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9편] 여호와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시편 29:1-1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시편 29편은 자연을 소재로 하여 하나님을 노래한 다윗의 시입니다. 





교회의 지위


[시편 29: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


 “권능 있는 자들”은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을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고린도전서 11:10)는 말씀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천사들을 인하여 여자들은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두라는 말씀은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는 집회 시 여자들이 얘기할 때는 머리에 수건을 썼습니다.


 우리 모임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모이면 여성 분들은 머리에 손수건이라든지 흰 천을 얹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러한 일은 중단되었습니다. 모임에서 여자들이 공중을 대표하여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일이 없으니까 자연히 그럴 필요가 없어졌던 것입니다. 여권신장이 많이 된 시대이지만 성경은 여자와 남자의 위치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5]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말할 때에 여자는 교회의 위치에 있습니다. 주님께 절대 복종하는 것이 교회의 위치입니다. 교회 안에서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가르친다거나 대표적으로 기도를 하는 것은 자기가 권세 아래 있는 신분임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말씀에 “천사들을 인하여”라고 한 것은 천사가 하나님 밑에 있고 복종할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루시퍼라는 천사는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락해서 사탄이 된 것입니다. 교회는 천사들을 가르칠 위치에 있습니다. 만일 천사가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지 않는다면 루시퍼처럼 사탄이 되고 맙니다. 아무리 권능이 있어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지 자신이 차지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6:2-3]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우리”는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가 천사를 판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교회는 천사를 판단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주님에 대한 교회의 순종이 천사를 가르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는 천사들이 사람보다는 권능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있고 또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천사들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교회가 천사들 위에 있게 됩니다.


 계시록 22장에 보면 사도 요한이 천사에게 절을 하려고 하자 천사가 요한을 만류하면서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요한계시록 22:9)는 내용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어떤 사람들이 자기가 신령하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천사를 보았다고 하면서 천사를 숭배하는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천사는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교회가 천사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다윗은 천사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2장의 내용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천사를 높이는 사상이 은연중에 퍼져 있기 때문에 그 사상을 무너뜨리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천사보다 낫고 모세나 여호수아보다 낫고 제사장보다 낫다는 것을 엮어 나가 9장에 이르러 예수님이 희생 제물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생활


[시편 29: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이 무엇입니까? 신약시대에 오면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빌립보서 2:5-8)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모든 무릎이 그 이름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그 이름은 예수님이신데 그가 만왕의 왕이시고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11:9]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을 베푸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더러운 것과 이 세상과 죄 등으로부터 완전히 구별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에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육신에는 아직 죄가 있지만 성령이 오셔서 거듭날 때 성령 오시기 전의 사람과 그 후의 사람이 달라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뜻이고 거룩한 성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태복음 1:21)고 했는데 예수라는 그 이름, 또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지 구원받을 때 그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또 아름다운 목적을 향해서 이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리고 그 이름에 능력을 돌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아름답고 거룩하고 선하신 이름이 맡겨진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20)고 하시고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14).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리고 그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천사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누구든지 주님 안에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내가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은 더러운 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무엇을 해서 하나님 앞에 내보이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옷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잘한 것이든지 못한 것이든지 나의 것은 예수님 안에서 숨겨지고 그리스도를 옷 입은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옷 입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아름다운 옷으로 덧입는 생활입니다. 그 이상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운행되는 자연법칙


[시편 29:3-9]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로 온 세상을 멸했고 지금도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둥소리가 들리는데 이런 것이 여호와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해서 여호와의 소리입니까? 하나님이 자연계에 법칙을 불어 넣으신 것입니다.


 바람이 부는 것도 법칙이고 폭우가 쏟아지는 것도 법칙이고 구름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나는 것도 법칙입니다. 소나기가 쏟아질 때 언덕이 무너지고, 강한 바람이 불어 가로수가 쓰러지는 현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말미암는 법칙의 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연 법칙 속에 엄청난 위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어느 날 갈릴리 바다 배 위에서 주무실 때에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어지려 하자 제자들이 겁에 질려 예수님을 깨우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꾸짖으시자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바다를 잔잔케 하는 능력이 예수라는 작은 육신 속에 압축되어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물의 법칙을 만들어낸 창조주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무섭고 매우 엄하신 분으로 율법적으로 나타나시고 신약시대의 하나님은 은혜 속에 나타나십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말씀으로 모든 것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큰 하나님입니까? 그래서 다윗은 이 위대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천사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4:32-35]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은혜에 넘치심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의 장자들이 죽는 것과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에게는 구원의 그림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타난 현실적인 기적과 우리가 영혼 구원을 받은 것이 똑같은 원리입니다. 우리 영혼 속에도 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기적 역시 하나님의 음성으로 말미암았습니다. 모든 법칙으로 운행되는 자연계에도 하나님의 소리가 미치고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과 능력과 권위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들린 하나님의 음성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실 때의 엄하고 두려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조용한 음성입니다. 예수님이 마치 바다를 잔잔케 하신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조용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을 때에 우리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전서 1:10-12]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천사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구원의 소식을 우리가 들은 것입니다. 천사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예언하던 선지자들도 그들이 직접 구원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들도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했는데 그 영은 생명의 영이 아닙니다.


 그들의 구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부활하실 때에 이루어집니다. 물론 우리보다는 먼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선지자들이 예언할 당시에는 우리들처럼 구원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천사도 그 구원이 어떤 것인지 알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들이 받았습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들렸던 하나님의 음성이 그렇게 큰 영광중에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창조된 우주만물  


[고린도후서 4:4-6]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예수님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의 마음에 비췄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는 그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자연계 속에 하나님의 소리가 나타나고 이스라엘 민족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나타나는 것처럼 신약시대에 와서 하나님의 조용하고 은혜로운 음성이 조용히 양심 속에 들려온 것입니다.



[시편 119:89-96]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를 생각하겠나이다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


 하나님의 법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91절까지는 자연의 법칙에 대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라는 말씀이 나타내듯이 그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계획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시편 119:90-91]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영원 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물리적인 현실 속에 나타날 때에 자연계가 생겼습니다.



[시편 119:92-93]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이 아니고 심령의 법칙입니다. 이 마음의 법칙도 영원 전에 계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 세상 만물 중 으뜸이고 가장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그 계획에 의해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와서 우리 영혼이 살아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자연법칙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못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살아났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도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힘과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기의 능력과 힘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실 날이 가깝다고 하면서도 위를 쳐다보고 주님 오실 것을 기대하면서 준비하며 생활하기보다는 땅을 내려다보고 내 힘으로 사는 데 더 마음이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시편 29: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하나님의 전에서 가리키는 영광입니다



[요한계시록 4:1-1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이 말씀에는 사도 요한이 본 하늘의 광경이 나옵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처럼 직접 그 광경을 못 보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그 광경을 보는 것입니다.


 이 자연계는 하나님의 영광의 반영입니다. 여기에 ‘올라오라 하매 올라갔다’는 말씀은 교회가 들림 받았을 때에 지성소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표현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소리로 말미암아 형성된 우주 만물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에 대한 영광을 찬양하고 다음에는 구원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 구원에 대한 영광과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창조가 하나님의 소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듯이 구원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광에 참여한 사람들이고 이 영광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의 위대한 음성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기쁜 마음으로 행하면 복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 29: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심판도 하나님의 영광이고 구원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에스겔 38장 16절에 보면 소련 군대가 이스라엘을 칠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마지막에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들림 받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알지 못하는 삶을 살다가 심판하는 영광이 나타날 때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시편 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그 복된 소리, 복된 말씀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모든 복을 이 땅에 내리게 하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신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 계시지만 땅에 이뤄지는 그 축복의 현장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