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8편] 새 노래로 구원의 기쁨을 찬송하라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소리를 발하여 즐거이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찬양할지어다 나팔과 호각으로 왕 여호와 앞에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이 박수하며 산악이 함께 즐거이 노래할지어다 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시 98:1-9) 


 시편 97편은 주님이 재림하사 죄악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찬송하고 기뻐하는 내용이었는데 이 98편은 구원을 노래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때에 나타날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시 98:1)


 이 구원은 현재 우리들이 받은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 중 마지막에 남은 자가 구원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A. D. 70년 이후로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가 없어지고 이천년 동안 온 세계에 흩어져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값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약속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메시야가 오면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후로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민족인데 이천 년 전에 오신 메시야를 잘못 알고 배척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가 사천 년이 되도록 이렇다 할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지는 상황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건져낸 것도 구원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칠 족속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다윗 때에는 완전히 가나안을 정복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스라엘 나라가 지금부터 2600년 전에 멸망해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그 후 70년만에 돌아왔지만 그때부터는 왕이 없어지고 계속적으로 이방 세력에게 침범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이 바로 이방의 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이방의 때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방의 때가 다 끝이 나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때가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을 구원하시도록 되어 있고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성취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약속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오셨는데도 그들은 그 구원의 주인공을 배척하고 버렸기 때문에 모세 이후로는 지금까지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메시야가 오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들이 메시야를 기대하기 때문에 나중에 적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모시게 됩니다. 적그리스도는 전 세계적인 통치자가 되는데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어주겠다는 언약을 맺습니다. 다니엘서 9장에 보면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약속을 맺는데 7년입니다. 7년간 약속을 맺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메시야로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끝내 진짜 메시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가 거짓 메시야인 적그리스도가 자기들을 구원해 준다는 약속에 속아서 한동안 적그리스도를 예루살렘 성전에 모셔놓고 신으로 섬기게 됩니다. 계시록 13장에 있는 말씀대로 적그리스도의 형상인 거대한 우상을 만들어놓고 경배하고 섬기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선민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순간순간 하나님께 충실한 일꾼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는 기간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짤막한 순간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의 역사는 사탄에게 속아서 정말 비참한 역사가 꾸며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신약시대에 와서 교회도 역시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항상 사탄에 의해서 속임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시록 2장, 3장에 보면 일곱 교회가 있는데 에베소, 서머나 교회까지는 괜찮지만 그 다음에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는 세속화가 되어 갑니다.

 두아디라 교회 시대는 중세 암흑시대를 말합니다. 그 때는 교황이 정권을 휘두르는 시기입니다. 교황이 통치권을 주장을 하고 모든 세상 세력들을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성경과는 완전히 딴길로 가는 시대입니다. 그러다가 루터나 칼빈을 비롯한 사람들이 종교개 혁을 일으킵니다. 종교개혁은 사상적인 운동이 아니고 성경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구원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전개되었던 운동입니다. 물론 거기에도 다분히 인간적인 사상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속에는 거듭난 경험들이 있지만 그 안에 인간적 인 요소가 나타나서 종교라 는 명목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도 일어났고 여러 갈래로 교파가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신교 운동은 아주 많은 교파가 생겨나는 형태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2000여년 전쯤에 가장 활발하게 복음이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독일에는 진젠도르프 백작이라는 분이 구원을 받고 큰 운동을 전개하고 중국에는 허드슨 테일러 같은 사람이 전도를 했고 미국에는 디엘 무디 같은 사람이 일어나서 크게 전도하는 복음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주의자들은 항상 그 시대의 일반 교회들에게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빌라델비아란 말은 형제 우애란 뜻인데 이 빌라델비아 시대가 지나가고 마지막에 라오디게아 시대가 옵니다.

 라오디게아 시대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 라오디게아 시대는 구원을 받고 복음으로 신앙생활하는 가느다란 흐름은 있어도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놓고 부요하다고 하지만 실상은 가난하고, 눈이 떴다고 하지만 사실은 앞을 못 보는 소경이라고 계시록 3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교회의 그림자인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바로 사탄의 개입에 의해서 우상이 들어오고 그로 말미암아 부패하고 타락하는 역사가 이어졌고 이 신약 시대에도 역시 교회가 사탄의 농간에 의해서 가장 핵심적인 생명을 잃어버리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정통교회라고 자처하는 그 안에서도 거듭났다고 하면 이상하게 여기고 오히려 이단이라고 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현재 이 교회들도 역시 적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사회 구원 운동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기독교가 아니고 기독교가 도덕적인 종교로 전락을 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것을 위해서 기독교가 기여하고 봉사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거짓 메시야인 적그리스도와 이스라엘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 9:26)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진다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한다는 말은 바로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서 멸망당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는 로마의 왕을 말합니다. 옛날에 쥴리어스 시저가 로마를 통일하고 온 세계를 지배하는 왕으로 등장했는데 그 로마가 나중에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 로마가 지금 다시 일어나는 것이 유럽 합중국입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강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27)


 유럽이 대 로마시대의 영광을 다시 찾고 재현하는 시대로 지금 돌아갑니다. 그래서 여기서 '그' 는 옛날 로마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장차 유럽 연합 통치자를 말하는데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한 이레 동안에 언약을 굳게 정하겠다고 했는데 이 언약을 굳게 정한다는 말은 이스라엘을 구원해 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얘기지만 그 역사적 배경을 알면 좀더 실감있게 시편 98편의 내용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7년이라는 기한을 정하여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구원시켜준다는 언약을 맺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민족을 구원해 줄 메시야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 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기다리다가 정작 예수님이 오셨으나 그들이 배척을 했습니다.

 앞으로 이 이스라엘 나라가 상당히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힘 있는 나라들이 여럿이고 거기에 러시아와 독일도 가담하게 될 것입니다. 막강한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온 세계가 이스라엘을 미워합니다. 다만 독일을 제외한 유럽 연합의 나라들과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상당히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 공격을 받는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럴 때에 '그' 라는 적그리스도가 한 이레 동안에 언약을 굳게 정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레의 절반이 3년 반입니다.

 그러니까 7년 환난에 전 3년 반이 있고 후 3년 반이 있는데 전 3년 반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적그리스도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죽이는 난폭한 행위를 하게 될 때에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들이 각성을 하게 됩니다. '이 로마의 제왕도 우리의 구주가 아니구나 그렇다면 우리의 메시야가 누구냐?' 하고 각성을 하면서 이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이 자기들의 메시야였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됩니다. 그 환난을 그들이 당하고 그 속에서 메시야를 알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


 그러면서 계시록 7장에 14만 4천 인이 인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 납니다. 성경에 이른 비와 늦은 비라는 말이 있는데 이천년 전 오순절에 성령이 오신 것이 이른 비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구원을 받는 것이 늦은 비입니다. 교회가 들림을 받을 때에 성령이 세상에서 떠나가버리시는데 그러면 이 세상에 환란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다시 한 번 성령이 오셔서 이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 진정한 그들의 메시야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스가랴 12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이 통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온 가족이 서로 붙들고 통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구원을 받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맡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롬 11:11-12)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인데 실족하여 넘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완전히 실족한 것은 아니고 그들이 넘어진 결과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 가서 이방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을 보고 시기가 나서 이스라엘이 다시 돌이키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리라"(롬 11:25-27)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숫자가 다 차고나면 구원의 역사가 이스라엘로 넘어가서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게 되는 구원은 현재 우리가 받는 구원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받는 구원은 민족적으로 받는 구원입니다. 십사만 사천 인이 인침을 받는 것은 우리들처럼 구원을 받는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제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슥 14:1-2)


 여기에 남은 백성이라는 이 백성들의 구원은 현재 우리가 받는 구원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 남은 백성이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한다는 말은 아브라함부터 내려오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하셨던 메시야로 말미암아 그 민족 자체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을 받는지 안 받는지는 모르겠고 육신의 구원입니다.

 아마겟돈 전쟁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도 대부분이 죽고 아마 3/1 정도가 남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들은 현실적으로 역사 속에서 정말 살아서 구원을 얻고 또 그 다음에 세계 위에 가장 높이 드러나는 민족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민족적인 구원, 국가적인 구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온 세계를 통치하는 그 통치 속에 그들이 함께 참여하는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두고 하나님께 찬송하고 노래한 것이 시편 98편의 내용인 것입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시 98:1)



구원의 근거-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만일 끝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신실하지 못한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부터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을 하셨는데 메시야가 오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신다는 분명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부터 1900년 전부터 멸망의 운명에 들어갔는데 만일 그들이 끝까지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구원을 못받으면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의로우심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에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마지막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주님이 자기를 위해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를 위해서, 이 세상에 재림하셔서 통치를 하셔야 되는데 그 통치할 수 있는 발판인 이스라엘 민족이 몽땅 멸망해버리고 없어지고 만다면 예수님이 무엇을 중심으로 온 세계를 통치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곳은 다른 곳이 아닌 예루살렘이요 가나안 땅입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 속에 오셔서 그 민족을 중심으로 온 세계를 통치하셔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렇든 저렇든 그들 속에 마지막 구원이 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성실치 못한 하나님이고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이 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사 43:25-28)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물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서만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실 수 없고 구원하지 않으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우리에게 의를 나타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본적인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속에는 사랑과 의가 공존합니다. 의는 죄를 미워하고 심판하는 것이고 사랑은 죄를 용서하고 죄인을 사랑하시는 것 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 하나님의 속성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만일 사랑만 계시고 의로움이 없으시다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속성에 의로우심만 계시고 사랑이 없으시면 우리 죄를 용서하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구원은 하나님의 성품 자체가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지 우리 속에 구원의 근거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로우심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내적인 만족과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서 베푸시는 구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즐거움이고 기쁨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영적인 구원을 놓고도 생각하면 우리 사람 같으면 어떤 사람이 구덩이에 빠졌을 때 손을 내밀어 건져주면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에는 굉장한 만족이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만족과 기쁨과 즐거움이 그 속에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보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더 즐겁고 만족하고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이 되고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허물을 도말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신다고 한 번 가정을 해봅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쓸쓸하고 만족이 없고 즐거움이 없으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그 자체는 주님께 무한한 영광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주님께 큰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기쁨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우리를 구원해도 좋고 안해도 좋고 그러실 수가 없으십니다. 우리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실 수 없는 이것이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온 군대가 이스라엘을 치는 그 무시무시한 환난 속에서도 그 민족을 몽땅 멸망하도록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마음속에 만족과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옛날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이 그대로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무시무시한 환란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셔서 이 세상에서 당신의 나라의 백성을 삼으시고 그들을 기초로 해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아주 깊은 뜻을 두고 그러한 역사의 설계가 되어 있고 그 설계대로 이 역사는 꾸며져 갑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아무리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고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성품 속에 이미 계획되어 있는 그 약속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상 하나님이 우리를 돌아보지 않으신다든지 버리신다든지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모든 계획을 완벽하게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만일 이 성경에 약속이 되어 있는 어떤 작은 부분이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성품에 흠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절대로 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렇지만 조급한 우리 사람과 달라서 하나님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앞에는 이천년 전이나 후나 현재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 우리 인간들이 볼 때에는 굉장히 느리고 더딘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 3장 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고 하였듯이 더딘 것 같지만 더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너무 조급하기 때문에 더딘 것같이 생각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항상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이천년 전에 골로서 교회나 에베소 교회,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쓸 때마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이천년 전에도 주님이 곧 오신다고 바울이 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겠습니까?

 바울은 말하기를 주님이 문 밖에 서 계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실 것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금방이라도 오실 것처럼 사는 사람은 믿음의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갑니다. 주님이 오시면 구원받은 사람은 모두 들림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님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 태도와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


 지금 우리들은 영원한 구원을 받고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의 사정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 민족의 사정이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이 사천년 전입니다. 그동안에 참 말할 수 없이 쓰라린 많은 사연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들 대부분은 그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메시야를 지금까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앞으로 마지막에 러시아 동맹국이 이스라엘을 치고 또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그 무시무시한 전쟁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도 2/3 정도가 멸망당해버리고 끝에 가서 겨우 나머지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구원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젊은 사람들은 8.15 해방을 경험하지 못해서 잘 모를 것입니다. 해방 전에 우리가 일본 사람들에게 겪은 여러 가지 수모와 압박과 고통은 참 말할 수 없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다 가져가 버립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많이 먹고 밥 힘으로 일하는데 하루 한 사람 양식이 두 홉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렇게 배급을 주고 나머지는 빼앗아가버리니 고통이 이만저만하지 않았습니다.

 또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징용으로 끌어갔는데 그것을 피해서 숨어 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안한 세월을 지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해방이 왔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연세 많은 분들은 알겠지만 지금 사람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해방되던 때는 그 기쁨에 며칠간 잠이 오질 않아요. 천황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밤중에 산을 넘고 들을 건너 다니면서 온 동네에 전하고 외치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육신의 기쁨이었고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마지막 환난을 거치고 구원을 받을 때 그 기쁨과 즐거움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구원을 베푸셨도다" 하고 그냥 지나가 버리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 구원이 얼마나 그들에게 귀하고 놀라운 것이겠습니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계시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1-4)


"땅 사방 모퉁이에 바람을 불지 못하게 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잠시 전쟁이 멈추어졌다는 말입니다. 그 사이에 십사만 사천인이 인을 받는 운동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인이 아니고 예수님의 인입니다. '늦은 비' 라고 하는 두번째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받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는 굉장히 냉정하신 분같이 생각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분명히 선택된 민족인데 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괴로움을 받게 되었는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이 환난 중간에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예수님이 계시로서 알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완전히 성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와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하나님께는 완전한 계획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지금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절대로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입니다.

 앞으로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은 절대로 우리 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우리 편이지 이 세상은 우리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대우를 잘 받고 좋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성취되고 실행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무시무시한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대로 십사만 사천 인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들의 구원은 마지막 전쟁에서 살아 남은 이방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시대에 살면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아직은 모르지만 우리는 마지막 시대의 교회로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위치에 와 있습니다.



우리를 끝까지 지켜 보시는 하나님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 내가 바다니이까 용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래시고 이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이러므로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사람을 감찰하시는 주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서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욥 7:11-21) 


 여기에 욥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냐 하면 자식들이 다 죽고 재산도 다 없어지고 몸에는 문둥병이 들어 기왓장으로 몸을 마구 긁으면서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욥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는데 죽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욥에게 욥의 친구들은 위로는커녕 네가 그렇게 고통당하는 것이 너의 죄 때문이라고 공격을 했습니다. 그 때 너무너무 고통스러우니까 도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서 욥은 울부짖었습니다.

 사람들이 아프면 신음소리를 내는데 그런 소리라도 내면 아픈 것을 잠시라도 잊을까 해서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서 욥의 마음속에는 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이 자기를 주목을 하시고 고통을 주시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욥 7:17-19)


 하나님이 자기를 그만 가만 놓아두셨으면 좋겠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자기를 지켜보시고 괴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침을 삼킬 동안도 하나님이 놓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왜 하나님 나를 놓아주지 않는가 하고 울부짖었습니다.

 잠깐 사이에도 하나님이 시선을 다른 데 돌리지 아니하시고 욥을 지켜보시는 이유가 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욥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욥이 왜 그런 지경을 당했습니까? 사탄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탄이 욥을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은 다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잠시라도 눈을 돌려 버리시면 사탄이 욥을 죽입니다. 사탄이 욥을 죽일까 해서 잠깐 사이에도 눈을 돌리지 않고 욥을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욥은 몰랐습니다. 욥은 사탄이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기가 고통스러운 것이 죄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시험하고 징계하시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 다. 하나님 이제는 그만 날 놓아주십시오 했는데 만일 하나님이 욥을 놓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놓아주면 사탄이 그를 죽여버립니다. 마귀는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이니까 그를 죽여버릴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환난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일분 일초 동안도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안 떠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신다는 말은 우리를 버리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사망의 권세 잡은자가 우리를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욥이 얼마나 큰 오해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굉장히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조그마한 어려움만 보아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시면 당장에 마귀가 우리를 잡아 삼켜버립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마귀가 마음대로 하면 당장 죽여버립니다. 그러니까 고린도전서 5장 5절에 보면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완전히 희망없는 사람은 사탄에게 내어주어버 립니다. 그러나 잠시 동안도 하나님의 시선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해도 잠시 동안도 우리를 놓아주지 않으십니다.



온 세상을 향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시 98:2)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아주 분명하게 나타내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사천 년 동안이나 캄캄한 구름이 낀 것 같은 속에서 살다가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다 알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의를 그 온 세계 만방에 나타내시고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그 때 완전히 알게 됩니다. 지금 우리도 구원을 받았지만 오리무중으로 답답하고 이해 안되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오시면 환하게 모든 것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온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는 일이 있게 됩니다. 



천지 만물이 주님의 구원을 찬양할 때가 오리라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소리를 발하여 즐거이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시 98:3-4)


 그 때 이스라엘 민족이 부를 찬송이 어떤 찬송이겠습니까? 그들의 즐거움은 절정에 오르게 될 것이니다. 얼마나 즐겁고 기쁘겠습니까?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찬양할지어다 나팔과 호각으로 왕 여호와 앞에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이 박수하며 산악이 함께 즐거이 노래 할지어다 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시 98:5-9)


 큰 물이 어떻게 박수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파도 소리가 나는 그것이 박수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계시록 13장에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있고 또 17장에 보면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있습니다. 이 바다는 온 세상을 말합니다.

"세계를 판단하시며"라고 했는지 판단하신다는 말은 주님이 통치하신다는 뜻입니다. 공평하고 의롭게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여기서 표현합니다. 이 시편 98장은 사천년 동안이나 오랜 세월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여러 가지 환난을 겪으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구원이 드디어 나타나서 그 구원에 참여한 이스라엘 민족이 찬송을 부르는 모습이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민족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 모든 만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늘에는 네 영물들이 노래하고 이십사 장로가 노래하고 또 천군 천사들이 노래하고 하늘 위에나 땅 아래나 바다에나 모든 만물이 노래를 부릅니다. 이 세상이 주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저주가 풀리고 해방되는 엄청난 기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그러한 일이 진짜로 있을까 의문이 나시는 분은 없습니까? 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한 번 찾아내 보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맙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조급해가지고 빨리 그때가 왔으면 좋겠다 싶은 것 뿐이지 그때는 분명히 오고 맙니다. 조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늦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옵니다. 그래서 분명히 우리들도 온 우주 만물이 환희에 차서 즐거워하는 그 엄청난 축제 속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실 것을 기대하지 않고 곁눈질하고 세상을 바라보며 주님보다는 다른 것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