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장로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생활을 시작한 지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3대째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유년시절 어느 추운 겨울날 밥을 구걸하기 위해 찾아온 거지에게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시던 부친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꼈었다. 그 후 자라는 동안 부친의 영향을 받아 소명감을 가지고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29세 때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이상적인 목회를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 하라”라는 성경 말씀에 걸려 끝없는 양심의 갈등을 겪어야 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하라”라는 말씀을 지키려면 내가 가진 것의 절반은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 나눠줘야 하는데 너무 괴로웠던 것이다. 위선자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내 양심을 두들겼다. 자신이 행할 수 없는 것을 설교 단상에서 말한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유럽에서 온 어떤 선교사의 설교를 듣던 중 “여러분 거듭났습니까?”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설교가 끝난 후 나는 그 선교사와 만나 “나는 목사로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왜 ‘거듭났느냐’는 물음에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선교사는 “목사님 무슨 의심이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때 나는 의심이 없다고 대답했으나 마음 한구석에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몇 주일이 지난 1961년 11월 18일, 토요일 아침부터 설교 준비를 위해 로마서를 읽던 나는
라는 말씀을 읽고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시며 나는 율법의 의로써가 아니라 율법의 의와는 상관없는 하나님의 의로써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10여 년간 내 양심을 칭칭 동여매고 있던 죄의 사슬이 풀어졌다. 이전에 내가 괴로워했던 것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하나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를 느끼며, “내 죄사함을 받고서 구주를 안 뒤 나의 모든 것이 변했네 지금 내가 가는 길 천국 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를 씻으셨네…” 하는 찬송가를 해가 지도록 불렀다.
참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달라졌고 내 설교가 달라졌다.
헌금 많이 내고 목사 잘 받들고 일 잘하는 장로 집사들의 지위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나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나는 그들이 좋아하든 말든 그들의 영혼의 각성을 위한 설교를 했다. 그러한 나의 변화에 대해 주변에서 여러 가지 얘기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나는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설교했다. 몇 개월이 지나서 차츰 복음을 깨닫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성경 말씀대로 침례를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온 나는 1962년 9월 침례를 받았다. 경북노회에서는 장로교 목사가 장로교의 성례와 다른 침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동년 12월 21일 목사 면직 처분을 내렸다. 비록 그 결정이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내 마음은 평안하였다.
그 후 나는 대구 지역에서 독립교회를 시무하다가 팀 선교부의 요청으로 극동방송국 한국어 방송 선교 프로그램인 “은혜의 말씀”을 담당하여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장로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생활을 시작한 지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3대째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유년시절 어느 추운 겨울날 밥을 구걸하기 위해 찾아온 거지에게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시던 부친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꼈었다. 그 후 자라는 동안 부친의 영향을 받아 소명감을 가지고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29세 때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이상적인 목회를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 하라”라는 성경 말씀에 걸려 끝없는 양심의 갈등을 겪어야 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하라”라는 말씀을 지키려면 내가 가진 것의 절반은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 나눠줘야 하는데 너무 괴로웠던 것이다. 위선자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내 양심을 두들겼다. 자신이 행할 수 없는 것을 설교 단상에서 말한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유럽에서 온 어떤 선교사의 설교를 듣던 중 “여러분 거듭났습니까?”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설교가 끝난 후 나는 그 선교사와 만나 “나는 목사로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왜 ‘거듭났느냐’는 물음에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선교사는 “목사님 무슨 의심이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때 나는 의심이 없다고 대답했으나 마음 한구석에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몇 주일이 지난 1961년 11월 18일, 토요일 아침부터 설교 준비를 위해 로마서를 읽던 나는
라는 말씀을 읽고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시며 나는 율법의 의로써가 아니라 율법의 의와는 상관없는 하나님의 의로써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10여 년간 내 양심을 칭칭 동여매고 있던 죄의 사슬이 풀어졌다. 이전에 내가 괴로워했던 것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하나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를 느끼며, “내 죄사함을 받고서 구주를 안 뒤 나의 모든 것이 변했네 지금 내가 가는 길 천국 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를 씻으셨네…” 하는 찬송가를 해가 지도록 불렀다.
참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달라졌고 내 설교가 달라졌다.
헌금 많이 내고 목사 잘 받들고 일 잘하는 장로 집사들의 지위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나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나는 그들이 좋아하든 말든 그들의 영혼의 각성을 위한 설교를 했다. 그러한 나의 변화에 대해 주변에서 여러 가지 얘기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나는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설교했다. 몇 개월이 지나서 차츰 복음을 깨닫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성경 말씀대로 침례를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온 나는 1962년 9월 침례를 받았다. 경북노회에서는 장로교 목사가 장로교의 성례와 다른 침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동년 12월 21일 목사 면직 처분을 내렸다. 비록 그 결정이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내 마음은 평안하였다.
그 후 나는 대구 지역에서 독립교회를 시무하다가 팀 선교부의 요청으로 극동방송국 한국어 방송 선교 프로그램인 “은혜의 말씀”을 담당하여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