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소식

어머니의 유언, ‘구원’ 그 하나


어머니의 발병과 구원


저의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필연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17살 때의 일입니다.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제게 부모님은 할 이야기가 있다며 방으로 부르셨습니다. 당황해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하시는 말씀을 듣는 순간 마치 번개에 맞은 듯했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유방암에 걸리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폐결핵, 천식 등을 앓으셨고 가정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몸이 너무 안 좋으셨습니다. 어린 제가 아침만 되면 어머니 방으로 가서 살아 계신지 몸을 흔들어서 확인해 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각오를 하며 살아왔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와버린 것입니다.
부모님 앞에서는 이겨낼 수 있으실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날 밤 불이 꺼진 방에서 혼자서 얼마나 이를 악물고 울었는지 모릅니다. 구원받기 전,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들이 그렇게 제 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암과 투병하시면서 저희 집에는 변화가 조금씩 생겼습니다. 하나는 집에 건강식품이 계속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평소 동생과 가깝게 지내던 동생의 담임선생님이 저희 어머니의 사연을 알게 된 후 가까운 분께 부탁드려서 여러 건강식품을 저희 집에 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식품을 드시면서 어머니는 몸을 조금 지키셨고 제게 아프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잘 버티셨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집에는 교회 분들이 한두 분씩 오시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집은 워낙 독실한 불교 집안이라 친구 따라간 교회에서 성경책 한 권만 얻어 와도 할머니가 성경책을 불태우곤 하셨습니다. 그런 분위기의 집인데 변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색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제게 “아들아, 사람들이 그 교회는 가지 말라고 하는데, 다녀도 될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평소에 교회라는 곳을 좋게 생각하여 다니고 싶었던 저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것이 뭐가 중요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어머니 사이의 문제니 다른 사람들 말은 생각하지 말고 어머니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하세요. 전 어머니를 믿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고 들었어요. 어머니가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니까 병이 걸리고 또 그것으로 인해 교회를 알게 된 것이 아닐까요?”




그 후부터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셨고 얼핏 구원받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도 복음을 듣게 하고 싶으셨는지, 전도인이나 형제자매님들이 집에 오시면 항상 저에게 집에 빨리 오라고 재촉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어렸고 공부와 학교생활에 집중하느라 어머니의 그런 말들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어머니의 원대로 함께 말씀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픕니다.





구원받으라는 어머니의 유언과 나의 구원


어느 날 아버지께서 건강식품을 그만 먹으라고 하셔서, 어머니는 더 이상 드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셔야 했습니다. 어머니 간호를 위해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병원도 오갔습니다. 병원에는 어머니께 복음을 전하시고 도와주셨던 많은 형제자매님들, 특히 창원 교회 분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당시 저의 일상은 학교에서 저녁을 먹은 뒤 병원에 가서 밤새도록 어머니 옆에 있다가 다시 학교에 가는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제게 성경 이야기와 앞으로 제가 살아가야 할 인생에 대해서 많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이 성공할 것을 진정으로 믿고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아들이 성공하는 길은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셔서, 계속 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암은 어머니의 온 몸으로 퍼졌고, 뇌에까지 퍼져 어머니의 정신은 혼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시는 중에도 유일하게 저는 알아보셨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아들에게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공부 열심히 해라, 건강해라, 동생 잘 챙겨라.’가 아니라 ‘구원받아라.’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말을 제게 꼭 해주고 싶어하셨습니다. 저는 마지막 말씀이 다른 무엇도 아닌 ‘구원받아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19살 되던 해 1월 그렇게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형제자매님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찬송가 속에서 좋아하시던 흰 눈을 맞으며 마지막 작별을 했고, 어머니의 유언은 제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창원 교회에서 형제자매들 앞에서 울면서 아들에게 꼭 복음을 전해달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렸고, 가족을 챙기고 제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먼저였기에 어머니의 유언은 알게 모르게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석 달이 지난 어느 봄 날, 저는 갑자기 길에서 쓰러졌습니다. 아버지께도 말씀 드리지 않고 혼자 병원을 갔는데 뇌종양이 의심된다며 종합병원에 가라고 하였습니다. MRI를 찍고 여러 검사를 하였는데, 뇌종양은 아니지만 더 심각한 희귀병이라고 했습니다. 뼈 속에 종양이 자라서 뼈가 비정상적으로 자라기 때문에 잘 부러지고, 결국은 뼈가 장기들을 다 눌러서 죽는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제게 주어진 날이, 길게는 10년, 보통은 2년이라고 했습니다. 2년 안에 죽을 것이니 학교를 그만 두고 병원에서 몸을 관리하다가 죽는 순간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석 달 만에, 19살의 제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고 방황도 하고 자살도 생각했습니다. 몸은 너무 아팠지만 가족들에게 숨겨야 했기에 이를 꽉 깨물고 버텼습니다. 너무 세게 깨물어 이가 깨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고통 속에 있을 때 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났습니다.


‘구원받아라.’


하나님을 찾고 싶어졌습니다. 의학으로 고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면 저 또한 의학을 믿고 의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암이나 백혈병이면 손이라도 써보겠지만 이 병은 도저히 고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기에 저는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생의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했고 일련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하였습니다. 창원 교회 분들도 알게 되면서 모두들 제게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진해의 어느 한 가정에서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건강도 좋지 않고 지루하기도 하여 무척 힘들었습니다. 동생의 담임선생님은 제게, 자신의 아버지는 구원받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지옥에 가셨지만 저는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다며 울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정신을 차려 말씀을 들었고, 제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성경도 믿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죄가 해결이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참 무덥고 답답한 여름이었습니다.



그 해 여름 성경탐구모임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오전부터 있는 강연을 시작으로 저녁 강연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든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몸은 말도 못할 정도로 좋지 않았고, 영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마음은 답답했으며, 무더운 날씨에 밥맛까지 잃어서 밥도 잘 못 먹었습니다. 그런 저를 창원 교회 분들과 다른 형제자매님들까지 참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렇게 힘든 날들이 지나고 마지막 강연을 듣던 중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가 7:19)


그리고 다음 말씀에서 저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한복음 19:30)


저의 죄까지 모두 지고, 다 이루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했고 저는 몸과 마음이 다 나은 것처럼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그 해 여름은 정말 무더웠지만, 제 기억 속에 있는 그 시간은 정말 감사하고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