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참석한 전도 집회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20년을 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들어본 내용에 대한 두려움과 감사한 마음이 막연히 구원이라 생각했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스스로도 그때는 구원이 아니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모여서 교제를 하는 자리에서 저는 애써 간증과 교제를 머릿속에 구상해내고 있는 스스로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가끔 교회에 나가 반가운 친구들 보고 그런 삶을 살다가 작년에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일을 겪고 마음에 의지할 곳을 찾고자 교회를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교제 자리가 많아질수록 거짓 구원인 것을 부인할 수 없었고 인정을 하며 스스로 찾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계속 상황이 안 되다 설 연휴 전도 집회에 참여를 했습니다. 어렵게 허락된 여건이라 간절하고 감사한 마음에 참석을 한 것 같습니다. 굉장히 타이트한 말씀 일정이었지만 나름 절박한 심정이어서 그런지 피곤함도 없었고 시간이 빨리 흘렀습니다.
저는 굉장히 고집이 세고 무언가 납득이 가려면 논리와 눈앞에 보이는 증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저에게 구원이라는 게 굉장히 막연하고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집회 이틀째까지 반복해서 이스라엘 역사가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역사하고 있는 현 상황과 첫 사람 아담에 의해 죄가 세상에 들어온 내용을 창세기 1-2장을 풀어가며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저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구절부터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성경대로 현재 나타나는 것을 보면 성경이 사실은 맞는 거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사랑하는 세상과 인간에게 왜 지옥과 선악과를 존재하게 하여 선택권을 주셨고 독생자를 보내는가? 라는 모순부터 죽은 자를 살리시거나 소경을 눈뜨게 하거나 하는 예수님의 기행은 저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네. 저는 모임 2세로 태어나 성경은 사실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이틀 차까지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는데 그때까지 이번에도 저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상실감에 다음에는 어느 장소에 가서 구원을 찾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분명히 쓰여 있는데 왜 구원을 명확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감사하고 믿으면 구원이라 이론상으로는 들었는데, 그럼 그게 과연 어느 정도의 감사함과 믿음인가? 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는데 ‘혹시 내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사람인가’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밤에 잠도 못 자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밥시간에 일찍 식사를 마치고 방안에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뭐가 문젠가 생각하다 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굉장히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성경책을 인간의 시선으로 논리를 깨달으려 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모순인 부분이 많은 책이다, 성경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래된 말씀이 전해져 내려왔으니 인간의 손을 타며 과장된 부분이 분명 있을 거라는 교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성경 자체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봤는데 ‘믿어지다’ 라는 게 저에게 당연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낮은 자세에서 감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삼 일째 오후에 설교자님의 간증을 듣는데 저의 그간 교만했던 마음이 너무 여실히 드러났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때 하셨던 말씀 중 BC 때는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양, 소, 염소의 피로 죄 사함을 기도했는데, 나의 죄는 분명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이 아들의 피로 씻어주었다고 성경책에 나왔는데, 왜 나는 그간 구원을 어떤 수치나 행위, 예를 들면 감사함과 믿음의 정도나 느낌 같은 것으로 생각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가만히 히브리서를 읽어보는데 히브리서 10장 17-18절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 구절을 읽으며 ‘믿어지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믿기 위해서 노력을 하거나 이해하는 게 아닌 말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었습니다.
일 년간 그렇게 찾았던 구원이 왜 나에게는 안됐었나 생각해 보니 하나님과 저의 사이를 막는 저의 죄와 무엇 하나 잘난 것 없었지만 높아졌던 저의 교만이었습니다.
또, 이 모든 게 하나님이 이끌어 주셨다는 생각이 든 게, 저는 회사 생활 7년간 스케줄 근무에 연차도 자유롭지 않은 환경에서 근무를 하다가 쉽지 않은 기회로 상근으로 올해 초부터 바뀌었고 마침 구원을 열심히 찾았던 이 시점에 온전히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흰집 전도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큰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감사하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듣기만 했던 다른 형제자매의 간증을 저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굉장히 답답하고 간절한 시간을 보냈고 과거의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고 싶어서 저의 간증을 써봤습니다.
이제 저는 전도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에베소서 6장 16절-18절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는 말씀대로, 모임 안에서 형제자매분들과 말씀과 교제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의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전도 집회 자리는 다 감사하고 귀하지만 혹시 구원을 찾는 분들께 조심스럽게 소수로 차분하고 온전하게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인 흰집 전도 집회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또 고생하신 스태프분들께 너무 감사드리며, 다음에 또 이런 전도 집회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가 도움을 받았듯이 다른 영혼의 죄가 해결되는데 손발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참석한 전도 집회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20년을 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들어본 내용에 대한 두려움과 감사한 마음이 막연히 구원이라 생각했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스스로도 그때는 구원이 아니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모여서 교제를 하는 자리에서 저는 애써 간증과 교제를 머릿속에 구상해내고 있는 스스로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가끔 교회에 나가 반가운 친구들 보고 그런 삶을 살다가 작년에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일을 겪고 마음에 의지할 곳을 찾고자 교회를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교제 자리가 많아질수록 거짓 구원인 것을 부인할 수 없었고 인정을 하며 스스로 찾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계속 상황이 안 되다 설 연휴 전도 집회에 참여를 했습니다. 어렵게 허락된 여건이라 간절하고 감사한 마음에 참석을 한 것 같습니다. 굉장히 타이트한 말씀 일정이었지만 나름 절박한 심정이어서 그런지 피곤함도 없었고 시간이 빨리 흘렀습니다.
저는 굉장히 고집이 세고 무언가 납득이 가려면 논리와 눈앞에 보이는 증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저에게 구원이라는 게 굉장히 막연하고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집회 이틀째까지 반복해서 이스라엘 역사가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역사하고 있는 현 상황과 첫 사람 아담에 의해 죄가 세상에 들어온 내용을 창세기 1-2장을 풀어가며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저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구절부터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성경대로 현재 나타나는 것을 보면 성경이 사실은 맞는 거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사랑하는 세상과 인간에게 왜 지옥과 선악과를 존재하게 하여 선택권을 주셨고 독생자를 보내는가? 라는 모순부터 죽은 자를 살리시거나 소경을 눈뜨게 하거나 하는 예수님의 기행은 저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네. 저는 모임 2세로 태어나 성경은 사실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이틀 차까지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는데 그때까지 이번에도 저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상실감에 다음에는 어느 장소에 가서 구원을 찾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분명히 쓰여 있는데 왜 구원을 명확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감사하고 믿으면 구원이라 이론상으로는 들었는데, 그럼 그게 과연 어느 정도의 감사함과 믿음인가? 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는데 ‘혹시 내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사람인가’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밤에 잠도 못 자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밥시간에 일찍 식사를 마치고 방안에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뭐가 문젠가 생각하다 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굉장히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성경책을 인간의 시선으로 논리를 깨달으려 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모순인 부분이 많은 책이다, 성경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래된 말씀이 전해져 내려왔으니 인간의 손을 타며 과장된 부분이 분명 있을 거라는 교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성경 자체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봤는데 ‘믿어지다’ 라는 게 저에게 당연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낮은 자세에서 감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삼 일째 오후에 설교자님의 간증을 듣는데 저의 그간 교만했던 마음이 너무 여실히 드러났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때 하셨던 말씀 중 BC 때는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양, 소, 염소의 피로 죄 사함을 기도했는데, 나의 죄는 분명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이 아들의 피로 씻어주었다고 성경책에 나왔는데, 왜 나는 그간 구원을 어떤 수치나 행위, 예를 들면 감사함과 믿음의 정도나 느낌 같은 것으로 생각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가만히 히브리서를 읽어보는데 히브리서 10장 17-18절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 구절을 읽으며 ‘믿어지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믿기 위해서 노력을 하거나 이해하는 게 아닌 말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었습니다.
일 년간 그렇게 찾았던 구원이 왜 나에게는 안됐었나 생각해 보니 하나님과 저의 사이를 막는 저의 죄와 무엇 하나 잘난 것 없었지만 높아졌던 저의 교만이었습니다.
또, 이 모든 게 하나님이 이끌어 주셨다는 생각이 든 게, 저는 회사 생활 7년간 스케줄 근무에 연차도 자유롭지 않은 환경에서 근무를 하다가 쉽지 않은 기회로 상근으로 올해 초부터 바뀌었고 마침 구원을 열심히 찾았던 이 시점에 온전히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흰집 전도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큰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감사하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듣기만 했던 다른 형제자매의 간증을 저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굉장히 답답하고 간절한 시간을 보냈고 과거의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고 싶어서 저의 간증을 써봤습니다.
이제 저는 전도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에베소서 6장 16절-18절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는 말씀대로, 모임 안에서 형제자매분들과 말씀과 교제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의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전도 집회 자리는 다 감사하고 귀하지만 혹시 구원을 찾는 분들께 조심스럽게 소수로 차분하고 온전하게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인 흰집 전도 집회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또 고생하신 스태프분들께 너무 감사드리며, 다음에 또 이런 전도 집회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가 도움을 받았듯이 다른 영혼의 죄가 해결되는데 손발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