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소식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얻은 화평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감사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저는 소위 모태 신앙인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종교 생활에만 전념했던 미련함과 강퍅함으로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위기에까지 놓이게 되었고, 제 영혼도 영원한 사망에 이를 뻔했습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많은 일들을 통해, 구원받지 못한 저의 삶 자체가 어둠이고 사망이며 망한 인생임을 깨달아 알기를 원하셨고, 그러한 제 삶을 통해 저를 예수의 진정한 참빛 안에 들어가게 하려고 계획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에 대한 무지몽매함으로 오랜 세월을 낭비했습니다. 성경의 모든 사실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죄인인 제 영혼이 죄 사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원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며 방황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더러운 죄인의 모습임을 깨달았을 때, 예수님의 참빛이 비취었습니다. 그 빛 안에 들어가 주님의 보혈의 말씀으로 씻김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한 그 순간, 성령의 약속은 제 영혼에 인 쳐져 새겨졌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저는 주님이 당신의 자녀에게 주신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의인이 되어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즐겁게 다녔고, 아담과 하와, 노아의 방주, 다윗과 솔로몬,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님,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들과 십자가 사건 등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들을 모두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부모님 슬하에서 4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난 저는, 제 욕심에 대해 시원한 대답을 가질 수 없었던 사춘기 시절에 하나님을 나의 소원을 기적적으로 들어주실 분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율법적인 면을 강조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저는, 저를 따라 예수를 믿겠다는 남편과 아주 짧은 연애를 한 뒤 1985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섣부른 선택이었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제가 제사를 지내는 종갓집의 맏며느리가 되고부터 영혼의 심한 고난과 갈등 속에 소용돌이 같은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삶은 제 자신을 포기해야만 하는 희생적인 삶이었지만, 마음은 연단으로 더욱 강해지고 인내로 무장되며 낮아지고 깎여, 겸손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교회와 예배를 사모하는 열심에 젖어, 십일조와 예물을 드리고 기도하고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스스로 빛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누구에게나 칭찬받을 만큼 열심히 살았고, 주님을 위해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신앙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고 생각했을 때는 사람들에게 제가 깨달은 말씀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저 스스로 주님의 자녀이자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생각했기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할 때면 축복을 선포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폼을 잡으며 살았습니다.




저의 두 아들과 딸은 그 와중에도 무난하게 성장해 주었지만, 남편은 누구보다 내 인생을 눈물로 얼룩지게 하는 미움과 원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아 갔습니다. 남편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술자리를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교제 방식이 습관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또 장남이자 효자였으며, 형제간의 우애 또한 보통 이상이었습니다. 결혼한 뒤부터 무엇 하나 서로 맞는 것이 없었고, 성미가 급하고 화를 잘 내는 남편의 성격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런 남편의 모습을 나를 낮추고 깎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 생각하여 받아들였고, 남편에게는 항상 참으며 한결같이 대했습니다. 원망할 일에도 용서에 또 용서를 거듭하고 인내하며 광대처럼 웃으며 살았습니다.




둘째 아이를 가졌을 무렵, 남편은 넓은 세상에서 더 잘 살아 보겠다는 꿈을 꾸었고, 촌사람이 서울 생활에 대한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하듯,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척박한 이민지에서의 삶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못다 한 공부를 하려고 캐나다로 온 것이었지만, 이곳에 와서 늦둥이를 둘이나 더 낳게 되었고, 그 후 남편은 생활고로 인한 압박감에 늘 불안해 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기도 쉽지 않아서 이미 서양식 사고방식에 적응한 현지 한국 사람들과의 사이에 문화적 갈등도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더욱 술을 찾게 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술을 꺼내 놓고 대화를 나누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저는 숨막히게 싫은 내색을 하며 술을 마실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견했습니다. 남편도 때로는 자책하고 후회하며 이런저런 각오와 결심, 약속 등을 했지만 작심삼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날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남편에게 감정을 강하게 터트려 격한 싸움을 치르고 나면 마음이 찢어져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습니다. 결혼 생활은 암흑이고 슬픔이라 생각되었고, 결혼 전에 가졌던 꿈과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웠기에 제 삶은 망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하루가 괴로웠습니다. 늘 부르던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도 주가 즐겁게 하시리라” 하는 찬송가는 나이 오십이 넘어 멈추게 되었고, 건강 또한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일단 성경책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지내던 동네 친구들에게 제 있는 그대로를 숨김 없이 털어놓고 넋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언니가 남편 문제에 귀를 기울이더니, 남편이 알코올 중독이니 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저는 남편에게 술을 끊지 않으면 이혼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며 맞섰습니다. 남편 또한 이런 뻣뻣한 여자에게 절대로 질 수 없다며 버티었습니다.




서로 강퍅해진 마음으로 맹렬하게 힘을 다해 대항한 시간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했습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확신조차 무너진 상태였기에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수시로 싸움이 벌어졌고, 심한 싸움 끝에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을 이기지 못하고 한밤에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으로 가 차를 세워 두고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향해 악을 쓰기도 했습니다.





구원받은 자매를 만나고


그 즈음에 제가 이따금 만나던 사람 중에는 이 자매가 있었습니다. 이 자매를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쯤으로, 제가 살던 온타리오 북쪽 지역에서 교회 생활을 할 무렵, 가끔씩 또래 집사들과 가졌던 식사 모임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때 본 이 자매의 신앙은 분명하고 흔들림이 없어 보였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육신적인 것이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이 자매가 집사들과 교제를 가졌던 것은, 사람이 그리워서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잘못된 종교 생활에 빠진 사람들에게 진실한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자매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제게 거듭났느냐고 물었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며,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는 순간,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고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모든 생물에는 탄생이라는 것이 있기에, 나의 영혼은 어떠한가 하는 질문은 저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언제인지를 묻는 말에 황당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면서 들었던 그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은 들어보지 못했기에 어리둥절했습니다. 분명 성경에 쓰여 있으니 틀린 질문은 아니었고, 나의 신앙생활 속에 그런 일이 없었을 리가 없어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십자가의 보혈을 찬송하였던가? 시댁에서 제사가 있을 때마다 영적으로 이기기 위해 보혈 찬송으로 싸우지 않았던가?’ 저는 제가 가진 신앙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듭남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1997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우리 가정이 조상귀신을 섬겨 영적 간음을 범했으니 하나님 앞에 회개 예물을 드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순간 당황하여 얼마를 드려야 가문의 죄를 갚는 것인가, 온 재산을 다 드린다고 해서 죄 값이 치러지겠는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는 집사에게 물었더니, 히브리서 10장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단번에 우리 죄를 씻으셨고 다시는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않으신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 말씀을 읽고 확신이 서자 예수님의 보혈의 죄 사함에 위안이 되었고 그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이 자매에게 그때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찬양을 즐겨 한 일이 있었다고 말하자,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되었으니 맞다고 반가워하며 자매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반 교회에서는 잘 쓰지 않는 그 호칭이 별나게 느껴져 불편했습니다.




그 후 이 자매와 조금 뜸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저희 부부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남은 삶을 함께할 마음이 없어져 서로 팽팽하게 맞서게 되었고, 남편은 별거를 이야기했습니다. 막내아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부모로서는 할 일을 마친 셈이고, 이 나라 정서상 부모의 이혼은 큰일이 아니니 저도 그 문제에 대해 그리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의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중에 만난 이 자매는 그동안 ‘형제자매’를 간절히 찾아 나섰다는 이야기를 했고, 저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울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다 들은 이 자매는 남편이 구원받으면 모두 해결될 문제라고 했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것이 맞다면 구원받지 못한 남편을 위해 애통하는 마음이 먼저여야지, 술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육신적인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분명하고 단호하게 해결 방법을 제시하며, 자신 또한 구원받지 못한 남편에 대해 간절한 소망뿐이며 육에 대한 걱정과 근심은 모두 내려놓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구원받지 않으면 다 죄인이고, 잘 산다고 해 봐야 진실 없는 거짓이기에 다 거기서 거기라고도 했습니다. 핵심을 찌르는 말에 저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자매는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제목의 권신찬 목사님의 설교 DVD를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후 찾아간 교회에 대해 소개하며 확실한 복음을 전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참된 영생의 말씀이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자매의 태도에 저는 의심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DVD 플레이어 사용 방법을 모르기도 하거니와 막내아들이 갓 대학에 들어갔던 때인지라 남편과의 일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그렇게 설교 듣기를 미루다가 이 자매로부터 DVD를 다시 돌려달라는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휴대용 DVD 플레이어를 구입해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계속 이어지는 말씀을 들으면서, 성경 구절을 일일이 찾으며 성경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에 흥미가 생겼고, 결국 말씀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DVD를 받기 전 이 설교를 하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세상의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이정미 자매의 신앙이 매우 분명했기에 말씀을 듣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는 일절 말하지 않은 채 저녁마다 집중해서 노트에 적으며 듣고 되돌려 또 들었습니다. 하나씩 다 들을 때마다 이 자매를 만나 그 다음 번 DVD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누가복음 15장 11절-32절 말씀의 탕자의 비유로 시작하는 설교 말씀을 들으며 성경을 자세히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나오는 표현 하나하나가 전부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자기 몫의 유산을 챙겨 받아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의 모습, 세상에 나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는 모습, 재산을 다 탕진한 후 흉년이 들어 궁핍해진 모습,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으나 주는 자가 없는 모습이 현재의 저 같았습니다.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며 자신을 품꾼의 하나로 봐 달라고 하는 둘째 아들의 모습이 제 모습으로 여겨졌습니다.




순식간에 내 영혼의 정체가 드러나서 저는 마구 울었습니다. 그때 계속해서 들려오는 말씀이, 돌아오는 아들을 본 아버지가 먼 거리를 달려가 거지꼴이 된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즐기자고 하며,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아버지가 입혀 주신 그 옷은 의의 옷입니다! 거룩한 옷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감격의 눈물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제 영혼에 성령의 음성이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선포되었고 인 쳐져 새겨졌습니다. 돌아온 아들이 행할 모습이 저의 새로운 각오와 함께 그려졌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깨달아 아버지의 유업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 밖에 나가 봐야 만족할 수 없음을 알았으니 이제는 절대로 세상에 나가 돼지 치는 자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쓰린 기억 속 세상의 맛없는 쥐엄 열매로 자기 배를 채우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와 새로운 언약을 맺었다는 생각에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습니다.




때는 밤늦은 시간이었고 남편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계속 말씀을 들으려는 중에 마침 이 자매가 소감이 어떠하냐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제 안에 이루어진 일들을 간증했습니다. 감격의 순간을 놓칠 수 없어 서로 찬송가 가사를 나누며 기쁨에 젖었습니다. 그제야 이제까지 불러 왔던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하는 찬송이 제 안에 진실로 이루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지난날의 무지몽매했던 신앙생활을 생각하니 이 순간이 바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역사적 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남은 DVD를 들으려 하자 남편이 설교자에 대해 모함한 글을 인터넷에서 찾아 읽고는 난리를 치며 추궁했습니다. 이 자매와 저는 15분 거리에 살고 있었는데, DVD를 하나씩 받아와 매일 밤늦도록 듣고 들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것을 받아 와서 듣는 모습이 무엇엔가 빠진 것처럼 보였던가 봅니다. 저는 이 말씀은 정말 좋은 말씀이고 이 말씀으로 내 영혼에 이루어진 일을 말하며 거듭났다고 간증했지만 남편은 내내 저를 의심하고 경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남편에 의해 온 동네에 저에 대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으로 말씀을 모함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말씀을 들어나 보고 말하라고 강력히 권했지만 남편은 듣기를 극구 거부했습니다. 이혼하자고 해도 굽히지 않던 제가 가정을 지킬 것이라고 선언했는데도 남편은 그 말을 더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복음을 위해 살겠다는 저의 단호한 각오의 말에 겁을 먹었습니다.




이전에는 설교를 듣고 은혜로우면 남편에게 그 내용을 전해 주고 남편에게 맞추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의로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 태어난 자녀를 몰라보는 남편과 주변 사람들의 태도는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결국 제 입에서도 부드러운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 불쾌함을 이기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 말씀을 듣고 확인해 보라며 강하게 이야기했고, 결국 남편은 내용을 점검하기 위해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마음도 진리의 말씀 앞에 녹아내렸고, 성경의 모든 내용이 완전히 믿어졌다고 했습니다. 한 번 다 들은 후 다시 순서대로 듣던 남편은 마지막 설교에서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자매의 권유로 존 버니언의 생애를 다룬 책과 <천로역정> 등을 읽으며 자신이 구원받지 못한 이유는 세상에 미련이 많고 자기 의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역시 2016년 2월 3일에 잠언 8장 17절 말씀에서, 이제껏 자신을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아왔음을 눈물로 회개하며 구원받았습니다.




남편과 제가 구원받고 나니 원수 같았던 저희는 같은 마음으로 예수만을 섬기는 진실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한마음 한뜻으로 모시어 살게 되니 화평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믿음의 결국은 구원이고, 거듭나야 구원받은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이제 주의 일을 하기 위해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제가 받은 이 복음을 기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고, 이전의 헛된 종교인으로서의 행세를 담대하게 버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아직 영혼 속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다면 자신의 영혼을 진지하게 돌아보시라고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는 영원한 사망이냐 영원한 생명이냐의 중요한 문제이기에 더욱 강조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 영혼에 성경의 역사하심이 없어 구원받지 못한 채 종교생활에만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 교인들이 허다하게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주 참담하고 답답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런 교인들에게 말을 꺼내 보기도 했지만, 그들은 자기는 구원받았고 증거는 없지만 마음에 확신이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시원스럽게 말을 내뱉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비유하자면 어떤 소설책을 흥미롭게 읽으며 주인공에 대해 많이 알고 감동까지 받았지만 실제로는 이야기 속 주인공과 전혀 만나본 적도 없는 독자에 불과했습니다. 그저 주인공을 좋아해서 흉내 내며 잘 아는 것처럼 행동했던 것뿐이었습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뜻, 즉 내 영혼이 진정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진 날을 기억하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며 하나 된 결혼식 날을 잊지 못할 귀중한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한한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