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구원받은 부모님 아래 태어나 교제 안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생 때 구원받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1년 전에 청년 모임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구원 여부를 묻는 문항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선뜻 구원받았다고 답하지 못했습니다. 제 구원이 정말 확실하다면, 한 치의 의심도 없다면 그렇다고 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저 자신을 보며 내가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구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과 저 사이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의 피로 내 죄가 사해졌다는 사실이 제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구원받은 다른 사람들의 대화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또한 제게는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구원 간증을 들으면서도 저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간증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마음속에서 참으로 우러나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는 그것이 없었기에 그런 간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저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시간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건강 메시지에 대해 공부하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차근차근 공부하다 보니 점점 교제의 내용이 깊어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레 17:11 라는 말씀에서 시작된 건강에 대한 모든 메시지들과 피에 대한 의미를 알고 더 깊이 있는 교제를 이어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겉돌고 있는 것 같았고, 피에 대한 부분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예수님의 피로써 죄 사함받은 경험이 없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될 뿐이었습니다. ‘이 피가 도대체 무엇일까?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들어 왔던 말씀이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 후 3개월의 쉬는 시간이 생겼고, 저는 그 시간 동안 말씀을 찾으며 피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지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말씀을 주제로 진행되었던 2008년 여름 성경탐구모임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 예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라고 했는데, 성막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강사님은 뜰에 있는 문을 통해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번제단이 있고 물두멍이 있는데, 뜰은 하얀 천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설명하시며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고 안에서 밖을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뜰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그 문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문을 통해서 들어갔을 때 있는 번제단은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놋을 입힌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번제단의 네 뿔에 죽인 짐승의 피를 바르고 땅에 피를 쏟는데, 그 장면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 형틀에 예수님의 피가 흘러 땅에까지 쏟아졌을 그 모습이 보였습니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는데,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고, 번제단에서 바친 짐승의 피를 가지고 가야 했고 그 피가 없이는 죽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제야 저는 내가 하나님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는 것, 예수님이 나와 하나님 사이에 계셔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말씀을 들으며 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스스로 돌이켜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18-19절 라고 했던 그 마음이 제 마음과 정말 똑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먼저 달려가 안아 주고 좋은 옷을 입혀 주고 잔치를 열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가 베풀어 주시는 모든 것들에 대한 내용은 당시 저에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버지께로 돌아가고자 ‘제가 정말 죄를 얻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아들이라고 일컬음받는 것조차 감당치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던 둘째 아들의 그 간절한 외침만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말씀을 듣다가 하나님께 처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가 정말 간절한 것 하나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 좀 살려 주세요. 제 마음속에 의심이 있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마귀가 저를 방해하고 있는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것까지도 해결해 주세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세요.’
다음 날 출근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불편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나는 안 되는 것일까. 구원은 정말 하나님과 나 사이의 문제인데, 나에게 문제가 없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하나님에게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저 자신을 돌아보다가 하나님 앞에서 제 위치가 어디이며, 저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는 탕자의 말처럼 저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아담의 자손이니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지 마음속에서 인정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죄인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엎드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도대체 나한테 문제가 뭐지? 하나님께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들, 나무나 벌레, 풀 등 자연의 모든 것들이 저절로 되었다고 하는 말은 거짓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힘과 능력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그 후 저는 7월에 안성에서 열린 전도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집회 말씀을 듣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를 만드셨으니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들을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주세요.’ 하고 기도를 드렸고, 또 “내 기도 소리 들으사 다 허락하소서”라는 찬송가 가사 그대로를 기도로 드렸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죄인인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권 목사님이 설명하시는 탕자의 비유를 듣게 되었는데, 전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던 탕자의 아버지의 마음이 진심으로 와닿았습니다. 상거가 먼데도 달려와서 아들을 안으시고 입 맞추시고 왜 이제야 왔느냐고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었고, ‘하나님이 정말로 나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내가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보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읽어 주신 잠언 말씀에 제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잠언 1:23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잠언 1:33
제 마음이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속에서는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하는 찬송가가 계속해서 울렸습니다. 저에게 들을 귀와 볼 눈을 달라고 기도드렸는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정말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44:22 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내가 너를 죄에서 해방시켰으니 나에게 돌아오너라.’라고 하시는 말씀이었고,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하는 말씀에서 제가 예수님 덕분에 참으로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정말 ‘믿음을 주셨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믿으려고 해서 믿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구나. 정말 하나님의 선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예수님의 피로 참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하는 말씀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요 8:12,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요 6:48 라고 하셨는데, 성소에 있는 등대와 진설병을 보면서 그 말씀들이 모두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제게 받아들여졌고, 제 마음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께서 2천 년 전에 “다 이루었다” 요 19:30 라고 하신 말씀이 제 마음속에 이루어졌으니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구원받기를 바랐던 많은 친구들과 도와주신 분들, 부모님의 마음들이 모여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영혼이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되어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저는 구원받은 부모님 아래 태어나 교제 안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생 때 구원받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1년 전에 청년 모임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구원 여부를 묻는 문항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선뜻 구원받았다고 답하지 못했습니다. 제 구원이 정말 확실하다면, 한 치의 의심도 없다면 그렇다고 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저 자신을 보며 내가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구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과 저 사이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의 피로 내 죄가 사해졌다는 사실이 제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구원받은 다른 사람들의 대화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또한 제게는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구원 간증을 들으면서도 저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간증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마음속에서 참으로 우러나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는 그것이 없었기에 그런 간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저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시간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건강 메시지에 대해 공부하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차근차근 공부하다 보니 점점 교제의 내용이 깊어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레 17:11 라는 말씀에서 시작된 건강에 대한 모든 메시지들과 피에 대한 의미를 알고 더 깊이 있는 교제를 이어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겉돌고 있는 것 같았고, 피에 대한 부분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예수님의 피로써 죄 사함받은 경험이 없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될 뿐이었습니다. ‘이 피가 도대체 무엇일까?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들어 왔던 말씀이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 후 3개월의 쉬는 시간이 생겼고, 저는 그 시간 동안 말씀을 찾으며 피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지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말씀을 주제로 진행되었던 2008년 여름 성경탐구모임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 예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라고 했는데, 성막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강사님은 뜰에 있는 문을 통해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번제단이 있고 물두멍이 있는데, 뜰은 하얀 천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설명하시며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고 안에서 밖을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뜰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그 문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문을 통해서 들어갔을 때 있는 번제단은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놋을 입힌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번제단의 네 뿔에 죽인 짐승의 피를 바르고 땅에 피를 쏟는데, 그 장면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 형틀에 예수님의 피가 흘러 땅에까지 쏟아졌을 그 모습이 보였습니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는데,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고, 번제단에서 바친 짐승의 피를 가지고 가야 했고 그 피가 없이는 죽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제야 저는 내가 하나님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는 것, 예수님이 나와 하나님 사이에 계셔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말씀을 들으며 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스스로 돌이켜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18-19절 라고 했던 그 마음이 제 마음과 정말 똑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먼저 달려가 안아 주고 좋은 옷을 입혀 주고 잔치를 열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가 베풀어 주시는 모든 것들에 대한 내용은 당시 저에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버지께로 돌아가고자 ‘제가 정말 죄를 얻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아들이라고 일컬음받는 것조차 감당치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던 둘째 아들의 그 간절한 외침만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말씀을 듣다가 하나님께 처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가 정말 간절한 것 하나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 좀 살려 주세요. 제 마음속에 의심이 있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마귀가 저를 방해하고 있는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것까지도 해결해 주세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세요.’
다음 날 출근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불편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나는 안 되는 것일까. 구원은 정말 하나님과 나 사이의 문제인데, 나에게 문제가 없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하나님에게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저 자신을 돌아보다가 하나님 앞에서 제 위치가 어디이며, 저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는 탕자의 말처럼 저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아담의 자손이니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지 마음속에서 인정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죄인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엎드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도대체 나한테 문제가 뭐지? 하나님께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들, 나무나 벌레, 풀 등 자연의 모든 것들이 저절로 되었다고 하는 말은 거짓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힘과 능력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그 후 저는 7월에 안성에서 열린 전도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집회 말씀을 듣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를 만드셨으니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들을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주세요.’ 하고 기도를 드렸고, 또 “내 기도 소리 들으사 다 허락하소서”라는 찬송가 가사 그대로를 기도로 드렸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죄인인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권 목사님이 설명하시는 탕자의 비유를 듣게 되었는데, 전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던 탕자의 아버지의 마음이 진심으로 와닿았습니다. 상거가 먼데도 달려와서 아들을 안으시고 입 맞추시고 왜 이제야 왔느냐고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었고, ‘하나님이 정말로 나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내가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보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읽어 주신 잠언 말씀에 제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잠언 1:23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잠언 1:33
제 마음이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속에서는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하는 찬송가가 계속해서 울렸습니다. 저에게 들을 귀와 볼 눈을 달라고 기도드렸는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정말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44:22 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내가 너를 죄에서 해방시켰으니 나에게 돌아오너라.’라고 하시는 말씀이었고,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하는 말씀에서 제가 예수님 덕분에 참으로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정말 ‘믿음을 주셨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믿으려고 해서 믿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구나. 정말 하나님의 선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예수님의 피로 참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하는 말씀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요 8:12,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요 6:48 라고 하셨는데, 성소에 있는 등대와 진설병을 보면서 그 말씀들이 모두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제게 받아들여졌고, 제 마음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께서 2천 년 전에 “다 이루었다” 요 19:30 라고 하신 말씀이 제 마음속에 이루어졌으니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구원받기를 바랐던 많은 친구들과 도와주신 분들, 부모님의 마음들이 모여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영혼이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되어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