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7편] 영원한 새 예루살렘의 도래

[시편 87:1-7]

그 기지가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셀라) 

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셀라)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는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고라 자손의 찬송 시, 곧 노래"라고 했습니다. 이 시편 87편은 먼 미래인 천년 왕국 시대를 내다보며 읊은 예언 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후에 지은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의 근거지 예루살렘 성전


성경을 보면 성전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많습니다. 가령, 열왕기상 8장에 보면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짓고 낙성식을 할 때에 장시간에 걸쳐 기도를 올린 내용이 나오고 출애굽기 40장에 보면 법궤를 안치할 수 있는 장막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생활과 신앙의 중심지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를 가든지 성전을 항상 생각하는 민족이었습니다.


[시편 137:1-9]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이 시편 137편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 예루살렘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으로 부른 노래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너희가 너희 하나님께 부르던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고 하니까 "우리가 어떻게 시온의 노래를 너희들에게 들려줄 수 있겠느냐. 그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수금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앉아서 예루살렘을 향해 슬피 부르짖는 내용입니다.





영원한 예루살렘의 도래를 예언하는 노래


이스라엘 민족은 예루살렘이 없으면 삶의 의미가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루살렘은 그들의 신앙의 근거지였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목적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시편 137:5-6]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



 예루살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워하고 사모하는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참으로 이 시를 읊은 사람은 예루살렘을 향한 마음에 그의 온 생애가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87편은 그렇게 예루살렘을 향하여 통곡했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성전을 다시 지었을 때에 읊은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고라 자손인데 성령으로 말미암아 먼 미래의 천년 왕국 시대에 예루살렘이 영원히 망하지 않는 곳으로 재건이 될 것을 노래했습니다.


 이 시편 87편의 시가 읊어진 후에 A.D.70년에 예루살렘이 또다시 파괴되었고 지금까지도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 예루살렘을 완전히 재건하고 성전을 지을 것입니다. 물론 그 예루살렘도 다시 한번 멸망할 것입니다. 영원한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계시록 21장에 보면 영원한 예루살렘이 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1: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이러한 일에 대한 예언의 말씀으로서 우리가 이 시편 87편을 음미해야 할 것입니다. 





성산의 터-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시편 87:1]

그 기지가 성산에 있음이여


 그 기지가 성산에 있다는 말의 뜻은 예루살렘에 가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다른 말로는 시온산이라고 하는데 기지는 터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에 가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였는데 이삭을 바친 곳이 바로 성산의 터입니다.



[창세기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또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다윗이 인구 조사를 통해 자기의 세력과 영광을 자랑하려는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이 노하셔서 다윗에게 세 가지 재앙 중에 한가지 재앙을 택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그 중 온역을 택하자 이스라엘에 큰 온역이 일어나게 하셨는데 7만 명이 그 일로 죽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회개를 했는데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가서 단을 쌓으라 하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성산인 모리아산이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가 보면 그 자리에 회교 사원이 지어져 있습니다. 그 회교 사원 안을 보면 텅 비어 있고 별로 보이는 것이 없는데 지하 큰 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옛날 지성소 자리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그 기지가 성산에 있다는 말은 그 터가 예루살렘 시온산에 있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그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그리스도인으로 이루어진 교회라는 건물이 지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시편 87편의 기지 즉 터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진리가 교회의 터입니다. 그래서 그 위에 교회라는 성전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시온의 문들-예수님의 그림자


[시편 87:2]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야곱의 모든 거처는 흩어져서 사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열두 지파를 형성해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전체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시온의 문들은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집이 필요한데 그 집에는 문이 있어야 출입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보면 예루살렘, 브엘세바, 헤브론, 나사렛, 벧엘 등등 여러 지역에 유적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지가 예루살렘입니다. 그래서 이 시온에다가 하나님께서 성전을 짓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기 때문에 특별히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고 한 것입니다.



 현재 예루살렘에 가보면 예루살렘 옛 성이 있고 그 성 주변에 많은 신 시가지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건너편 감람산 북쪽의 히브리 대학이나 박물관, 그밖의 정부 건물도 다 구 도시 밖에 있습니다. 구 도시는 성이 높이 쌓여 있는데 주위를 동서남북으로 돌아가면서 문들이 있는데 그 중에 특별한 문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문은 다 사람들이 통과하지만 황금 문이라고 하는 문은 지금도 닫혀 있고 사람이 통행을 하지 못합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그 문이 열리고 그리로 들어오신다고 합니다. 현재 그 문은 성문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 문이 열리고 그리로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그 옆에 또 한 문이 있는데 그 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들어가신 문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성경적으로 보면 그 문들은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양 우리의 문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양 우리의 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한복음 10: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나는 양의 문이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서 구원을 얻고 나오면서 꼴을 얻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나는 문이라"고 하신 이 말씀과 시편 87편에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가 시온, 즉 예루살렘을 생각할 때 자연히 성전을 떠올리게 되는데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고 하나님 앞으로 가는 유일한 문은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통과해서 하나님 앞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모든 사람과 제사장들이 그 문으로 들어가고 나가고 하면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 문이 바로 예수님 자신의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물질적인 성전 문은 사실상 예수님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좁은 문-십자가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이 세상 사람들은 넓은 길을 걷고 넓은 문을 통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면 좁은 문은 무엇일까요? 앙드레 지드는 '좁은문' 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그 사람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딴 뜻으로 좁은 문을 썼습니다.



 어떤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데 여자가 천주교를 다닙니다. 사랑을 따라가느냐 종교를 따라가느냐 하는 문제 속에서 여자가 갈등하다가 결국 죽어버리는 내용입니다. 성경과는 전혀 맞지 않는 내용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좁은 문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고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 안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존 번연의「천로역정」에 보면 크리스천이 멸망 받을 세상을 떠나서 죄짐을 짊어지고 가는데 그가 구렁텅이에 빠지면 전도자가 와서 건져주곤 합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따라오다가 그런 변을 당할 때 그만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버립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서 죄짐을 짊어지고 십자가가 있는 곳까지 갔는데 거기서 죄짐이 홀라당 벗어지면서 굴러 저 산 아래로 내려가 버립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라는 그런 찬송가가 우러나오는, 죄짐을 벗는 문은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사 돌아가셨고 부활하셨는데 우리가 그 십자가를 통과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옛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도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문의 이쪽 편에서는 죽고 저쪽 편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좁은 문이요 거듭나는 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맞이하게 되는 문이 좁은 문인데 세상 사람들은 그 뜻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한 것입니다.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영원한 새 예루살렘-교회


[요한계시록 21:9-11]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현재도 예루살렘에 성이 있지만 여기 보면 영원한 새 예루살렘성이 나타납니다.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백옥과 수정같이 맑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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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1:12-14]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예루살렘에 열두 문이 있는데 그 문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각각 해당되는 문인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계시록 21장에 있는 예루살렘은 영원한 천국입니다. 이 땅의 예루살렘은 사실상 곧 영원한 성인 천성을 상징하는 뜻으로 지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을 때에 예루살렘 때문에 눈물 흘리고 우는 것은 그들로서는 현실적으로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적으로 예루살렘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어린양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아내인 신부는 바로 교회입니다. 시온산에 있는 예루살렘은 현실적으로도 존재하지만 영적인 뜻이나 미래적으로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21장은 천년왕국이 아닌 영원한 천국을 말합니다. 영원한 천국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인데 바로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인 교회를 형성해 가는 과정


 현재 우리가 구원받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신앙생활의 과정은 영원한 천국이요 새 예루살렘인 교회를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그 천국의 문이 되십니다. 열두 지파에게 각각 문이 있듯이 신자들에게 예수님이 문이 되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 세상에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는 삶 속에서 세상에 너무 밀착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뜻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주님 편에서 볼 때에는 그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영원한 새 예루살렘이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형성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의 삶은 이 흐름 속에서 교회를 이루어가는 한 과정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이 감각을 통해서만 무엇을 찾으려 하는데 그렇게만 해서는 안되고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지극히 영광스럽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참으로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그 예루살렘이 무너졌을 때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는 심정이 우리 마음에도 이 하나님의 교회를 향해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시는 주님


[시편 24:7-10]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왕이 입성을 하니까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하는 말씀에서 이 문들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말하고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는 아까 계시록에 나왔던 말씀대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속에 영광의 왕을 모시는 것이고 교회적으로 말하면 신앙생활을 할 때에 정말 주님이 우리의 중심이 되시는 것을 말합니다.





교제 속에서 열리는 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머리를 들 수 있을까요? 주님이 일구월심 원하시는 것은 성도가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라는 말씀처럼 되는 것이 바로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이 시온의 문들을 너무도 사랑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도성


[시편 87:3]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셀라)


 성을 최초로 쌓은 사람은 가인이었습니다. 가인의 성 쌓는 역사로부터 출발해서 인간의 역사는 계속해서 성을 쌓아 올리는 역사입니다. 가인이 성이 나중에 바벨탑, 바벨성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죄가 관영하여 항상 서로 미워하고 다투므로 원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아야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도 뉴스에 보면 소말리아 같은 나라는 서로 정권을 잡으려고 싸움을 합니다. 그 통에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갑니다. 미국이 중재자가 되어 협상을 하지만 전쟁이 그래도 끊이지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 세상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지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향해 성을 쌓고 있습니다. 부자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고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활짝 열어놓고 서로 터놓고 사는 것이 아니고 전부 성을 쌓는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이 세상에 들어오면서부터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하나님도 성을 쌓으시게 되었습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시면서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스리고 정복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이 왜 필요하냐 하면 사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나님이 지으신 성이 예루살렘입니다. 장차 이루어질 온전한 예루살렘 성은 바로 교회의 완성인데 그 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일까요?


 계시록 21장을 마지막까지 읽으면 성의 아름다움이 나옵니다. 전부 보석으로 꾸미고 금을 가지고 길을 깔고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니 필요 없고 하나님 자신이 성전이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이요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실질적으로 예루살렘 성이 완성이 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온 세계를 통치하십니다. 구약 성경의 많은 부분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때 마귀는 잡혀서 무저갱에 던져지고 이 땅 위에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 마련이 됩니다. 그곳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그 예루살렘 성전은 전부가 금으로 꾸며집니다. 현재 우리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영광스럽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 때 가서 직접 보고서 깜짝 놀랄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그 모든 삶이 그때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것과 비교될 때 얼마나 추하고 악하고 더러운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정적인 것, 더럽고 악한 것들이 제거되어야 되고 심판이 되어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옥 가는 심판은 물론 아니지만 그러한 것이 처리되지 않고는 우리가 깨끗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왔던 그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심판이 있습니다. 





천년 왕국에 들어가는 이방 사람들


[시편 87:4]

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이 라합이라는 말은 성경 밑 부분을 보면 애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는 이방 세계를 말합니다. 이방 세계도 하나님을 알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이방 사람이지만 천년 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천년 왕국에 못 들어가는 이방의 세계는 다 멸망해 버립니다. 7년 대환난에서 전부 다 멸망하는데 주님이 오셔서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때에는 그 안에 들어간 모든 사람들은 주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때-천년왕국 시대


[시편 87:5]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안다, 예수님을 안다는 말이 나오는데 현실적으로 하나님께로서 나지 않으면 예수님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도 확실히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서 났다 하는 말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만을 말하는지 이방인 중에 구원 안 받은 사람도 아마겟돈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 마지막 환난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천년왕국에 들어가는데 그 사람들도 났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구태여 그것을 억지로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이미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주님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거기, 시온에서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났다는 뜻이 아니고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면 이방인들도 지금까지 몰랐던 주님을 알게 되는데 그것을 천년왕국에서 났다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그 때는 아무리 이방 사람이라도 주님을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8:10-11]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이제 주를 알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다 주님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천년왕국에 대한 말씀은 아닙니다만 어느 시점에 가면 이 온 세상이 예수님을 다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다 압니다. 이 세상이 주님을 앎으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절대자로서 세상을 통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이 세상은 그 목적지를 향해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더욱 더 알아가는 생활


그런데 우리는 미리 주님을 알았으니 굉장히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서 났기 때문에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알아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주님의 거룩함을 우리가 더 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거룩함을 더 알아갈 때 그 거룩함에 참여하여 주님의 사랑을 더 알아가고 그 사랑에 참여하게 됩니다. 주님의 인격과 주님의 신성을 조금씩 더 알아가면서 참여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에 주님을 더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더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너무 게으르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베드로후서 1:8]

...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우리 신앙생활은 주님을 차츰차츰 더 알아가는 데 뜻이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만큼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민족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모세를 믿으며 그 율법을 가지고 삽니다. 아랍 사람들은 코란과 마호메트를 믿고, 알라신을 믿고 살아갑니다. 이스라엘과 아랍은 종교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아주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회교도 여러 파가 있는데 그 파끼리 서로 싸웁니다. 이란과 이라크는 같은 회교 국가라도 원수입니다. 예루살렘은 재미있는 곳입니다. 전세계 종교가 다 있습니다. 희랍정교가 있고 많은 성당이 있습니다. 카톨릭도 있고 회교도 있고 유대교도 있고 기독교도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온 세계가 하나로 통일됨


이스라엘의 목사님 중에 구원받은 분이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무지무지하게 핍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 종교들이 가득 차 있는 곳이 예루살렘인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을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세계에서 배척을 당합니다. 유대인도 천주교인들도 예수님을 안다고는 하지만 진짜로는 모릅니다. 지금은 여러 종교들이 서로가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면 믿음이 온 세상에 가득 차버리니까 완전히 평화의 세계가 됩니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전부 다 예수님을 아니까 모든 것이 통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통치하시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예수님을 알았으니 다 이렇게 함께 모여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 놓으신 것 입니다. 아니면 우리가 언제 보았다고 서로 교제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중국에 있는 분이나 러시아에 있는 분이나 어디에 있는 분들이라도 진정으로 예수님을 알면 마음이 하나로 뭉쳐져 버립니다. 바로 그러한 이상적인 세계가 이루어지지만 아직 우리는 육신이 있기 때문에 그 육신이 경계가 되어서 불협화음이 있기도 합니다.





주님의 백성으로 등록되는 사람들


[시편 87:6]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셀라)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신다는 말은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면 온 세계 민족이 주님이 다스리는 백성으로 전부 등록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1:15-17]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이 완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등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서 이방인의 예정된 그 숫자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확실히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예정된 숫자에 들어갑니다. 지금도 이방의 그 예정된 숫자가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이 더러는 완악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후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구원을 얻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영혼 구원이고 또 하나는 민족의 구원입니다. 현재도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은 지금은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되어 세계 각국에서 돌아오고 있지만 그것은 아직은 완전한 민족의 구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은 예수님이 오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야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예루살렘이 또 한 번 멸망 당합니다. 물론 환난 중에 성령이 임해서 구원받는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천년왕국에 참여하는 이방 민족의 수를 세신다고 했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아주 세밀합니다. 





천년 왕국을 예언한 시


[시편 87:7]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는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하나님의 모든 구원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을 건설했을 때에 그것을 고라 자손이 성령으로 말미 암아 시로 읊었는데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완전히 복구될 천년왕국 시대를 예언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깊은 관계가 있고 우리도 거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읽으면서 주님을 맞이할 날이 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제일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우리가 바라는 그런 일들이 닥쳐 온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말씀 안에 깨어 있어 신앙생활을 더욱 철저하게 하고 성실하게 한다면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