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1편] 하나님의 절기를 마음에 지키는 민족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월삭과 월망과 우리의 절일에 나팔을 불지어다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이르시되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셀라)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할지라도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시 81:1-16)


 시편 81편은 '아삽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 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깃딧은 '가드' 라는 곳에서 유행하던 곡이거나 그곳에서 만들어진 악기를 가리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지난번 시편 80편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읊어진 시였고 이 81편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초막절을 지킬 때에 읊어진 시입니다.



시편 81편의 역사적 배경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나타난 사실들을 모르면 이 시가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라는 것이 시를 짓는 사람의 뜻을 잘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시는 더더욱 뜻이 깊고 차원이 높은 영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냥 읽어서는 무슨 말씀인지 알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능력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월삭과 월망과 우리의 절일에 나팔을 불지어다"(시편 81:1-3)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율법책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지니라 하였고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뭇가지를 취하여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는지라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무슨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느 8:13-18)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는 바사(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1세의 수산궁에서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B. C. 444년에 친척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의 참상을 전해 듣고 근심하던 차에 왕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에 총독으로 가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학사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수문 앞에 모아 놓고 여호와의 성일에 율법책을 낭독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그 말씀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때 사로잡혀 갔다가 다시 돌아온 무리들이 초막을 짓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사로잡혀 갔다가 돌아와 다시 초막절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초막절은 티쉬리월(9, 10월) 15일부터 한 주간 지켜졌는데 첫날과 마지막 날에 성회가 열렸습니다. 초곡절은 추수감사제인 동시에 신년제이기도 했습니다. 밀과 보리를 추수하게 되면 들판에다가 나뭇가지를 꺾고 풀을 베어 가지고 초막을 만들어서 일주일 동안 그 안에서 지내면서 추수를 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민족


이 초막절을 다른 말로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레위기 23장에 보면 유월절, 무교절, 초곡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절, 초막절 등의 절기가나옵니다.

 첫번째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해방을 받아 나올 때 생겨난 절기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장자를 치는 재앙을 내리실 때에 이스라엘 민족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심판자가 그것을 보고 넘어가서 심판이 이스라엘 집에는 임하지 않은 것을 기념한 것이 유월절입니다. 

 두번째는 무교절인데 무교절이란 말은 누룩 없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누룩은 죄를 상징하는데 이 누룩이 없는 절기라는 것은 죄가 제해져 버린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제해진 것입니다.

 세번째 초곡절은 처음 익은 열매 한 단을 묶어서 바치는 절기인데 그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뜻입니다. 초곡은 처음 익은 열매를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처음 익은 열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마태복음에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 자던 성도들이 일어나서 거룩한 성에 들어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0-53)


 이 말씀의 내용을 확실히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에 자던 성도가 함께 부활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혼자만 바쳐진 것이 아니고 한 단이 묶어져서 바쳐졌다는 뜻으로 초곡절에 열매를 한 단으로 묶어서 바치는 것입니다.

 네번째가 오순절인데 유월절부터 시작해서 50일만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성령이 강림한 절기인 것입니다.

 다섯번째 나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되는 절기입니다. 영적으로는 구원받은 교회가 들림을 받는 내용이고 또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돌아오는 절기입니다.

 여섯번째가 속죄절인데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동안 구원을 못 받고 있다가 환난 속에서 회개를 하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날에 네 재물이 악탈되어 너희 중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 날에 싸운 것같이 하시리라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슥 14:1-3)


 아마겟돈 전쟁 때 예루살렘이 다시 한번 멸망을 받고 남은 자가 구원을 얻는데 그때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서 천년왕국이 시작이 됩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슥 14:16)


 예루살렘을 치러왔던 동방의 군대와 적그리스도의 군대가 같이 싸우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서 그 모든 군대가 다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 군대들은 다 죽지만 그 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본국에 살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천년왕국 때 해마다 올라와서 만군의 하나님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키게 됩니다.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 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슥 14:17-21)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오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벌을 받게 됩니다. 그때 우리가 구원받고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을 받은 것을 기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것이 초막절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와 다시 지키게 됐던 초막절은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이스라엘 3대 절기의 하나였습니다.



이스라엘 절기의 시작-출애굽과 유월절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월삭과 월망과 우리의 절일에 나팔을 불지어다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시 81:1-5)


 월삭은 월초를 말하고 그 다음에 월망은 음력으로 보름달이 제일 둥근 때인 보름을 말합니다. 여기 이 말씀은 초막절을 지키게 된 근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있다가 모세를 통해서 구원되는 데에서부터 모든 절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유월절부터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에 애굽에서 나올 때에 유월절이 시작되는데 그 절기를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사사대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제칠 일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칠 일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너희 곳에 있게 하지 말며 네 지경 안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며"(출 13:1-7)


 무교병 즉. 누룩을 넣지 아니한 떡을 먹으라 하였는데 누룩 없는 떡은 죄가 제하여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날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설날입니다. 이스라엘의 달력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때부터 열심으로 해마다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에 성전에 가서 양과 소를 잡고 자기네끼리 모여 그 고기를 먹으며 밤새도록 한 잠도 안자고 무슨 노래를 불러 댑니다.

 제가 유월절 즈음에 이스라엘 텔아비브라는 곳에 관광버스를 타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 몇 사람 말고는 전부 이스라엘 사람들로 들어찼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는데 밤새도록 누룩 없는 바짝 마른 기름기도 없는 떡을 구어 가지고 고기와 함께 먹으며 노래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월절은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4월 18일경 쯤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새 절기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렘 16:14-15)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을 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어느 때가 되면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고 북방 땅에서 해방 받은 날을 지키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몇 년 전에 유대인들이 각국에서 해방 받아 나온 날을 기념하여 절기로 삼아서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독일 갔을 때 돈을 모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도와주는 어떤 단체의 부회장을 초청하여 독일 우리 수양회에 특강을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주면서 지금은 이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15절에 있는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전부터서 조금씩 나왔지만 이제는 소련에서 완전히 해방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모든 일이 이 성경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절기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시 81:4)


 현재 우리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이런 절기가 있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7-8)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처럼 실지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보혈의 의미를 깨닫고 죄사함을 받아 우리 마음 속에 참된 유월절 절기를 지키며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찬송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명절을 지키되 순전하고 진실한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날짜를 지키는 절기가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날짜가 아니고 우리 마음속에 절기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그래서 우리는 날짜를 정해서 안식일을 지킨다든지 하는 문제에 얽매어 있으면 안됩니다. 가령 주일을 지켜도 안식일을 지키는 뜻으로 그것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은 안식일이 아닙니다. 우리 안식일은 우리가 마음속에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었을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이틀 그런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자들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가입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여러 가지 행사는 교회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그림자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진짜 주님의 몸 안에서 지금 살고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는 유월절, 무교절, 초곡절, 오순절 등등의 모든 절기가 다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 절기들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를 나누며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실제적인 절기-성찬식


그렇지만 우리들이 실제적으로도 지켜야 할 하나의 절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찬식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성찬식을 명령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성찬식은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영혼을 자유케 하는 진리의 말씀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이르시되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시 81:5-6)


 모세가 등장하기 전에 가장 위대한 사람은 요셉이었습니다. 애굽의 총리대신이었던 요셉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애굽 사람들도 요셉을 위대한 인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스라엘 민족을 요셉 족속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세가 나타났을 때에는 요셉의 존재가 애굽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잊혀져 있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요셉이 아주 위대한 인물로 인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에 가서 400년 간 살았는데 나중에는 요셉도 죽어버리고 요셉을 알던 바로 왕도 죽어버리자 나중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의 노예가 되어 라암셋이라는 성을 쌓았습니다. 광주리에 벽돌을 담아다 성을 쌓았는데 그 노동이 너무너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땀 흘리고 채찍을 맞아가며 수고하던 데서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은 아무도 상상 못 할 일이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노예가 되어 항상 힘든 노동을 해야 하는 운명 속에서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세가 나타나더니만 생전 처음 듣는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구원의 소식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과거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마음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어느날 주님의 복된 말씀을 깨닫고 그 짐을 단번에 벗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목사였지만 새벽마다 울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밤 새워서 울어 보기도 했지만 해결이 안됐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알고 피흘려 주신 것도 다 알았지만 그래도 양심에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말씀에서 해방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는 성경 구절을 달달 외우지만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나중에 죽으면 천당가겠지 하고 막연히만 생각하는 것이지요. 구원받아야 된다, 자유를 얻어야 된다고 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으면 그 너무도 엄청난 사실에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양심이 항상 괴로운데 성경이 풀어졌을 때 자유가 오는 사실에 놀라도 보통 놀란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다"는 말씀은 바로 이러한 경험을 토로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말입니다. 애굽 사람들의 채찍에서 벗어나 무거운 짐이 벗겨지고 이제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이 진리는 비밀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이 진리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알지 못하던 말씀이라고 한 것입니다.



해방의 기쁜 소식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6-8)


장엄하신 하나님의 음성


이 지혜는 이 세상 관원들이 하나도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감추어졌던 그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 입니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믿어도 이걸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이 지식을 우리가 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해방의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셀라)"(시 81:7)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 생활하면서 울부짖은 것을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라고 했는데 뇌성은 천둥치는 소리입니다.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 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출 19:16-21)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 우뢰소리가 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나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뇌성의 은은한 가운데 네게 응답했다는 것은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시고 나타나셨다는 뜻입니다. 그 때는 무서운 율법 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천둥과 번개가 치는 무시무시 한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율법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는 은혜 시대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광경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뜻을 말함과 동시에 성령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 은혜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기록 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깨달을 때에 은은히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참으로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은은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안에서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반석(예수님)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생명의 강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는 말씀은 출애굽기 17장을 읽어보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회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출 17:1-7)


 이스라엘 민족이 물이 없어 죽을 지경이었는데 모세가 반석을 치니까 그 반석이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므리바 반석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현재 영적인 뜻으로 말하자면 그 반석은 예수님입니다. 반석이 깨진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신 것을 뜻합니다. 성령은 십자가에 죽으사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반드시 십자가가 앞서고 성령이 그 다음에 임합니다. 십자가가 앞서지 아니하면 성령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도 구원을 받았지만 성령의 은혜를 더 경험하려고 하면 반드시 십자가를 지는 경험이 있어야 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경험이 없이는 성령의 새로운 은혜 속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실지로 목이 마르고 곤비한 상태에서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물을 준비하시고 마시게 하실 계획이 다 있는데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우리를 여기서 다 죽게 만들려고 인도했느냐고 불평했습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저들이 돌을 던져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짚고 가서 호렙산 반석을 치라고 했습니다. 반석을 쳐서 물이 나와 사람들이 마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거기서 생명수가 흘러 나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생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하는 데서 흘러나옵니다. 십자가를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생수를 마실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경험한다는 것은 고난과 시련을 겪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원망하고 돌질하려고 했던 것처럼 불평과 원망이 일어납니다. 그 불평과 원망하는 마음이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과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그 깨어진 반석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마시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은 주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깨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항상 좋은 일만 있어서 마음이 기뻐하고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표준은 매우 차원이 높은 것입니다.

 큰 시련과 고난과 어려움이 있는 그런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는 것은 이 육신이 깨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깨지셨습니다만 우리도 그 십자가에 참여하자면 우리도 역시 육신이 깨지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마음에는 즐거움이 있어도 육신은 고달픈 일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어려우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기 싫고 육신적으로 좀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살려고 하면 고난도 함께 겪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우리 마음이 주님께 감사하고 힘이 넘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만큼 육신은 고달프고 힘드는 과정이 있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시 81:8-9)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신을 의지하고 믿고 마귀의 상징인 바로 왕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우리도 구원받기 전에는 이 세상 신을 믿고 산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신이 뭡니까? 돈이나 부귀 명예 따위가 이 세상 신입니다. 이 세상에 물론 이런 저런 신이 있지만 역시 제일 힘 있는 신은 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훅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회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하나님을 섬기느냐 재물을 섬기느냐?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재물이라는 신을 섬기게 됩니다. 이 세상 신이 바로 재물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였는데 하나님을 섬기든지 재물을 섬기든지 둘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딤후 3:1-2)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대신에 바알 신이나 아세라 목상 등등 여러 가지 세상 신들에게 미혹되어 그들을 숭배하다가 결국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는데 현재 우리들의 우상은 바로 돈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돼지 머리 놓고 절하고 불상 앞에 가서 절하지는 않습니다만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나 있습니다. 완전히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상숭배입니다. 이 세상 마귀는 돈 뒤에 숨어서 세상을 지배합니다. 마귀의 힘은 돈입니다. 돈을 앞세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물질(돈)을 활용할 줄 아는 지혜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라"는 이 성경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이 바로 돈 사랑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은 생활이 무언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성경 말씀을 읽고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돈에 마음이 끌리고 주님보다는 더 돈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돈을 벌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돈은 열심히 정당하게 벌어야 됩니다. 돈을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쓸 수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돈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아도 주님이 오셔버리면 다 헛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의 자세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시 81:10-13)


 저는 과거에 참 바보같이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을 읽다가 "그냥 하나님 채워주십시오." 하고 입을 실지로 벌렸습니다. 참 바보지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좀 바보 같은 편 이 좋은 것 같습니다.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욥 23:10-12)


 욥은 말하기를 일정한 음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 듣는다든지 성경을 읽을 때만 소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할 수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에 두면 어느 시점에 가면 소화가 되어 버립니다.

 말씀이 생활 속에서 소화되는 것은 말씀을 실제로 순종을 통해 경험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이 머리 속에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순종하는 마음의 자세가 있는 사람은 입을 넓게 열어서 먹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구원받기 전에 교회에서 시무할 때 어떤 사람이 밥을 얻어 먹으러 왔는데 얼굴이 퉁퉁 부었습니다. 며칠씩이나 굶었다는 것입니다. 참 안 됐어요. 그래서 그때 보리쌀 섞인 밥을 한 그릇 주었는데 숟가락이 철철 넘치도록 정신없이 먹어요.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먹는데 목 메일까 겁이 날 정도예요.

 하나님 말씀에 주리고 목말라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연적으로 입을 넓게 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그것을 여기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만국의 심판과 천년왕국의 도래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할지라도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시 81:12-15)


 이 말씀은 천년왕국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린다고 하셨는데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은 다 죽지만 그 나라 나머지 백성들 가운데는 살아 남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통치 아래 들어갑니다. 구원을 못 받은 사람도 천년왕국에는 들어가지만 주님의 권위에 눌려서 복종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한 복종이 아니라 복종하는 체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나중에 천년왕국이 끝나고 마귀가 무저갱에서 잠깐 풀려나올 때 그들이 마귀의 군대가 되어 주님께 대항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다 멸망하여 지옥에 가게 됩니다. "여호와를 한한다"는 말은 원망한다는 뜻입니다. 그들과는 달리 구원받은 사람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와 풍성한 삶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시 81:16)


 이제 이것은 천년왕국에 이어 영원한 세계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 속에서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막절로서 절정의 얘기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들림 받고 난 다음에 주님과 함께 재림하여 그 초막절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초막절은 천년왕국 동안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임할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초두에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워하는 말씀으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여러모로 생각해 볼 때 참으로 다행한 일이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육신의 현실에 부딪혀 때로는 돈을 섬기기도 하고 세상 쾌락을 따라가기도 하는 마음 때문에 신앙생활에 힘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귀는 우리 주위 환경을 어지럽게 만들고 돈을 가지고 유혹을 하고 어떤 때는 이성관계로 유혹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 모든 상황들은 구원받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오실 때가 이제 가까운 이 때에 참으로 정신 차려서 신앙생활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