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8편] 역사의 교훈과 의미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저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율법 준행하기를 거절하며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저희에게 보이신 기사를 잊었도다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저희 열조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저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같이 서게 하시고 저희로 지나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으로 온 밤에는 화광으로 인도하셨으며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같이 저희에게 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 또 반석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에비하시랴 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 그러나 저가 오히려 위의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사람이 권세 있는 장의 떡을 먹음이여 하나님이 식물을 충족히 주셨도다 저가 동풍으로 하늘에서 일게 하시며 그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시고 저희에게 고기를 티끌같이 내리시니 곧 바다 모래 같은 나는 새라 그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 거처에 둘리셨도다 저희가 먹고 바불렀나니 하나님 이 저희 소욕대로 주셨도다 저희가 그 욕심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저희 식물이 아직 그 입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저희를 대하여 노를 발하사 저희 중 살진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 그럴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범죄하여 그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저희 날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저희 해를 두렵게 지내게 하셨도다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번인고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그 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 징조를, 소안 들에서 그 기사를 나타내사 저희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저희로 마실 수 없게 하시며 파리 떼를 저희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으며 저희의 토산물을 황충에게 주시며 저희의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저희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저희 뽕나무를 서리로 죽이셨으며 저희 가축을 우박에, 저희 양데를 번갯불에 붙이셨으며 그 맹렬한 노와 분과 분노와 고난 곧 벌하는 사자들을 저희에게 내려 보내셨으며 그 노를 위하여 치도하사 저희 혼의 사망을 면케 아니하시고 저희 생명을 염병에 붙이셨으며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 기력의 시작을 치셨으나 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셨도다 저희를 안전히 인도하시니 저희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저희 원수는 바다에 엄몰되었도다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그럴지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저희 열조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같이 빗가서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 자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그 대적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으며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시 78:1-72)


 이 시는 '아삽의 시 마스길'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실제로는 다윗이 지은 시를 아삽이 읊은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상기시키고 다시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에서 씌여진 것 같습니다.



역사의 교훈과 의미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교훈을 줍니다. 이러한 점에서 일반적인 역사 뿐만 아니라 교회사 그리고 우리 모임의 역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전우주적인 경륜과 계획을 알면 현재 우리들이 처해 있는 위치를 조명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임의 역사를 알면 현재 우리들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말씀 안에서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초대교회가 이루어져 갔는지를 역사적으로 엮어 놓았습니다. 이 사도행전을 공부하면 성령에 의한 교회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28장까지 되어있지만 28장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역사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에 성령이 오심으로 시작되었고 그 성령의 인도로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가 펼쳐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역사를 경영해 가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류가 이 세상에 창조될 때부터 그리고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성경을 공부하고 이해하면 세상 사람들이 역사 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정한 역사를 알 수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역사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굉장한 일입니다.

 시편 78편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 또 들으면서도 줄곧 하나님을 떠나서 딴길로 가고 자꾸만 죄를 짓는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저지른 불순종의 죄는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저지를 수 있습니다.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시 78:1-2)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길을 걸어가고 그 다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고 나중에 다윗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역사는 다 알수 있는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왜 옛 비밀한 말이라고 했을까요?

 아마 당시 사람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리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다른 뜻이 있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틀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5-7)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이 편지를 보면 지혜가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세상 지혜와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완전히 구별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혜는 연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만세 전에 미리 정한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보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 세상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는 전부 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있던 하나님의 뜻입니다. 역사라는 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의 마음 속에 품고 계시던 뜻이 시간을 따라서 이 세상 속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가 계시에 의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모든 지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시기 전부터 가지셨던 하나님의 모든 지혜와 축복과 생명이 온전히 구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이 세상에 나타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숨겨져 있는 지혜와 진리와 비밀을 우리가 아직은 다 맛보지 못했습니 다. 그 비밀은 무궁무진하게 깊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작은 부분만을 맛보고 경험한 것 뿐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 기자는,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시 78:2)

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 담겨 있는 그림자적이고 비유적인 비밀한 뜻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전해준 진리의 말씀


"이는 우리가 틀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시 78:3-4)


 이 시편 기자는 조상들이 전해준 이야기를 이 시로 읊었지만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는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듣고도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요일 1:1-2) 


 사도 요한이 쓴 편지 내용은 시편 기자가 발표한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들은 바요 아는 바라고 말했는데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말씀을 눈으로 보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졌다고 했습니다.

 구약과 신약이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은 어디까지나 본 바는 아닙니다. 보지는 못한 사실입니다. 구약은 조상들이 전해준 것을 들어서 아는 것인데 신약시대에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서 알았습니다. 그 만진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셔서 하나님의 생명을 이 세상에 나타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생명이요 사람들이 만질 수 있는 생명입니다. 하나님 안에 감취었던 그 비밀이 사람들이 만질 수 있는 생명체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도 바로 이 비밀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려고 꾸며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을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주목할 수 없는 시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회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 13:16-17)


많은 선지자와 의인들은 구약시대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성령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영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영의 눈으로도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님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회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회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 1:10-12)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구약의 선지자들은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였다고 했습니다.

 가령, 이사야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을 했지만 현재 우리들이 예수님을 아는 것처럼 알지는 못했습니다. 천사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영광스러운 구원이 어떤 것인가 알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주님이 이 역사 속에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메시야에 대한 선입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면 로마 정부를 엎어버리고 이스라엘이 온 세계를 다스리는 이상국가가 될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부활하신 다음에 성령이 오셔서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된 것,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받은 이것은 너무도 영광스럽고 귀한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구원을 못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 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39-40)


 구약시대에도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오순절 이후로 이제는 실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교회의 역사가 이루어져 가고 있는데 이것이 더 온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역사 가운데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축복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축복과 은혜와 생명의 시대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우리 마음이 힘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으면서도 자꾸만 딴길로 가면서 자꾸만 죄를 짓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단되지 않아도 지켜야 할 진리의 복음


"여호와께서 증거를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회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회로 후대 곧 후생 자손 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시 78:5-8)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선조들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을 그 자손 들에게 들려주신 것은 조상들처럼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을 떠나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昌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너의 아들 중 모든 장자된 자는 다 대속할지니라 장래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출 13:11-16)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날을 기념해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에는 생축의 제일 먼저 난 것을 다 하나님께 드리는데 죽여서 드립니다. 사람은 죽여서 못 드리니까 사람 대신 양을 잡아서 드립니다. 이렇게 할 때에 이 사실을 모르는 후손들에게 왜 이렇게 하는가를 설명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월절의 진리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 계속 흘러가도록 명령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월절을 지켜 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유월절 역사는 실지로 이미 다 이루어졌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유월절의 참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계속 지켜 왔습니다. 이미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것처럼 십자가에 달려서 이미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유월절 양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미 오셨는데도 지금까지도 유월절을 지키는 것을 보면 종교라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임을 느낍니다.

 우리 영혼 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져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변화를 받는데 이것이 시일이 흐르면서 점차 변질이 되어갑니다. 구원의 문제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간단히 생각하고 넘어가 버리는 경향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가짜가 얼마나 많이 생겨나는지 모릅니다.

 우리 모임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한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다 둘러앉아 같이 찬송 부르고 간증도 듣고 혹시 구원이 아닌가 싶으면 또다시 점검해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꼼꼼히 따져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구원받았다고 하면 별로 묻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얼렁뚱땅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번씩 수양회 하면 몇 천 명씩 구원받았다고 손 들고 일어나니까 그중 가짜도 상당히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문제도 이제 너무 형식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구원받고 신앙생활할 때에는 목숨을 걸어놓고 살았는데 요즈음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이 우리 속에 나타나서 우리가 그 큰 생명에 참여한 것이 너무도 큰 일인데도 요즈음 사람들은 구원을 그렇게 감사히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일 이렇게 세월이 오래 흘러가서 복음이 한 세대가 지나가면 그 다음에는 완전히 종교로 변하기 쉽습니다. 옛날에 장로교 안에서도 구원의 역사가 있었고 감리교 안에도 웨슬리에서 시작된 굉장한 구원의 역사가 있었지만 점차 변해가서 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같은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생명 자체가 빠져 나가버리면 형식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히 2:3)


 이같이 큰 구원은 창세 전에 하나님이 감춰놓았던 비밀인데 이 엄청난 구원을 받고 우리가 과연 구원받은 사람답게 생명을 걸고 사는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5:15)


 이제 우리가 구원받았으면 자신을 위해 사는 게 아니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도 현실적으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간이 있거나 생활 의 여유가 있을 때 주님을 위해서 조금 희생을 하겠다는 정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우리 한 시대에서 중단이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면 들림받을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날 속에서 계속 이 복음이 확장이 되고 전해지는 역사가 계속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자손들로 하여금 유월절의 뜻을 지키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명하셨지만 나중에는 유월절이 완전히 형식이 되어버리고 그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알맹이는 빠져버리고 그냥 형식만 끌고 나가면 종교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지난날에 바울과 믿음의 용사들 그리고 디엘 무디나 웨슬리, 스펄젼 같은 이들로 인해서 지금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져 주님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사와 말씀을 잊어버린 민족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저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율법 준행하기를 거절하며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저희에게 보이신 기사를 잊었도다"(시 78:9-11)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우상숭배를 한 결과로 나중에 두 나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한 북쪽 이스라엘 남쪽의 유다로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 왕 다음에 여로보암 때에 나라가 둘로 갈라져 버렸습니다.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저희 열조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저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같이 서게 하시고 저회로 지나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으로 온 밤에는 화광으로 인도하셨으며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갈이 저희에게 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 또 반석에서 시내를 내 사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 험하였으며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 그러나 저가 오히려 위의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저희에게 만나를 비갈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하나님이 식물을 충족히 주셨도다 저가 동풍으로 하늘에서 일게 하시며 그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시고 저희에게 고기를 티끌갈이 내리시니 곧 바다 모래 갈은 나는 새라 그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 거처에 둘리셨도다 저희가 먹고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저희 소욕 대로 주셨도다"(시 78:12-29)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참으로 완악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이적을 보앗으면서도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따라오고 앞에는홍해가 가로막혀 있을 때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키자 홍해가 갈라져 이스라엘 민족이 마른 땅을 걷는 것처럼 홍해를 건넜고 뒤를 추격해 오던 애굽의 군대가 수장되는 큰 이적을 보았지만 광야에 왔을 때에 물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말씀을 소화하지 못하는 신앙생활과 하나님의 징계


"저희가 그 욕심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저희 식물이 아직 그 입에 있을 때에"(시 78:30)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 일이라 이스라엘 은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결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회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1-3)


 이스라엘 민족이 물이 없다고 원망하였을 때에 물을 주셨고 배가 고프다고 원망했을 때에 만나를 내려주셨지만 그들은 계속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하루 분만 거두라고 하셨는데도 욕심을 부려서 많이 거두어 남은 만나가 썩어 버리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현재 우리들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보통 성경만 많이 읽으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을 읽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성경 말씀이 생활에서 소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동과 실천이 없이 성경만 많이 읽으면 영적인 소화 불량이 되는 것입니다. 만나는 한끼 이상 두끼를 모아오면 한끼 외에는 다 썩어 버렸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그 먹은 것을 소화하는 생활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하고 도우면서 모임에서 함께 움직이는 생활입니다. 어떤 사람은 귀만 높아 듣기는 하지만 실천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들은 바 말씀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지나친 욕심을 내어서 만나를 끌어 모으고 메추라기를 배가 부르게 먹었을 때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저희를 대하여 노를 발하사 저희 중 살진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시 78:31)


 그들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배불렀을 때에 그 청년들을 치신 것을은 무언가를 깨닫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종종 어려운 일이 생기게 하신것은 그들이 뭔가를 반성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민족은 완악하여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완악한 마음


"그럴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범죄하여 그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저희 낳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저희 해를 두렵게 지내게 하셨도다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회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그러나 저회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시 78:32-37)


 이스라엘 민족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는데 이 만나는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입니다.


"내 삶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삶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4-55)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온 양식이고 만나라는 것은 누누히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다음에도 계속적으로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먹으면서 산다는 것은 십자가의 진리를 계속적으로 알아가면서 믿음이 성장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피로써 영원히 해결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났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평생의 과정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이 죽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죽은 만큼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살아납니다. 바울은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경험을 간증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일평생의 생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번 안식을 깨달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것으로 다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전히 죽음을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할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항상 육신이 무너져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 속에서 고통하고 괴로워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 시련과 어려운 일들이 많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어려운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가 차츰 차츰 내 자신이 죽어가고 점점 주님이 내 안에 새 생명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눈으로 보았으면서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지으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현재 사람들을 위해 이 일에 대한 교훈으로 이 시편을 쓴 것입니다.



참으로 포용력이 넓으신 하나님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시 78:38-39)


 하나님의 백성들이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시험하기도 하는 때에 그 행한 일에 대해서 응분의 조치를하나님이 하셨다면 그들은 다시 심판을 받아 죽어 벗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현재도 교회 안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들이나 죄를 짓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깊이 니우쳐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만일 이것을 하나님이 죄대로 처리하신다면 우리가 살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죄가많고 하나님께 합당치 않는 면이 많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당장에 심판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육체뿐인 흙뭉치이고 가치 없는 나약한 존재들인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멸하지 않으시고 진노를 참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똑똑한 것같이, 선한 것같이 여기면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합니다. 내 열심이나 노력은 하나님 앞에 인정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니고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만을 인정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은 주님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만 인정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 육체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거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가치한 것을 아시기 때 문에 자비하신 마음으로 우리를 살려주시고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가슴이 넓으십니다. 포용력이 넓으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죄도 짓고 원망을 해도 하나님은 그 넓은 가슴으로 우리를 안아 주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의 생명을 보시는 하나님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고후 5:16)


 하나님은 우리 육체를 보시지 않고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의 생명을 보십니다. 주님의 생명에 근거를 두고 하나님은 일을 해나가 십니다. 그냥 우리 자신으로서는 아무 보잘 것이 없고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우리는 자신이 이 바울의 간증처럼 하나님 앞에 가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뭘 조금 했다고 하나님이 그것을 인정해주시느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정직하게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야 자기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알 수 없습니다. 양심적으로 정직하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열심을 다해서 사는 사람은 나중에 가서 자기는 정말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죽은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지 않는 사람은 항상 물에 물 타놓은 것 같은 태도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험하는 죄


"저희가 광야에서 그틉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번인고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시 78:40-42)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시험하는 죄를 짓고 죽음을 당한 일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성령을 시험하는 일은 큰 잘못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려보라고 시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시시때때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기 쉬운 많은 여건들이 종종 생겨납니다. 그런 여건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을 초월해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은혜 속에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자신을 완전히 맡겨버리는 것이 믿음의 생활인데도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민 14:22-23)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는 장정만 해도 육십만이 나왔는데 애굽에서 나온 사람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말고는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가나안 땅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교회가 형성되는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주님이 오시면 이루어질 천년왕국이 가나안 땅입니다. 구원받고 나서도 육신대로만 사는 사람은 육신이 심판되지 않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롯의 처가 그러한 경우입니 다. 육신의 소욕대로만 흘러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살아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징계가 뒤따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육신입니다.



하나님과의 심판과 징계


"그 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 징조를 소안 들에서 그 기사를 나타내사 저희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저회로 마실 수 없게 하시며 파리 떼를 저희 중에 보내야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으며 저희의 토산물을 황충에게 주시며 저희의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저회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저희 뽕나무를 서리로 죽이셨으며 저희 가축을 우박에 저희 양떼를 번갯불에 붙이셨으며 그 맹렬한 노와 분과 분노와 고난 곧 벌하는 사자들을 저희에게 내려 보내셨으며 그 노를 위하여 치도하사 저희 혼의 사망을 면케 아니하시고 저희 생명을 염병에 붙이셨으며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 기력의 시작을 치셨으나 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셨도다 저희를 안전히 인도하시니 저희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저희 원수는 바다에 엄몰되었도다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또 열방을 저회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그럴지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성하여 그 증거틀 지키지 아니하며 저희 열조갈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같이 빗가서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 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시 78:43-64)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 그 땅을 나누어 가지고 살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가나안 땅에서 이방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고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변에 있는 이방 사람들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멸망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들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세상의 공격을 받는데 이것이 단순하게 핍박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한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회개할 줄 아는 마음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모임만 하더라도 상당히 잘못된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가 조용히 생각해서 개인적으로나 모임 차원에서나 잘못된 일들은 솔직히 시인하고 그 잘못을 뉘우쳐야 합니다. 주님 앞에 우리가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임 안에도 여러 가지 죄들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가 징계를 받아야 할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일들이 반드시 핍박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더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낮아진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직접 죄를 짓지 않았어도 우리의 죄이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형제의 죄도내 죄이고 다 우리들의 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어려움을 당하고 이방 군대들이 와서 치는 일이 바로 징계였습니다. 그때는 마치 하나님이 주무시는 것 같고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하시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시는 하나님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 자갈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그 대 적을 쳐 룰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시 78:65-68)


 다윗은 모든 이방인의 세력을 다 무찔러 버리고 가나안 땅을 통일하는데 그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통해서 죄 지은 것까지 그림자는 아닙니다만 여호수아 이래로 완전히 정복을 못했던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다윗의 생애 자체가 예수님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 아들 솔로몬은 성전을 짓게 되는 데 솔로몬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솔로몬 왕은 영광의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잠자는 자 중에서 깬 것같이 떨치고 일어나셔서 하나님이 옛날부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약속을 실행하십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백성이지만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큰 일을 마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는 주님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갑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으며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시 78:69-72)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흙덩이 같은 우리 인간들이지만 그래도 결국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마지막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때로는 어려움을 당하고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고난을 받고 때로는 징계를 당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계속 주무시지는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틀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 121:3-4)


 하나님은 계속 우리를 통해서 하실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주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과 주님을 맞이할 비젼을 가지고 더욱 힘차게 남은 날들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