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은 유치원 시절입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는 것이 저에게는 습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모든 일이 잘 안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교회를 착실하게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고입준비를 위하여 독서실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술과 담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긋난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교회도 나가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해서 더욱더 타락의 극치를 달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술집도 드나들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다 하게 되었습니다. 위선과 이중인격의 생활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을 찾게 되었는데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범했다는 그 자체가 두려웠기 때문에 죄책감을 풀기 위해서 찾는 대상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에 가끔 나가게 되었는데 그러한 것이 나름대로는 편리하기도 했습니다. 죄를 짓고 교회에 가서 죄를 회개하면 마음의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진 것 같았습니다. 사실 다소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가끔 찬송가 뒤편에 나와 있는 십계명도 보고 그 계명대로 살려고 노력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조금씩 죄 사함도 받고 마음의 위안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가 직장 동료의 권유로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오후의 말씀만 들었는데 첫날부터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하기 얼마 전에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내용과 목사님의 말씀이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도 이것이 정말 사실인가 하는 의문이 남았었고, 또 저에게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했기 때문에 ‘괜히 일주일간 피곤하게 헛수고만 하겠구나 차라리 편하게 집에서 책을 한 번 더 읽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인도해 준 동료의 성의도 있고, 일주일간 빠지지 않고 나오겠다는 굳은 약속도 했기에 그냥 듣기로 했습니다.
4일째, 그러니까 목요일까지 들으면서도 아무런 마음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까지 들으니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저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셔서 이전에 지은 죄와 앞으로의 죄까지 다 사하여 주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서광이 비쳤다고 할까요? 하여튼 길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인 토요일에 그러한 모든 생각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계속 성경 말씀을 찾아가면서 읽는 데 정말일까 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냥 지식적으로만 들었던 것이지 서광이라든지 길이라든지 하는 것은 전부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이제 이 시간이 지나면 구원도 못 받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은 점점 착잡해져 갔습니다. 절망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포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 권목사님께서 성경을 사실로 믿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는데 제 앞, 뒤, 옆,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손을 드는데 혹시 나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도 믿고는 있는 데 확신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기심도 생기고 창피했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말씀을 듣던 중에 히브리서 9장 12절 말씀의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하는 말씀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그 고통을 생각하니 내 자식이라면 그런 곳에 내놓지 않겠는데,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오직 나의 죄를, 세상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다니? 너무나 큰 사랑이 깊이 느껴졌습니다.
전에도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과 같은 느낌은 없었습니다. 계속 말씀을 듣다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출애굽 할 때의 놋뱀의 역사를 들을 때, 놋뱀을 쳐다만 보면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예수님 제가 쳐다보겠습니다.”하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안도의 숨을 쉴 때처럼 마음이 착 가라앉는 듯했습니다. 믿음의 확신이 섰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말세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 이후에 제 생활은 변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과 담배도 끊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좋든 나쁘든 간에 제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또 제가 타락의 길에 빠지기 쉽게 했던 것이 술, 담배였기에 먼저 제 생활에서 추방되어야 했습니다. 제 인생의 목표도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 내에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하는 세상적인 생각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다시 세상 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생활을 할까' 로 변했습니다.
구원받기 전의 저는 예수님이 장사될 때 저의 죄와 같이 장사되었고, 부활하셨던 것처럼 저 또한 새 생명을 받았으니 이제까지 내 중심으로 살던 생활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열매 맺는 나무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렵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은 유치원 시절입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는 것이 저에게는 습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모든 일이 잘 안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교회를 착실하게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고입준비를 위하여 독서실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술과 담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긋난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교회도 나가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해서 더욱더 타락의 극치를 달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술집도 드나들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다 하게 되었습니다. 위선과 이중인격의 생활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을 찾게 되었는데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범했다는 그 자체가 두려웠기 때문에 죄책감을 풀기 위해서 찾는 대상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에 가끔 나가게 되었는데 그러한 것이 나름대로는 편리하기도 했습니다. 죄를 짓고 교회에 가서 죄를 회개하면 마음의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진 것 같았습니다. 사실 다소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가끔 찬송가 뒤편에 나와 있는 십계명도 보고 그 계명대로 살려고 노력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조금씩 죄 사함도 받고 마음의 위안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가 직장 동료의 권유로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오후의 말씀만 들었는데 첫날부터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하기 얼마 전에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내용과 목사님의 말씀이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도 이것이 정말 사실인가 하는 의문이 남았었고, 또 저에게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했기 때문에 ‘괜히 일주일간 피곤하게 헛수고만 하겠구나 차라리 편하게 집에서 책을 한 번 더 읽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인도해 준 동료의 성의도 있고, 일주일간 빠지지 않고 나오겠다는 굳은 약속도 했기에 그냥 듣기로 했습니다.
4일째, 그러니까 목요일까지 들으면서도 아무런 마음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까지 들으니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저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셔서 이전에 지은 죄와 앞으로의 죄까지 다 사하여 주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서광이 비쳤다고 할까요? 하여튼 길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인 토요일에 그러한 모든 생각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계속 성경 말씀을 찾아가면서 읽는 데 정말일까 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냥 지식적으로만 들었던 것이지 서광이라든지 길이라든지 하는 것은 전부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이제 이 시간이 지나면 구원도 못 받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은 점점 착잡해져 갔습니다. 절망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포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 권목사님께서 성경을 사실로 믿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는데 제 앞, 뒤, 옆,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손을 드는데 혹시 나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도 믿고는 있는 데 확신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기심도 생기고 창피했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말씀을 듣던 중에 히브리서 9장 12절 말씀의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하는 말씀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그 고통을 생각하니 내 자식이라면 그런 곳에 내놓지 않겠는데,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오직 나의 죄를, 세상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다니? 너무나 큰 사랑이 깊이 느껴졌습니다.
전에도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과 같은 느낌은 없었습니다. 계속 말씀을 듣다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출애굽 할 때의 놋뱀의 역사를 들을 때, 놋뱀을 쳐다만 보면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예수님 제가 쳐다보겠습니다.”하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안도의 숨을 쉴 때처럼 마음이 착 가라앉는 듯했습니다. 믿음의 확신이 섰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말세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 이후에 제 생활은 변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과 담배도 끊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좋든 나쁘든 간에 제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또 제가 타락의 길에 빠지기 쉽게 했던 것이 술, 담배였기에 먼저 제 생활에서 추방되어야 했습니다. 제 인생의 목표도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 내에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하는 세상적인 생각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다시 세상 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생활을 할까' 로 변했습니다.
구원받기 전의 저는 예수님이 장사될 때 저의 죄와 같이 장사되었고, 부활하셨던 것처럼 저 또한 새 생명을 받았으니 이제까지 내 중심으로 살던 생활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열매 맺는 나무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