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6월 23일, 그날만 생각하면 지금도 자꾸 눈물이 난다. 너무나 절묘하고 아찔하게 내 인생이 바뀐 날이다.
나는 충청도 두메산골 친할머니 집에서 여동생과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집안에서 부모님이 딸만 내리 셋을 낳다가 드디어 귀한 아들을 얻어 서울로 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11살이 되었을 때에야 서울로 올라가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지만 그때부터 춥고 배고픈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성격은 여간해서는 자극을 잘 받지 않는 무심한 성격으로 아주 낙천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순하고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누구에게 화를 내거나 싸운 기억이 없다. 내 이상이 효녀 심청처럼 사는 것이었을 정도였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유교 사상, 양반 가문 이야기를 즐겨 하셨다. 그러면서 가끔 점쟁이나 이름 풀이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힘들고 혹독한 서울 생활을 견디시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은 원래 ‘순애’였는데 중학교 때부터 ‘양미’라고 불렸고 2년쯤 지나서는 ‘지미’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딸에게는 너무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가 화난 얼굴로 들어오셨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고향 친구들과 점을 보러 갔다가 망신을 당했다고 하셨는데, 나 때문이었다. 내 사주팔자가 너무 안 좋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이름을 또 바꾸셨는데 그것이 ‘호정’이었다. 이 이름은 3년 이상 매일 부르지 않으면 내가 20세에 죽거나 비참하게 된다고 했다. 그것도 남자에게 놀래서 죽는다는데, 한마디 덧붙여 동서남북에서 남자가 나를 노린다고도 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은 비상 사태였다. 집 여기저기에 부적을 붙였고, 나를 지켜 줄 것이니 부적을 가슴에 넣고 다니라고 했다. 엄마는 매일 정류장 앞 쌀집에서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나를 기다리셨다. 우리 집은 정류장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있었지만 어두운 곳을 가다가 혹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봐서였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는 막내 동생을 낳으셨는데, 그날 쌀집에 엄마가 마중을 나오시지 않자 집이 바로 보이는 데도 못 가서 사정을 잘 아는 쌀집 아주머니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신 적도 있었다. 꿈과 희망에 부풀어야 할 고등학교 시절을 나는 불행과 죽음이 곧 닥칠 것 같은 공포 분위기 속에서 보냈다. 내 운명 자체에 열등의식이 있었다. 이런 속사정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동네 산 밑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그곳에 가면 조금 위안이 되었다. 따뜻하고 선한 사람들만 있고 무엇보다 나를 해칠 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곳도 못 다니게 하셨는데 이유는 하나, 목사도 남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치 무슨 핍박을 받는 것처럼 몰래 다녀야 했다.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신앙이나 말씀, 이런 것엔 별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아버지는 올해를 잘 넘겨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씀하셨다. 취직도 하고 사회 생활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어쩐지 그 해에 꼭 죽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울적하고 무거워 하나님께 기도를 한번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아무도 없는 교회에 들어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는데 ‘부적이 가슴에 있잖아.’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아 양심에 찔렸다. 교회 종각 밑에서 한참을 생각하다 결심했다. 미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부적을 찢어 버리면서 정말 간절하게 ‘하나님, 정말 계시다면 저 좀 살려주세요. 저를 지켜 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만일 아버지가 이 사실을 그때 알았다면 나는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그 뒤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신앙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은 계실까? 믿을 수 있는 존재일까?’가 궁금해 열심을 내었다. 다른 교회의 부흥회도 기웃거리고 새벽기도도 나가 보고 하면서 어떤 확신을 갖게 되기를 원했다. 마침 우리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려 빠지지 않고 나갔는데 영등포에 있는 유명한 목사라면서 굉장히 힘 있고 우렁찬 목소리로 설교를 했다. 내용은 믿음에 대한 것이었다.
의심을 하면 하나님의 저주로, 귀신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설교를 듣는 내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한번은 목사가 기도하는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나?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일까?’ 답답하기만 했다. 주변에서는 은혜를 받았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들 했지만 솔직히 나는 점점 초조하고 불안해지기만 했다.
부흥회 마지막 날, 교회에서 너무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소위 ‘신유의 은사’라는 귀신 쫓는 일이 행해졌는데, 어떤 사람은 몇 시간 동안 물구나무를 서 있고 어떤 사람은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계속 흔들어댔다. 내가 아는 젊은 여자는 남자 귀신이 들어가 소름 끼치는 남자 소리를 냈다. 아기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교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말 나를 놀라게 했던 사람은 평소에 믿음이 좋다는 집사님이었다. 죽은 엄마 귀신이 들어갔는데 그 엄마는 생전에 무당이었다.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고 우는데 눈은 뒤집히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온몸이 각각 따로 떨고 있었다. 얼굴의 주름도 심하게 떨었다. 정말 끔찍했다. 집에 돌아와 밤새 시달렸다. 확실한 것은 귀신이 있다면 하나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귀신을 쫓아낸 것이 하나님이 맞을까? 꼬박 한숨도 못 자고 절규인지 기도인지, 머리를 감싸고 안절부절 못하며 벌벌 떨었다.
다음날, 부흥회 때는 오지 않았던 교회 친구의 집에 우연히 갔는데 친구의 오빠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노아의 방주가 진짜라는 것이다. 성경도 사실이고 진짜 역사라면서 일주일 전에 구원받았다고 했다. 그 오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일은 꼭 신앙 상담이라는 것을 받으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친구의 어머니는 한 방송국에서 일하셨는데 6개월 전에 구원받으셨다고 했다.
다음날 일찍 절박한 마음으로 친구의 어머니가 일하시는 방송국을 찾아갔다. 친구의 어머니는 무척 기특해 하며 한 여자 분을 소개해 주셨다. 나는 그분에게 그동안 교회에서 보았던 일들과 그 모습이 정말 하나님이 귀신을 쫓은 것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했다. 그분은 성경 구절을 하나 보여주셨는데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는 구절이었다. 그 자리에서 모든 의문이 풀려버렸다.
그 말씀을 얼마나 집중해서 읽었는지 그 자리에서 그냥 외워버렸다.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한다 해도 주님이 모른다 하시면 관계가 없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의문이 다 풀렸다며 일어나려 하니 나에게 그 앞 구절도 한번 읽어보라고 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그분이 내게 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거요?”라고 했더니 다른 성경 구절을 찾아주셨다. “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 6:40) 그러고는 영생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럼 영생은 어떻게 얻는 것인지 물었더니, 아담과 하와로부터 어떻게 죄가 들어오게 되었는지부터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내 피 자체에 원죄가 있으니 나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인 것이 뚜렷해졌다. ‘나는 죽으면 꼼짝없이 지옥에 가는구나. 올해에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늘 나를 붙잡고 있었는데 결국 지옥으로 간다니.’ 도저히 그냥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혹 떼러 왔다가 혹이 더 붙어버렸다. “나 이대로 집에 못 가요. 가다가 교통사고라도 나면 어떡해요.” 하면서 매달렸다. 그런데 내일 다시 오란다. 오늘 해결 못 하면 갈 수 없다고 버티자 기다려 보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초조하고 답답하여 미칠 것 같았다. 두 시간쯤 지나자 넉넉해 보이고 미소 띤 남자 분이 들어오셨다. 워낙 다급해 하는 나를 보더니 별 말없이 성경 구절을 읽어 보라고 내밀기만 했다. 시키는 대로 이 구절, 저 구절을 읽는데 특히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사 44:2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히 9:12) 를 반복해서 읽으라고 했다. 도대체 이 구절을 왜 자꾸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 고개를 들어 질문했다. “염소와 송아지 피가 뭐예요?” 그런 질문을 한 내게 그분은 성경책을 덮으며 옛날 구약 시대의 제사법을 설명해 주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 사함을 위한 제사 내용이었다.
내용을 이해하고 다시 읽어 보았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아! 그것이 사실이다. 2천 년 전의 그 십자가, 예수께서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내 죄를 사하셨구나.’ 믿어져 버렸다. 그 다음의 성경들도 읽어보니 여기도 저기도 모두 복음에 대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두 장이나 읽어 내려갔다.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7-18)
얼마나 감사한지,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울다 웃다, 그런 나를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님을 만났다고, 다시 태어났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빨리 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는 마음에 한시가 급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38년 전 내가 스무 살 때의 일이다.
1972년 6월 23일, 그날만 생각하면 지금도 자꾸 눈물이 난다. 너무나 절묘하고 아찔하게 내 인생이 바뀐 날이다.
나는 충청도 두메산골 친할머니 집에서 여동생과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집안에서 부모님이 딸만 내리 셋을 낳다가 드디어 귀한 아들을 얻어 서울로 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11살이 되었을 때에야 서울로 올라가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지만 그때부터 춥고 배고픈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성격은 여간해서는 자극을 잘 받지 않는 무심한 성격으로 아주 낙천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순하고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누구에게 화를 내거나 싸운 기억이 없다. 내 이상이 효녀 심청처럼 사는 것이었을 정도였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유교 사상, 양반 가문 이야기를 즐겨 하셨다. 그러면서 가끔 점쟁이나 이름 풀이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힘들고 혹독한 서울 생활을 견디시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은 원래 ‘순애’였는데 중학교 때부터 ‘양미’라고 불렸고 2년쯤 지나서는 ‘지미’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딸에게는 너무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가 화난 얼굴로 들어오셨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고향 친구들과 점을 보러 갔다가 망신을 당했다고 하셨는데, 나 때문이었다. 내 사주팔자가 너무 안 좋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이름을 또 바꾸셨는데 그것이 ‘호정’이었다. 이 이름은 3년 이상 매일 부르지 않으면 내가 20세에 죽거나 비참하게 된다고 했다. 그것도 남자에게 놀래서 죽는다는데, 한마디 덧붙여 동서남북에서 남자가 나를 노린다고도 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은 비상 사태였다. 집 여기저기에 부적을 붙였고, 나를 지켜 줄 것이니 부적을 가슴에 넣고 다니라고 했다. 엄마는 매일 정류장 앞 쌀집에서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나를 기다리셨다. 우리 집은 정류장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있었지만 어두운 곳을 가다가 혹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봐서였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는 막내 동생을 낳으셨는데, 그날 쌀집에 엄마가 마중을 나오시지 않자 집이 바로 보이는 데도 못 가서 사정을 잘 아는 쌀집 아주머니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신 적도 있었다. 꿈과 희망에 부풀어야 할 고등학교 시절을 나는 불행과 죽음이 곧 닥칠 것 같은 공포 분위기 속에서 보냈다. 내 운명 자체에 열등의식이 있었다. 이런 속사정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동네 산 밑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그곳에 가면 조금 위안이 되었다. 따뜻하고 선한 사람들만 있고 무엇보다 나를 해칠 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곳도 못 다니게 하셨는데 이유는 하나, 목사도 남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치 무슨 핍박을 받는 것처럼 몰래 다녀야 했다.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신앙이나 말씀, 이런 것엔 별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아버지는 올해를 잘 넘겨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씀하셨다. 취직도 하고 사회 생활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어쩐지 그 해에 꼭 죽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울적하고 무거워 하나님께 기도를 한번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아무도 없는 교회에 들어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는데 ‘부적이 가슴에 있잖아.’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아 양심에 찔렸다. 교회 종각 밑에서 한참을 생각하다 결심했다. 미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부적을 찢어 버리면서 정말 간절하게 ‘하나님, 정말 계시다면 저 좀 살려주세요. 저를 지켜 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만일 아버지가 이 사실을 그때 알았다면 나는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그 뒤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신앙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은 계실까? 믿을 수 있는 존재일까?’가 궁금해 열심을 내었다. 다른 교회의 부흥회도 기웃거리고 새벽기도도 나가 보고 하면서 어떤 확신을 갖게 되기를 원했다. 마침 우리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려 빠지지 않고 나갔는데 영등포에 있는 유명한 목사라면서 굉장히 힘 있고 우렁찬 목소리로 설교를 했다. 내용은 믿음에 대한 것이었다.
의심을 하면 하나님의 저주로, 귀신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설교를 듣는 내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한번은 목사가 기도하는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나?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일까?’ 답답하기만 했다. 주변에서는 은혜를 받았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들 했지만 솔직히 나는 점점 초조하고 불안해지기만 했다.
부흥회 마지막 날, 교회에서 너무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소위 ‘신유의 은사’라는 귀신 쫓는 일이 행해졌는데, 어떤 사람은 몇 시간 동안 물구나무를 서 있고 어떤 사람은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계속 흔들어댔다. 내가 아는 젊은 여자는 남자 귀신이 들어가 소름 끼치는 남자 소리를 냈다. 아기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교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말 나를 놀라게 했던 사람은 평소에 믿음이 좋다는 집사님이었다. 죽은 엄마 귀신이 들어갔는데 그 엄마는 생전에 무당이었다.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고 우는데 눈은 뒤집히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온몸이 각각 따로 떨고 있었다. 얼굴의 주름도 심하게 떨었다. 정말 끔찍했다. 집에 돌아와 밤새 시달렸다. 확실한 것은 귀신이 있다면 하나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귀신을 쫓아낸 것이 하나님이 맞을까? 꼬박 한숨도 못 자고 절규인지 기도인지, 머리를 감싸고 안절부절 못하며 벌벌 떨었다.
다음날, 부흥회 때는 오지 않았던 교회 친구의 집에 우연히 갔는데 친구의 오빠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노아의 방주가 진짜라는 것이다. 성경도 사실이고 진짜 역사라면서 일주일 전에 구원받았다고 했다. 그 오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일은 꼭 신앙 상담이라는 것을 받으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친구의 어머니는 한 방송국에서 일하셨는데 6개월 전에 구원받으셨다고 했다.
다음날 일찍 절박한 마음으로 친구의 어머니가 일하시는 방송국을 찾아갔다. 친구의 어머니는 무척 기특해 하며 한 여자 분을 소개해 주셨다. 나는 그분에게 그동안 교회에서 보았던 일들과 그 모습이 정말 하나님이 귀신을 쫓은 것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했다. 그분은 성경 구절을 하나 보여주셨는데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는 구절이었다. 그 자리에서 모든 의문이 풀려버렸다.
그 말씀을 얼마나 집중해서 읽었는지 그 자리에서 그냥 외워버렸다.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한다 해도 주님이 모른다 하시면 관계가 없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의문이 다 풀렸다며 일어나려 하니 나에게 그 앞 구절도 한번 읽어보라고 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그분이 내게 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거요?”라고 했더니 다른 성경 구절을 찾아주셨다. “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 6:40) 그러고는 영생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럼 영생은 어떻게 얻는 것인지 물었더니, 아담과 하와로부터 어떻게 죄가 들어오게 되었는지부터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내 피 자체에 원죄가 있으니 나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인 것이 뚜렷해졌다. ‘나는 죽으면 꼼짝없이 지옥에 가는구나. 올해에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늘 나를 붙잡고 있었는데 결국 지옥으로 간다니.’ 도저히 그냥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혹 떼러 왔다가 혹이 더 붙어버렸다. “나 이대로 집에 못 가요. 가다가 교통사고라도 나면 어떡해요.” 하면서 매달렸다. 그런데 내일 다시 오란다. 오늘 해결 못 하면 갈 수 없다고 버티자 기다려 보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초조하고 답답하여 미칠 것 같았다. 두 시간쯤 지나자 넉넉해 보이고 미소 띤 남자 분이 들어오셨다. 워낙 다급해 하는 나를 보더니 별 말없이 성경 구절을 읽어 보라고 내밀기만 했다. 시키는 대로 이 구절, 저 구절을 읽는데 특히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사 44:2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히 9:12) 를 반복해서 읽으라고 했다. 도대체 이 구절을 왜 자꾸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 고개를 들어 질문했다. “염소와 송아지 피가 뭐예요?” 그런 질문을 한 내게 그분은 성경책을 덮으며 옛날 구약 시대의 제사법을 설명해 주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 사함을 위한 제사 내용이었다.
내용을 이해하고 다시 읽어 보았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아! 그것이 사실이다. 2천 년 전의 그 십자가, 예수께서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내 죄를 사하셨구나.’ 믿어져 버렸다. 그 다음의 성경들도 읽어보니 여기도 저기도 모두 복음에 대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두 장이나 읽어 내려갔다.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7-18)
얼마나 감사한지,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울다 웃다, 그런 나를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님을 만났다고, 다시 태어났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빨리 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는 마음에 한시가 급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38년 전 내가 스무 살 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