죄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셨다. 그 순간‘아! 그래 맞아!’ 하고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환희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동안 그렇게도 나를 옭아매었던 죄, 양심에서 요동치던 죄들이 영원히, 그것도 단번에 속죄되었으니 어찌 감사의 찬양이 나오지 않을까!
고 형제님은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7-18 는 말씀을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나의 죄와 불법을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하셨는데 날마다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며 걱정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하였다. 참으로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塗抹)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25)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고 그 피 흘리심으로 내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기억조차 아니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이제는 됐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2)
하나님께서 다 해 놓으셨는데 내가 할 말이 어디 있을까?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었다. ‘이제는 됐다! 걱정이 없다! 이제는 구원받았다! 하늘나라에 갈 자신이 있다!’ 그런데 ‘나만 하늘나라에 가면 무엇 하나? 부모님과 형제와 자매들은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하고 또 다른 걱정이 앞서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온갖 지혜로 여동생, 부모님, 큰 형님 내외분을 구원으로 이끄셨고 거의 모든 가족이 복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만 아직도 원불교를 믿고 계시는 큰 누님과 천주교를 믿는 둘째 형님께서는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계시니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아직 두 영혼이 구원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꼭 당신의 사랑을 알도록 도와주실 것이라 믿는다.
주님!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저와 저희 가족을 건지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아직도 두 분이 남았습니다. 그분들도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나는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한 선생님의 영향으로 교회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공부에만 열중했던 나에게 성경 말씀이 들어올 리 없었다. 그래서인지 교회에 다닌다면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속으로 욕을 퍼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무렇게나 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교회에 다시 다니게 되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세례를 받아 명실상부한 교인이 되었으며 3학년이 되어서는 청년회장에 성가대까지 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중부지구 연합회장을 맡아 주말에는 지역교회 순방까지 하게 되어 학생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던 나는 대학 내 클래식 음악 모임과 합창부에 참여하면서 음악적 소양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클래식 음악 방송을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극동방송의 ‘새 아침의 뮤직 살롱’이라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이 방송에서는 매일 7시 30분부터 약 10여 분에 걸쳐, 방송목사님이셨던 권신찬 목사님과 방송부장님, 방송국 총무부장님 등 몇몇 분들이 순차적으로 짤막한 멘트를 하셨다. “여러분들은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구원을 받았습니까? 참으로 평안을 얻은 적이 있습니까? 거듭난 적이 있습니까? 정말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말씀이 매일 아침 내 마음에 화살이 되어 박혔다.
‘나는 아니다.’라는 양심의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지만 죄 사함을 받은 적도, 구원받은 적도 없었다. 겉으로는 철저한 종교인이었지만 내 마음은 온갖 갈등과 죄 의식에 사로잡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1971년 대학교 4학년 졸업여행을 앞둔 상태에서 여행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오신 권신찬 목사님의 특별 전도집회에 일주일 동안 참석하여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용기가 없어 개인 상담을 받지도 못한 채 집회는 끝나고 말았다.
4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이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방송국에 편지를 썼다. 며칠 후 방송국 총무부장님으로부터 참으로 솔직한 편지를 받았노라고, 한번 방송국으로 오라는 내용의 답장을 받았다. 찾아간 날은 1972년 1월 18일이었다. 가방에 성경책 한 권을 넣고 물어물어 방송국을 찾아갔다. 총무부장님께서 반가이 맞아 주시면서 자연스럽게 성경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리고 끝없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셨다.
4시간 정도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죄 사함, 거듭남, 구원, 천국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고 오직 지옥만이 내게 예비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 외에는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일 약수동에 있는 한 교회로 찾아오라는 말씀을 듣고는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가서 11시부터 시작되는 오전 집회에 참석하여 3시간 반 정도의 설교 말씀을 들었다. 하지만 무언가 다르다고만 생각될 뿐 나의 죄는 여전히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집회가 끝난 후,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 형제님을 만나 상담을 받게 되었다. 고 형제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2 는 성경 구절을 보여주시면서 당신의 죄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셨다. 그 순간‘아! 그래 맞아!’ 하고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환희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동안 그렇게도 나를 옭아매었던 죄, 양심에서 요동치던 죄들이 영원히, 그것도 단번에 속죄되었으니 어찌 감사의 찬양이 나오지 않을까!
고 형제님은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7-18 는 말씀을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나의 죄와 불법을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하셨는데 날마다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며 걱정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하였다. 참으로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塗抹)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25)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고 그 피 흘리심으로 내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기억조차 아니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이제는 됐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2)
하나님께서 다 해 놓으셨는데 내가 할 말이 어디 있을까?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었다. ‘이제는 됐다! 걱정이 없다! 이제는 구원받았다! 하늘나라에 갈 자신이 있다!’ 그런데 ‘나만 하늘나라에 가면 무엇 하나? 부모님과 형제와 자매들은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하고 또 다른 걱정이 앞서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온갖 지혜로 여동생, 부모님, 큰 형님 내외분을 구원으로 이끄셨고 거의 모든 가족이 복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만 아직도 원불교를 믿고 계시는 큰 누님과 천주교를 믿는 둘째 형님께서는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계시니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아직 두 영혼이 구원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꼭 당신의 사랑을 알도록 도와주실 것이라 믿는다.
주님!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저와 저희 가족을 건지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아직도 두 분이 남았습니다. 그분들도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