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6편] 천년왕국의 새 노래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 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지로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시 96:1-13)


 시편 96편은 95편과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통치하실 천년왕국에 대한 노래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예언이기 때문에 이 노래가 지어진 것은 구약시대이지만 미래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는 예수님에 대한 이름이 없지만 여호와라는 명칭이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새 노래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시 96:1)


 천년왕국 시대는 완전히 세상이 달라져서 새로운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계시록 14장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서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갈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1-3)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 시온산에 서 계신다고 했습니다.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새 노래를 부릅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구원을 받고 나면 찬송이 새로워지고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만 천년왕국 때는 이 세상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되기 때문에 장엄한 새 노래로 찬송이 드려지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의 감정이나 상식으로서는 그런 일을 잘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 때는 모든 언어가 통일이 될 것이고 현재 우리들이 부르는 찬송과는 분명히 다른 찬송이 불리워질 것입니다. 그 노래 내용이 어떤 것일지 지금 우리들로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여러 나라의 말과 방언이 있고 또 그 여러 나라의 환경을 따라서 찬송의 내용과 가사가 다르지만 그때는 완전히 언어가 통일된 상태에서 부르는 노래이고 또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것이 없는 상태에서 부르는 노래일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선파하라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시 96:2)


 여기에 "그 구원을 선파한다"는 것은 전도를 한다는 뜻은 아니고 구원의 은혜를 높이 불러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사 12:1-6)


 2절에,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 이심이라"고 하였는데 주 여호와는 나의 노래이시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노래의 제목일 뿐 아니라 노래 자체라는 뜻입니다. 우리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송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불러지는 노래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구원받고 부르는 찬송이나 노래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들도 정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찬송을 부를 때에는 거기에 성령이 함께하시고 은혜로운 찬송이 됩니다.

 이전에 미국에 노래 잘 부르는 한 여성이 있었는데 그분이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죄를 회개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전도하다가 그런 경험을 한 일이 있습니다. 전에 미국 인디아나에서 미주 수양회를 할 때에 설교를 마친 다음에「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버리고」라는 찬송을 불렀는데 몇 년 동안 모임에 참여도 하고 그 집에서 집회도 여러 번 했지만 그때까지 구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형제가 그 날 찬송을 부르다가 그 찬송 소리에 그냥 구원을 받아버렸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참으로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부르는 찬송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오셔서 직접 다스리시는 천년왕국 시대의 합창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그 노래에 참여하고 마음도 온전히 하나가 되는 노래일 것입니다. 정말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사실입니까? 지금은 우리가 기쁘고 즐거운 때는 찬송을 부르지만 조금 있으면 시들어지지만 그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있으면 식어버리는 노래가 아니라 한없이 부를 수 있는 그런 노래 속에 우리가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찬송을 불러도 한결같지 않고 찬송을 그냥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온 사람의 마음이 전부 하나로 주님 앞에 바쳐지면서 노래 부르는 때가 될 것입니다. 

 그 때는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기쁨이 구원의 노래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때는 우리 영혼 구원뿐만 아니고 우리 삶의 구원도 완성이 되고 또 우리 육신의 구원도 완성이 되니까 구원의 기쁨이 절정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 완성된 구원을 이제 찬송으로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힘찬 찬송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여호와는 광대하 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시 96:3-4)


 그런데 천년왕국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참예하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했지만 대환난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가니까 그들은 구원의 노래를 진정으로 알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사람들 앞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높이 부르게 될 때에 승리의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옥중에서 발과 손목이 쇠사슬에 매여 있고 옥문이 닫혀 있고 또 옥사장들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부른 노래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성령이 충만해서 부른 노래에서 큰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면서 옥문이 열려지고 쇠사슬이 풀어지는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이 바울과 실라처럼 힘차게 찬송을 불렀으면 합니다. 그냥 입만 달싹달싹 하고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이 아닌 상태에서 부르는 노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평소에 찬송을 힘있게 열심히 부르고 주님을 찬양하는 그런 찬송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전도 집회를 할 때 보면 구원 안 받은 사람 들으라고 찬송을 부르는데 물론 그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실 찬송이 라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주님을 찬양하고 열린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어야 합니다. 구원 안 받은 사람 들으라고 "멀리 멀리 갔더니" 하는 그런 찬송을 하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찬송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참으로 주님을 향해서 마음을 열고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힘있게 불러야 감동을 줄 수 있지 구원 안 받은 사람 들으라고 불러봤자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전도 집회에 구원 안 받은 사람 이 섞여 있어도 그 사람들 들으라고 부를게 아니라 정말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힘을 주시는 주님을 향해서 마음껏 즐거움으로 불러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비교적 성경 공부하는 데 대해서는 강조를 많이 하지만 찬송을 통해서 주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등한한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형식적인 것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찬송은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송과 마음을 합쳐서 부르는 찬송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구원 안 받은 사람들이 유행가를 부를 때 보면 서로 춤을 추며 좋아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 찬송할 때에 물론 그렇게 하자는 건 아니지만 좀더 힘차고 활발하게 찬송을 불렀으면 합니다. 찬송은 주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니까 우리가 그런 면에 좀 더 생각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시 96:3)


 찬송은 새 노래로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온 세상에 널리 선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헛된 신들은 망하리라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시 96:4-5)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통치권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들어와서 아담을 타락시킴으로써 이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많은 신들은 사탄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루시퍼라는 천사에게 소속되어 있었던 마귀들의 떼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한 사탄의 세력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이 세상에 세상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가운데 있는데 예수님이 재림을 하셔서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은 그래서 완전히 주님 한 분만이 통치하시는 세상이 됩니다. 그래서 그 주님을 모든 신보다 경외하게 되며 만방의 모든 신을 헛 것이 된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지으셨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렘 10:11)


 신들이 많지만 그들은 이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입니다. 사탄의 세력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탄의 세계도 자연 환경을 움직이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욥기를 읽어보면 물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 서 그렇지만 사탄이 폭풍을 몰아치게 한다든지 사망의 권세잡은 자로서 사람을 죽인다든지 하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 습니 다. 그렇지만 사탄은 천지 만물을 창조한 신은 아닙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 뿐이십니다.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시 96:5)


 여기에서 특별히 하나님이 하늘을 지으셨다고 말한 것은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창조하신 위대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존귀와 위엄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시 96:6-7)


 우리가 이 성경을 읽지만 아직은 그 존귀와 위엄을 잘 모릅니다. 물론 하나님이 얼마나 존귀하신 분이고 또 위엄이 계신 분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 나타나신 기적과 섭리를 통해서 알 수 있고 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일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것, 풍랑을 말씀 한 마디로 조용하게 하신 일 등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만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만왕의 왕으로서 군림하실 때의 그 존귀와 위엄은 현재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차원이 높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주님과 함께 그 위엄 속에 참여할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사실들을 지금은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조금 맛을 보아 알지만 다는 알 수가 없습니다. 현재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잘 모릅니다.



영원하신 주님의 아름다움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우리들도 아름다운 것을 마음속에 추구합니다. 저 역시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세계 각지에 돌아 다니면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곳을 많이 본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를 보아도 성격이 좀 급해서 그런지 오래 보지 않습니다. 한번 휙 둘러보고 좋구나 하고 한참 있으면 그만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래서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거짓되다는 말씀이 있잖습니까? 사람들이 경치 좋은 데 가면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하면서 찬송을 부르는데 하나님의 만드신 세계가 아름다운 동산처럼 보이고 감탄스러워서 부르지는 모르겠만 현재로서는 이 세상에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그 아름다운 이면에는 썩고 냄새나는 것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도 그 이면에는 근심이 있고 걱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살기가 등등합니다. 마릴린 먼로 같은 사람은 굉장히 미인이지만 그 마음 속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나중에는 자살했습니다. 미모가 있고 물질이 있고 인기가 있고 사람들이 찾는 것을 다 가졌지만 그 마음은 마냥 쓸쓸하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순간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잠깐 맛을 보았습니다. 정말 아무리 누리고 누려도 실증이 안 나는 그 아름다움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천국에 가서 나중에는 싫증나서 어떻게 있을까 하는 염려는 필요 없습니다. 굉장히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날로 날로 새로워지는 곳이 천국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곧 싫증이 나는 것은 마음 자체가 썩음과 죄의 영향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모든 것을 썩게 만들고 가치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죄성이 있고 모든 만물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거기에 영원성이 없기 때문에 일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꽃이 아름다워도 조금 있으면 시들잖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싫증이 안 나는 그런 아름다움은 맛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 보다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부패가 들어온 세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부분 부분을 보면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잠깐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사탄에 의해서 완전히 부패하고 오염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에 죄가 서려 있고 죄의 결과인 저주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쉽게 싫증을 느끼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 더 만족스러운 것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신서과 거룩함이 그대로 나타나는 때에는 정말 싫증이 안나는 굉장히 아름다운 세계에 우리가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그 무엇을 추구하는 육신의 마음이 있지만 그 진정한 아름다움은 주님 오신 이후에만 있습니다. 그 세계는 정말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다른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일 것입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라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사 2:2-4)


 현재 우리는 자연계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고 사람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집이나 옷 따위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습니다. 어린아이를 보면 정말 귀엽고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순진하고 거짓이 없는 그 표정 속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옷을 잘 입고 다듬어도 거기에는 냄새나는 것이 있고 거짓이 있고 시기와 질투가 있지만 귀여운 것은 없잖습니까? 어린아이들은 아직은 시기와 질투를 모릅니다.

 천년왕국 때는 하나님 안에 있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품이 자연계와 사람들 속에 반영이 되는 세계가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2장에 나타난 대로 칼을 쳐서 농사를 짓는 모습, 그런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반영하는 세상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시 96:6) 


 사도행전 2장부터 5장까지 내려가면서 우리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을 조금 음미할 수 있습니다. 죄악이 차 있는 세상 속에 성령이 임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 때에 사람들의 속에 일시적이나마 미움이나 어두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네가 높냐 내가 높냐 하는 성격이 다 사라져 버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그들 속에 아름다운 모습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무라도 욕심부리는 마음이 없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 마음,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 안의 아름다움입니다. 교회가 이루어지기 전,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는데 교회가 이루어지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이 인도를 받으니까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제를 이루어 가는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 육신 때문에 이 모든 것이 투명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서로 욕심을 부린다든지 또 누구를 미워한다든지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 많은 부분에서 결핍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완성될 아름다움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계시록 21장을 보면 열두 진주와 무슨 보석으로 꾸미는 것이 나오는데 그것들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계 21:9)


 어린 양의 아내는 교회를 말합니다. 주님은 신랑이고 그 어린 양이신 주님의 아내는 교회입니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 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여기에 구원의 옷은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의 옷입니다. 그 다음에 구원의 옷 말고 의의 겉옷이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 때 제일 좋은 장식과 옷차림을 합니다. 신랑은 사모관대를 쓰고 신부는 보물로 자기를 아름답게 단장합니다.



보석으로 단장한 주님 의 신부의 모습


 계시록 21장에 보면 어린양의 아내 신부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전부 보석으로 꾸미고 나타납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 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갈더라 그 성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갈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 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 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계 21:10-21)


 이것이 영원한 천국인데 사실은 신부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석이니 진주니 하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서 이 보석과 진주 노릇 할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성품이 우리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 입니다. 지금 우리 속에 그 아름다운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아름다움, 성령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지금은 육신이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이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하나님 성품의 아름다움이 우리 안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하지 않는 것은 전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에 의해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주님께 만방이 영광을 돌리게 될 때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시 96:7)


 이 말씀은 천년 왕국 때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슥 14:16-20)


 아마겟돈 전쟁 때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민족들이 다 멸망하고 그 뒤에 남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이 초막절을 지키는 것이 천년왕국의 때입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라고 했는데 이 여호와는 주님을 말합니다. 그때는 주님이 만왕의 왕으로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때인데 이 세상에 구원 안 받았지만 살아 남은 자들은 다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백성 노릇을 합니다. 그들은 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통치 아래 들어갑니다. 그 전까지는 사탄에게 영광을 돌렸지만 그때부터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때가 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시 96:8)


 사람들이 초막절을 지키러 올 때 예물을 가지고 오는데 무슨 예물인지는 모르지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시 96:9)


 천년왕국 때는 사탄이 무저갱에 던져 가두워지니까 갑자기 세상에 죄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악하지 않고 선해집니다. 주님이 만왕의 왕으로서 땅을 통치하는 시대가 오기 전에 적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통치하면서 자기가 경배를 받고 영광을 받으려는 계획을 진행 중에 있고 현재 역사가 그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면 완전히 이러한 계획들이 뒤집어져서 주님께 모든 영광이 돌아갈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공의로운 통치와 만물의 회복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지로다"(시 96:10)


 천년 왕국 때 예수님 이 만국을 통치하시는데 공평하고 완전한 통치를 하십니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시 96:11-12)


 천년 왕국 때는 만물이 회복되어 즐거이 노래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 이 세상은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만물의 회복을 기다립니다.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18-26)


 여기에 보면 세 가지 탄식이 나옵니다. 사람의 탄식과 자연계의 탄식과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 하시면 이 세 가지 탄식은 다 없어집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탄식이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롬 7:24)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탄식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여러 가지 면으로 우리 육신의 탄식이 있고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약 4:4-5)


 여기에 보면 우리 속에 거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향해서 간음을 하기 때문에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장차 우리들의 남편될 분입니다. 그 남편만 사랑해야 되는데 세상을 사랑하니까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여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실수해서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우리 마음이 주님 말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죄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간음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신랑이 자기 부인의 사랑을 독차지해야 되지 자기 부인이 다른 남자도 사랑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이 탄식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세상으로 달음박질해 갈 때에 탄식을 하시며 기도하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롬 8:19)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래 모든 피조물의 주인은 아담이었는데 이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하자 아담과 함께 이 세상이 저주를 받아 죄악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숫자가 충만하게 차게 되면 결국 끝이 나게 됩니다. 현재 이 세상은 어느 기간에 가서 변화가 되는데 아직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숫자가 차기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아들들의 숫자가 차면 주님이 재림하시고 이 세상이 변화 됩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롬 8:20-21)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직은 영광의 자유에 못 들어갔습니다. 그 영광의 자유에 들어가자면 현재의 불완전한 육신이 완전히 변화되어야 됩니다. 주님이 오시면 우리가 변화되는데 그때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이 세상 모든 자연계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자연계의 운명이 우리 그리스도인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 둘 나타나는 것이 피조물들로서는 굉장히 희망적인 사실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광의 자유가 이루어지면 모든 자연계에도 해방이 찾아오게 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2) 


 그래서 피조물 자연계도 탄식하고 그때까지 함께 탄식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 8:23)


 우리 영혼은 이미 양자가 되어 있는데 우리 육신이 변화되어서 완전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면서 탄식을 하는데 그 탄식도 주님이 오시면 사라집니다.



모든 존재들이 주님의 통치를 기뻐함-저주가 사라진 세상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시 96:11-12)


 주님이 다스리는 세상이 되면 모든 저주가 풀리고 에덴 동산의 상태로 원상복구가 됩니다.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7-14)


 저는 이것을 전도집회 할 때마다 이야기 하곤 합니다. 현재 이 자연의 세상과 우리 인간들은 다 죄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 간절히 주님 이 만물을 회복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공의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만물을 회복하시면 하늘 위에 천군 천사도 기뻐하고 모든 만물도 기뻐 한다는 내용이 계시록 5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시편 96편 말씀과 그 내용이 같습니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시 96:11-12)


 저는 나무들이 어떻게 노래하는지 심히 궁금합니다. 어떻게 노래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때에 얼마나 기쁜지 나무도 노래하고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 세상에 미련 가질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그 날이 곧 올 터인데 우리 마음이 간절히 주님을 맞이하는 데 기울어져 있어야되지 않겠습니까?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주님의 공의로운 판단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 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시 96:13)


 이제 머지않아 그 날이 오면 주님의 아주 정의롭고 의로운 그 판단이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의 완전무결한 통치와 판단 아래 세상의 모든 질서가 완전히 잡혀 갈 날이 오고 있습니다.



늘 깨어 있으라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흡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1-8)


 지금 이 세계는 냉전의 시대가 끝나고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로 접어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역사를 기록된 말씀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 데살로니가 전서의 말씀은 참으로 깊이 새겨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왜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하셨는가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 것에 취해 있으면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나중에 주님께 큰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늘 깨어서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