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증거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시 93:1-5)
이 93편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입니다. 93편부터 시작 해서 98편까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 말씀 전체가 구약시대의 다윗 왕이나 그밖의 왕들의 통치에 대한 내용과는 거리가 멉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이루어질 완전한 이상 세계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시 93:1)
여호와는 신약시대로 말하자면 주님 이십니다. 이 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통치를 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 불완전하고 문제가 많은 세상이 지나가고 주님이 오시면 완전한 통치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이 세상의 완전한 통치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이 얼마만큼 확고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신앙생활의 현재가 좌우됩니다. 이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시대가 있어야만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거기에 따라서 확고부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현실감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먼 미래에 되어질 일로만 생각을 하면서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데에 치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받은 구원이 완전한 구원이고 우리 영혼이 참으로 죄에서 해방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베드로전서 2장에 있는 말씀대로 맛을 보았다 하는 정도입니다.
완전한 구원의 세계를 예정하신 하나님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2-3)
구원을 맛본 정도고 아직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완전한 구원의 세계에 들어간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완전한 구원의 세계에 들어가면 우리의 생활도 완전한 생활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이 완전히 제해지고 모든 걱정과 근심과 환난이 다 사라집니다. 부조리하고 불의한 세상, 죄가 성행하는 이런 세상도 완전히 정리되고 가장 이상적인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죄를 짓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우리의 눈앞에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불안하고 죄악된 세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하지만 그 완전한 세상이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가 과연 우리 앞에 언제 찾아올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전혀 죄가 없는 완전한 세상을 목표로 정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생각할 때에는 그 세상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목적입니다. 그 완전한 세상이 오기 전에는 완전한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완전한 구원이 성립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 완전한 세상을 향해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예정하셨고 그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 성경에 예언한 말씀이 지금도 하나하나 다 이루어져 가고 있는데 조만간 그 완전한 세상이 우리 앞에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성급하여 그러한 세상이 우리 앞에 오기 전만이라도 좀더 현실적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보아야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신앙적으로 충실하지 못한 경향이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이 시편 말씀을 읽으면서 이러한 마음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완전한 세상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자세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 완전한 세상에 들어가는 것은 기정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또 우리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역할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본래부터 목적하시던 그 완전한 세상이 우리 앞에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거기에서 과연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는 항상 그 세상에서의 우리의 역할보다는 현실적인 행복이나 즐거움을 더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 이루어질 그 완전한 세상을 준비하는 일에 충실하지 못한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확고부동한 소망을 가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세상은 이런 불완전한 세상이 아닙니다. 조금도 불완전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세상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는 구원을 받았어도 뭔지 마음속에 완전한 것이 없고 항상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러운 죄가 우리 마음에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희미할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뭔가 불확실한 상태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깊이 생각을 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그 완전한 세상이 우리 앞에 차츰차츰 다가오고 있는데 그 세상에서 살기 위한 준비 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위나 권력은 불완전하고 허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통치하실 때에는 절대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권위를 가지고 통치하십니다. 거기에는 조금이 라도 흠이나 불의한 것이 섞여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악의 근원인 마귀를 완전히 가두어버리고 주님만이 창조의 능력과 사랑과 진리를 가지고 다스리시게 됩니다.
그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을 입으시고 띠 띠신 주님의 완전한 통치가 우리 앞에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틀림없이 여러분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런 세계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사실을 믿고 그 나라를 얼마나 간절히 기대하십니까? 지금 구원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세속적으로 흘러가서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루어질 그 완전한 세상에 대해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데 그 마음이 썩어빠진 마음입니다. 뭔지 모르지만 어떤 죄의 물결이나 마귀의 독소가 안개와 구름처럼 우리 마음을 뒤덮어 몽롱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진리로 양심을 다스려 주시는 메시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직전에 유대인들도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로마를 엎어버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구원시켜 줄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성경하고는 맞지 않는 메시야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려야 할 메시야는 죄에서 사람을 해방시키고 마귀로부터 구원하는 메시야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을 로마에게서 독립을 시켜주고 빈곤에서 벗어나 잘 살게 해주는 정치적 메시야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니까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메시야인가보다 하고 강제로 끌어다가 왕을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버렸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메시야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로 양심을 다스려주는 메시야였지만 그들은 그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완전한 통치
우리들은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셔야만 우리 구원이 완성됩니다. 지금은 우리 영이 구원받은 것 뿐이고 현실적으로 아직 완전한 구원은 못받았습니다. 우리 육신도 구원을 받아야 되고 그 다음에 우리의 생활이 실제로 예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에 들어가야만 완전한 구원이 됩니다. 그 완전한 구원을 갈망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오시면 자동적으로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고 완전히 구원이 이루어집니다만 개인개인으로는 그 완전한 구원인 주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분량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로 하나님의 목적은 완전한 세상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빼앗긴 이 세상을 완전히 회복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을 다스리라,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물론 그림자적인 내용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이 세상을 완전히 다스리는 것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실패했고 이 세상에는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에 이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는 악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을 마귀에게서 되찾아 완전한 세상을 만드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 구원만 있고 완전한 구원의 세상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현재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았지만 온전한 구원이 없다면 현재 우리 구원받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 완전한 구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완전한 구원이 우리 앞에 반드시 올 것 인데도 거기에 대해서는 너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해야 됩니다. 완전치 못한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도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온전한 생활-장성한 하나님의 아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내가 온전할 수 있느냐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온전할 수 있다 없다 생각하기 전에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실 때에는 온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온전할 수 없는데 온전하라고 하시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성경을 읽을 때에 어떻게 읽느냐 하면 머리로 따져서 받아들일 수 있을 때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불순종이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100% 진리므로 그 말씀을 100%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이 과연 무슨 뜻일까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3-47)
이 말씀을 읽어보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것입니다. 무엇에 온전하라는 것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 온전하라." 우리가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만 그 아들은 젖먹이 아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차츰차츰 자라면 장성한 아들이 됩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이 육신의 생각이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서 차츰차츰 꺾여지고 그 안에 있는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육신의 생각은 시련과 고난이 있어야 꺾어집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시련을 겪는 그것이 육신이 죽는 십자가입니다. 그것을 겪으면서 그 안에 있는 영이 좀더 활발해집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자기 육신의 생각이 꺾여지는 만큼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 나중에 장성한 아들이 되는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장성한 아들이 누굽니까? 성경 많이 아는 것이 장성한 아들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것만으로 장성한 아들이 아닙니다. 장성한 아들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는 말은 어떤 분량이 물론 있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에 그 온전한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가령 사도 바울은 충분히 온전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완전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원수를 용서한다고 누가 오른쪽 뺨을 치면 왼쪽 뺨을 돌려 대도 그것은 시늉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용이 없어요. 마음속 깊은 데 미움이 있으면서도 겉으로만 사랑하는 척하는 것은 다 형식이고 육신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그 안에 미운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게 온전한 것입니다. 온전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성령의 일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신앙생활은 결국은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이 우리 생명 안에 흘러나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는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하나님은 온전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온전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지 99%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생각에 이만하면 신앙생활이 되었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한 나라에서 얻을 상급을 결정짓는 현재의 삶
이제 하나님의 완전한 나라,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됩니다. 거기는 죄도 없고 걱정과 근심도 없고 어두운 것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주님이 절대적인 위엄과 권능을 가지고 다스리시는 사랑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현재 우리들은 그 나라를 바라보면서 온전한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해보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믿음의 분량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구원을 받았으니까 어차피 주님이 재림하시면 들림받을 것이고 그 나라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주저앉아버립니다. 현재 우리 주변에는 요동하는 세상의 풍조와 물결이 다가오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믿음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백이 없고 우리 마음에 참 신앙의 저항력이 생겨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재림을 기다린다고 해서 주님이 오시고 안 기다리면 안오시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이 오시면 이루어질 그 완전한 나라에 들어가서 받을 영광과 상급에는 각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열 고을 차지하고, 다섯 고을 차지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을 빼앗기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구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부터 예정되어 있는 주님의 보좌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시 93:2)
예수님 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그 왕의 보좌는 사실은 영원 전에, 창세 전에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1-5)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고 하였는데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때는 다윗이 이미 죽은 후 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3절에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라고 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육신적인 판단으로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에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는 말씀은 예수님이 왕노릇 하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장차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을 이미 예언했습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6-9)
이것은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입니다. 천년왕국은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시대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세상입니다. 죄도 없고 짐승들이 서로 싸우는 것도 없습니다. 어린애가 독사의 구멍에다가 손을 넣어도 아무 탈이 없고 사자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창세 전부터 작정된 일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로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여기에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다고 하였는데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완전한 세상을 만드사 통치하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이 긴긴 인간의 역사를 거쳐서 기어이 그 세상이 우리 앞에 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왕의 보좌는 본래부터 하나님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도 하나님은 본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 때는 아직 국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있든 없든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시고 영원 전부터 계셨지만 이 하나님의 국민이 생기는 과정이 인류의 역사의 목표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세계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면 우리 신앙 생활도 철저히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이상적인 세상에 들어가는 사람으로서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힘으로 준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준비를 시켜주시는데 그 준비가 바로 우리가 현재 당하는 여러 가지 모양의 고난입니다. 우리 앞에 찾아오는 그 고난을 잘 극복하는 사람은 거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잘 대처하지 못하면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큰물-이세상 환난과 심판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시 93:3)
'큰 물' 이란 말이 이상한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물이 났을 때가 어느 때입니까? 노아의 홍수 아닙니까? 노아의 홍수보다 더 큰 물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세상 마지막 환난을 말합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노아 당시에 네피림이라는 유명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 6:4)
그들은 굉장한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난 자들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아들들은 창세기 4장에 나타나는 셋의 계통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에 가인의 계통에서 난 사람들의 딸을 사람의 딸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 역시 그림자인데 현재도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 안받은 사람의 결혼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자녀가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세속화되어 세상 문명으로 변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 세상의 문명은 기독교 문명입니다. 기독교가 세속화되면서 이루어진 것이 현대문명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고대 유명한 용사도 홍수가 났을 때 다 심판받았듯이 적그리스도 역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홍수 그 큰 물에는 아무도 견딜 수 없습니다.
틀림없이 적그리스도도 기독교 안에서 나옵니다. 천주교도 역시 기독교의 일종이므로 현대 문명은 기독교 문명이 세상과 결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지 안믿는 사람이든지 다 기독교 문명권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열심있는 교인이지만 혼전 섹스를 인정한 사람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기독교가 타락하면 세상보다 훨씬 더 악한 길로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현대 문명이 절정에 올라 인간이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가 있습니다. 인간의 머리 속에서 나온 컴퓨터가 얼마나 기발한지 어떤 청년이 은행에 있는 돈까지도 컴퓨터로 조작을 해서 꺼내가려고 하다가 그만 들켰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머리가 비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이 컴퓨터 때문에 꼼짝 못하는 세상이 도래하게 됩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컴퓨터로 말미암아 사람의 이마나 손에 표를 하는 그런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하나님의 큰 물 속에 몽땅 다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마귀의 궤계와 환난 속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1-6)
여기서 여자는 이스라엘 민족을 말합니다. 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 중에 탄생하실 것을 말합니다.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 달린 붉은 용은 본래 옛 뱀 마귀의 정체입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 하더라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7-17)
7년 대환란도 큰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나지만 작은 의미에서는 마귀가 그 환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이를 낳은 여자 즉 이스라엘을 홍수로 떠내려가게 하려고 합니다. 이천년 동안 그렇게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환란을 일으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합니다. 마지막 환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은 큰 물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난 후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시니이다"(시 93:4)
그래서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완전히 심판이 되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시대가 옵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가 전해지는 교회-하나님의 장막
"여호와여 주의 증거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시 93:5)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 를 찾아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성령 안에서 하나님 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집이 지어져 간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2-23)
이 에베소서는 교회에 대한 내용입니다.어떻게 교회가 이루어지고 교회의 성격이 무엇인가가 밝혀져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회와 함께 계셔서"(계 21:3)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가 영원한 천국으로 이루어질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이 주님의 교회 안에 완전히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주의 증거하심 이 확실하고" 라고 했습니다.
시편 93편의 내용은 신약적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완전한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확실한 사실이 교회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고 나아가서는 교회 안에서 완전히 성립이 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완전한 세상이 올 때까지 이 세상은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가 전해져 온 계통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확실한 증거가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완전한 세상에 들어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떳떳한 삶
교회 밖에서는 주님의 확실한 증거를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다행하게도 이 가장 이상적이고 완전한 세계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도 그들 앞에는 문이 안 열려 있지만 우리 앞에는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 있고 주님의 확실한 증거가 전해지고 있는 그 속에 지금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전에 어떤 구원을 갓 받은 사람이 천국에 가서 마당을 쓸기만 해도 그게 얼만데 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작정하시고 계획하셨던 그 완전한 세상이 이제 우리 앞에 곧 나타날 터인데 그것을 우리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믿을진대 현재 우리의 생활이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구원받았으니까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세상, 좀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볼까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나라를 이룩하는 일에 모든 나라가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는 그것들보다도 훨씬 뛰어나고 온전한 세상,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을 향해 지금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 93편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입니다. 93편부터 시작 해서 98편까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 말씀 전체가 구약시대의 다윗 왕이나 그밖의 왕들의 통치에 대한 내용과는 거리가 멉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이루어질 완전한 이상 세계
여호와는 신약시대로 말하자면 주님 이십니다. 이 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통치를 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 불완전하고 문제가 많은 세상이 지나가고 주님이 오시면 완전한 통치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이 세상의 완전한 통치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이 얼마만큼 확고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신앙생활의 현재가 좌우됩니다. 이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시대가 있어야만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거기에 따라서 확고부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현실감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먼 미래에 되어질 일로만 생각을 하면서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데에 치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받은 구원이 완전한 구원이고 우리 영혼이 참으로 죄에서 해방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베드로전서 2장에 있는 말씀대로 맛을 보았다 하는 정도입니다.
완전한 구원의 세계를 예정하신 하나님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2-3)
구원을 맛본 정도고 아직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완전한 구원의 세계에 들어간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완전한 구원의 세계에 들어가면 우리의 생활도 완전한 생활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이 완전히 제해지고 모든 걱정과 근심과 환난이 다 사라집니다. 부조리하고 불의한 세상, 죄가 성행하는 이런 세상도 완전히 정리되고 가장 이상적인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죄를 짓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우리의 눈앞에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불안하고 죄악된 세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하지만 그 완전한 세상이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가 과연 우리 앞에 언제 찾아올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전혀 죄가 없는 완전한 세상을 목표로 정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생각할 때에는 그 세상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목적입니다. 그 완전한 세상이 오기 전에는 완전한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완전한 구원이 성립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 완전한 세상을 향해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예정하셨고 그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 성경에 예언한 말씀이 지금도 하나하나 다 이루어져 가고 있는데 조만간 그 완전한 세상이 우리 앞에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성급하여 그러한 세상이 우리 앞에 오기 전만이라도 좀더 현실적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보아야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신앙적으로 충실하지 못한 경향이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이 시편 말씀을 읽으면서 이러한 마음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완전한 세상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자세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 완전한 세상에 들어가는 것은 기정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또 우리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역할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본래부터 목적하시던 그 완전한 세상이 우리 앞에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거기에서 과연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는 항상 그 세상에서의 우리의 역할보다는 현실적인 행복이나 즐거움을 더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 이루어질 그 완전한 세상을 준비하는 일에 충실하지 못한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확고부동한 소망을 가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세상은 이런 불완전한 세상이 아닙니다. 조금도 불완전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세상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는 구원을 받았어도 뭔지 마음속에 완전한 것이 없고 항상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러운 죄가 우리 마음에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희미할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뭔가 불확실한 상태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깊이 생각을 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그 완전한 세상이 우리 앞에 차츰차츰 다가오고 있는데 그 세상에서 살기 위한 준비 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위나 권력은 불완전하고 허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통치하실 때에는 절대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권위를 가지고 통치하십니다. 거기에는 조금이 라도 흠이나 불의한 것이 섞여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악의 근원인 마귀를 완전히 가두어버리고 주님만이 창조의 능력과 사랑과 진리를 가지고 다스리시게 됩니다.
그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을 입으시고 띠 띠신 주님의 완전한 통치가 우리 앞에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틀림없이 여러분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런 세계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사실을 믿고 그 나라를 얼마나 간절히 기대하십니까? 지금 구원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세속적으로 흘러가서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루어질 그 완전한 세상에 대해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데 그 마음이 썩어빠진 마음입니다. 뭔지 모르지만 어떤 죄의 물결이나 마귀의 독소가 안개와 구름처럼 우리 마음을 뒤덮어 몽롱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진리로 양심을 다스려 주시는 메시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직전에 유대인들도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로마를 엎어버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구원시켜 줄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성경하고는 맞지 않는 메시야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려야 할 메시야는 죄에서 사람을 해방시키고 마귀로부터 구원하는 메시야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을 로마에게서 독립을 시켜주고 빈곤에서 벗어나 잘 살게 해주는 정치적 메시야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니까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메시야인가보다 하고 강제로 끌어다가 왕을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버렸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메시야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로 양심을 다스려주는 메시야였지만 그들은 그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완전한 통치
우리들은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셔야만 우리 구원이 완성됩니다. 지금은 우리 영이 구원받은 것 뿐이고 현실적으로 아직 완전한 구원은 못받았습니다. 우리 육신도 구원을 받아야 되고 그 다음에 우리의 생활이 실제로 예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에 들어가야만 완전한 구원이 됩니다. 그 완전한 구원을 갈망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오시면 자동적으로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고 완전히 구원이 이루어집니다만 개인개인으로는 그 완전한 구원인 주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분량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로 하나님의 목적은 완전한 세상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빼앗긴 이 세상을 완전히 회복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을 다스리라,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물론 그림자적인 내용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이 세상을 완전히 다스리는 것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실패했고 이 세상에는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에 이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는 악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을 마귀에게서 되찾아 완전한 세상을 만드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 구원만 있고 완전한 구원의 세상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현재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았지만 온전한 구원이 없다면 현재 우리 구원받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 완전한 구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완전한 구원이 우리 앞에 반드시 올 것 인데도 거기에 대해서는 너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해야 됩니다. 완전치 못한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도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온전한 생활-장성한 하나님의 아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내가 온전할 수 있느냐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온전할 수 있다 없다 생각하기 전에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실 때에는 온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온전할 수 없는데 온전하라고 하시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성경을 읽을 때에 어떻게 읽느냐 하면 머리로 따져서 받아들일 수 있을 때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불순종이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100% 진리므로 그 말씀을 100%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이 과연 무슨 뜻일까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3-47)
이 말씀을 읽어보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것입니다. 무엇에 온전하라는 것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 온전하라." 우리가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만 그 아들은 젖먹이 아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차츰차츰 자라면 장성한 아들이 됩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이 육신의 생각이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서 차츰차츰 꺾여지고 그 안에 있는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육신의 생각은 시련과 고난이 있어야 꺾어집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시련을 겪는 그것이 육신이 죽는 십자가입니다. 그것을 겪으면서 그 안에 있는 영이 좀더 활발해집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자기 육신의 생각이 꺾여지는 만큼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 나중에 장성한 아들이 되는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장성한 아들이 누굽니까? 성경 많이 아는 것이 장성한 아들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것만으로 장성한 아들이 아닙니다. 장성한 아들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는 말은 어떤 분량이 물론 있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에 그 온전한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가령 사도 바울은 충분히 온전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완전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원수를 용서한다고 누가 오른쪽 뺨을 치면 왼쪽 뺨을 돌려 대도 그것은 시늉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용이 없어요. 마음속 깊은 데 미움이 있으면서도 겉으로만 사랑하는 척하는 것은 다 형식이고 육신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그 안에 미운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게 온전한 것입니다. 온전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성령의 일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신앙생활은 결국은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이 우리 생명 안에 흘러나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는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하나님은 온전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온전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지 99%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생각에 이만하면 신앙생활이 되었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한 나라에서 얻을 상급을 결정짓는 현재의 삶
이제 하나님의 완전한 나라,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됩니다. 거기는 죄도 없고 걱정과 근심도 없고 어두운 것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주님이 절대적인 위엄과 권능을 가지고 다스리시는 사랑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현재 우리들은 그 나라를 바라보면서 온전한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해보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믿음의 분량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구원을 받았으니까 어차피 주님이 재림하시면 들림받을 것이고 그 나라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주저앉아버립니다. 현재 우리 주변에는 요동하는 세상의 풍조와 물결이 다가오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믿음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백이 없고 우리 마음에 참 신앙의 저항력이 생겨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재림을 기다린다고 해서 주님이 오시고 안 기다리면 안오시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이 오시면 이루어질 그 완전한 나라에 들어가서 받을 영광과 상급에는 각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열 고을 차지하고, 다섯 고을 차지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을 빼앗기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구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부터 예정되어 있는 주님의 보좌
예수님 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그 왕의 보좌는 사실은 영원 전에, 창세 전에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1-5)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고 하였는데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때는 다윗이 이미 죽은 후 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3절에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라고 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육신적인 판단으로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에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는 말씀은 예수님이 왕노릇 하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장차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을 이미 예언했습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6-9)
이것은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입니다. 천년왕국은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시대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세상입니다. 죄도 없고 짐승들이 서로 싸우는 것도 없습니다. 어린애가 독사의 구멍에다가 손을 넣어도 아무 탈이 없고 사자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창세 전부터 작정된 일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로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여기에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다고 하였는데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완전한 세상을 만드사 통치하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이 긴긴 인간의 역사를 거쳐서 기어이 그 세상이 우리 앞에 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왕의 보좌는 본래부터 하나님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도 하나님은 본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 때는 아직 국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있든 없든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시고 영원 전부터 계셨지만 이 하나님의 국민이 생기는 과정이 인류의 역사의 목표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세계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면 우리 신앙 생활도 철저히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이상적인 세상에 들어가는 사람으로서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힘으로 준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준비를 시켜주시는데 그 준비가 바로 우리가 현재 당하는 여러 가지 모양의 고난입니다. 우리 앞에 찾아오는 그 고난을 잘 극복하는 사람은 거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잘 대처하지 못하면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큰물-이세상 환난과 심판
'큰 물' 이란 말이 이상한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물이 났을 때가 어느 때입니까? 노아의 홍수 아닙니까? 노아의 홍수보다 더 큰 물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세상 마지막 환난을 말합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노아 당시에 네피림이라는 유명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 6:4)
그들은 굉장한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난 자들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아들들은 창세기 4장에 나타나는 셋의 계통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에 가인의 계통에서 난 사람들의 딸을 사람의 딸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 역시 그림자인데 현재도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 안받은 사람의 결혼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자녀가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세속화되어 세상 문명으로 변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 세상의 문명은 기독교 문명입니다. 기독교가 세속화되면서 이루어진 것이 현대문명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고대 유명한 용사도 홍수가 났을 때 다 심판받았듯이 적그리스도 역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홍수 그 큰 물에는 아무도 견딜 수 없습니다.
틀림없이 적그리스도도 기독교 안에서 나옵니다. 천주교도 역시 기독교의 일종이므로 현대 문명은 기독교 문명이 세상과 결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지 안믿는 사람이든지 다 기독교 문명권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열심있는 교인이지만 혼전 섹스를 인정한 사람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기독교가 타락하면 세상보다 훨씬 더 악한 길로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현대 문명이 절정에 올라 인간이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가 있습니다. 인간의 머리 속에서 나온 컴퓨터가 얼마나 기발한지 어떤 청년이 은행에 있는 돈까지도 컴퓨터로 조작을 해서 꺼내가려고 하다가 그만 들켰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머리가 비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이 컴퓨터 때문에 꼼짝 못하는 세상이 도래하게 됩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컴퓨터로 말미암아 사람의 이마나 손에 표를 하는 그런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하나님의 큰 물 속에 몽땅 다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마귀의 궤계와 환난 속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1-6)
여기서 여자는 이스라엘 민족을 말합니다. 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 중에 탄생하실 것을 말합니다.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 달린 붉은 용은 본래 옛 뱀 마귀의 정체입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 하더라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7-17)
7년 대환란도 큰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나지만 작은 의미에서는 마귀가 그 환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이를 낳은 여자 즉 이스라엘을 홍수로 떠내려가게 하려고 합니다. 이천년 동안 그렇게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환란을 일으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합니다. 마지막 환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은 큰 물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난 후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완전히 심판이 되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시대가 옵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가 전해지는 교회-하나님의 장막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 를 찾아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성령 안에서 하나님 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집이 지어져 간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2-23)
이 에베소서는 교회에 대한 내용입니다.어떻게 교회가 이루어지고 교회의 성격이 무엇인가가 밝혀져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회와 함께 계셔서"(계 21:3)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가 영원한 천국으로 이루어질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이 주님의 교회 안에 완전히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주의 증거하심 이 확실하고" 라고 했습니다.
시편 93편의 내용은 신약적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완전한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확실한 사실이 교회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고 나아가서는 교회 안에서 완전히 성립이 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완전한 세상이 올 때까지 이 세상은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가 전해져 온 계통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확실한 증거가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완전한 세상에 들어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떳떳한 삶
교회 밖에서는 주님의 확실한 증거를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다행하게도 이 가장 이상적이고 완전한 세계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도 그들 앞에는 문이 안 열려 있지만 우리 앞에는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 있고 주님의 확실한 증거가 전해지고 있는 그 속에 지금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전에 어떤 구원을 갓 받은 사람이 천국에 가서 마당을 쓸기만 해도 그게 얼만데 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작정하시고 계획하셨던 그 완전한 세상이 이제 우리 앞에 곧 나타날 터인데 그것을 우리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믿을진대 현재 우리의 생활이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구원받았으니까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세상, 좀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볼까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나라를 이룩하는 일에 모든 나라가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는 그것들보다도 훨씬 뛰어나고 온전한 세상,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을 향해 지금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