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동해안에 위치한 한 어촌 마을인 감포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아름다운 항구와 해수욕장, 그리고 인근에 신라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물고기가 많이 잡히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어획량이 풍부하고 고래와 그보다 더 덩치가 큰 ‘물치’라 불리는 고기들도 많이 잡혔으며 어선들도 많았고 사람들도 많이 북적댔던, 동해안의 대표적인 항구였습니다.
제가 살았던 집은 항구와 인접한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릴 때부터 항상 동해의 푸른 바다와 아침 일찍 떠오르는 태양의 광경을 바라보면서 자랐습니다.
바다를 생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신을 많이 믿습니다. 명절 때는 물론 평소에도 항구에 정박한 배에 깃발을 걸어 놓고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해상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도 명절 때는 집에서 차례를 지냈고, 어머니께서는 별도로 조그만 상을 하나 차려서 저를 데리고 아버지께서 경영하셨던 조선소에 가서 사업이 잘 되고 아무 사고가 없기를 기원하고는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의 어머니께서도 가끔 절에 다니시면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사업과 우리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셨습니다. 어릴 때 우리 집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오셨는데,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그 할머니가 저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의아해하면서 ‘저 분이 진짜 나의 어머니신가?’ 하고 잠시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머니는 절에 다니는 보살이었고 어머니는 그 보살이 다니는 절에 제 이름을 올려놓았던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저는 교회보다는 절에 더 호감이 갔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불교 학생회에도 가입하여 일요일에는 인근에 있는 절에 가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예불도 드리고 천수경, 반야심경 등의 불경을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외웠습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지금도 저의 취미를 이야기하라면 ‘노래 부르기’라고 합니다. 남녀공학이었던 중학교에서는 음악 시간에 선생님에게 노래를 불러 보라고 지명을 당하면 부끄러웠지만 종종 앞으로 나가 노래를 부르고는 하였습니다.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다니게 되었는데, 교내 밴드부의 연주 소리에 매료되어 밴드부 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7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저의 작은 누나가 저에게 오늘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어디를 좀 같이 가자고 하여서 따라나섰습니다. 작은 누나와 함께 도착한 곳은 대구 교회였습니다. 저는 그날 대구 교회를 처음 방문하였습니다. 집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집인 것 같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날이 그 집을 준공하고 처음으로 사람들이 들어가는 날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교회 2층에 여러 사람들이 같이 앉아서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외형으로는 전혀 교회 같지 않은 일반 주택인데 실제로는 그 안에서 성경 공부를 하고 있어서 일반 교회와는 무언가 분위기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설교자께서도 여기는 일반 교회 예배당처럼 격식과 형식을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성경을 공부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저는 처음으로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성경에 대한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설교자가 오랜 시간 동안 설교를 하였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관심 있게 들었습니다. 그날 설교는 주로 구약 성경 에스겔 36장에 있는 이스라엘의 귀환과 회복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독립한 후 중동 아랍 국가들과 전쟁을 여러 번 하였고, 특히 제3차 중동전쟁인 1967년의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모세 다얀 장군의 지휘 아래 대규모의 아랍 연합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한 것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저는 이스라엘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불교에 대하여는 친숙한 마음이 있었으나 기독교나 성경에 대하여는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크리스마스 날 동네 교회에 가서 연극을 구경하고 과자를 받아먹은 경험 외에는, 교회나 성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저에게 성경은 막연히 착하고 선한 생활을 강조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종교 경전으로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성경의 모든 내용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실들이 기록된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성경을 공부하기 위하여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진지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사람들은 여러 군데 둘러앉아서 설교에 대한 내용을 서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도 그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서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할 때 양이나 염소를 잡고 그 피로 집의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랐다는 출애굽기 12장 7절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일요일에 가끔 혼자서 그곳으로 성경 공부하러 다니고는 하였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교내 합창단에 가입하여 연습이다 공연이다 하면서 캠퍼스 생활에 빠져 성경 공부에는 제대로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교회에서 나오는 책들은 틈틈이 읽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한 번씩 고향에 내려가면 작은 누나와 아버지가 성경 말씀과 구원받는 것에 대하여 둘이 설전을 벌이고는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불교와 유교에 대한 생각과 믿는 의지가 강하셔서 좀처럼 성경 말씀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그럴수록 작은 누나는 더욱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였습니다. 저는 옆에서 그 이야기들을 듣고는 하였습니다.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갔습니다. 군에서는 구원받아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지내다가, 제대 후 대학교 3학년에 복학하고 예전에 갔었던 교회에 가보았습니다. 그 당시엔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장소가 협소해져서 교회에서는 더 이상 모일 수 없어 대구 교육문화회관 강당에서 일요일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성경 로마서 11장 25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는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계시다가 계획하신 대로 이방인의 구원받은 숫자가 다 차면 구원의 역사를 거두어 버리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계속 막연히 지내다가 어느 날 구원의 문이 닫히고 세상의 역사가 끝나 종말이 오면 나는 영원한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빨리 구원받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등 교회에서 나온 책들을 계속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일요일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설교를 들으러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당시 작은 누나는 결혼한 후에 경주에서 살고 있었는데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경주에 가서 구원에 대해 상담도 받고, 일요일에는 몇몇 경주 형제자매들과 함께 대구에 가서 설교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교제하는 모습이 몹시 부러워 나도 구원받으면 구원받은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서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누나와 매형이 구원받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그 덕에 나도 구원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장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는 말씀에서,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980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포항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서도 계속 말씀을 듣고 책도 읽었지만 구원받지 못하여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간혹 TV에서 중동 지역에서의 전쟁 소식만 들려도 이 세상 마지막 전쟁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포항에 있는 구원받은 큰누나를 통해서 전도인과 상담도 해 보았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전도 서적을 통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놓으셨다는 사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으나 정작 제 자신의 마음속에는 그 사실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 해 5월 대구에서 전도집회가 있다고 하여 회사에 휴가를 내고 참석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전도집회에 참석한 것이었고, 더구나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권 목사님의 설교를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권 목사님께서는 성경 내용을 아주 자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고, 저는 말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성경 구절을 일일이 메모하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회 마지막 날 요한복음 19장 설교 중에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어 놓은 사실에서 저도 구원받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후 포항 교회에서 청년들이 교제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함께 모일 때마다 만약 지금 휴거가 일어난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 들림 받는데 저만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두려움이 찾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연극 공연을 보러 갔는데, 공연 중 사람의 죽은 시체를 장사 지내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내가 저 연극에 등장하는 죽은 시체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나의 겉모습인 육신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지만 하나님과의 교통은 끊겨 있어서 속사람인 영은 죽은 상태라는 것,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육신이 죽으면 영원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하루하루를 더욱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었습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남과 다투지도 않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고 비교적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제가 죄인이라는 말이 잘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명령을 무시하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 지은 죄의 피를 이어받은 나는,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는 마태복음 5장 26절의 말씀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내 속에 있는 죄가 다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 가족 중에 다른 사람들은 다 구원받고 저와 형만 구원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구원받고 난 뒤 명절날 차례 지내는 것도 일체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욱 구원받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틈만 나면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께 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었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불안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고는 하였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던 중 1981년 3월 1일이었습니다. 그날은 공휴일이라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 기숙사에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 자리에서 머리맡에 두었던 <임박한 대환난>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책 속에서 예수께서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돌아가셨을 때 이미 우리의 모든 죄는 다 용서해 주셨다는 내용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었다고 하셨는데 그럼 저의 죄는 어떻게 됩니까?” 하는 질문이 들었는데, 그 순간 예수께서 피 흘려 돌아가실 때 나의 모든 죄도 이미 다 용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제 마음속을 항상 무겁게 내리누르던 짐이 없어졌음을 알았고 안개 속을 헤매던 저의 마음에는 ‘이제 됐다!’는 안도의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의 남은 생애는 주님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동해안에 위치한 한 어촌 마을인 감포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아름다운 항구와 해수욕장, 그리고 인근에 신라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물고기가 많이 잡히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어획량이 풍부하고 고래와 그보다 더 덩치가 큰 ‘물치’라 불리는 고기들도 많이 잡혔으며 어선들도 많았고 사람들도 많이 북적댔던, 동해안의 대표적인 항구였습니다.
제가 살았던 집은 항구와 인접한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릴 때부터 항상 동해의 푸른 바다와 아침 일찍 떠오르는 태양의 광경을 바라보면서 자랐습니다.
바다를 생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신을 많이 믿습니다. 명절 때는 물론 평소에도 항구에 정박한 배에 깃발을 걸어 놓고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해상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도 명절 때는 집에서 차례를 지냈고, 어머니께서는 별도로 조그만 상을 하나 차려서 저를 데리고 아버지께서 경영하셨던 조선소에 가서 사업이 잘 되고 아무 사고가 없기를 기원하고는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의 어머니께서도 가끔 절에 다니시면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사업과 우리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셨습니다. 어릴 때 우리 집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오셨는데,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그 할머니가 저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의아해하면서 ‘저 분이 진짜 나의 어머니신가?’ 하고 잠시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머니는 절에 다니는 보살이었고 어머니는 그 보살이 다니는 절에 제 이름을 올려놓았던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저는 교회보다는 절에 더 호감이 갔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불교 학생회에도 가입하여 일요일에는 인근에 있는 절에 가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예불도 드리고 천수경, 반야심경 등의 불경을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외웠습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지금도 저의 취미를 이야기하라면 ‘노래 부르기’라고 합니다. 남녀공학이었던 중학교에서는 음악 시간에 선생님에게 노래를 불러 보라고 지명을 당하면 부끄러웠지만 종종 앞으로 나가 노래를 부르고는 하였습니다.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다니게 되었는데, 교내 밴드부의 연주 소리에 매료되어 밴드부 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7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저의 작은 누나가 저에게 오늘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어디를 좀 같이 가자고 하여서 따라나섰습니다. 작은 누나와 함께 도착한 곳은 대구 교회였습니다. 저는 그날 대구 교회를 처음 방문하였습니다. 집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집인 것 같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날이 그 집을 준공하고 처음으로 사람들이 들어가는 날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교회 2층에 여러 사람들이 같이 앉아서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외형으로는 전혀 교회 같지 않은 일반 주택인데 실제로는 그 안에서 성경 공부를 하고 있어서 일반 교회와는 무언가 분위기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설교자께서도 여기는 일반 교회 예배당처럼 격식과 형식을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성경을 공부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저는 처음으로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성경에 대한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설교자가 오랜 시간 동안 설교를 하였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관심 있게 들었습니다. 그날 설교는 주로 구약 성경 에스겔 36장에 있는 이스라엘의 귀환과 회복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독립한 후 중동 아랍 국가들과 전쟁을 여러 번 하였고, 특히 제3차 중동전쟁인 1967년의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모세 다얀 장군의 지휘 아래 대규모의 아랍 연합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한 것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저는 이스라엘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불교에 대하여는 친숙한 마음이 있었으나 기독교나 성경에 대하여는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크리스마스 날 동네 교회에 가서 연극을 구경하고 과자를 받아먹은 경험 외에는, 교회나 성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저에게 성경은 막연히 착하고 선한 생활을 강조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종교 경전으로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성경의 모든 내용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실들이 기록된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성경을 공부하기 위하여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진지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사람들은 여러 군데 둘러앉아서 설교에 대한 내용을 서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도 그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서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할 때 양이나 염소를 잡고 그 피로 집의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랐다는 출애굽기 12장 7절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일요일에 가끔 혼자서 그곳으로 성경 공부하러 다니고는 하였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교내 합창단에 가입하여 연습이다 공연이다 하면서 캠퍼스 생활에 빠져 성경 공부에는 제대로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교회에서 나오는 책들은 틈틈이 읽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한 번씩 고향에 내려가면 작은 누나와 아버지가 성경 말씀과 구원받는 것에 대하여 둘이 설전을 벌이고는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불교와 유교에 대한 생각과 믿는 의지가 강하셔서 좀처럼 성경 말씀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그럴수록 작은 누나는 더욱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였습니다. 저는 옆에서 그 이야기들을 듣고는 하였습니다.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갔습니다. 군에서는 구원받아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지내다가, 제대 후 대학교 3학년에 복학하고 예전에 갔었던 교회에 가보았습니다. 그 당시엔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장소가 협소해져서 교회에서는 더 이상 모일 수 없어 대구 교육문화회관 강당에서 일요일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성경 로마서 11장 25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는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계시다가 계획하신 대로 이방인의 구원받은 숫자가 다 차면 구원의 역사를 거두어 버리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계속 막연히 지내다가 어느 날 구원의 문이 닫히고 세상의 역사가 끝나 종말이 오면 나는 영원한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빨리 구원받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등 교회에서 나온 책들을 계속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일요일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설교를 들으러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당시 작은 누나는 결혼한 후에 경주에서 살고 있었는데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경주에 가서 구원에 대해 상담도 받고, 일요일에는 몇몇 경주 형제자매들과 함께 대구에 가서 설교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교제하는 모습이 몹시 부러워 나도 구원받으면 구원받은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서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누나와 매형이 구원받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그 덕에 나도 구원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장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는 말씀에서,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980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포항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서도 계속 말씀을 듣고 책도 읽었지만 구원받지 못하여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간혹 TV에서 중동 지역에서의 전쟁 소식만 들려도 이 세상 마지막 전쟁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포항에 있는 구원받은 큰누나를 통해서 전도인과 상담도 해 보았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전도 서적을 통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놓으셨다는 사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으나 정작 제 자신의 마음속에는 그 사실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 해 5월 대구에서 전도집회가 있다고 하여 회사에 휴가를 내고 참석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전도집회에 참석한 것이었고, 더구나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권 목사님의 설교를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권 목사님께서는 성경 내용을 아주 자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고, 저는 말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성경 구절을 일일이 메모하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회 마지막 날 요한복음 19장 설교 중에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어 놓은 사실에서 저도 구원받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후 포항 교회에서 청년들이 교제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함께 모일 때마다 만약 지금 휴거가 일어난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 들림 받는데 저만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두려움이 찾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연극 공연을 보러 갔는데, 공연 중 사람의 죽은 시체를 장사 지내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내가 저 연극에 등장하는 죽은 시체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나의 겉모습인 육신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지만 하나님과의 교통은 끊겨 있어서 속사람인 영은 죽은 상태라는 것,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육신이 죽으면 영원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하루하루를 더욱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었습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남과 다투지도 않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고 비교적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제가 죄인이라는 말이 잘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명령을 무시하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 지은 죄의 피를 이어받은 나는,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는 마태복음 5장 26절의 말씀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내 속에 있는 죄가 다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 가족 중에 다른 사람들은 다 구원받고 저와 형만 구원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구원받고 난 뒤 명절날 차례 지내는 것도 일체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욱 구원받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틈만 나면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께 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었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불안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고는 하였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던 중 1981년 3월 1일이었습니다. 그날은 공휴일이라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 기숙사에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 자리에서 머리맡에 두었던 <임박한 대환난>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책 속에서 예수께서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돌아가셨을 때 이미 우리의 모든 죄는 다 용서해 주셨다는 내용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었다고 하셨는데 그럼 저의 죄는 어떻게 됩니까?” 하는 질문이 들었는데, 그 순간 예수께서 피 흘려 돌아가실 때 나의 모든 죄도 이미 다 용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제 마음속을 항상 무겁게 내리누르던 짐이 없어졌음을 알았고 안개 속을 헤매던 저의 마음에는 ‘이제 됐다!’는 안도의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의 남은 생애는 주님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