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모노

(Adolphe Monod)


파리의 개신교 목사.


1802. 1. 21
네델란드의 코펜하겐에서 출생.
1820〜1824
제네바에서 신학 연구.
1825
이탈리아의 나폴리에 개신교 교회를 세우고 목회 활동.
1828. 6. 21
거듭남을 경험.
1836
몽토방(Montauban)의 신학교 교수로 초빙됨.
1847
파리에서 목회 활동.
1856. 4. 6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 


아돌프 모노는 스물 여섯 살 때 거듭남을 경험했다. 그는 그의 형제에게 이 경험에 대해 환희에 찬 편지를 썼다.


“6월 21일 토요일 아침 일찌기 집을 나선 나는 길을 걸으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간신히 억제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자마자 북받치는 감동을 눈물로 쏟아내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복음을 깨달은 후로 나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온전한 신뢰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울증으로 인해 번민하는 일도 결코 없었다. 나는 항상 지니고 다니는 신약성경 외에도 엘스킨 씨가 내게 남겨 준 영문의 소책자를 가지고 다녔다. 그것은 ‘종교에 관한 아담의 생각’이라는 책이었는데, 이 책에는 구원을 받는 복음의 진리가 담겨져 있었다.


내가 하루만에 불신자에서 믿는 사람으로 쉽사리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영혼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분명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그 동안 내 불신앙의 뿌리가 되어 있었던 수많은 번민과 헛된 생각들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모노 자신의 기록을 보면 그가 어떠한 내적 고뇌를 겪어 왔으며 평안을 얻는 것이 왜 그토록 힘들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의 아버지는 파리로 초빙되어 프랑스의 개혁파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가족 수는 점점 늘어나 모노의 형제 자매는 12사람이나 되었다.(그들 모두 예수를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아돌프는 어렸을 적부터 양친과 함께 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맏형과 특히 친하게 지냈다. 아돌프가 아직 어린 학생이었을 때 그는 형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좋은 설교를 들을 적마다 성직에 대한 동경심이 일어납니다. 형님의 설교를 들은 후 형님과 같은 설교자가 되고 싶었고, 내 마음에 얼마나 그것을 원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형님은 내가 너무도 이상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형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뛰어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그의 생명의 꽃망울은 애석하게도 제네바대학에 만연했던 합리주의의 찬바람으로 한풀 꺽이고 말았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대학에서 곤란한 문제가 되어 있는 것들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당시 제네바대학에서는 성경에 있는 근본적인 구원의 교리를 부인하는 이성적인 신앙을 강조하고 설교도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었다.


모노가 신앙적인 면에서 최초로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은, 제네바에서 신앙의 각성을 열렬하게 부르짖은 스코틀랜드의 부흥 설교가 하렘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모노는 계속하여 많은 내적 고민과 유혹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영혼은 인간의 합리주의에 대한 성경 말씀의 질책과 심판을 듣고 갈등을 일으켰으며, 하나님에 대한 회의 속에서 계속 싸워야 했다. 그것은 그가 죄문제를 해결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지했으나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따금 어머니에게 그 마음 속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가 쓴 편지 속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만약에 제가 분명하고 확실한 신앙을 갖게 되고, 또 성경을 바로 이해하며 더욱 큰 수확과 기쁨으로써 성경을 읽을 수 있다면,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 더욱더 강하게 일어나는 선을 행하려는 노력, 그리고 너무도 강한 자기애(自己愛), 복음에 반대되는 자기 생각 등 이런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은 삼라만상을 지으신 섭리의 손길로써 그를 나폴리 목사가 되도록 인도하셨다. 그 자신 스스로가 확실한 신앙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설교를 해야 했던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심한 번민과 우울증에 빠졌다. 이 시절의 편지를 통해서 그를 번민하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그것을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나 자신도 성경의 진리를 인정할 수 없으면서 어떻게 남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권할 수 있을까! 이 문제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몇 주 전부터 성경을 펴보려고도 하지 않았읍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힘을 내려고도 해보았읍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기도도 했읍니다. 그러나 온갖 위로와 광명, 그리고 어떠한 격려도 내게는 소용이 없는 것 같이 생각되었읍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나의 이러한 약함을 들여다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읍니다. 어떻게 해야 나의 연약함의 원인을 스스로 규명할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나를 강하게 압도하는 어리석음과 병적인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나는 이제 더이상 내 의지의 힘을 믿지 않습니다. 사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못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쉴새없이 나의 뇌리에 맴도는 온갖 의문과 의심을 나의 능력, 나의 양심, 나의 경건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어두운 힘과 하나님의 긍휼과를 조화시킨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읍니다.”


그러나 그 후 그의 생애를 결정지을 만한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그가 토마스 엘스킨이라는 또 한 사람의 스코틀랜드의 목사를 만난 일이었다. 모노는 자주 그에게 자기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털어놓았고, 그의 기도에 힘입어서 자기 영혼의 모든 회의와 싸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엘스킨이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모노는 혼자 나폴리에 남게 되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를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순간이 임하였다. 중생하기 직전에 그가 한 기도가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어떠한 싸움을 통과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은 내 속에 영을 불어넣으셨읍니다.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지도자이신 하나님, 당신은 이렇게 불리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나의 영혼은 황량하고 어둡고 공허합니다. 나의 영혼은 모든 신앙과 희망과 사랑을 잃었읍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긍휼은 한량 없으시니 나는 당신 앞에 이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갑니다. 내가 갈급히 구하는 것을 주시옵소서. 그것이 무엇인지 저 자신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만은 아십니다. 당신의 선물을 받기 위하여 아직도 어떤 준비가 더 필요하다면 당신께서 직접 제 마음 속에 이 준비를 이루어 주십시오. 저는 가난하고……"


드디어 6월 21일, 한 여름에 그의 깨달음의 순간은 찾아 왔다. 한 말씀이 그를 비추었고 또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즉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는 말씀이었다.


훗날 그는 그의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의 엄청난 경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에스킨 목사가 떠난 후에 나의 우울함은 지금까지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비참한 모습으로 쌓이고 쌓여서 나를 완전히 압도하고 내 생활의 사소한 행위뿐만 아니라 내 영혼의 깊은 속까지도 어둡게 하며, 내 감정과 판단력, 그 리고 내 생활의 행복을 뿌리째 흔들어 버렸읍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내가 그저 공상에 빠져 스스로 만든 고통의 수렁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고민하고 있었으며 거기에 비하여 어느 모로 생각하나 내 불행은 더욱더 커져 가는 것을 알 수 있었읍니다.


내 영혼은 혼돈과 흑암에 휩싸여 눈이 멀고 착각 속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이 혼돈과 착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내 이성과 의지의 힘으로는 결코 이러한 일을 실현할 수가 없었읍니다. 나의 이성과 의지는 어두워져 있었고 매우 연약해 있었기 때문에 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읍니다. 이것은 마치 맹인이 한쪽 눈의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다른 쪽 눈을 빼서 그것에 대신하려는 것과 똑같았읍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력도, 나의 의지와 힘으로 하는 것이었지 주님의 능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헛수고일 뿐이었읍니다. 그 때에 나는 성령의 약속이 생각났읍니다.


이 약속은 내 영혼의 간절한 소원과 합치되었읍니다. 나는 내 사상과 감정을 지배하고 새롭게 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있음을 믿었읍니다. 그것은 우주와 만유를 주관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 속을 지배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온 것이었읍니다.


오! 하나님이 그 지배권을 행사하시는 축복된 마음이여! 그 지배는 크면 클수록 귀한 것! 그러나 그 힘을 행사하실 수 있기 위해 주께서는 인간에게 마음의 동의를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그와 만나는 것, 혹은 적어도 그를 만나려고 하는 자세를 보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철저히 생각한다면 우리들의 아주 작은 계기마저도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거기에 무엇인가 반응을 보일 때 축복을 더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측량할 수 없는 긍휼과 축복을 하나님 자신 안에 감추어 두기를 기뻐하시는 듯합니다.


나는 이제 첫걸음을 내딛었읍니다. 내 자신의 온갖 힘과 가치와 모든 공로를 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내 자신을 송두리째 맡겼읍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긍휼을 입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를 하나님께 호소하여,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바 주의 보혈에 나 자신을 맡겼읍니다.”


모노는 나폴리에 얼마간 더 머물렀다. 그 후 리용(Lyon)과 파리(Paris)의 전도사가 되어 불안과 번민에 빠진 사람들, 시험을 받고 있는 사람들, 특히 많은 대학생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그는 그다지 오래 살지도 못하였고 병약했으나 그 심한 병고 속에서도 주를 찬미할 수가 있었다. 그가 임종 때에 남긴 말을 보면 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나를 추억하여 우상 숭배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가 어떤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한 그 일이 하나님 앞에 옳다는 이유에서 그 일을 하시오. 나를 회상 하는 일이 당신들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한다는 면에서만 끊임없이 나를 기억해 주시오.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다 무가치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