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소식

자유를 얻게 한 보혈의 능력


저는 서울에서 1남 4녀 중 둘째딸로 태어나 늘 언니와 동생들 사이에서 치이면서 살았습니다. 예를 들면 엄마는 언니는 첫아이니까 늘 새 옷을 사 입혔고, 저는 동생이니까 늘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 입었습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항상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마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늘 하던 대로 언니 옷을 받아 입었는데 엄마는 제 바로 밑의 여동생에게 새 옷을 사 입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분통이 터져 엄마에게, 난 늘 언니가 입던 헌 옷을 받아 입는데 어째서 동생에게는 새 옷을 사주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동생도 제가 입던 옷을 입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랬더니 엄마는 “너는 언니가 입던 옷을 입을 수 있는데 동생은 너 입고 나서 입으면 다 헤져서 입을 수가 없단다. 그러니까 새것을 사줄 수밖에 없지.”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야속한 운명인지!



이렇듯 저는 늘 손해만 보고 사는 것 같아 마음속이 항상 복잡했습니다. 언니는 첫째니까 온 집안의 기쁨이고, 셋째 딸은 밑으로 남동생을 보게 한 복된 딸이고, 넷째인 남동생은 그 귀하고 귀한 외아들이고, 다섯째인 막내딸은 막내니까 귀엽고.... 나만 별 볼일 없는 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늘 서운해했고 불평이 가득했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별 것 아닌 일로 거의 매일 동생과 싸우면서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날, 학교에 가면서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쓸데없이 동생과 다투면서 살지?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부터 갑자기 변하면 가족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중학교에 들어가서 바뀌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동생이 늘 하던 대로 제게 시비를 걸어도 저는 일체 상관하지 않고(물론 속에서는 마구 화가 났지만요.) 공부도 열심히 하는 등 나름 착하게 살려고 마음먹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어느 날부터 식구들에게서 ‘우리 딸이 철이 들었는가 보다. 어쩌면 저렇게 180도 바뀔 수가 있냐.’는 칭찬이 쏟아졌고, 저를 보는 눈들이 달라졌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시험을 볼 때면 알지 못하는 신께 시험을 잘 치게 해달라는 부탁의 기도도 하고, 마음이 답답하면 하나님도 좋고 부처님도 좋고, 누구든지 간에 아무 신을 부르면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공부 잘하기를 무척 바라셔서 5남매를 다 때에 맞춰 과외 공부를 시키는 열성 아버지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게도 과외를 받으라고 하셨지만 저는 학교 공부도 소화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과외까지 받겠느냐며 과외를 받지 않았고, 결국 과외 없이 대학에 합격하여 제일 돈 들이지 않고 신경을 덜 쓰게 한 착한 딸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지금의 남편과 교제하다가 1979년에 결혼하였습니다. 1980년 8월에 남편은 미국 아이오아 주로 공부하러 떠났고, 그때 저는 임신 8개월이어서 아기를 낳고 그 이듬해 8월에 10개월 된 큰아들을 데리고 미국에 있는 남편에게 갔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인 유학생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한국에 있을 때 한 번도 가보지 않던 교회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친한 이웃들이 일요일이면 다 한인 교회에 가면 저희만 남아 늘 적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성가대에 들어가자고 해서 남편과 저는 성가대에 참석해서 열심히 연습했고, 일요일에는 예배당 성가대석에서 멋진 성가대 가운을 입고 노래를 했습니다. 그런데 멜로디는 좋은데 가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찬송가 202장) 하는 가사에서 이 ‘피’라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예수의 피 이야기가 싫었고 피는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그 교회의 목사님이 제게, 이제 교회 나온 지도 6개월이 지났는데 문답교리를 공부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약간의 교리 공부를 하고 “예수를 당신의 구주라고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예.”라고 대답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저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서 어떻게 “예.”라고 대답하느냐고 물었더니,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을 하면 구원을 얻는다” (롬 10:10 참조) 라는 말씀이 있으니 무조건 입으로 시인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무조건 시인하라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찜찜한 채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 뒤 남편은 집사가 되었고 우리는 더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아기를 낳는 날까지,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고 성가대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리라고 저 혼자 다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아기를 영육 간에 잘 보살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저는 아기 낳기 바로 전 주일까지 성가대 활동도 하고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둘째 아들을 낳고 3주 후부터 또 아기를 안고 성가대 활동을 하고 교회에 열심히 다녔지요.
둘째 아들이 세 살이 되었을 때, 남편은 교회의 재정 집사가 되었고 저는 여선교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런 막중한 일을 맡으면서 남편과 저는 더욱 심란해졌습니다. 성경도 잘 모르는데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인지.... 성경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너무나도 잔인하신데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하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성경이 베스트셀러라고 하는지 참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큰 종교들, 천주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 역시 무언지, 참 피곤하기가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 사모님과 동네 근처에 있는 코넬 칼리지에 입학해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남들과 재미있게 지내다가도 혼자 있으면 마음의 갈등이 늘 많아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잘해주고 나면 손해 본 것 같고 남에게 야박하게 대하면 그 또한 마음에 걸리고,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늘 목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회 때마다 죄를 자복하라고 하여, 어렸을 때 동생과 싸우고 동생을 미워하고 이런 저런 일로 갈등했던 것 등, 남이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너무 많아 거의 날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그때만 잠깐 마음이 시원하고 돌아서면 또 찜찜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 기도회 날, 제가 차를 태워 주던 유학생 P씨의 부인이 제게 구원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그런 것은 김수환 추기경 같은 사람이나 받는 것이지 어떻게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받느냐고 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P씨 부인이 갑자기 말을 바꾸더니 느닷없이 제게 성경 공부를 하겠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그 당시 몹시 갈급해 있던지라 그 자리에서 좋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 후에 P씨의 부인은 나를 정 박사님의 사모님께 데려갔습니다. 그때 정 박사님의 사모님은 딸네 집에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잠시 방문 중이었습니다. 정 박사님의 사모님은 P씨 부인과 저를 안경 너머로 바라보시며 성경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여러 가지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노아의 방주는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하시면서 신문 스크랩한 것을 보여 주셨고, 이 외에도 다른 몇 가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이 사실임을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믿는다고 했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 돌아갈 시간이 되었고, 다음날 다시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이튿날 P씨의 부인과 저는 다시 사모님을 만났는데 P씨 부인은 갓 돌 지난 아기를 데리고 와서 아기를 돌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저만 다시 사모님과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갑자기 저더러 죄가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죄가 아주 많다고 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느닷없이 “다 됐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더니 너무 빨리 알려 주면 감사함이 없을 것이라면서 저를 빤히 쳐다보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지 못해서, 감사할 테니 빨리 말씀해 주시라고 했습니다.
사모님은 구약 성경 레위기를 읽어 주시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일 년에 한 번씩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 제사를 드려 죄 사함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참 좋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신약 성경으로 가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2 는 말씀을 읽으시고는 ‘자기’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앗! 그렇다면 2000년 전에 이미 예수께서 내 죄를 다 처리해 주셨구나! 아하! 이래서 ‘십자가의 진리’라고 하는 것이구나!’



중학생 때 사회책에서 잠깐 기독교에 대해서 나왔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예수를 머리로 하고 교회는 그 지체라고 했던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마치 수학 시간에 그냥 공식을 외웠는데 어떻게 이 공식이 나왔는지에 대한 공식의 뿌리가 저절로 알아지듯이, 비교종교학을 공부하려고 했던 것이 단숨에 필요 없어졌습니다.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늘 무언가에 짓눌려서 만족이 없던 저에게 이 말씀은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도말해 버렸습니다! 그 싫어하던 찬송가 가사가 이제 제 것이 되어 다시 부르게 되었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찬송가 202장)



그 귀중한 말씀을 깨달은 그날은 1987년 3월 2일 밤 10시가 넘었을 때였습니다. 사모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5분 정도의 시간 동안, 그 많은 미국 교회의 십자가들이 저에게 새롭게 비추어 지면서 모든 갈등과 목에 가시처럼 있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렸고, 저는 무척 큰 기쁨과 성령의 충만함을 가슴에 가득 담아 집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