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홉 살 때에 조국을 떠나 서독으로 왔습니다. 한국을 떠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 새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살아갔습니다. 저는 저의 물질적인 욕망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채우면서 자랐습니다. 모든 행복은 저의 아름다운 가정에서 찾을 수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역시 제 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제 가족은 여러 가지 문제점에 부딪혔고 화목했던 가정이 불행해지게 되면서 가정 내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행복했던 가정에 평화가 깨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큰 실망과 고난에 빠지게 되었으며 제가 즐기던 행복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제 삶과 이 세상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의 인생은 너무나 불행하게 보였고 슬픔만 꽉 차있는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어두운 세상에 내가 왜 살아야 할까?' 하는 것이 제 인생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인생에 확실한 뜻이 있다면 나의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되고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저의 소원이었고 바로 그것이 의미 있는 삶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에 단단히 결심하고 선한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불행 속에 사는 세상 사람을 구원하여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봉사활동에 마음을 쓰기 시작하며 하늘나라 곧 평화와 기쁨과 행복이 가득 찬 지상천국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려 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열심히 살던 중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영생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지상 천국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이 없으면 결코 헛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뜻은 완전하지 않은가?' '왜 모든 인생의 마지막이 결국 죽음의 길로 가야 하는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봉사활동이 혹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어쩌나?' 하면서 방황했습니다.
이러한 고민 중에 빠졌을 때 어느 날 벽에 쓰여진 성경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무관심하게 읽었던 이 구절이 저에게 말할 수 없는 시원한 답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 곧 주 안에 있는 영생이 모든 인생 문제를 풀어주는 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생에 대하여 더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저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고 하나님을 위해 선한 뜻을 이루려 했으나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제가 영생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나의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또 잃었던 행복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영생만 생각하며 이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하며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어떤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제가 예전부터 잘 알고 있던 형이었습니다. 그 글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기쁨이 강물처럼 그의 마음에 흘러넘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편지를 써서 형과 같이 만나기로 했습니다. 함께 대화를 나눈 결과 형은 확실히 영생을 얻었고 또 실질적으로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형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형이 빌려준 <성경은 사실이다>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엄청난 사실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이 저를 매우 흥분케 했습니다.
만일 이 성경이 사실이라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마지막 때가 가까워져 왔고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너무나도 엄청나서 차마 믿지 못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큰 의심이 떠오르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저의 의심은 마주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7개월 간의 끈질긴 영적 싸움에서 저는 어찌 해야 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의심을 물리쳤을 때에 하늘이 무너지듯이 저의 모든 사상과 가치관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성벽을 쌓듯이 저의 생각만 앞두고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그려내서 섬기고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모든 생각을 버리게 되었고 오랫동안 가져왔던 잘못된 신앙관도 벗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나에게 이 찬송가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세상의 사신 우상 버리고
인간의 헛된 부귀영화도
이 길과 저 길 모두 버리고
온전히 여호와만 섬기세 (찬송가 357장)
모든 생각과 모든 길을 버리고 오직 영생을 얻고자 하여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그 후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했으나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게 되어서 큰 실망을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이심을 믿었는데 왜 영생을 못 얻었을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시는데 왜 나에게는 이 사실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만 위해서 살려고 했고 또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정직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는데 왜 인정을 안 해 주실까?' 하면서 따졌습니다.
죄를 깨닫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에 제 마음은 더 답답했습니다. '영생을 못 얻어서 답답한데 알지도 못한 죄를 어떻게 깨닫지?'
저는 그 후 저에게 죄를 깨닫게 해 달라는 기도를 쉬지 않고 하며 조용히 성경책을 읽으면서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기도의 응답은 이루어지지 않고 마음은 더 답답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내가 저 자신의 죄를 모르니 일부러 죄를 지어서라도 죄를 깨닫는 게 어떨까?’ 하면서 일부러 율법을 어기려고 세상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죄를 깨닫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세상 재미에 제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찾고 노력을 해봐도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을 대항하고 반항하는 삶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무시하며 오히려 이 세상을 지배하는 마귀와 함께 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일부러 잊으려고 세상의 쾌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멸망 날을 모르고 살아가지만 저는 나의 운명을 확실히 알았으므로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매일매일 죽음을 향하여 멸망 받을 인생들과 함께 마지막 인생을 즐기면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두렵게 보였고 나의 인생은 지옥을 면할 수 없었으며 마귀는 제 마음을 세상의 쾌락으로 붙잡아 왔고 저 자신은 어떻게 할 줄 몰라서 거의 미쳐가고 있는듯 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상태로 감히 하나님을 우러러볼 수도 없었고 마땅히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목숨까지 바쳤던 저는 오히려 하나님께 대항하게 되었고 아무 쓸데 없는 악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생을 바라보던 제가 이제는 아무 소망도 없고 영원한 죽음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음 해인 89년 유럽지역 성경탐구모임에 다시 한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집회가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가 당한 모든 고난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가 가시면류관을 씀은 우리가 생각으로 죄를 범한 것이요, 그가 손과 발에 못 박힘을 당함은 우리가 죄를 행함이요, 가슴에 찔림을 받음은 우리가 악한 마음을 가졌음이요”
이상하게도 이 말씀은 제게 어떤 무거운 짐을 풀어준 것 같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죄의 고통은 사라져 버렸고 모든 것이 가벼워졌습니다. 전에는 발을 한 걸음씩 움직이기도 무거웠고 죄를 짓는 것 같았는데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하셨다는 그 사실이 저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이라는 것은 영생을 얻었다는 확신인데 제겐 이러한 확신이 없어서 아마 구원이 아닐 거야 하고 집회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지만 영생의 확신은 없었어도 제 마음이 가볍고 시원했던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요 5:41~42)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셔서 내 모든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알았으며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요 1:9)이 제 마음에 와서 저의 모든 어둠을 삼켜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였고 모든 성경 말씀은 저를 사랑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처음으로 감사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주 보혈로 날 사심은 그 뜻이 깊고 크셔라
상하심과 죽으심이 어찌 날 위함이온지
놀라워라 주 사랑이 날 위해 죽으신 사랑
놀라워라 주 사랑이 어찌 날 위함이온지
(복음성가 50장)
죽을 죄 지은 내 영혼을 구하시고 영생도 거저 주시는 주님의 은혜는 말할 수 없이 감사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저에게 참 행복과 영생을 이루어주셨으니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며 내 주로 모시는 것이 너무나도 마땅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저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기쁨이 강물처럼 제 마음에 흘러넘친다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내게 또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어떤 성도가 찬송했듯이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저도 간절히 원하는 바입니다.
저는 아홉 살 때에 조국을 떠나 서독으로 왔습니다. 한국을 떠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 새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살아갔습니다. 저는 저의 물질적인 욕망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채우면서 자랐습니다. 모든 행복은 저의 아름다운 가정에서 찾을 수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역시 제 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제 가족은 여러 가지 문제점에 부딪혔고 화목했던 가정이 불행해지게 되면서 가정 내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행복했던 가정에 평화가 깨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큰 실망과 고난에 빠지게 되었으며 제가 즐기던 행복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제 삶과 이 세상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의 인생은 너무나 불행하게 보였고 슬픔만 꽉 차있는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어두운 세상에 내가 왜 살아야 할까?' 하는 것이 제 인생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인생에 확실한 뜻이 있다면 나의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되고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저의 소원이었고 바로 그것이 의미 있는 삶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에 단단히 결심하고 선한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불행 속에 사는 세상 사람을 구원하여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봉사활동에 마음을 쓰기 시작하며 하늘나라 곧 평화와 기쁨과 행복이 가득 찬 지상천국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려 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열심히 살던 중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영생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지상 천국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이 없으면 결코 헛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뜻은 완전하지 않은가?' '왜 모든 인생의 마지막이 결국 죽음의 길로 가야 하는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봉사활동이 혹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어쩌나?' 하면서 방황했습니다.
이러한 고민 중에 빠졌을 때 어느 날 벽에 쓰여진 성경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무관심하게 읽었던 이 구절이 저에게 말할 수 없는 시원한 답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 곧 주 안에 있는 영생이 모든 인생 문제를 풀어주는 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생에 대하여 더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저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고 하나님을 위해 선한 뜻을 이루려 했으나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제가 영생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나의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또 잃었던 행복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영생만 생각하며 이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하며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어떤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제가 예전부터 잘 알고 있던 형이었습니다. 그 글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기쁨이 강물처럼 그의 마음에 흘러넘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편지를 써서 형과 같이 만나기로 했습니다. 함께 대화를 나눈 결과 형은 확실히 영생을 얻었고 또 실질적으로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형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형이 빌려준 <성경은 사실이다>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엄청난 사실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이 저를 매우 흥분케 했습니다.
만일 이 성경이 사실이라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마지막 때가 가까워져 왔고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너무나도 엄청나서 차마 믿지 못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큰 의심이 떠오르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저의 의심은 마주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7개월 간의 끈질긴 영적 싸움에서 저는 어찌 해야 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의심을 물리쳤을 때에 하늘이 무너지듯이 저의 모든 사상과 가치관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성벽을 쌓듯이 저의 생각만 앞두고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그려내서 섬기고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모든 생각을 버리게 되었고 오랫동안 가져왔던 잘못된 신앙관도 벗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나에게 이 찬송가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세상의 사신 우상 버리고
인간의 헛된 부귀영화도
이 길과 저 길 모두 버리고
온전히 여호와만 섬기세 (찬송가 357장)
모든 생각과 모든 길을 버리고 오직 영생을 얻고자 하여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그 후 성경탐구모임에 참석했으나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게 되어서 큰 실망을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이심을 믿었는데 왜 영생을 못 얻었을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시는데 왜 나에게는 이 사실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만 위해서 살려고 했고 또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정직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는데 왜 인정을 안 해 주실까?' 하면서 따졌습니다.
죄를 깨닫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에 제 마음은 더 답답했습니다. '영생을 못 얻어서 답답한데 알지도 못한 죄를 어떻게 깨닫지?'
저는 그 후 저에게 죄를 깨닫게 해 달라는 기도를 쉬지 않고 하며 조용히 성경책을 읽으면서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기도의 응답은 이루어지지 않고 마음은 더 답답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내가 저 자신의 죄를 모르니 일부러 죄를 지어서라도 죄를 깨닫는 게 어떨까?’ 하면서 일부러 율법을 어기려고 세상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죄를 깨닫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세상 재미에 제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찾고 노력을 해봐도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을 대항하고 반항하는 삶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무시하며 오히려 이 세상을 지배하는 마귀와 함께 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일부러 잊으려고 세상의 쾌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멸망 날을 모르고 살아가지만 저는 나의 운명을 확실히 알았으므로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매일매일 죽음을 향하여 멸망 받을 인생들과 함께 마지막 인생을 즐기면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두렵게 보였고 나의 인생은 지옥을 면할 수 없었으며 마귀는 제 마음을 세상의 쾌락으로 붙잡아 왔고 저 자신은 어떻게 할 줄 몰라서 거의 미쳐가고 있는듯 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상태로 감히 하나님을 우러러볼 수도 없었고 마땅히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목숨까지 바쳤던 저는 오히려 하나님께 대항하게 되었고 아무 쓸데 없는 악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생을 바라보던 제가 이제는 아무 소망도 없고 영원한 죽음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음 해인 89년 유럽지역 성경탐구모임에 다시 한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집회가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가 당한 모든 고난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가 가시면류관을 씀은 우리가 생각으로 죄를 범한 것이요, 그가 손과 발에 못 박힘을 당함은 우리가 죄를 행함이요, 가슴에 찔림을 받음은 우리가 악한 마음을 가졌음이요”
이상하게도 이 말씀은 제게 어떤 무거운 짐을 풀어준 것 같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죄의 고통은 사라져 버렸고 모든 것이 가벼워졌습니다. 전에는 발을 한 걸음씩 움직이기도 무거웠고 죄를 짓는 것 같았는데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하셨다는 그 사실이 저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이라는 것은 영생을 얻었다는 확신인데 제겐 이러한 확신이 없어서 아마 구원이 아닐 거야 하고 집회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지만 영생의 확신은 없었어도 제 마음이 가볍고 시원했던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요 5:41~42)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셔서 내 모든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알았으며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요 1:9)이 제 마음에 와서 저의 모든 어둠을 삼켜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였고 모든 성경 말씀은 저를 사랑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처음으로 감사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주 보혈로 날 사심은 그 뜻이 깊고 크셔라
상하심과 죽으심이 어찌 날 위함이온지
놀라워라 주 사랑이 날 위해 죽으신 사랑
놀라워라 주 사랑이 어찌 날 위함이온지
(복음성가 50장)
죽을 죄 지은 내 영혼을 구하시고 영생도 거저 주시는 주님의 은혜는 말할 수 없이 감사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저에게 참 행복과 영생을 이루어주셨으니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며 내 주로 모시는 것이 너무나도 마땅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저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기쁨이 강물처럼 제 마음에 흘러넘친다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내게 또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어떤 성도가 찬송했듯이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저도 간절히 원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