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많은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
저는 삼남매 중 둘째인데, 위로 언니와 아래로 남동생이 있습니다. 1997년에 남동생이 우연히 교회 분을 만나서 구원받고는 저희에게 전도를 하려고 북경에 왔습니다.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나중에 결혼하면 첫 아기는 아들을 낳을 것이고, 절대 시골에서 살지 않고 도시에서 살 것이며, 결혼 상대자는 돈보다도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그와 어떻게 어떻게 살 것이다 하는 계획을 세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계획대로 가정을 이루고 첫 아들을 낳고 다 했는데, 사는 것이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산후 우울증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햇빛 쬐며 아무 근심없이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죽을 수 있으면 죽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동생이 찾아왔고,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가령 늙어서도 죽지 않고 치매만 얻으면 너무 불행한 인생이지 않느냐 젊었을 때 죽는 것이 좋지 않냐고 했더니, 동생은 왜 그렇게 위험한 생각을 하느냐며,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잘 해주고 인도를 해주실 수 있는 친구를 한 명 소개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은 정 형제님의 자매분이셨습니다.
동생의 소개로 1997년 12월에 처음 자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참 지혜롭게도, 처음부터 저에게 성경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과 가깝게 지내었는데, 어느 날 자매님께서 남편이 주말에 오면 저희 부부를 초대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고 하고 돌아왔는데, 제 남편은 무언가 이상했는지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 남동생은, “매형, 어떻게 하면 같이 가실래요?”라고 했고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술내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남동생은 술을 전혀 못하는데, 남편과 함께 저를 북경 모임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술내기를 받아들였습니다. 24병이 들어 있는 맥주 한 상자를 사다가 둘이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6병이 남을 때까지도 계속 남편과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습니다. 동생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너무 힘들어하면서도, 또 한쪽에선 구토를 하면서도 계속 마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제 남편은 알겠다며, 이렇게까지 안해도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남동생은 약속했으면 약속한대로 해야 한다며 계속 마셨습니다. 그대로는 안되겠기에, 남은 6병을 제가 몰래 치우자 그제서야 그 술자리가 끝났습니다.
마시지 못하는 술을 그렇게 무리하게 마셨으니 이튿날 남동생이 일어나지 못해야 정상인데, 다음날 아침에 그 아이가 기적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샤워까지 하고는 “매형, 오늘 간다고 하셨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남편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남자끼리의 약속이니까요. 남편은 그렇게 억지로 저와 함께 북경 모임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와 남동생, 남동생의 여자 친구까지 넷이 함께 그 집에 갔습니다. 그때 정 형제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서 두 시간에 걸쳐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아무 준비 없이 가서 들으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남편이 그 이야기들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남편은 무언가 가르치려는 느낌을 받아서 혹시 종교 이야기인가 의심했는데, 정 형제님께서 성경 보다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시니 그간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이라 관심이 갔던 모양입니다.
정 형제님은 BC와 AD가 어떻게 인간 역사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시고는 다음에는 더 좋은 이야기가 있으니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 테이프를 보라고 권하셨습니다. 자신을 친구로 생각한다면 끝까지 다 보겠다고 약속하자고 하셨고, 결국 저와 남편, 그리고 지금은 올케가 된, 남동생의 여자 친구와 함께 말씀 테이프를 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말씀 테이프에서 ‘사람이 왜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저는 그 문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빠져 들었습니다. 그렇게 일곱 번째 말씀 테이프까지 보았습니다. 일곱 번째 말씀 테이프에서는 죄에 대하여 이야기하셨는데, 그전까지 저는 제가 큰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에는 사람을 죽였거나 법을 어기는 것을 죄라고 생각했지, 화를 낸다든가 어릴 때 거짓말 하는 것 정도는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죄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저는 무조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매님이 차려주신 식사를 보고도 너무 괴로워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왜 이런 것을 알려주어 힘들게 만드나 싶어 그 자매님이 너무 싫어졌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먹으라고 하는데, 괴로워서 울고만 싶었습니다. 참으로 한스러워져 자매님께 지금 밥 먹을 정신이 있겠느냐며 따졌습니다.
“내 죄가 이렇게 많아서 어떻게 합니까? 제가 죽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 아들은 어떻게 해요.” 하니, 자매님은 “그렇게 죄가 많아서 어떻게 해요. 큰일 났네.” 하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부추기셨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저는 “왜 나에게 이런 것을 알려줘서 괴롭게 만듭니까? 저는 죽게 될 텐데 지옥에 가야되잖아요.” 했더니, 자매님은 또 “그렇게 죄가 많은 줄 몰랐네. 큰일 났네. 그러면 당신은 지금 하나님이라는 지푸라기를 잡아야 되요. 여덟 번째 말씀 테이프에서 그 방법을 알려주는데, 정말 깜박 졸지도 말고 명심해서 열심히 보세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여덟 번째 말씀 테이프를 듣기 시작했는데, 권 목사님께서 탕자의 비유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말씀 테이프에서 탕자의 비유를 들으니까 아버지의 사랑이 생각나면서 눈물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내가 아무리 잘못을 해도 아버지에게 가면 아버지는 받아주시잖아요. 그런 친정아버지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겹쳐지면서 한 순간에 제 죄 문제가 확 풀린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갑자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며 우는 것을 자매님께서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너무 흥분되어 있는 제 모습을 보시더니 저를 방에서 나오게 하셨고 남편과 남동생의 여자친구는 계속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그 후 두 사람도 구원받았습니다.
자매님이 왜 그러는지 물어보셔서 제가 느낀 것을 말씀드렸더니 구원받은 것 같다 하시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때 유학생 네 명이 저희가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게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하며 찬송을 불러주었습니다. 저는 그저 벙벙한 기분이어서 뭐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제게 어떤 분이 “구원받으셨는데, 그러면 이후에도 또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후에도 또 화가 날 것이고, 그것도 죄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가 이렇게 힘들게 구원받았다, 그저 하나님께서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나를 이렇게 아끼시고 내 죄를 다 탕감해 주셨는데 내가 왜 또 죄를 짓겠느냐며, 지금 생각하면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다 후에 성부, 성자, 성령이 있고, 성자 하나님이 예수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피로 우리를 죄를 덮어 주신 것, 우리가 그 의인의 옷을 입었다는 것을 살면서 차츰 더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매달리는 삶
구원받고는 좋아하며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니 구원의 감사함도 차츰 잊혀졌고, 천사처럼 보이던 형제자매에게서 그렇지 않은 모습도 있음을 보게 되면서 교제 안에 있는 것이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교제를 더욱 알아가는 것인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 내키는 대로 교회에 가고 싶을 때만 가는 생활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에 둘째를 낳게 되었습니다. 기대치 않았던 딸을 낳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주님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가 절로 나올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런데 막상 둘째딸을 낳고 집안에 축복이 가득해야 하는데, 남편은 형제자매들간의 어떤 문제를 보며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에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었고, 10살 된 첫째 아들은 둘째를 시샘을 하며 제가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사춘기였던 것 같은데, 말도 듣지 않고 화를 내기가 다반사였습니다.
하루는 첫째가 제게, “엄마는 이 세상의 많고 많은 남자 중에서 왜 아빠를 만나서 나를 낳았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너무 싫어. 다시 엄마 뱃속에 집어넣어줘. 이 세상을 사는 것이 너무 싫고 즐겁지 않아.”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전통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보수적인 사람으로 엄했습니다. 저 또한 교직 생활을 한 터라 아이에게 요구도 많았고 욕심도 많았습니다. 그런 영향인지 아이는 타인에게 배타적이 되면서, 자신이 태어난 것을 한스러워 했습니다. 반 년간 학교를 가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자 저는 구원받은 사람도 자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첫째 아들을 낳고 겪은 산후 우울증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원받고 잠시 괜찮았는데 다시 힘들어지자 또 우울증에 빠져 들었지요. 아들과 같이 죽을 생각까지 할 정도로 위험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생각하면서 성경도 찾아보았지만 그때는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잠 14:26, 하지만 피난처가 있다고 했음에도 당시 제게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는 분명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저는 ‘내가 아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수준에는 안되는가보다.’라며 근심도 되었습니다.
남편도 무척 힘들어 했습니다.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상담사나 병원을 찾았고 아이에게 약을 지어 먹이기도 했습니다. 아이 때문에 우리 온 가족은 2007년에 한국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남편은 구원받은 후 한국 성경탐구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한 것입니다.
원래 저희 아들은 참 착합니다.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성격도 반듯해서, 제가 보기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참 많이 받았다 싶었습니다. 누가 말하면 ‘예.’ 하지 ‘아니요.’ 하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저나 남편이 하는 말에 ‘왜 꼭 그래야 되는데?’ 하고 되물었고, 아빠를 무서워하여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탐구모임에 온 아이는 자꾸 무섭다고 했고 눈의 초첨이 다른 데 있으면서 집이 허물어진다고 했습니다. 말귀가 통하지를 않았고 사람의 시선을 회피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러 형제자매에게 아이의 상태에 대해 말씀을 드렸더니, 약은 그만 먹이라고 하시면서 “운동을 시켜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 말도 안 듣는데 어떻게 운동을 시키겠느냐고 했더니, 부모가 하기 싫은 것을 아이에게 어떻게 시키겠느냐면서 저부터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탐구모임이 끝나고 돌아간 후에 적극적으로 태권도 사범을 찾아서 초대하여, 다른 자매님과 그 자녀들, 그리고 저희 가족이 모임집에서 태권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태권도를 지금까지 4년 넘게 해오고 있습니다.
태권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게 되자, 보수적고 딱딱하던 남편은 성격이 변해서 농담도 하며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게 되었습니다. 지금 남편은 몸집이 있던 풍채도 근육질로 단단하게 변했습니다. 또 교제 가운데서 되어지는 일을 잘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걱정되었던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체육도 무척 잘합니다.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행동이 느리고 진득했는데, 이제는 집중력도 늘고 반응도 빨라져 눈빛이 매섭기까지 합니다.
이런 일련의 일을 경험하면서 제가 느끼게 된 것은, 교제 안에서 어떤 새로운 것들이 제시되었을 때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순종하고 따라가다보면, 나중에는 다 이해되고 또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할을 하며 너무 힘들 때, 그 순간이 바로 자신이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런 순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에 더 큰 축복이 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힘들 때는 정말로 말씀에 매달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당할 만한 시련만 주신다고 했으니까요.
사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힘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구원받은 후 조금 지나고 나니 교제 안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내가 왜 구원받았지? 모르고 살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만약 나에게 이러한 교제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그 자체로 힘들어집니다.
이런 것들을 알기까지 참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제가 성격이 적극적이다 보니 저로 인해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은 형제자매님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철없이 했던 행동들이 있었다면, 이 간증을 통해서 본의가 아니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형제자매들 사이에 이간을 놓는 것은 사탄의 일인데, 인간적인 친목도모보다도 교제의 큰 움직임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나가야만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그분 앞에 갔을 때 ‘너는 무엇을 하다 왔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비록 인간적으로 부족해서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교회가 나아가는 길에 따르려고 노력했다는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주위에서 구원이 더 많이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조 형제님이 북경 집회 일로 다녀가셨는데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는 말씀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내가 구원받고 나면 저절로 주위에 구원이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내가 진정으로 살았을 때, 주위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두 나를 틀렸다고 보다가도 철저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아, 분명히 쟤에게는 어떤 다른 힘이 있구나.’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기쁜 소식은 저희 집에서 일을 도와주시던 아주머니께서 구원받으셨고, 저희 언니도 며칠 전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언니는 “이렇게 예수님의 피만 믿으면 되는데 나는 정말 나의 행함으로 하려고 했고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었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하면서 무척 좋아했습니다. 친정아버지와 어머니도 구원받으셨는데, 아버지는 교제에 열심히 참여하지는 않으시지만 어머니는 남동생, 올케와 함께 열심히 교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저희 아들도 구원받았습니다.
누구나 한 번 죽는 것이고, 저는 어려서부터도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도 가졌지만, 구원받은 후 생명의 진리를 알고 나니 죽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제게 이 피난처가 있으니 무서울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를 거두어 가는 것은 그분의 일이지 제가 좌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저는 단지 교제 안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내 많은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
저는 삼남매 중 둘째인데, 위로 언니와 아래로 남동생이 있습니다. 1997년에 남동생이 우연히 교회 분을 만나서 구원받고는 저희에게 전도를 하려고 북경에 왔습니다.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나중에 결혼하면 첫 아기는 아들을 낳을 것이고, 절대 시골에서 살지 않고 도시에서 살 것이며, 결혼 상대자는 돈보다도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그와 어떻게 어떻게 살 것이다 하는 계획을 세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계획대로 가정을 이루고 첫 아들을 낳고 다 했는데, 사는 것이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산후 우울증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햇빛 쬐며 아무 근심없이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죽을 수 있으면 죽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동생이 찾아왔고,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가령 늙어서도 죽지 않고 치매만 얻으면 너무 불행한 인생이지 않느냐 젊었을 때 죽는 것이 좋지 않냐고 했더니, 동생은 왜 그렇게 위험한 생각을 하느냐며,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잘 해주고 인도를 해주실 수 있는 친구를 한 명 소개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은 정 형제님의 자매분이셨습니다.
동생의 소개로 1997년 12월에 처음 자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참 지혜롭게도, 처음부터 저에게 성경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과 가깝게 지내었는데, 어느 날 자매님께서 남편이 주말에 오면 저희 부부를 초대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고 하고 돌아왔는데, 제 남편은 무언가 이상했는지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 남동생은, “매형, 어떻게 하면 같이 가실래요?”라고 했고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술내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남동생은 술을 전혀 못하는데, 남편과 함께 저를 북경 모임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술내기를 받아들였습니다. 24병이 들어 있는 맥주 한 상자를 사다가 둘이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6병이 남을 때까지도 계속 남편과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습니다. 동생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너무 힘들어하면서도, 또 한쪽에선 구토를 하면서도 계속 마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제 남편은 알겠다며, 이렇게까지 안해도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남동생은 약속했으면 약속한대로 해야 한다며 계속 마셨습니다. 그대로는 안되겠기에, 남은 6병을 제가 몰래 치우자 그제서야 그 술자리가 끝났습니다.
마시지 못하는 술을 그렇게 무리하게 마셨으니 이튿날 남동생이 일어나지 못해야 정상인데, 다음날 아침에 그 아이가 기적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샤워까지 하고는 “매형, 오늘 간다고 하셨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남편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남자끼리의 약속이니까요. 남편은 그렇게 억지로 저와 함께 북경 모임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와 남동생, 남동생의 여자 친구까지 넷이 함께 그 집에 갔습니다. 그때 정 형제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서 두 시간에 걸쳐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아무 준비 없이 가서 들으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남편이 그 이야기들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남편은 무언가 가르치려는 느낌을 받아서 혹시 종교 이야기인가 의심했는데, 정 형제님께서 성경 보다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시니 그간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이라 관심이 갔던 모양입니다.
정 형제님은 BC와 AD가 어떻게 인간 역사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시고는 다음에는 더 좋은 이야기가 있으니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 테이프를 보라고 권하셨습니다. 자신을 친구로 생각한다면 끝까지 다 보겠다고 약속하자고 하셨고, 결국 저와 남편, 그리고 지금은 올케가 된, 남동생의 여자 친구와 함께 말씀 테이프를 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말씀 테이프에서 ‘사람이 왜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저는 그 문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빠져 들었습니다. 그렇게 일곱 번째 말씀 테이프까지 보았습니다. 일곱 번째 말씀 테이프에서는 죄에 대하여 이야기하셨는데, 그전까지 저는 제가 큰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에는 사람을 죽였거나 법을 어기는 것을 죄라고 생각했지, 화를 낸다든가 어릴 때 거짓말 하는 것 정도는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죄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저는 무조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매님이 차려주신 식사를 보고도 너무 괴로워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왜 이런 것을 알려주어 힘들게 만드나 싶어 그 자매님이 너무 싫어졌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먹으라고 하는데, 괴로워서 울고만 싶었습니다. 참으로 한스러워져 자매님께 지금 밥 먹을 정신이 있겠느냐며 따졌습니다.
“내 죄가 이렇게 많아서 어떻게 합니까? 제가 죽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 아들은 어떻게 해요.” 하니, 자매님은 “그렇게 죄가 많아서 어떻게 해요. 큰일 났네.” 하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부추기셨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저는 “왜 나에게 이런 것을 알려줘서 괴롭게 만듭니까? 저는 죽게 될 텐데 지옥에 가야되잖아요.” 했더니, 자매님은 또 “그렇게 죄가 많은 줄 몰랐네. 큰일 났네. 그러면 당신은 지금 하나님이라는 지푸라기를 잡아야 되요. 여덟 번째 말씀 테이프에서 그 방법을 알려주는데, 정말 깜박 졸지도 말고 명심해서 열심히 보세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여덟 번째 말씀 테이프를 듣기 시작했는데, 권 목사님께서 탕자의 비유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말씀 테이프에서 탕자의 비유를 들으니까 아버지의 사랑이 생각나면서 눈물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내가 아무리 잘못을 해도 아버지에게 가면 아버지는 받아주시잖아요. 그런 친정아버지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겹쳐지면서 한 순간에 제 죄 문제가 확 풀린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갑자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며 우는 것을 자매님께서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너무 흥분되어 있는 제 모습을 보시더니 저를 방에서 나오게 하셨고 남편과 남동생의 여자친구는 계속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그 후 두 사람도 구원받았습니다.
자매님이 왜 그러는지 물어보셔서 제가 느낀 것을 말씀드렸더니 구원받은 것 같다 하시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때 유학생 네 명이 저희가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게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하며 찬송을 불러주었습니다. 저는 그저 벙벙한 기분이어서 뭐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제게 어떤 분이 “구원받으셨는데, 그러면 이후에도 또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후에도 또 화가 날 것이고, 그것도 죄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가 이렇게 힘들게 구원받았다, 그저 하나님께서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나를 이렇게 아끼시고 내 죄를 다 탕감해 주셨는데 내가 왜 또 죄를 짓겠느냐며, 지금 생각하면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다 후에 성부, 성자, 성령이 있고, 성자 하나님이 예수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피로 우리를 죄를 덮어 주신 것, 우리가 그 의인의 옷을 입었다는 것을 살면서 차츰 더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매달리는 삶
구원받고는 좋아하며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니 구원의 감사함도 차츰 잊혀졌고, 천사처럼 보이던 형제자매에게서 그렇지 않은 모습도 있음을 보게 되면서 교제 안에 있는 것이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교제를 더욱 알아가는 것인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 내키는 대로 교회에 가고 싶을 때만 가는 생활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에 둘째를 낳게 되었습니다. 기대치 않았던 딸을 낳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주님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가 절로 나올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런데 막상 둘째딸을 낳고 집안에 축복이 가득해야 하는데, 남편은 형제자매들간의 어떤 문제를 보며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에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었고, 10살 된 첫째 아들은 둘째를 시샘을 하며 제가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사춘기였던 것 같은데, 말도 듣지 않고 화를 내기가 다반사였습니다.
하루는 첫째가 제게, “엄마는 이 세상의 많고 많은 남자 중에서 왜 아빠를 만나서 나를 낳았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너무 싫어. 다시 엄마 뱃속에 집어넣어줘. 이 세상을 사는 것이 너무 싫고 즐겁지 않아.”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전통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보수적인 사람으로 엄했습니다. 저 또한 교직 생활을 한 터라 아이에게 요구도 많았고 욕심도 많았습니다. 그런 영향인지 아이는 타인에게 배타적이 되면서, 자신이 태어난 것을 한스러워 했습니다. 반 년간 학교를 가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자 저는 구원받은 사람도 자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첫째 아들을 낳고 겪은 산후 우울증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원받고 잠시 괜찮았는데 다시 힘들어지자 또 우울증에 빠져 들었지요. 아들과 같이 죽을 생각까지 할 정도로 위험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생각하면서 성경도 찾아보았지만 그때는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잠 14:26, 하지만 피난처가 있다고 했음에도 당시 제게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는 분명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저는 ‘내가 아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수준에는 안되는가보다.’라며 근심도 되었습니다.
남편도 무척 힘들어 했습니다.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상담사나 병원을 찾았고 아이에게 약을 지어 먹이기도 했습니다. 아이 때문에 우리 온 가족은 2007년에 한국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남편은 구원받은 후 한국 성경탐구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한 것입니다.
원래 저희 아들은 참 착합니다.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성격도 반듯해서, 제가 보기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참 많이 받았다 싶었습니다. 누가 말하면 ‘예.’ 하지 ‘아니요.’ 하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저나 남편이 하는 말에 ‘왜 꼭 그래야 되는데?’ 하고 되물었고, 아빠를 무서워하여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탐구모임에 온 아이는 자꾸 무섭다고 했고 눈의 초첨이 다른 데 있으면서 집이 허물어진다고 했습니다. 말귀가 통하지를 않았고 사람의 시선을 회피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러 형제자매에게 아이의 상태에 대해 말씀을 드렸더니, 약은 그만 먹이라고 하시면서 “운동을 시켜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 말도 안 듣는데 어떻게 운동을 시키겠느냐고 했더니, 부모가 하기 싫은 것을 아이에게 어떻게 시키겠느냐면서 저부터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탐구모임이 끝나고 돌아간 후에 적극적으로 태권도 사범을 찾아서 초대하여, 다른 자매님과 그 자녀들, 그리고 저희 가족이 모임집에서 태권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태권도를 지금까지 4년 넘게 해오고 있습니다.
태권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게 되자, 보수적고 딱딱하던 남편은 성격이 변해서 농담도 하며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게 되었습니다. 지금 남편은 몸집이 있던 풍채도 근육질로 단단하게 변했습니다. 또 교제 가운데서 되어지는 일을 잘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걱정되었던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체육도 무척 잘합니다.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행동이 느리고 진득했는데, 이제는 집중력도 늘고 반응도 빨라져 눈빛이 매섭기까지 합니다.
이런 일련의 일을 경험하면서 제가 느끼게 된 것은, 교제 안에서 어떤 새로운 것들이 제시되었을 때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순종하고 따라가다보면, 나중에는 다 이해되고 또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할을 하며 너무 힘들 때, 그 순간이 바로 자신이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런 순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에 더 큰 축복이 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힘들 때는 정말로 말씀에 매달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당할 만한 시련만 주신다고 했으니까요.
사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힘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구원받은 후 조금 지나고 나니 교제 안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내가 왜 구원받았지? 모르고 살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만약 나에게 이러한 교제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그 자체로 힘들어집니다.
이런 것들을 알기까지 참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제가 성격이 적극적이다 보니 저로 인해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은 형제자매님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철없이 했던 행동들이 있었다면, 이 간증을 통해서 본의가 아니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형제자매들 사이에 이간을 놓는 것은 사탄의 일인데, 인간적인 친목도모보다도 교제의 큰 움직임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나가야만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그분 앞에 갔을 때 ‘너는 무엇을 하다 왔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비록 인간적으로 부족해서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교회가 나아가는 길에 따르려고 노력했다는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주위에서 구원이 더 많이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조 형제님이 북경 집회 일로 다녀가셨는데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는 말씀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내가 구원받고 나면 저절로 주위에 구원이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내가 진정으로 살았을 때, 주위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두 나를 틀렸다고 보다가도 철저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아, 분명히 쟤에게는 어떤 다른 힘이 있구나.’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기쁜 소식은 저희 집에서 일을 도와주시던 아주머니께서 구원받으셨고, 저희 언니도 며칠 전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언니는 “이렇게 예수님의 피만 믿으면 되는데 나는 정말 나의 행함으로 하려고 했고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었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하면서 무척 좋아했습니다. 친정아버지와 어머니도 구원받으셨는데, 아버지는 교제에 열심히 참여하지는 않으시지만 어머니는 남동생, 올케와 함께 열심히 교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저희 아들도 구원받았습니다.
누구나 한 번 죽는 것이고, 저는 어려서부터도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도 가졌지만, 구원받은 후 생명의 진리를 알고 나니 죽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제게 이 피난처가 있으니 무서울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를 거두어 가는 것은 그분의 일이지 제가 좌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저는 단지 교제 안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