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고스너

(Johannes Gossner)


독일의 개신교 학자, 베를린의 목사, 고스너 전도단 창시자.


1773
아우구스부르크 근교의 하우젠에서 출생.
1797-1804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봉사.
1811
뮌헨에서 사제를 지내고, 설교자로서 페테르스부르크에 초청됨.
1826
거듭남을 경험. 개신교로 개종(改宗).
1829
베를린의 베들레헴교회 목사 역임.
1836
외국 전도를 위한 전도 협회 창립.
1846
베들레헴교회를 사임한 후 설립한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냄.
1858
사망


인간을 산 신앙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그 방법은 갈급한 영혼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적절한 도움을 주는 신앙적인 대화일 때도 있다. 또 때로는 병이나 죽음 같은 인생의 역경에 처한다거나, 자신에게 깊은 감화를 준 벗의 도움을 받음으로써도 믿음의 길을 찾게 된다.


요하네스 고스너의 경우 그것은 한 통의 편지로 이루어졌다. 그 편지 때문에 그는 눈을 뜬 것이다. 그 한 통의 편지를 다 읽었을 때에 그는 회심을 경험했고, 그 즉시 그가 경험한 내적 체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도 있었다.


그의 회심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다른 회심을 전하는 것보다 인상깊은 것이 있다. 왜냐하면 그를 통해서 카톨릭 교회 내부를 엿볼 수 있으며, 그 당시 카톨릭 교회 내에 진실한 영적 생활이 어느 정도나 있었는지를 알 수 있고, 또 많은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동안 견딜 수 있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고스너가 장성한 뒤 가끔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면 비통한 추억만 떠오르곤 했다. 그 당시 그에게 생기에 넘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소년 시절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아우구스부르크에 갔고, 후에 제수이트교단의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딜링겐에 갔다. 거기서부터 비롯 된 내적 고민은 특히 잉골슈타트로 옮기면서 배가되었다. 참회를 강요당하고, 읽을 서적을 일일이 검열받는 것 외에도 많은 일들이 그의 생활을 어둡게 했다. 그러는 중에도 그를 밝게 비춰 주는 세 개의 별이 있었다. 그것은 두 권의 책과,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게 된 신부 한 분이었다.


어느 날 고스너는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그 책은 신기하게도 자유로이 읽도록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그 책에 대해 아무런 편견 없이 반복해서 여러 번 읽었다. 그리고 우연히 한 친구로부터 어떤 젊은 여행가가 쓴 ‘라바텔의 편지’를 입수했다.(이것은 기호가 매겨져 있지 않았으므로 금지 서적이 아니었다) 친구는 그에게 이 책을 주면서 “이 조그마한 책 속에 예수의 이름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세어 보아라.”고 말했다. 고스너는 페이지마다 예수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스너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세 번째 별은 미카엘 자일러라고 하는 대사제였다. 그는 카톨릭 교회에서 보기 드문 복음주의자였는데, 그 자신은 어느 소박한 농촌 여성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를 참으로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학생들 사이에 진실하고 축복된 목회자로서 생활하고 있었다.


석달에 걸친 시험을 마침으로써 학기의 전과정을 밟은 고스너는 마침내 신부가 되었다. 교직에 첫발을 내딛은 그는 다음과 같이 주목할 만한 글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오늘이 있기까지 이름 있는 학교를 두루 돌아다니며 공부했고, 14년 동안 많은 교사들 밑에서 배우면서 많은 돈과 힘과 시간을 투자했고, 소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 일을 위해서 소비했다. 그러나 내 자신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을 무익하게 허비했다. 선생님들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한 가지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는 지금 당신 앞에 갑니다. 나의 유일한 스승이 되어 주십시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인간의 학문과 지혜를 쳐부수고 나의 신앙이 인간의 지혜로 말미암아 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서 있도록, 그리고 당신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에 이르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를 당신의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아멘.’”


여기서 우리는 젊은 신부의 내적인 전쟁을 볼 수 있다. 


불행하게도 그가 배치를 받은 교회의 주임 신부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도움의 손길은 빨리 왔다. 그는 다른 곳으로 전임되었고, 그곳에서는 젊은 신부들로 이루어진 그룹이 친밀하게 교제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소나마 자일러에게 감화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그에게 마틴 보스를 소개해 주었다. 마틴 보스는 카톨릭 교회 안에서 복음을 깨달은 또 한 사람의 신부였다. 그즈음 그는 여러 가지 이단적인 행위 때문에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이단으로 선고되어 면직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괴팅겐의 감옥에 감금당하였다.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많은 영혼들을 위해 그는 감옥에서 편지를 썼다. 그 중의 많은 편지가 고스너의 손에도 들어왔다. 편지를 읽고 용기를 낸 고스너는 자신의 내적인 문제를 보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세히 썼다. 또한 자신의 일기의 여러 페이지를 되는 대로 찢어서 그것도 함께 보냈다. 그래서 보스는 이 젊은 친구가 겪고 있는 죄의 고통 을 아주 잘 알 수가 있었다.


보스는 고스너에게 바로 답장을 썼다. 고스너는 그 편지를 되풀이해서 읽었다.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어가는 중에 복음의 밝은 빛이 그에게 내리 비추기 시작했다.


“마치 물이 해면(海綿)에 스며드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의 신성함으로써 당신에게 침투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은 그의 십자가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나는 그 잔의 겨우 두 세 방울을 마셨을 뿐인데, 어찌 그리 달콤한지요. 와서 거기에 동참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천년 동안 눈물을 흘릴지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를 지닌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죄인에게 아무 대가 없이, 거저 주십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은혜를 맛보는 일은 동시에 결코 고난을 맛보는 것이 아니면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그분과 함께 고난받고, 그분과 함께 죽는 것이 가(可)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고스너에게 ‘편지’라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서 그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셨다. 그는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른 주님의 평안을 맛보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생수를 마셨던 것이다.


그 이후로 얼마 동안 그는 여전히 카톨릭 교회의 신부로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놀랄 만한 영적 각성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체험했다. 로마 카톨릭의 교리와 알맹이 없는 의식에 관해서 토론을 할 때마다 로마 카톨릭의 모순을 들춰 냄으로써 반대와 핍박을 받아 내적으로 심히 고통을 겪었다. 특히 로마 카톨릭 지도자들은 그를 미워하였으며, 고스너는 카롤릭 교회를 떠나고 싶어하진 않았지만,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이런 일 때문에 그리스도에 대한 봉사를 포기할 그는 아니었다. 오히려 뒤셀도르프의 목사로서, 또 제정 러시아의 전도자로서, 최후에는 베를린의 목사로서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그의 모든 것을 다 바쳤다. 그는 복음주의 교회에 있어서 축복된 증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가장 큰 전도 단체 중의 하나는 오늘까지도 그의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하나님은 적절한 때에 적절한 책을 주시고, 적절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심으로써 그를 부르신 것이다. 그는 그 부르심을 받고 감사함으로써 부르심에 순종했고, 그 후 그 부르심을 다른 사람에게도 중실히 전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