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저는 제가 스무 살 때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작년 8월에는 안성에서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봉사 활동을 했는데, 그때 저는 부대로 출퇴근하는 상근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봉사하러 온 형제자매들과 같이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았습니다. 퇴근 후에는 저녁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 마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전에는 군부대에 출근해서 갓 성인이 된 세상의 친구들과 생활하다, 퇴근한 후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교제를 하는 양극단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 보니 무언지 모르지만 스스로에게 괴리감을 많이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올해 1월쯤에 한 친구로부터 예수께서 네 죄를 사해 주신 사실을 확실히 믿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순간 양심에 찔리는 것이 있었지만 저는 예수께서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한 번도 부정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질문은 자꾸 제 머릿속을 맴돌며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제야 저는 무언가를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읽고, 평소에는 잘 들어가지 않던 온라인 교제 자리도 참석했습니다. 어느 날 청년들이 교제하는 온라인 모임에 참석했는데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자기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데, 그때 저는 예수께서 제 마음속에 들어오신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제가 아직 구원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던 중 누나로부터 일 맡은 청년들이 한 청년에게 모임 장소에서 중고등부 전도집회 말씀을 듣게 해 주려고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누나가 같이 가서 듣겠느냐고 제안하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코로나로 인해 조심해야 하니 참석이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구원받지 않은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을 들었고, 점심시간에도 짬짬이 말씀을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들을 수는 없다는 누나의 말을 들으니 저에게 주어진 기회 중 한 번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구원은 저 스스로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엄마에게 제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곧 다른 가족들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누나가 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함께 집회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도와주었는데, 현장에서 들으니 온라인으로 집에서 편안히 들을 때보다 집중이 더 잘되었습니다.
집회 말씀들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강사님은 첫날부터 창세기 내용을 예수님과 연결 지으며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말씀을 어떻게 복음과 연결하실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다섯 번째 날에는 ‘통회하는 마음’에 대해 설명하시며 이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될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다윗은 범죄했을 때 자기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지나치지 않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고 통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베드로의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다가 얻은 것이 없어 그물을 정리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내가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말씀에 의지하여 던져 보겠습니다.’ 하며 그물을 던졌고, 두 배에 가득 찰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엎드리면서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떠나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따라가서 복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그런 자신으로 인해 오히려 예수님이 더러워질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에게는 왜 이런 마음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제게도 낮아진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도 내가 진짜 죄인이기 때문에 통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인지, 그저 지옥에 가기 싫은 마음에 하나님께 부탁을 드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제가 참 나쁜 사람 같았습니다. 그렇게 중고등부 전도집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후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집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한 형제님께 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제가 구원받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던 순간과 현재의 마음 상태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제게 출애굽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려 하셨고, 바로는 강퍅한 마음으로 그 일을 막았지만 열 가지 재앙을 겪고는 그들을 보내 주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 마음이 바로왕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생각은 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 하나조차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고 자꾸 죄를 짓는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저는 그분께, 내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도 어디 놀러 가자고 했던 친구들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그러면서도 놀러 가자는 말에 끌렸던 것을 말씀드리면서, 당시에는 제가 구원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하나님께서는 네가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지도 다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아시지만 그럼에도 이미 2천 년 전에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해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제가 중점을 두어야 할 곳은 제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보다 편한 마음으로 집회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이 선교사께서 강의하시는 다섯째 날이었는데, 말씀하시는 내용은 다른 전도집회 말씀들과 같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 것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제야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교사께서는 예수님이 내 죄였다고 하시면서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한 몸에 지시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과거부터 미래의 죄까지 다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시고, 결국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아, 이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구원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무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중고등부 전도집회 때 강사님이 요한복음 5장 39절에 대해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하는 앞부분에만 중점을 두기 마련인데, 사실 중점을 두어야 될 부분은 그 뒤에 이어지는 부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이 설명을 들으면서도 저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서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그때 상담해 주시는 분은 제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살펴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제 마음 상태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든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구원해 주셨다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비로소 그 의미가 와닿았습니다.
수학 공식을 가르쳐 주고 응용문제를 풀어 보라고 하면 푸는 사람이 있고 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문제를 못 푸는 정도도 아니고 수학 자체를 포기해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게 어떻게 문제를 푸는 것인지 차근차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전도집회 말씀들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신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확신이 없는 제게 설명해 주시는 그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직접 해 주시는 말씀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한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데는 당사자의 노력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지막 날 전도집회 때 들은 방탕한 둘째 아들 이야기를 통해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고 계셨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크게 마음에 와닿았던 내용은 중풍병자와 그를 달아 내린 네 사람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중풍병자의 믿음도 중요했겠지만, 예수께서는 그를 달아 내린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이후에 한 자매로부터 전도집회를 준비하면서 정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 뿌리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결코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는 그 자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이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고난에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던 네 사람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게 구원받은 간증을 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저는 숨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고난의 대열에 함께할 수 있도록 첫 발걸음을 내딛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이는 분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우연이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의미를 두기 위해 저의 입을 여신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제가 스무 살 때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작년 8월에는 안성에서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봉사 활동을 했는데, 그때 저는 부대로 출퇴근하는 상근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봉사하러 온 형제자매들과 같이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았습니다. 퇴근 후에는 저녁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 마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전에는 군부대에 출근해서 갓 성인이 된 세상의 친구들과 생활하다, 퇴근한 후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교제를 하는 양극단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 보니 무언지 모르지만 스스로에게 괴리감을 많이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올해 1월쯤에 한 친구로부터 예수께서 네 죄를 사해 주신 사실을 확실히 믿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순간 양심에 찔리는 것이 있었지만 저는 예수께서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한 번도 부정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질문은 자꾸 제 머릿속을 맴돌며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제야 저는 무언가를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읽고, 평소에는 잘 들어가지 않던 온라인 교제 자리도 참석했습니다. 어느 날 청년들이 교제하는 온라인 모임에 참석했는데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자기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데, 그때 저는 예수께서 제 마음속에 들어오신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제가 아직 구원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던 중 누나로부터 일 맡은 청년들이 한 청년에게 모임 장소에서 중고등부 전도집회 말씀을 듣게 해 주려고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누나가 같이 가서 듣겠느냐고 제안하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코로나로 인해 조심해야 하니 참석이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구원받지 않은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을 들었고, 점심시간에도 짬짬이 말씀을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들을 수는 없다는 누나의 말을 들으니 저에게 주어진 기회 중 한 번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구원은 저 스스로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엄마에게 제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곧 다른 가족들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누나가 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함께 집회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도와주었는데, 현장에서 들으니 온라인으로 집에서 편안히 들을 때보다 집중이 더 잘되었습니다.
집회 말씀들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강사님은 첫날부터 창세기 내용을 예수님과 연결 지으며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말씀을 어떻게 복음과 연결하실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다섯 번째 날에는 ‘통회하는 마음’에 대해 설명하시며 이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될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다윗은 범죄했을 때 자기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지나치지 않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고 통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베드로의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다가 얻은 것이 없어 그물을 정리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내가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말씀에 의지하여 던져 보겠습니다.’ 하며 그물을 던졌고, 두 배에 가득 찰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엎드리면서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떠나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따라가서 복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그런 자신으로 인해 오히려 예수님이 더러워질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에게는 왜 이런 마음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제게도 낮아진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도 내가 진짜 죄인이기 때문에 통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인지, 그저 지옥에 가기 싫은 마음에 하나님께 부탁을 드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제가 참 나쁜 사람 같았습니다. 그렇게 중고등부 전도집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후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집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한 형제님께 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제가 구원받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던 순간과 현재의 마음 상태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제게 출애굽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려 하셨고, 바로는 강퍅한 마음으로 그 일을 막았지만 열 가지 재앙을 겪고는 그들을 보내 주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 마음이 바로왕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생각은 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 하나조차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고 자꾸 죄를 짓는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저는 그분께, 내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도 어디 놀러 가자고 했던 친구들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그러면서도 놀러 가자는 말에 끌렸던 것을 말씀드리면서, 당시에는 제가 구원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하나님께서는 네가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지도 다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아시지만 그럼에도 이미 2천 년 전에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해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제가 중점을 두어야 할 곳은 제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보다 편한 마음으로 집회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이 선교사께서 강의하시는 다섯째 날이었는데, 말씀하시는 내용은 다른 전도집회 말씀들과 같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 것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제야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교사께서는 예수님이 내 죄였다고 하시면서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한 몸에 지시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과거부터 미래의 죄까지 다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시고, 결국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아, 이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구원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무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중고등부 전도집회 때 강사님이 요한복음 5장 39절에 대해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하는 앞부분에만 중점을 두기 마련인데, 사실 중점을 두어야 될 부분은 그 뒤에 이어지는 부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이 설명을 들으면서도 저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서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그때 상담해 주시는 분은 제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살펴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제 마음 상태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든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구원해 주셨다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비로소 그 의미가 와닿았습니다.
수학 공식을 가르쳐 주고 응용문제를 풀어 보라고 하면 푸는 사람이 있고 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문제를 못 푸는 정도도 아니고 수학 자체를 포기해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게 어떻게 문제를 푸는 것인지 차근차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전도집회 말씀들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신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확신이 없는 제게 설명해 주시는 그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직접 해 주시는 말씀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한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데는 당사자의 노력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지막 날 전도집회 때 들은 방탕한 둘째 아들 이야기를 통해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고 계셨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크게 마음에 와닿았던 내용은 중풍병자와 그를 달아 내린 네 사람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중풍병자의 믿음도 중요했겠지만, 예수께서는 그를 달아 내린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이후에 한 자매로부터 전도집회를 준비하면서 정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 뿌리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결코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는 그 자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이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고난에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던 네 사람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게 구원받은 간증을 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저는 숨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고난의 대열에 함께할 수 있도록 첫 발걸음을 내딛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이는 분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우연이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의미를 두기 위해 저의 입을 여신 것이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