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보면 사람이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답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는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많으니 사람에게 자유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야 자유로운데, 하나님이 이것도 저것도 다 하지 말라고 하시니 하나님이 싫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유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행동한다면 가장 힘이 센 사람만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불행해질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자유를 주셨는데 그 자유로 인해 불행해지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유를 통제하는 수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행사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은 행복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아무도 통제하지 않지만 모두가 자유를 올바르게 행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라고 하신 말씀처럼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준다면 통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나를 위한 것이고,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것입니다. 자유와 사랑의 균형이 맞다면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이 사람에게는 율법처럼 들립니다. 율법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자연스레 죄를 짓지 않게 되는데, 사랑이 없으니 그 말이 지켜야만 하는 율법처럼 들리고 자유와 사랑이 모순되어 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아이가 주방에 있는 칼이 반짝거리고 예뻐 보이니 달라고 한다면 어머니가 그것을 아이에게 주겠습니까? 아이는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나에게 칼을 주지 않아요? 왜 나를 자유롭게 두지 않아요?"라고 하겠지만,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칼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은 그대로 두면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율법을 통해 자기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습니다.
율법에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웃의 물건을 탐내지 말라는 등의 많은 내용이 있지만, 사실 그것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계명 하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을 어기면 안 된다고 말씀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살인 하겠느냐? 도둑질 하겠느냐? 거짓말을 하겠느냐? 네가 살인하고 도둑질하고 거짓말했다면 네 마음에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아라.' 하는 뜻으로 여러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절대 멸망의 길로 가지 않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질문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보면 사람이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답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는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많으니 사람에게 자유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야 자유로운데, 하나님이 이것도 저것도 다 하지 말라고 하시니 하나님이 싫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유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행동한다면 가장 힘이 센 사람만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불행해질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자유를 주셨는데 그 자유로 인해 불행해지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유를 통제하는 수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행사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은 행복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아무도 통제하지 않지만 모두가 자유를 올바르게 행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라고 하신 말씀처럼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준다면 통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나를 위한 것이고,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것입니다. 자유와 사랑의 균형이 맞다면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이 사람에게는 율법처럼 들립니다. 율법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자연스레 죄를 짓지 않게 되는데, 사랑이 없으니 그 말이 지켜야만 하는 율법처럼 들리고 자유와 사랑이 모순되어 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아이가 주방에 있는 칼이 반짝거리고 예뻐 보이니 달라고 한다면 어머니가 그것을 아이에게 주겠습니까? 아이는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나에게 칼을 주지 않아요? 왜 나를 자유롭게 두지 않아요?"라고 하겠지만,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칼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은 그대로 두면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율법을 통해 자기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습니다.
율법에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웃의 물건을 탐내지 말라는 등의 많은 내용이 있지만, 사실 그것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계명 하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을 어기면 안 된다고 말씀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살인 하겠느냐? 도둑질 하겠느냐? 거짓말을 하겠느냐? 네가 살인하고 도둑질하고 거짓말했다면 네 마음에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아라.' 하는 뜻으로 여러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절대 멸망의 길로 가지 않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