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3:1-22]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바로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찌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찌어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찌어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함에 말은 헛 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시편 33편은 다윗 왕이 가나안, 히위, 여브스, 헷, 아모리, 기르가스, 브리스 족속과 롯의 계통인 암몬과 모압 족속 그리고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과 싸워 승리를 거둔 후 부른 승전가입니다.
다윗의 승전가
[시편 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바로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로마서 4:5)라는 말씀도 있듯이 의인은 자기 힘을 의지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당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았으므로 다윗이 ‘의인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무력이나 인간적인 노력으로 적군을 이긴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다윗이 그들을 “의인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또 “정직한 자”라고 했는데 인간의 윤리나 도덕적인 면에서 정직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인간의 행위는 정직한 것도 없고 의로운 것도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었을 때에 그 믿음 안에는 의가 따르고 정직함이 있다는 뜻입니다. 죄인일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시인하고 하나님만이 힘과 능력과 의가 되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바로 정직입니다.
그래서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힘이 없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33:2-3]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찌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찌어다
승전가를 부르는 광경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예수님의 왕권을 대행하는 그림자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성취하시기 위해 오셨고, 또 다윗의 그 왕권을 수행하시려고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천 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은 영혼의 왕이시고,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이천 년 동안 영혼의 왕이신 예수님은 누구든지 진리를 깨달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진리로써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 세상이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 전에 진리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양심, 즉 영이 지배를 받고 다스림을 받아야 됩니다. 그것이 곧 영혼의 구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에 만물이 노래하며 주님께 찬송과 영광을 드리는 광경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이것은 주님의 승리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승리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주 만물이 환희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이사야 42:9-12]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광야와 거기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거민들은 노래하며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찌어다
하나님의 승리로 새 노래를 부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원수를 무찌르고 승리한 것도 주님의 승리의 그림자입니다. 그 승리는 다윗의 힘이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의지했을 때 얻은 승리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승리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고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에서 믿음으로 승리하여 하나님 앞에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서 6:12)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그 영적 전쟁에서 우리는 육신의 힘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나 열심으로는 승리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참고 견디는 것도 있지만 모든 것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시편 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에베소서 6:17)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히브리서 4:12)고 했습니다.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도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고 했듯이 말씀을 의지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며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변질되거나 약화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서 신앙생활의 무기로 삼지 않는 데 있습니다.
어떤 문제든지 말씀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소 성경을 많이 읽어 말씀을 간직하고 있으면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승리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시편 33:5]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정의와 공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제사장 등 당시 유대의 지배 계급들이 사람들을 억압했을 때 예수님께서 공의로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태복음 21:3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세리나 창기의 생활이 바르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느냐 짓지 않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깨닫고 주님의 의로움을 의지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으로 정의를 판단하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것, 주님의 의로움을 믿고 자기의 의로움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이고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시편 85:10-11]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려면 하나님의 진리와 의를 깨달아야 됩니다. 거듭난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새롭게 더 알려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깊이 알고 그의 앞에 자신이 부정되는 경험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사랑이 함께 나타났습니다.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 양면이 있어야 됩니다. 신앙생활 하는 동안 하나님의 의 앞에서 자신의 부정적인 면, 잘못된 점이 발견되고 그로 인해 주님과 나 사이에 의논이 있고, 새로운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의 의 앞에 드러내놓고 세밀히 검토하고 살펴야만 하나님의 더 큰 사랑과 은혜를 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도전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원수들로부터 공격 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신 데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는 이 죄악 세상에 살면서 죄의 종노릇 할 뿐,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구원을 받았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긍휼 얻은 자의 무리一하나님의 백성
[시편 33:6-8]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찌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시로 읊고 있습니다.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같이 쌓았다는 것은 북극이나 남극의 얼음 대륙을 말합니다. 이 세상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영감입니다. 성령의 안목으로 이 세상을 보았을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솜씨를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 하나님의 큰 경륜을 알고 우주를 볼 수 있고, 영원을 믿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은 구원받음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시편 33:8-12]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찌어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는 이스라엘 민족뿐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사람 중에는 무신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무신론자들의 사고방식에도 하나님에 대한 사상이 잠재해 있고 그들 또한 하나님의 계획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천 년 전에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에 온 세계에 흩어져서 저주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계획대로 많은 사람이 회개할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현재 하나님의 나라는 이 지상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구원받은 무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이며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시편 33:13-14]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어두운 구석에서 혼자 행하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며 어떤 것도 하나님께 숨겨질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다음에도 선악 간에 그 행함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4-37]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리를 거스려 거짓말할 때가 있고, 불평과 원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며 믿음을 무너뜨리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 말, 행동 등 모든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피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해서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33:15]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통해서 죄를 짓고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에 침상이 젖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10)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면 틀림없이 정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의 성장 과정에는 차츰차츰 마음이 정돈되고 주님께로 좀 더 가까이 인도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일입니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행사를 맡기면 하나님은 그 마음을 지켜 주십니다.
내 스스로 마음을 다듬을 수는 없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마음이 점점 새로워지고, 더 정한 마음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구원받은 후 신앙생활에서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에 아직 자신의 의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다 비워 있지 않은 것입니다.
[시편 33:16-17]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함에 말은 헛 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요한계시록 9:16-17]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말씀은 군대의 힘과 용사의 힘을 평가하는 말입니다. 이사야 31장 3절에 보면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말을 의지하는 자, 즉 육신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멸망케 하 신다는 뜻입니다.
계시록에 예언된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는 말은 타는 말이 아니라 마지막 시대에 등장되는 엄청난 화력을 지닌 무기를 묘사한 것입니다. 전쟁 때에 그 무기가 동원됨으로써 결국에는 다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얻는 승리의 생활
[시편 33:18-20]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신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을 때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을 맛보았듯이 신앙생활의 모든 부분에서도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항상 바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으로 삼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을 바라며 사는 자를 돌보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시편 18: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함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영적 싸움에서 하나님이 구출하시고 승리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33:21-22]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다윗은 자신의 힘에 의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랐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의 승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8:33-39]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바울은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위험이 와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 승리가 있습니다. 다윗이 승리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시편 33편은 다윗 왕이 가나안, 히위, 여브스, 헷, 아모리, 기르가스, 브리스 족속과 롯의 계통인 암몬과 모압 족속 그리고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과 싸워 승리를 거둔 후 부른 승전가입니다.
다윗의 승전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로마서 4:5)라는 말씀도 있듯이 의인은 자기 힘을 의지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당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았으므로 다윗이 ‘의인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무력이나 인간적인 노력으로 적군을 이긴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다윗이 그들을 “의인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또 “정직한 자”라고 했는데 인간의 윤리나 도덕적인 면에서 정직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인간의 행위는 정직한 것도 없고 의로운 것도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었을 때에 그 믿음 안에는 의가 따르고 정직함이 있다는 뜻입니다. 죄인일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시인하고 하나님만이 힘과 능력과 의가 되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바로 정직입니다.
그래서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힘이 없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승전가를 부르는 광경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예수님의 왕권을 대행하는 그림자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성취하시기 위해 오셨고, 또 다윗의 그 왕권을 수행하시려고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천 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은 영혼의 왕이시고,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이천 년 동안 영혼의 왕이신 예수님은 누구든지 진리를 깨달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진리로써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 세상이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 전에 진리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양심, 즉 영이 지배를 받고 다스림을 받아야 됩니다. 그것이 곧 영혼의 구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에 만물이 노래하며 주님께 찬송과 영광을 드리는 광경이 나옵니다.
이것은 주님의 승리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승리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주 만물이 환희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승리로 새 노래를 부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원수를 무찌르고 승리한 것도 주님의 승리의 그림자입니다. 그 승리는 다윗의 힘이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의지했을 때 얻은 승리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승리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고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에서 믿음으로 승리하여 하나님 앞에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서 6:12)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그 영적 전쟁에서 우리는 육신의 힘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나 열심으로는 승리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참고 견디는 것도 있지만 모든 것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에베소서 6:17)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히브리서 4:12)고 했습니다.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도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고 했듯이 말씀을 의지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며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변질되거나 약화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서 신앙생활의 무기로 삼지 않는 데 있습니다.
어떤 문제든지 말씀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소 성경을 많이 읽어 말씀을 간직하고 있으면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승리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정의와 공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제사장 등 당시 유대의 지배 계급들이 사람들을 억압했을 때 예수님께서 공의로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태복음 21:3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세리나 창기의 생활이 바르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느냐 짓지 않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깨닫고 주님의 의로움을 의지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으로 정의를 판단하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것, 주님의 의로움을 믿고 자기의 의로움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이고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려면 하나님의 진리와 의를 깨달아야 됩니다. 거듭난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새롭게 더 알려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깊이 알고 그의 앞에 자신이 부정되는 경험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사랑이 함께 나타났습니다.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 양면이 있어야 됩니다. 신앙생활 하는 동안 하나님의 의 앞에서 자신의 부정적인 면, 잘못된 점이 발견되고 그로 인해 주님과 나 사이에 의논이 있고, 새로운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의 의 앞에 드러내놓고 세밀히 검토하고 살펴야만 하나님의 더 큰 사랑과 은혜를 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도전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원수들로부터 공격 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신 데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는 이 죄악 세상에 살면서 죄의 종노릇 할 뿐,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구원을 받았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긍휼 얻은 자의 무리一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시로 읊고 있습니다.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같이 쌓았다는 것은 북극이나 남극의 얼음 대륙을 말합니다. 이 세상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영감입니다. 성령의 안목으로 이 세상을 보았을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솜씨를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 하나님의 큰 경륜을 알고 우주를 볼 수 있고, 영원을 믿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은 구원받음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는 이스라엘 민족뿐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사람 중에는 무신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무신론자들의 사고방식에도 하나님에 대한 사상이 잠재해 있고 그들 또한 하나님의 계획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천 년 전에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에 온 세계에 흩어져서 저주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계획대로 많은 사람이 회개할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현재 하나님의 나라는 이 지상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무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이며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일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어두운 구석에서 혼자 행하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며 어떤 것도 하나님께 숨겨질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다음에도 선악 간에 그 행함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리를 거스려 거짓말할 때가 있고, 불평과 원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며 믿음을 무너뜨리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 말, 행동 등 모든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피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해서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통해서 죄를 짓고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에 침상이 젖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10)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면 틀림없이 정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의 성장 과정에는 차츰차츰 마음이 정돈되고 주님께로 좀 더 가까이 인도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일입니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행사를 맡기면 하나님은 그 마음을 지켜 주십니다.
내 스스로 마음을 다듬을 수는 없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마음이 점점 새로워지고, 더 정한 마음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구원받은 후 신앙생활에서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에 아직 자신의 의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다 비워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군대의 힘과 용사의 힘을 평가하는 말입니다. 이사야 31장 3절에 보면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말을 의지하는 자, 즉 육신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멸망케 하 신다는 뜻입니다.
계시록에 예언된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는 말은 타는 말이 아니라 마지막 시대에 등장되는 엄청난 화력을 지닌 무기를 묘사한 것입니다. 전쟁 때에 그 무기가 동원됨으로써 결국에는 다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얻는 승리의 생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신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을 때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을 맛보았듯이 신앙생활의 모든 부분에서도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항상 바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으로 삼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을 바라며 사는 자를 돌보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함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영적 싸움에서 하나님이 구출하시고 승리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에 의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랐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의 승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위험이 와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 승리가 있습니다. 다윗이 승리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