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피니

(Charles G. Finney)


미국의 신앙 부흥 설교자, 교육자.


1792. 8. 27
미국의 리취필드에서 출생.
1818-1821
아담스시에서 법률 공부.
1821. 10. 10
거듭남을 경험.
1825
오베린대학의 신학 교수 역임.
1852
오베린대학의 총장 역임.
1875. 8. 16
오베린에서 사망.


주요 저서「재생에 대하여」
「신학에 대하여」등


성경은 전적으로 믿을 만한 책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도 자신의 생애에 중생을 경험하지 못한 채 마음 속에서 하나님과 만난 경험이 없이 모든 것이 결여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피니가 바로 그러했다.


신앙 부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거나, 글을 읽어 본 일이 있는 사람은 피니의 이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19세기 중반쯤 영국에서 일어난 복음 운동의 그릇으로서 그를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 그가 중생을 경험하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퍽 중요하다. 다행히도 그는 친구의 권유로 자서전을 남겼다. 그의 구원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기록을 더듬어 올라 가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가 자라난 환경은 완전히 비기독교적인 환경이었으며, 교회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의 양친은 소박한 시골 사람들로 종교적 생활은 전연 알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그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변두리 황무지나 삼림에 가서 살았기 때문에 그 곳에는 주일 학교는 물론 교회조차 없었다. 따라서 양친은 그의 영적 생활에 관한 교육을 등한시했고, 그가 교회나 다른 종교 단체 혹은 안식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은 오히려 당연했다.


그는 26세 때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담스시(市)로 가서 어느 변호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 때에야 비로소 종교를 알게 되었다.


“법학을 공부하러 아담스시에 갔을 때만 해도 나는 종교 교육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었다. 복음에 관해서는 미개한 아프리카 토인이나 별반 다름이 없었다. 나의 잔 뼈가 굵었던 곳은 태반이 삼림지대여서 숲 속에서 살다시피 한 나에겐 안식일에 대한 관념이 있을 수 없었고, 교회 지식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의 생활 속에 새로운 것이 들어왔다. 아담스시에서는 복음 활동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고, 목사도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전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니는 그의 자서전에서 그가 접촉했던 한 목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는 청중이 복음의 근본을 알고 있다는 전제 아래 설교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고, 따라서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피니는 75세 때 이 비판의 말을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 말은 다른 많은 목사 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그 많은 선교 활동이 왜 아무런 효과도 나타내지 못했는가?’ 하는 데 대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피니는 교회도 다녔고, 성경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법률에 관한 기초 공부를 하면서 나는 과거의 법학 관계 저술가들이 성경 귀절, 특히 모세 율법을 자주 인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관습법의 기본율에 대한 전거(典據)가 되기 때문이었다. 호기심이 크게 자극된 나는 성경전서 한 권을 샀다. 그리고 법 해설가들의 성구 인용이 있으면 언제나 성경을 뒤적거려 본문을 찾고, 전후 관계를 읽어 두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이 버릇으로부터 성경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그래서 전에 없던 열심으로 성경을 읽고, 명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많았다.”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했거나 의문이 생긴 경우에 그는 목사를 찾아가서 분명하게 그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올바른 해답을 얻을 수 없다는 데에 그는 다시 한번 놀랐다.


“목사는 대중 앞에서 솜씨 좋게 설교를 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상담해서 상대방을 도와야 할 입장에 처한 경우에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 자신도 아는 것이 없고,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니 내 양심은 차츰 불안해졌다. 그리고 천국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피니는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목사와 얘기하고,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그는 수년간의 일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부언하고 있다.


“어떤 오류가 내 영혼과 목사의 영혼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해도 오직 성경만이 오류가 없는 유일한 진리의 원천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지금까지의 생활을 그대로 계속해 나가느냐’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이 양자택일은 결코 쉽다고 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나에게 분명한 결단을 내리게 해 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확신하면서도 뭔가 마음 속에 적절히 들어와 박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만약 그것이 분명해지기만 한다면 주 앞에 나아가려고 결심하는 진지한 한 영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821년 가을 어느 주일 오후,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그는 그 동안 수많은 내적 전쟁을 겪었고, 틈만 있으면 성경을 깊이 연구했다. 이렇게 성경을 배움으로써 그는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나아갈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 때의 절박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화요일 밤에 이르러선 안절부절 마음 둘 바를 몰랐다. 간신히 잠자리에 들었으나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이상한 느낌에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죽으면 속절 없이 영멸(永滅) 속으로 꺼져 버릴 것 같은 갑갑한 생각 때문에 이튿날 아침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사무실로 가는 도중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미세한 양심의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 하나님께 네 마음을 바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왜 그렇게 쓸데없이 고생을 하느냐? 왜 네 자신의 의를 쌓으려고 애쓰고 있느냐?’


바로 그 순간 이상하게도 구원의 비밀이 내게 열렸다. 여태껏 그 때처럼 분명히 속죄의 사실과 그 완전함에 대해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구원은 완성된 사실이며, 영혼의 구속은 내 자신의 의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내가 내 죄를 시인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었다. 구원은 내가 힘써서 획득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길 한가운데에 우뚝 멈춰섰다. 잠시 동안 마치 땅에 뿌리라도 내린 듯 꼼짝 않고 거기에서 있었다. 그 때 내 마음 속에 다시 다음과 같은 음성이 들렸다.


‘이 순간에 구원을 받아들이길 원하느냐?’


‘예. 비록 그것 때문에 제가 오늘 죽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받아들이겠읍니다.’ 한치도 주저함이 없는 대답이 이어졌다.


난 사무실로 가는 발걸음을 돌려, 자주 산보했던 숲으로 향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 홀로 내 마음을 털어 놓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를 느꼈기 때문이다.


십오 분쯤 걸어 가니 고목 두 세 그루가 서로 겹쳐져 쓰러져 있는 적당한 은신처가 눈에 띄었다. 나는 배로 기어 그 속으로 들어가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다. 거기까지 오면서 하나님께 참으로 내 마음을 바칠 때까지 다시는 이 언덕을 내려가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죽은 것과 같은 상태였다. 나는 기도를 하려고 중얼거렸지만 내 음성은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허공을 맴돌다 사라졌다. 그리고 나뭇잎이 조금이라도 바람에 흔들리면 내 말이 들릴 만큼 가까운 곳에 누군가가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깜짝 놀라 기도를 중단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이 나를 엄습해 왔고, ‘나는 기도조차 할 수 없구나.’라고 중얼거렸다. ‘하나님은 이제 나를 포기하신 것일까?’ ‘내게는 이미 아무 소망도 없구나.’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엄습해 왔으며, 그로 인해 나는 신음했다.


마침내 나는 지칠 대로 지쳐 버렸고 무릎은 말 그대로 비틀거렸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나는 또다시 바삭바삭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보려고 급히 일어섰다. 이 때에 내 마음을 후려치는 것이 있었다. 내가 너무 교만하다는 것이었다. 이 큰 교만이 나를 가로막아 기도를 방해한다는 분명한 자각이 들었다. 남을 의식하고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낮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안 것이다.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린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이 수치감이 얼마나 교만하고 악하냐 하는 죄책감이 나를 압도했다. 이 죄책감에 사로 잡히자 나는 별안간 목청을 다해 지옥의 모든 마귀와 지상의 온 인간이 나를 둘러싸고 구경하여도 결단코 이 자리서 물러나지 않겠노라고 부르짖었다. 너무나 거만했던 내 자신이 보기 싫고 미워서, 하나님 앞에 깨어져 부서진 듯이 엎드려 기도했다.


순간 한 성경 귀절이 뚜렷하고 명백하게 내 마음에 부딪쳐 왔다. 그것은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 12〜13)는 말씀이었다. 특히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이라는 귀절이 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또 여기에 있는 ‘너희’ 속에는 나도 들어 있으며, 바로 나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즉각 이 말씀을 붙잡았다. 내가 살아 있음을 똑똑히 감지하는 것처럼 내가 이 말씀에 틀림없이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내 생애에 처음으로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성경이 참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의심하지 않았지만, 내 믿음은 단순히 이지적 승인에 불과했고 전면적인 신뢰는 아니었다. 이제 하나님의 진리는 논의할 여지 없이 확실한 것이 되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었다.


물에 빠진 자가 지푸라기라도 붙잡듯이 나는 온갖 힘을 다해서 그 말씀에 매달리며 ‘주님, 나는 당신의 말씀대로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은 내가 지금 전심으로 당신을 찾으며 또 당신께 부르짖어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읍니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하나님은 신 • 구약으로부터 많은 약속의 말씀을 보여 주셨다. 그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이었고,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는 도저히 다 형언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1)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말씀을 믿었을 때 나의 죄로 인한 심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 죄와 심판의 두려움이 내게서 모두 사라졌다. 이런 것들은 내가 필요로 하거나 혹은 내가 어떤 노력을 해서가 아니라 오직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주님께 드릴 때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주님은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므로 전혀 죄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임을 확신했다. 나의 가슴은 주님의 사랑으로 넘쳐 흘렀다.”


이것이 피니의 생애에 변환을 가져온 거듭남의 순간이었다. 바로 1821년 10월 10일 수요일, 그가 29살 때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결코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가 오랫동안 머리로만 이해했던 말씀들이 이제는 마음 속 깊이 들어와 그의 전생활을 가득 채워 준 것이다.


그는 조용히 시내로 걸어 들어왔다. 마음이 너무 평온하고 고요하였으므로 주위의 삼라만상이 다 숨 죽이고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점심 시간이 지나자 책과 비품들을 동료와 함께 다른 사무실로 옮겼다.(그 날은 사무실을 옮기기로 한 날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서도 그는 자신의 마음에 확실한 변화가 있음을 느꼈다.


“내 영혼은 이제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기쁨 속에 있다. 내 마음은 하나님 속에 잠기고 가슴 속에는 깊은 감사가 있다.”


그 이후로 그는 많은 경험을 했다. 어떤 것은 깊이 마음을 감동시켜 때때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도 그의 마음을 흔든 것은 이 경험과 단번에 주어진 믿음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고 싶다고 하는 충동이었다. 그는 숲 속에서 가졌던 경험을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피니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일은 그의 양친과 형제 자매들에게도 전해졌으나 그들은 전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양친을 찾아 뵈었고, 늙으신 양친이 아들 덕에 짧은 기간만에 그리스도께 인도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피니로부터 놀라운 힘이 흘러나왔다. 그 힘은 차츰차츰 커져 갔다. 그는 그들 앞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했고, 간증을 했다. 그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에 크게 감동받았다. 그의 회심 후 얼마 안가서 오르테에서 신앙 부흥이 일어났고, 계속하여 다른 많은 도시와 부락에도 파급되어 갔다.


피니는 그의 자서전 속에 그의 중생의 경험을 요약해서 기록했는데 놀라운 부분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피니를 비난하여 “그는 인간의 감정과 의지적 결단을 너무 중요시 한다. 거기에는 열광적 신앙과 행위에 의하여 의로와지려고 하는 위험성이 있다.”라고 말들을 하지만 피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 속에서 나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은 순간 온갖 죄의식이 내게서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내가 전에 죄를 범한 일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완전한 것이었다. 믿음으로 말마암아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하는 교리가 곧 복음의 핵심이며,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새로운 생활의 출발점이라고 하는 경험은 이전에는 내게 없었던 것으로, 이제 내 스스로 그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내 마음은 감사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룩한 사랑으로 차고 넘쳤다.”


그 이듬해(1822) 봄 피니 주변의 목회자들은 피니에게 프린스턴 대학에 들어가서 신학을 연구하도록 권유했다. 그 때 피니는 한 마디로 거절했다.


왜 거절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찰스 피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들과 같은 영향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진실한 목사들은 배출되지 못하고…, 이것은 그들이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읍니다.”


피니는 야외에서, 빈 건물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숲에서 자신의 거듭난 체험을 계속 증거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니를 이상히 생각하고 냉소했지만, 주변에서 구원 받는 역사가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면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했으며,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그는 전혀 설교 원고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으며 시시 때때로 부어지는 성령의 인도로 말씀을 전했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힘이 있었고 사람들의 무딘 영혼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피니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변호사가 배심원들 앞에 서서 미리 써서 준비한 변호문만을 낭독한다면 재판에서 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배심원들 앞에서 낭독하는 변호사가 아닌 증거하는 변호사처럼, 이야기하듯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읍니다. 중요한 것은 설교의 내용이지 어떤 사람에 의해 잘 씌어진 복음의 각본이 아닙니다. 만일 성령의 감동으로 설교를 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내 설교가 어찌되어 버렸을지  나도 자못 궁금합니다.”


피니의 설교를 들어본 사람들은


“그는 마치 나 자신하고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이 설교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몇몇 교역자들과 그의 주변 형제들은 설교자로서 근엄하거나 엄숙한 것이 없으며, 학술적인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고 계속 비난했다.


피니는 이에 대해


“나는 설교를 할 때 훌륭한 말을 꾸민다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웅변술을 개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듣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도록 가장 순수한 언어로 표현하고자 나의 모든 힘을 쏟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깨닫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천박한 것이든지 생활 주변의 이야기든 어떤 말이든지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할 뿐입니다.


이외에 더 훌륭한 방법이 있거든 가르쳐 주시오. 또한 당신들이 이미 이루어 놓은 선교의 결실이 있다면 그것을 내게 보여 주시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내 방법보다 탁월하다고 생각되면 나도 당신들의 의견을 따르겠소. 그러나 당신들이 옳고 내가 그르다는 증거가 없으면, 나는 결코 당신들의 전도 방식을 흉내내서 따라갈 수 없읍니다.” 하고 말했다.


피니의 생활을 통해서 분명해진 것은 진리를 단순히 지식으로 파악하는 것은 죽은 신앙으로 갈 뿐이며, 결실 없는 논쟁에나 빠져 들어가게 한다는 것, 따라서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 승복(乘服)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