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등학교 교사로 30여 년 간 근무하고 지금은 퇴직하여 쉬고 있습니다. 27세이던 1979년 10월 5일 오후 2시 경에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약간 떨어진 현풍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사일을 하시는 부모님과 누나와 남동생 셋, 여동생 둘까지 모두 아홉 식구가 살았는데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었지만 양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책읽기를 좋아했는데 책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책 읽을 시간도 별로 없었습니다. 농사일을 하는 집이다 보니 일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소죽을 끓이고 학교에 갔다 오면, 소 먹이기, 꼴 뜯기, 김매기 등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해서, 공무원 아버지를 둔 친구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저처럼 지내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면서, 거의 매일 저를 따라다니며 소 먹이러 가고, 같이 꼴도 뜯고 냇가에 멱을 감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은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었고 불교에는 우호적인 편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 교회에 1년 정도 다녔는데, 성경 내용을 공부한 기억은 거의 없고, 종교 행사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교회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바둑을 처음 접하고는 거기에 빠져 들었습니다. 공부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바둑에 빠져서 일류 대학교에도 못가고 그나마 들어갔던 대학교마저도 1년 다니고는 중퇴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1년을 공부하여 대구교육대학교에 들어가서 초등학교 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경상북도 성주군에 있는 금수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는데, 작은 산골 학교였습니다. 이 학교에서 교대 동기인 여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분이 바로 제갈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갈 선생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갈 선생님은 “저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것이 이해가 잘 안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 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을 안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요? 그럼, 선생님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인데 어떻게 자기 자신을 알 수가 있습니까?”
“확실히 알 수 있는 길이 있어요. 김 선생님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저는 인생의 목적도 모르고 목표도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바둑을 두는 것 외에는 인생의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주어진 대로 살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가 있겠지요. 그러나 목표를 달성한들 죽음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단지 늙고 병들고 추한 모습으로 죽는 것보다는 적당한 시기에 아무도 몰래 자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60세쯤까지 살다가 자살할 생각입니다.”
그 후 제갈 선생님이 주는 책을 한 권씩 읽으면서 저는 성경 말씀에 점점 끌려들어 갔습니다. <진화냐? 창조냐?>란 책을 보고 인간은 진화되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권 목사님의 구원 간증을 담은 소책자 <양심의 해방>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은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고 양심 속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하나님이며, 사람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되려고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그 율법을 지킬 수 없고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될 수 있으며, 권 목사님도 1961년 11월 8일 오후 2시경에 거듭나는 체험을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저도 꼭 찾아야 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껏 알고 있던 지식은 완전히 거짓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진화론도 거짓이었고 불교나 유교의 가르침도 거짓이었으며 철학도, 심지어는 기독교라는 종교도 모두 잘못된 가르침을 주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는, 거듭나는 체험을 해야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읽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습니다. 그분의 설교는 제가 품고 있던 의문점을 시원하게 풀어 주었고 저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 끄는 힘이 있었습니다.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은 물을 넣은 여섯 항아리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요 2장 참조)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없다는 말을 했는데 예수님은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고 하셨습니다. (요 4:17-18 참조)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너무나 일관성이 있고 확실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취한들 예수님을 영혼의 남편으로 모시지 못하면 다 헛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님, 주님만이 저를 살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생을 주신다 하셨고 저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길 원합니다.’라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속은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처럼 혼돈된 상태였습니다.
1979년 10월 5일, 그 날은 추석이었습니다. 12살 아래인 막내 동생과 둘이서 산소에 갔습니다. 그때 저는 온통 하나님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마음은 오직 예수님께 매달리고 싶었지만 저와 예수님과의 거리는 이 땅에서 하늘까지만큼 멀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만, 저는 예수님과 관계없이 혼자서 괴로워하고 있는 초라한 제 자신을 볼 뿐이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내 죄를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모든 허물과 죄는 예수님께 옮겨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조금 전의 답답하던 마음과는 정 반대로 의심 없이 모든 말씀들이 받아들여진 경험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꿈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분명 꿈은 아니었습니다. 구원받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58분 45초였습니다. 저의 이 기쁨을 이해할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틀 후 제갈 선생님의 교실에 찾아가서 이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의 모든 죄, 즉 과거에 지었던 죄, 현재 짓는 죄, 미래에 지을 죄까지 모두 지고 돌아가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히브리서 9장 12절 말씀이었습니다. 참으로 든든한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확실하고도 완벽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미 모든 사람을 구원해 놓으셨는데 왜 구원해 놓으셨다고 말하지 않고 구원받으라고 말합니까? 미리 가르쳐 주었으면 쉽게 알 수 있었을텐데....”
“미리 말해 주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요.”
그 후부터 저는 성경을 보면서 성경의 많은 말씀들에서 구원은 순간적으로 받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갈용복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옮기시고 저는 혼자서 성경을 보면서 구원을 더욱 확신하며 좋아했지만, 주위 사람들과 저의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갈 선생님이 있는 초전 초등학교로 옮겼고 대구 교회에 가서 일요일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2시간이 넘는 설교를 들으면서 어찌나 좋은지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다. 내가 있을 곳은 바로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요일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교회가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2년 정도 지난 후 아내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둘째 동생이 구원받았습니다. 둘째 동생은 전도집회에 여러 번 참석했는데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가 말씀 테이프를 열 번 이상 듣고 해결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병으로 누워 계시던 아버지가 위독하게 되어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둘째 동생이 아버지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음을 이야기했지만,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아버지는 세상을 마감하셨습니다. 이 장면을 본 동생들이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얼마 후 동생들이 모두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몇 년 후 여동생이 어머니를 전도집회에 모시고 가서 어머니가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후 울릉도로 전출되었습니다. 울릉도에 2년 살면서 교제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고향인 현풍으로 옮겨져 대구 교회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옛날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회는 마당만 밟고 제가 좋아하는 바둑과 술, 세상 친구들과 적당히 어울리며 살았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세상이 끄는 대로 살아가는 저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무언가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자. 우선 십일조부터 착실히 하고 구역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해야지.’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는 적극적으로 교제 가운데에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저의 생활에 조그만 변화가 일어나면서 저의 마음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달서구역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주어진 역할을 면할 길도 없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맡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는 대구 교회 성인회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책임감과 함께 교회가 잘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 교제 속에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비밀이 교회에 알려지고, 교회에서 되어지고 있는 일들이 바로 우리들에게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는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오염된 이 세상에서 우리도 몸을 건강하게 하고, 더불어 맑은 정신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교사로 30여 년 간 근무하고 지금은 퇴직하여 쉬고 있습니다. 27세이던 1979년 10월 5일 오후 2시 경에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약간 떨어진 현풍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사일을 하시는 부모님과 누나와 남동생 셋, 여동생 둘까지 모두 아홉 식구가 살았는데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었지만 양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책읽기를 좋아했는데 책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책 읽을 시간도 별로 없었습니다. 농사일을 하는 집이다 보니 일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소죽을 끓이고 학교에 갔다 오면, 소 먹이기, 꼴 뜯기, 김매기 등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해서, 공무원 아버지를 둔 친구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저처럼 지내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면서, 거의 매일 저를 따라다니며 소 먹이러 가고, 같이 꼴도 뜯고 냇가에 멱을 감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은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었고 불교에는 우호적인 편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 교회에 1년 정도 다녔는데, 성경 내용을 공부한 기억은 거의 없고, 종교 행사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교회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바둑을 처음 접하고는 거기에 빠져 들었습니다. 공부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바둑에 빠져서 일류 대학교에도 못가고 그나마 들어갔던 대학교마저도 1년 다니고는 중퇴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1년을 공부하여 대구교육대학교에 들어가서 초등학교 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경상북도 성주군에 있는 금수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는데, 작은 산골 학교였습니다. 이 학교에서 교대 동기인 여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분이 바로 제갈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갈 선생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갈 선생님은 “저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것이 이해가 잘 안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 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을 안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요? 그럼, 선생님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인데 어떻게 자기 자신을 알 수가 있습니까?”
“확실히 알 수 있는 길이 있어요. 김 선생님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저는 인생의 목적도 모르고 목표도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바둑을 두는 것 외에는 인생의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주어진 대로 살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가 있겠지요. 그러나 목표를 달성한들 죽음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단지 늙고 병들고 추한 모습으로 죽는 것보다는 적당한 시기에 아무도 몰래 자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60세쯤까지 살다가 자살할 생각입니다.”
그 후 제갈 선생님이 주는 책을 한 권씩 읽으면서 저는 성경 말씀에 점점 끌려들어 갔습니다. <진화냐? 창조냐?>란 책을 보고 인간은 진화되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권 목사님의 구원 간증을 담은 소책자 <양심의 해방>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은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고 양심 속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하나님이며, 사람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되려고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그 율법을 지킬 수 없고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될 수 있으며, 권 목사님도 1961년 11월 8일 오후 2시경에 거듭나는 체험을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저도 꼭 찾아야 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껏 알고 있던 지식은 완전히 거짓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진화론도 거짓이었고 불교나 유교의 가르침도 거짓이었으며 철학도, 심지어는 기독교라는 종교도 모두 잘못된 가르침을 주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는, 거듭나는 체험을 해야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읽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습니다. 그분의 설교는 제가 품고 있던 의문점을 시원하게 풀어 주었고 저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 끄는 힘이 있었습니다.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은 물을 넣은 여섯 항아리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요 2장 참조)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없다는 말을 했는데 예수님은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고 하셨습니다. (요 4:17-18 참조)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너무나 일관성이 있고 확실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취한들 예수님을 영혼의 남편으로 모시지 못하면 다 헛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님, 주님만이 저를 살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생을 주신다 하셨고 저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길 원합니다.’라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속은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처럼 혼돈된 상태였습니다.
1979년 10월 5일, 그 날은 추석이었습니다. 12살 아래인 막내 동생과 둘이서 산소에 갔습니다. 그때 저는 온통 하나님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마음은 오직 예수님께 매달리고 싶었지만 저와 예수님과의 거리는 이 땅에서 하늘까지만큼 멀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만, 저는 예수님과 관계없이 혼자서 괴로워하고 있는 초라한 제 자신을 볼 뿐이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내 죄를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모든 허물과 죄는 예수님께 옮겨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조금 전의 답답하던 마음과는 정 반대로 의심 없이 모든 말씀들이 받아들여진 경험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꿈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분명 꿈은 아니었습니다. 구원받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58분 45초였습니다. 저의 이 기쁨을 이해할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틀 후 제갈 선생님의 교실에 찾아가서 이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의 모든 죄, 즉 과거에 지었던 죄, 현재 짓는 죄, 미래에 지을 죄까지 모두 지고 돌아가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히브리서 9장 12절 말씀이었습니다. 참으로 든든한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확실하고도 완벽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미 모든 사람을 구원해 놓으셨는데 왜 구원해 놓으셨다고 말하지 않고 구원받으라고 말합니까? 미리 가르쳐 주었으면 쉽게 알 수 있었을텐데....”
“미리 말해 주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요.”
그 후부터 저는 성경을 보면서 성경의 많은 말씀들에서 구원은 순간적으로 받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갈용복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옮기시고 저는 혼자서 성경을 보면서 구원을 더욱 확신하며 좋아했지만, 주위 사람들과 저의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갈 선생님이 있는 초전 초등학교로 옮겼고 대구 교회에 가서 일요일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2시간이 넘는 설교를 들으면서 어찌나 좋은지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다. 내가 있을 곳은 바로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요일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교회가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2년 정도 지난 후 아내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둘째 동생이 구원받았습니다. 둘째 동생은 전도집회에 여러 번 참석했는데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가 말씀 테이프를 열 번 이상 듣고 해결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병으로 누워 계시던 아버지가 위독하게 되어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둘째 동생이 아버지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음을 이야기했지만,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아버지는 세상을 마감하셨습니다. 이 장면을 본 동생들이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얼마 후 동생들이 모두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몇 년 후 여동생이 어머니를 전도집회에 모시고 가서 어머니가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후 울릉도로 전출되었습니다. 울릉도에 2년 살면서 교제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고향인 현풍으로 옮겨져 대구 교회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옛날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회는 마당만 밟고 제가 좋아하는 바둑과 술, 세상 친구들과 적당히 어울리며 살았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세상이 끄는 대로 살아가는 저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무언가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자. 우선 십일조부터 착실히 하고 구역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해야지.’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는 적극적으로 교제 가운데에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저의 생활에 조그만 변화가 일어나면서 저의 마음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달서구역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주어진 역할을 면할 길도 없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맡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는 대구 교회 성인회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책임감과 함께 교회가 잘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 교제 속에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비밀이 교회에 알려지고, 교회에서 되어지고 있는 일들이 바로 우리들에게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는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오염된 이 세상에서 우리도 몸을 건강하게 하고, 더불어 맑은 정신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