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소식

빛을 받은 그 사실


어느 초겨울 저녁놀이 짙어 갈 무렵, 제법 차가운 날씨에 예배당 옆 초가집 안방에서 제 인생의 한 꿈을 어린 가슴에 심어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걸인이 덜덜 떨면서 밥을 좀 달라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를 한참 지켜보시던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추우냐고 물으셨습니다.

 


“예, 춥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입고 계시던 저고리를 벗으시더니 “여기 있다. 입고 가거라.” 하시면서 그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그 인상적인 모습은 제 가슴에 작은 씨앗이 되어 잊을 수 없는 감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후 5, 6년쯤 지난 열두 살 때, 아버지와 한자리에 나란히 누웠을 때, 아버지께서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커서 목사가 되어라.”

 


이 말씀으로 제 생애의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아버지처럼 참으로 남을 사랑하는 교회의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어렴풋한 사명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참으로 사랑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어려운 사정에 처한 이들을 보시면 눈물을 흘리시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호소하셨고, 심지어는 거지를 방에서 함께 재워 온 방에 이가 기어 다녔던 일 등 숱한 일화가 있습니다.

 



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29세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목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천사들이 모인 곳인 줄 알았던 신학교와 기숙사에서 겪은 일들은 지워지지 못할 상처로 남아 저는 결국 목사직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졸업할 당시에는 안수를 거부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친의 책망과 이웃의 권면에 못 이겨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가 막 해방된 후였는데, 교회의 내분으로 인한 갈등은 점점 더 깊어 갔습니다. 그래서 나만이라도 진흙 속의 옥처럼 이상적인 목회를 해 보리라 다짐을 하고 옷깃을 여미면서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는 새벽이면 두세 시간을 울면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교만한 생각이었을 따름입니다.

 



그러는 중에도 아버지처럼 살아가겠다는 생각에서 이웃 사람, 특히 곤경에 처한 이웃들을 향해서 도움을 주려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은 언제나 양심의 한 구석에서 노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행할 수 있는 방법과 힘을 다해서 이웃을 돕고 어려운 사람을 도왔으나, ‘그것이 네 몸같이냐?’ 하는 소리는 날이 갈수록 더해가기만 했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낱낱이 설명하지는 않겠으나, 극단적인 방법으로 살았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랬기에 가정에서는 “그렇게 살면 가정은 어떻게 하라는가?”라는 불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밤의 일입니다. 대구의 어느 골목을 지나다가 거지가 남의 집 연탄아궁이 위에 앉은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다음 날 설교가 완전히 거짓말이 되느냐 아니면 그대로 진실이 되느냐 하는 갈등 때문에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데리고 갈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데리고 가면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힐 것이기에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난감했습니다. 생각 끝에 ‘됐다! 집에 가서 이불을 한 채 갖다 주자.’ 하고 생각하고는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이불 속에 누운 제 양심은 끊임없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위선자! 위선자! 저 거리를 보라. 얼마나 많은 불쌍한 자들이 떨고 배고파하고 있는가. 그러나 너는 따뜻한 이불 밑에서 잘 자고 아침에는 흰 쌀밥으로 배를 채우겠지? 그리고 설교 단상에서 사랑하라고 소리치겠지? 너는 위선자가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주일 오전 설교는 단상에 서서 얼굴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겨우 원고만 읽은 채 지났습니다.

 


‘왜 나는 설교를 해야 하나? 결국은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나님 맙소사.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이 세상에 훨씬 떳떳한 방법이 있지 않겠나?’

 


차츰 설교하기가 싫어졌고, 설교를 하는 의미를 잃었습니다.
‘노동자에게는 생산이 있고 농민에게도 소출이 있는데 목사로서 나의 생산은 무엇인가? 나, 목사는 선한 말을 가장 많이 하고 있으나, 생활에는 그것이 없지 않은가!’ 하고 양심은 소리쳤습니다.

 



언젠가 어느 바닷가에서 목사들만의 수양회가 있었는데,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동료 목사들에게 목사로서 목회할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어느 목사가 말하기를 “권 목사는 목회의 성공자라고 이름이 났는데, 그것이 무슨 말인가? 권 목사가 못 한다면 누가 하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 가정의 쌀독에 쌀 두 되가 있으면 한 되는 굶는 자에게 주고 한 되는 가족이 먹어야 할 터인데, 나는 그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주위의 목사들이 “아, 그것은 너무 심각한 이야기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했으나 아무런 대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평신자이거나 또는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모르나, 설교를 하고 남을 가르치고 있으면서 나 자신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법칙이 있다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행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위선이고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설교하기가 죽기보다 싫어졌고, 어떻게 목사 생활을 포기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만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상계』를 읽던 중, 어느 분이 쓴 “창녀는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팔고, 선생은 먹고살기 위해 지식을 팔고, 목사는 먹고살기 위해 교회에서 윤리 도덕을 판다. 무엇이 다르나?”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양심이 예리한 칼로 쪼개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차라리 창녀가 더 솔직하다. 그는 만천하에 자신이 죄인임을 폭로하고 짓밟히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설교 단상에 서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이 모두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나, 내 중심에도 창녀 못지않은 죄가 있지 않은가? 미모의 여성을 보았을 때 비록 육신으로서의 죄는 짓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에는 유혹을 느끼며, 돈뭉치를 보면 욕심이 나지 않은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며칠 후 설교 준비를 마친 토요일 밤에 괴롭고 어두운 양심을 달랠 길이 없어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다른 직업을 주십시오. 아니면 제 생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더 이상 목사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너무 큰 소리로 울었기 때문에 이웃 사람이 무슨 일이 생겼는가 하여 밤중에 예배당에 찾아온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럽에서 온 한 선교사의 설교를 듣던 중 “여러분은 거듭났습니까?”라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끝난 후에 그 선교사와 마주 앉아 일대일로 담판을 했습니다.

 



“나는 믿고 있는데 거듭났느냐는 질문에 왜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때 선교사는 “목사님, 무슨 의심이 있습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의심은 없습니다. 나는 확실히 믿기 때문에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그러면 됐습니다. 의심 없이 천당에 갈 수 있으면 됐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으나, 마음 한구석에는 그래도 석연치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후 3주가 지난 1961년 11월 18일 토요일, 아침부터 설교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본문은 로마서 1장 17절로, 제목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이었으며, 제일(第一) 대지(大旨)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기록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이 첫째 대지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21절에는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생각하다가,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시며, 내가 율법의 의로써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양심 속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해야 하는 것은 나의 양심을 내리누르는 율법의 의였으나, 하나님의 의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입혀졌습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로마서 10:2-3)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해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양심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십수 년간 내 양심을 칭칭 동여매었던 죄의 사슬이 한꺼번에 풀어졌습니다. 문제를 찾으려고 아무리 돌아보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조금 후에 마음속 깊이에서 하나님께 참된 감사와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내 죄 사함 받고 구주를 안 뒤에
모든 것이 변화하여서
지금 내가 밟는 길 천국 길이요
주의 피 내 죄를 씻으셨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 되시니
나에게 정죄함 없네  (합동찬송가 414장)

 


 

이 찬송을 오후 두 시부터 해가 지도록 불렀습니다.
그 후 또 놀란 것은 성경이 전의 성경과 달리 보였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처음 보는 말씀이 되었고 성경 말씀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또 이상한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내 안에 이루어진 것과 비교하니 하잘것없는 것들뿐이었습니다. 전부가 시시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설교도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을 볼 때에 헌금 많이 하는 교인, 지위 있는 교인, 열심이 있거나 일 잘하는 교인, 목사 잘 섬기는 교인 등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참으로 구원되어서 천국에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 이외에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듣기 싫어하든 말든 그들의 영의 각성을 위하여 촉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월급이 잘 나올지 어떨지, 지위 있는 장로나 돈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할 것 없이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줄기차게 공격해 갔습니다. “내가 굶어서 죽을지언정 먹고살기 위하여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를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강단에서 언제나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한 사람 두 사람씩 복음을 깨달아 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 복음은 계속 전파되어 사람들이 깨달아가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계획적인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므로 오직 주님 당신이 일하심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