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소식

그날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중국 메이허커우(梅河口)에는 저희 시어머니를 포함해 70세가 넘는 자매님들이 세 분 계십니다. 그리고 저와 11살인 제 둘째 아들까지 모두 다섯 명이 모이고 있습니다. 저희는 매주 토요일마다 돌아가면서 각자의 집에서 모여 설교와 성경적 담화를 듣고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소식도 전해 듣습니다.




저는 친구를 통해서 구원받았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1991년에 한국으로 가셨는데, 구원받은 친척들과 연결이 되어 대구 교회에 가서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을 듣고 구원받으셨습니다. 세 자녀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으로 가셨던 것이었는데 구원받고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이 강해진 아버지는 돈 버는 일을 그만두고 중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때 친구의 가족들은 돈을 벌러 가신 아버지가 돈은 벌지 않고 성경책만 한 아름 가져오신 것을 보고 이만저만한 실망을 한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친구도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 올 것이라 기대했다가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있으며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녀들에게 참 불쌍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 친구 어머니가 구원받으셨고, 이어서 맏딸인 제 친구와 동생들도 구원받았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사는 지역이 달랐지만 같은 사범학교를 졸업했고, 졸업 후에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둘 다 문학을 좋아하고 감수성도 통해서 가깝게 지냈습니다.




저는 1995년에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남편과 결혼을 했는데, 연애를 할 때는 제게 잘해 주던 사람이 결혼을 하고 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듬해에 낳은 큰아들을 키우면서도 남편과 많이 부딪혔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에 중국에 있던 여동생이 결혼하고 부산에 가서 살게 되었고, 다음 해에는 어머니도 한국에 가서 여동생과 함께 사셨습니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편치 않았는데 이야기를 나눌 여동생도, 의지하던 어머니도 다 떠나고 나니 참 힘들었습니다. 그 무렵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일도 있었기에 인생이 너무 허무했습니다.




그때 문득 외할머니가 어렸던 제게 옛이야기처럼 들려주셨던 요셉 이야기, 요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외할머니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오신 분이었는데 한국에 살던 유년 시절에 주일학교를 다니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어머니가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책을 읽으셨던 모습도 생각났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의지할 데가 없으니 외할머니의 그 이야기가, 어머니의 그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성경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책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친구가 제게 <성경은 과학이다>라는 책이 있는데 읽어 보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때 친구가 무슨 생각으로 제게 그 책을 권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성경으로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는데 그것이 과학이라고 하니 더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받고는 하룻저녁 만에 다 읽었습니다. 이튿날 책을 돌려주니 친구는 놀란 눈치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영혼의 목자>라는 책을 빌려 주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아, 멋있다. 세상에 이렇게 멋있는 작가도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 읽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는 어떤 목사님이 성경에 대해 잘 설명해 놓은 비디오테이프가 있는데 들어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가지고 있던 갈증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었던 터라 좋다고 했습니다. 그때가 1999년이었는데 그 무렵만 해도 중국에서 비디오테이프 재생기는 값이 나가는 편이어서 집집마다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기계를 제게 빌려준다며 마음껏 비디오테이프를 보라고 한 자체만으로도 저는 친구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낮에는 근무를 하고, 야간 자율학습이 없는 날 저녁에 저희 집에서 저는 친구와 함께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씀을 영화를 보는 것처럼 편하게 생각해서 앉아 있다가 눕기도 하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친구는 그런 제가 답답했을 텐데도 저 목사님은 당뇨가 있어서 혼자 당신 몸에 침을 놓으며 설교하는 분인데, 그렇게 누워서 듣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또 저는 말씀을 들으며 자주 잠들었습니다. 친구는 제게 화도 내지 않고 살짝 깨우며 오늘은 피곤한 것 같으니 다음에 또 듣자고 하고는 돌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친구가 참 서운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 세 번째 말씀을 듣는데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육체가 육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주셨는데,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거나 가족 중 누가 죽거나, 혹 자녀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너무나 애통하지만 시신은 정리하고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리운 마음은 더 애절하면 애절해지지 그 마음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때가 생각나고 그때 겪었던 일들이 맞물리면서 그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말씀이 마음속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네 번째 말씀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역사 교과서 속에 나오는 내용들이 어떻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지 신기했습니다. 권 목사님의 말씀이 다 맞다면 성경은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말씀은 율법에 대한 것이었는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아빠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 일같이 제가 어릴 적 지었던 사소한 죄들까지 다 떠올랐습니다. 그런 죄들을 하나도 없앨 수 없고 그렇다면 저는 분명히 지옥에 가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말씀처럼 제 손을 찍어 내고 눈을 뺄 생각을 하니 끔찍해서 도저히 못할 것 같았습니다. 죄를 없앨 수도 없고 빠져나올 구멍도 없었습니다. 너무 절망스럽고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너는 답을 얻었느냐고 물었더니 생글생글 환하게 웃으면서 자기는 답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답은 알려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죽겠는데 친구는 환한 얼굴로 알려 주지 않겠다고만 하니 화도 났습니다. 저는 애걸복걸하며 매달리고 협박도 하면서 답을 알려 달라고 졸랐는데, 친구는 계속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요한복음 5장 24절을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는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지만 무언가가 풀리지 않아 긴가민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느 날엔가 혼자 여덟 번째 말씀을 듣는데,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끌려 온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율법대로 하면 그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 나도 같은 운명이구나. 나도 죽어야 하는구나.’ 하고 무릎을 꿇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저에게 들어왔습니다. 저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아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좋았습니다.




이튿날 친구를 만나 정원을 거닐며 지난 밤 제게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가 6월이었는데 정원에 라일락꽃도 피어 있고 하늘도 맑고 정말 예뻤습니다.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9년 6월 21일, 지금도 그날이 생생합니다. 한국에서 전해진 복음이 저에게까지 온 것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살다 보면 스스로 부끄러운 일도 많고, 형제자매들과 일하며 부딪히기도 하면서 제 속에 있던 것들이 다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점잖게 사는 것 같지만 속에 있는 더러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형제자매들이 함께 살면서 서로 거울이 되어 비추어 주며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또 실천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예수님 앞으로 돌아와 그분을 의지하는 삶일 것입니다. 형제자매들 간의 일들을 통해 나는 예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더욱 말씀에 의지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 있음을 깨닫고, 또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