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응답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구절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질문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구절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답변


서양의 신학자들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내용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재물을 쌓아 두는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라고 한 사람도 있고, 재물을 아예 가져서는 안 되고 세상의 어떤 가치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가난한 성도들에게 잘 하는 것, 사회적으로 선을 베푸는 것, 설교자에게 재물을 바치는 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라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이 땅에서 형제들의 궁핍을 달래는 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아 놓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선을 강조한다면, 가룟 유다의 말이 맞습니다. 그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요한복음 12:5) 고 했습니다. 물질에 대한 생각이 예수님과는 아예 달랐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세상의 가치를 전혀 추구하지 말라는 뜻이라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분명히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도행전 20:31) 고 했고,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행전 20:34-35)


사도행전을 보면 이러한 바울의 자세가 나타나 있습니다. 또 데살로니가서나 디모데서를 보아도 바울이 근면 성실을 철저히 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선을 행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조건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생계를 위해 부를 추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살아가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구원받은 후에 세상을 살면서 착한 일을 많이 했다고 합시다.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다가 세상을 떠날 때 자기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냥 사장되는 것입니다. 불난 창고 안에서 농사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다 타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답도 주지 않고 ‘선한 일을 하라’고만 하면 문제가 커집니다. 이 말씀의 전제 조건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신명기 8:18 참조) 이것은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과도 연결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세기 13:14-15)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기 15:1) 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조건입니다. 그 조건에 맞추어 이삭도 야곱도 세상을 살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만 약속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노획물을 얻어 오자마자 바로 결정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살렘 왕이 나타났을 때, 자기가 얻은 것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10분의 1을 바쳤습니다. (창세기 14:18-20 참조) 또 야곱도 재산이 한 푼도 없는 상태, 형님을 피해서 도망을 치던 시절에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께 10분의 1을 돌리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창세기 28:20-22 참조) 그들에게 물질적인 축복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했습니다. (말라기 3:8-9 참조)




이런 내용들을 자세히 보면, 축복이 주어질 수 있는 조건은 구원받은 사람들뿐 아니라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물질적인 축복은 똑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역사 2천 년을 전부 다 조사해 보면, 구원 여부에 상관없이 십일조를 정확하게 지킨 사람들은 모두 다 잘 살았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국가든지 개인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십일조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구원 이전의, 율법 이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낸 것은 율법이 있기 43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십일조는 해야 한다고 말할 필요도 없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자기가 탈취했을 때는 도적으로 몰았던 것입니다. 그 말씀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는 약속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일을 철저하게 행했고, 세상의 재물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 조건 없이 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오순절 날 성령이 내린 후에 믿는 무리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32 참조) 이에 대해 공산주의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서로 인간적으로 돕고, 인본주의적으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자신의 입장을 알았기 때문에 청지기로서 충실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팽창을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